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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Lisa Sep 27. 2023

6AM 서핑레슨

하와이 둘째 날 오전, 와이키키 비치

어제 다이아몬드 헤드 정상을 향해 올라갈 때다. 어린아이 노인도 오르는 하이킹 코스라지만 평소 운동하지 않아 온 나에겐 가파른 경사의 계단이 힘들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비틀거리자 바른 소리 좀 하는 우리 둘째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엄마, 이 정도 길은 평지야. 고정된 땅에서도 똑바로 못 걷고 허우적거리는데 어떻게 엄마가 서핑을 해?" "시간이라도 좀 미루지? 우리야 괜찮지만 엄마한테 아침 바다는 무리야. 아무리 하와이라도 물속은 추워. 엄마 못 들어가"


퇴근 후 픽업온 동생 차에 타자 마자 걱정을 늘어놓았다. "삼촌, 엄마가 내일 우리랑 같이 서핑할 거래요. 그런데 서핑 레슨을 새벽 6시에 잡았어요. 여름 한낮에도 시도 때도 없이 추위 하면서 엄마가 새벽에 서핑을 하겠데요." 둘째는 정말 바른말을 예쁘게 잘한다. 누가 엄마이고 누가 아들인지 모르는 것 같다. 주방에서 조차 나를 쫓아다니며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놓는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미워진다. 둘째는 남편을 빼다 박았다. 전형적인 이공계 스타일로 규칙을 좋아하며 효율성을 강조한다. 이 둘은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을 받고도 내가 소비한 에너지와 시간을 셈하며 단출하게 먹자며 내 빈정을 상하게 한다.


얄밉지만 오늘도 다 맞는 말이다. 앉았다 일어나려면 허리와 무릎이 바로 펴지지 않아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구부정한 자세로 한 손은 무릎에 또 한 손은 허리에 올리고 끄응 거리며 뒤로 빠진 엉덩이와 접힌 자세를 제정비 해야 한다. 기립성 저혈압으로 쓰러져 가족들을 걱정 끼친 적도 있다. 여름에도 전기장판을 포기하지 못할 정도로 추위를 많이 탄다. 그렇지만 이곳 호노루루 6:06 AM 해돋이를 보면서 서핑해보고 싶었다.


우리의 하와이 선생님은 무뚝뚝하면서 은근 잔소리가 많다. 그 덕에 이런저런 얘기를 다 듣고 바다에 나오니 이미 해는 떴다. 아이들은 파도를 좀 탈 줄 안다. 며칠 후 휴가가 시작되는 남동생과 뒤늦게 합류하는 큰 아이와 함께 서핑하기 좋은 파도에 가기로 했다. 오늘은 사람이 많은 안전한 와이키키에서 오랜만에 몸을 풀고 바다에 몸을 던져 편안하게 오전을 즐기려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여동생과 조카들이 올 때까지 바다에서 놀기 위해 이것저것 많이 챙겨 왔다.


서핑을 잘해보겠다는 큰 욕심은 없다. 이제 밖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간은 지났기에 좀 더 능동적으로 아이들 옆으로 가까이 가보려 한다. 큰 아이가 3살이 되어 동네 수영장에서 수영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두 번째 날, 시범을 보이는 선생을 보기 위해 벽을 꼭 잡고 있던 작은 양손이 사라졌다. 벌떡 일어나 보니 아이 머리도 사라졌다. 다섯 보 앞의 선생도 아이 바로 위에서 지켜보던 라이프 가드로 보지 못하고 내가 달려가 아이를 건저 냈다.


그때부터 난 다른 엄마들이 커피를 마시러 나가도 항상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물에 빠진 나를 구해줄 정도로 수영을 잘하는 아이들이 서핑을 할 때도 그렇게 모래사장에서  바다와 아이들을 하염없이 눈으로 좇았다. 나는 여전히 수영도 서핑도 할 줄 모른다. 아이들 핑계 삼아 흉내라도 내보고 싶다. 한두 번 시도해 보다 안되면 보드에 매달려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가까이 머무르고 싶다. 아이들이 떠다니는 바다 안에 들어가 함께 몸을 담고 그들의 추억에 좀 더 선명하게 자리 잡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내 맘과 다르게 혹독하다. 


"앞에 봐!" 답답함에 하와이안 선생이 한국말로 외친다. “일어나!” 호령에 벌떡 일어서 보지만, 고개를 쳐들며 팔 벌려 균형을 잡기 전에 물속으로 꼬꾸라지다. 선생이 아이들에게 엄마한테 한국말로 설명해 보라 한다. "이봐! 알아들었어.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걸 어떡해." 따지고 싶다. 하지만 이미 말할 힘도 없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몇 번 물속으로 내동그라 지며 내장마저 흔들린 것 같다. 출렁이는 아침 바다, 메스꺼움과 추위가 밀려온다. 어제 호노루루에 가장 맛있는 브루어리의 샘플러 네 가지 맛이 멀미를 일으키는 것 같다.


푸르티맛 향과 맛의 CHEE HOO CHONGERS(HAZY IPA)로 입맛을 돋우고, 크리스피 하며 깔끔한 ROOF TOP(CRISP PALE ALE)으로 입가심을 했었다. 달콤함이 전혀 없는 파파야맛 칵테일 같은 DUDE WHERE'S MY DINO(HAZY IPA)로 얼굴이 벌게지고 행복했었다. 스위트하고 시큼한 사이더 LEID BACK LILIKOI (PARADISE CIDERS)로 입가심을 하고 알딸딸 기분 좋게 잠들었는데… 그 기분 좋은 향들이 뒤섞여 올라온다. 못 견디게 힘들다.


물밖로 나가겠다는 나를 선생이 잡고 안 내보낸다. 보드에 엎어져 바다의 출렁거림과 하나가 되어 파도의 음파가 귀를 통해 온몸 안으로 진동한다. 빈 속을 게워내고 싶다. 선생이 한 번만 더 하고 뭍에 나가 아이들 구경하며 사진이나 찍으라 한다. 고맙다.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 "일어나" 박자에 맞춰 일어난다. 멀리서 들려오는 "잘했어!" 소리와 함께 다시 물로 미끄러져 떨어진다.


온화한 바다에서 나오자 선선한 바람이 남은 체온마저 빼앗아간다. 혼자 스쿠버다이빙이라도 할 듯 유난스럽게 겹겹이 껴입은 레시가드가 무색하게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온다. 아이들이 파도를 가르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모래사장에 몸을 파묻는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 오한이 든 것 같다. 기운을 내어 멀리 바다로 나간 아이들의 이름을 번갈아 불러본다. 쳐다보지도 않는다.


눈물이 난다. 내 아무리 그냥 해보고 싶었다지만, 그래도 아이들 보란 듯이 보드 위에 서서 한 번은 딱 한 번은 파도를 타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눈 동그래져서 "호오~ 엄마~" 기뻐하며 손 높이 들어 하이파이브하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엄마는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뭐든 잘해" 하면서 두고두고 우려먹으려 했는데...


마침내 아이들이 물에서 나온다. "얘들아, 미안해. 집에 가자" 셋째가 떨고 있는 몸을 자기의 수건으로 한 겹 더 감싸준다. 둘째가 짐을 챙기면 깔깔거린다. "엄마 딱 세 번 했어." 아 짜증 나. 집에 와서 보니 한 것도 없이 팔과 무릎에 멍이 들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게 까여 피가 흐른다. 아침부터 뜨끈한 라면으로 속과 마음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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