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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Lisa Sep 24. 2023

Welcome Ohana(오하나:가족)!

하와이 첫날 아침

임신 막달, 속상함에 집을 나왔다. 차를 몰고 나왔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뱅글뱅글 주변을 돈다. 미국 땅 어디에도 내가 갈 곳은 없다. 결국 프리웨이(Freeway) 한번 타지 못하고 좌회전 우회전 좌회전... 우회한 만큼 마음만 더 꼬여 근처 대형마트에 차를 세우고 눈물을 쏟는다. 넓은 월마트(Walmart) 주차장 인적이 드문 구석에 나무아래에서 한참을 운다. 건조한 캘리포니아의 나무는 나 하나 햇볕으로부터 온전히 보호해주지 못한다.


해는 저물어 가고 저편에 세워져 있던 차들도 하나씩 떠나간다. 공허한 그곳에 나 혼자 슬픔에 떤다. 어둠이 내려오고 그만큼 공기가 싸늘해진다. 정문 앞 가로등 불빛 아래로 자리를 옮겨본다. 칠흑 속에서 어슬렁 거리는 누추한 걸인들이 내 차창문을 두드릴까 두려워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배가 많이 아파온다. 그렇다 난 혼자가 아니었다. "아가야, 미안해. 다음엔 안 그럴게."


이십 년이 지나는 동안 그때의 서러움이 마음에 크게 뿌리를 내린 것 같다. 그리고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위로받고 싶었다. 친구들처럼 친정에서 남편 욕도 하고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하염없이 늘어져 깊이 잠들고 싶었다. 아이들 뭐 하나 뭘 먹이나 걱정 없이 하루 정도 푹 쉬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반겨줄 친정이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에게 친정은 없다. 그렇기에 그날이 많이 아팠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나 집을 나왔었는지 기억도 없다. 그저 내 남편은 그의 마음과 다르게 아주 무심한 사람이며 내겐 기댈 친정이 없다는 사실이 많이 아팠다. 급한 성질대로 문을 박차고 나와 차에 키를 꽂고 시동을 걸면서, 나에겐 잡아줄 사람도 찾아갈 곳도 없다는 현실에 머리가 하얘져 버렸다. 그 순간 나는 깊은 심연 속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것 같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집을 나가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집을 지켜왔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긴 했지만, 나 혼자 혹은 아이들만 데리고 휴식 회복을 위해 집을 나서지는 못했다. 하와이에 사는 남동생이 9월에 캘리포니아로 이직한다며 이번 8월이 마지막 동생 찬스 하와이 방문 기회라고 졸랐다. 가족들 모두가 힘들면 혼자라도 와서 쉬고 가라며 비행기 티켓도 보내주겠다는 동생의 마음에 감동받아 결심했다. 동생집도 친정이 아닌가.


오랫동안 꿈꾸던 친정에서의 휴가와 같은 여행이어서 그런지 이른 새벽 눈이 저절로 떠진다. 6:15 AM 동이 튼다고 한다. 떠오르는 해를 마중하기 위해 아이들과 서둘러 집을 나온다. 집 근처 바닷가로 향한다. 해가 저문 어제의 캄캄함과는 달리 새벽 산책길은 은은한 자연의 빛이 감싸고 있다.


천천히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많이 비릿하지 않은 바다의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일교차가 없는 이곳의 아침 온도는 편안하다. 바람이 불어온다. 바다의 촉촉한 습기가 함께 따라와 건조한 몸과 마음을 적셔준다. 이곳의 아침은 우리만이 아닌 모두에게 일찍 시작되나 보다.


나무 위에서 달리는 사람 걷는 사람 벤치에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 이미 해안가 공원에는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하다. 저쪽에서 스노클링 하는 사람, 서핑하는 사람, 저기 카악에 앉은 이가, 멀리 배를 타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환영한다 손짓하는 것 같다. 사람들의 따듯함이 우리를 이 섬의 가족으로 환영한다. "Welcome Ohana!"


야자수와 이곳 지역 나무 위 아래 할 것 없이 길고양과 닭들이 텃세를 부린다. 새들이 지저귀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인사해 온다. 이미 우리 동네 같다. 바다가를 따라 이어진 산책길에 파도의 리듬에 맞춰 걷는다. 아이들이 해가 떠오르는 명당을 찾아 경쟁하듯 동쪽을 향해 빠르게 달린다.


강렬한 노란빛이 하늘과 바다를 핑크빛으로 물들이며 떠오른다. 그 태양 앞에 아이들이 그대로 멈춰 선다. 바다로 떨어진 해를 밤새 기다렸다는 듯 바다로 내려와 낮게 깔려있던 구름이 태양을 쫓아 하늘로 하얗게 함께 오른다. 아이들이 눈으로 담을 수 없을 기억을 잡기 위해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추억을 담는다. 하와이의 빛나는 태양도 우리는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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