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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Lisa Sep 23. 2023

재회 (Family reunion)

하와이 도착


"누나, 미안해. 시간이 필요했었어. 그동안 동생노릇 삼촌노릇 못해서 미안해" 하와이로 초대해 준 막내 남동생이 십여 년 전 의대 졸업을 앞두고 우리 집에 찾아왔었다. 그때 난 진심 어린 '미안하다' 한마디가 절실할 때였다. 하지만, 잘못 없는 아니 나와 같이 사과를 받아야 할 동생의 그 말은 아픈 마음을 더 깊게 찔러왔다. 엄마가 재혼하면서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세 명의 동생들이 더 생겼다.


나와 내 여동생은 뉴욕에 엄마와 새아버지와 살았고 세명의 동생들은 그들의 엄마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었기에 얼굴 한 번 본적 없이 형제자매가 되었다. 그때 난 맏이로 스물세 살이었고 막내 동생은 사춘기 중학생이었다.


곧 엄마와 아버지도 서부로 이사했다. 어쩌다 보니 나와 내 여동생도 그들을 뒤따라 이주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세배 크기인 캘리포니아에서 꽤 떨어진 거리에 지내며 동생들과 자주 만날 수 없었다. 내 결혼에도 막내 남동생은 오지 않았다. 새로 생긴 착한 여동생 M은 들러리를 서주었고 번죽 좋은 둘째 남동생 D는 우리 집으로도 찾아와 밥을 먹고 가곤 했다.


그때에도 막내 남동생은 사춘기 고등학생이었고 여전히 화나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왕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선한 막내 남동생은 바로 살갑게 다가왔다. 이미 아이들의 엄마가 된 내게 한참 어린 그 동생은 애잔했다. 챙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막내 남동생은 괜찮아진 것 같더니 다시 마음을 못 잡고 휴학하고 세상을 떠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못 봤다.


그리고 어느 날 찾아왔다. 거의 십 년만이었다. 혼자 오기 민망했는지 친구 한 명과 유난히 눈이 많이 오는 새하얀 일월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자신의 또 다른 가족을 찾아왔다고, '우리의' 아버지를 용서하고 '우리의' 엄마를 자신의 또 다른 엄마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며서 사과했다. 늦게 찾아와 미안하다고. "네가 뭐가 미안하니..." 우리는 진짜 남매가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부와 모가 맘대로 맺아준 형식적인 형제자매에서 진짜 가족이 되어갔다.


난 일찍 결혼해서 엄마의 새 가정을 떠났다. 막내 동생은 전문의 기간이 끝나자마자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겠다며 오지로 떠났다. 찾아가기도 뭐 한 그런 곳으로만 직장을 옮겨 다녔다. 이곳 하와이 역시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관광업에 종사하는 가난한 이들이다. 동생은 쉬는 날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해수면 아래 깊이까지 내려간다.


산행을 나가면 10kg이 빠질 올 정도로 몇 날 며칠씩 등반한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은 아니지만 언저리 어디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내가 집에서 꼼짝 않고 아이들을 키우며 내면의 심연 속으로 깊이깊이 빠져들었다 살기 위해 기어올랐다 반복하는 동안 막내 동생 역시 세상의 해수면과 해발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또 십 년쯤 지나 이번엔 내가 막내에게 왔다. 이년 전 하와이에 이사 하자마자 언제든지 놀러 와 내 집처럼 쉬다 가라는 동생을 이제야 찾아왔다. 왜 여기까지 오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공항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 꼭 포옹을 한다.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소년 같은 동생인데 그의 모자 사이로 하얀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다. 반갑게 환하게 웃는 잘생긴 동생의 얼굴에 주름이 미소 짓는 입과 눈을 따라 춤춘다. 내 얼굴의 자글한 주름보다 내 무수한 센 머리보다 동생의 그것들이 왠지 서운하다. 동생도 그새 늙은 내 얼굴을 살핀다.


하와이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아직 9시도 안 됐는데 여기저기 불이 꺼진다. 화상통화로 안부를 주고받던 가장 좋아하는 삼촌을 만나니 아이들 얼굴이 환해지고 수다스러워진다. 시끌벅적한 차가 하와이의 거리를 달린다. 도로엔 야자수 하나 보이지 않는다. 별빛도 희미한 어두운 창밖을 동생이 이쪽은 바다고 저쪽은 산이라며 열심히 설명한다.


뭐가 맛있고 어디가 서핑하기 좋은지 하이킹하기 좋은지 아이들과 먹고 놀 궁리를 한다. 여긴 해가 일찍 지고 일찍 뜨나 보다. 번화한 거리의 식당들 마저 이미 문을 닫았다. 막내의 단골 라면집에 간신히 들어가 하와이 스타일 치킨과 이런저런 것들을 푸짐하게 주문한다. 서로 다른 맛의 라면을 나눠먹으며 따듯한 국물을 홀짝이다. 지난 시간들을 같이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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