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일곱째 날, 만타레이 (대왕쥐가오리) 스노클링'.
8월 8일 화요일. 허리케인 도라가 호노룰루에 근접해 오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 빅 아이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탄다. 이런 기세라면 며칠 꼼짝도 못 하고 실내에 갇혀 지낼 뻔했다. 모두 기다려온 남동생의 휴가가 어제 시작되었고 거기에 맞춰 큰아이가 어렵게 시간을 내고 왔는데, 평상시처럼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 나는 책을 읽으며 소중한 시간을 그냥 그렇게 보낼 뻔했다.
다행히 빅 아이랜드는 허리케인의 영향력에 벗어나 우리의 여행에 큰 지장은 없을 거라 한다. 안전에 지장만 없다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산으로 바다로 함께 돌아다녀도 좋지 않은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섬들은 위대함을 잃는다. 땅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의 구름들이 크고 작은 하얀 혼합물인 것처럼 상공에서 바라보는 섬들은 바다 위에 부유하는 깊은 녹지에 불과하다. 오아후, 몰로카이, 라나이, 마우이를 거쳐 빅아이랜드로 향한다.
가장 크고 원시적인 이곳에 나는 하나의 큰 숙제를 가지고 왔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즐길 수 있는 남들에게는 인생일대의 잊지 못할 '야간 만타레이 (대왕쥐가오리) 스노클링'. 해질녘 작은 보트를 타고 만타레이가 자주 출몰한다는 코나지역의 검은 바다 어딘가에 몸을 담그고 기다리면 된다. 스쿠버다이빙도 아닌 스노클링. 하지만 나는 많이 두렵다.
바다는 내게 위안이자 두려움이다. 육지에서 바라보는 햇볕이 빛나는 바다는 세상 어디서보다 나를 뜨겁게 품어준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 하늘을 나는 바다새의 펄럭임은 불안한 나의 마음을 감싸준다. 비릿한 바다 공기가 마른 마음을 적셔주다. 동시에 광활하고 깊은 하늘과 바다의 경계도 없는 어둠의 공간은 공포에 떨게 한다.
어려서부터 이어지는 악몽의 배경이다. 발을 헛디디는 순간 깊은 골로 회오리치는 물길에 휩싸여 파도치는 수면밖으로 헤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나의 심연이다. 그럼에도 그 속으로 들어가 죽음 혹은 새 삶을 얻어 다시 나와야 할 것 같은 상상을 하곤 한다.
제인 캠피온 영화 <피아노>의 주인공 에이다처럼 언젠가 한 번은 그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자발적으로 휘감겨 들어가 보고 싶었다. 마음속으로의 혈투는 그만하고 제대로 결판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아니 결투보다는 해방되고자 하는 내 의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고프로를 손에 쥐고 만타레이를 기다린다. 커다란 보드에 달린 손잡이에 의지해 다닥다닥 붙어 몸을 쭈욱 일자로 뻗고 고개를 물속에 담그고 인생 경험을 기대하며 설렌다. 현존하는 가오리들 중 가장 거대한 종으로 아무 해안에서나 만날 수 없다는 만타레이를 보기 위해 나도 따라 뿌연 물안경을 쓰고 고개를 넣는다.
사람들이 타고 온 여러 배들이 합심하여 주변을 밝혀주고 스쿠버다이버들이 헤드라이트를 커고 저 아래에서 바다를 비추며 헤엄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만드는 빛으로 밤바다의 신비함 무거움 어두움은 감추지 못한다. 두렵다. 두 손 꼭 잡고 있는 끈을 놓아버리면 그대로 깊이 떨어져 들어갈 것 같다. 다시는 물밖로 나오지 못할 것 같다.
저 깊은 어두움을 둘러보는데 무언가가 펄럭인다. 거대한 검은 날개를 펼치고 푸른 바다 빛이 더 빛나게 하얀 뱃살을 내밀고 나를 향해 오른쪽에서 왼쪽에서도 다가오고 있다. 몸속 내장도 없이 오로지 해골에 검은 망토만 두른 것 같은 대왕 쥐가오리가 내 주변을 맴돈다. 신비한 만타레이를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사람들도 나에게 조여 온다. 호스를 물고 있음에도 두려움에 소리를 내지른다.
'으으 아아 으아악 아아 아' 물속에서 울리는 나의 고함은 만타레이들이 서로에게 수신하는 음파와 비슷했을까? 저 아래 깊은 바다에서 또 한 마리가 나에게도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한 마리가 발버둥 치는 나를 스치듯 쓰다듬고 간다.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날 위로해 준 것일까? 어두운 바다를 누비는 그들이 감지한 것은 내 마음속 불안의 울림이었을까?
만타레이들이 모두 떠나고 우리도 육지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잡고 있던 보드를 놓고 타고 온 보트로 올라가야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사다리에 걸쳐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어본다. 정신은 차리지만 몸은 그렇게 못하다. 아들 셋이 아래에서 밀고 위에서 끌어 배위로 올린다.
지병이 있는지 나를 점검하는 사람들에게 아들들이 대답한다. "우리 엄마 당뇨 없어요. 다른 지병도 없어요. 그냥 몸이 약해요. 쉬어야 해요. 우리가 돌볼 수 있어요. 괜찮아요." 반복되는 질문과 반복되는 삼중창 사이에 눈물이 난다. 흔들림이 덜한 뒷자리를 내가 독차지하고 기대어 눕는다. 아이들이 타월로 겹겹이 떨리는 몸을 돌돌 말아준다. 연신 물로 입을 적 쉬어주는 막내가 꼭 끌어안아주며 “엄마 그래도 좋았지?” “응~ 정말 좋았어. 아주 멋졌어.”
육지로 배가 전속력으로 달린다. 큰애와 막내가 내 옆을 지킨다. 까칠한 둘째는 "I love you, mom." 한마디 외치고 어디서 바다 바람을 쐬고 있는지 목소리도 인기척도 없다. 오한에 진정 못하고 계속 떨려오는 몸을 막내가 두 손으로 꼭 눌러준다. 공황발작이 다시 온 걸까? 아니면 단순 탈진일까? 그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그렇게 조심 또 조심했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의연하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소방 앰뷸런스로 이동하는 뒤로 둘째의 흥분한 성난 목소리가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다. "내 아가, 불안에 떨고 있었구나. 미안해" 눈물이 난다. 내가 많이 아플 때에도 남편과 심하게 싸울 때에도 둘째는 항상 신경이 곤두섰다. 새벽에 나를 확인하곤 했다. 아마도 둘째의 불안과 걱정의 표출은 짜증과 성냄이었던 것 같다.
내가 끼니를 걸러도 약을 챙겨 먹지 않아도 무리해서 움직여도 아파도 둘째는 화를 냈다. 내가 심하게 쓰러진 이후부터는 내가 뭔가 하는 모든 것이 거슬렸던 것 같다. 밥을 차려도 청소를 해도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불만스러워 잔소리를 하고 눈을 부릅떴다. 사실 남편도 그렇다. 이들에게는 내가 불안이었고 내겐 서글픔이었다. 내가 필요 없나?
다행히 소방서에서 트레이닝 중인 첫째가 동생들에게 절차를 설명하며 내가 얼마나 경미한 환자인지 조목조목 알려준다. 다독여준다. 다 컸다. 때마침 하와이에서 의사로 근무 중인 남동생이 도착하여 응급실행은 피하고 숙소로 향한다. 아이들의 만타레이 스노클링의 흥분과 나에 대한 걱정으로 돌아오는 차 안을 채운다.
나는 오늘 어둠 속의 바다에 뛰어들지 못했다. 그저 살펴만 보았다. 얼마나 깊고 어두운지, 나의 발에 묶여있는 피아노를 어디쯤에 던져 놓으면 좋을지, 내가 바다의 심연 바닥에 다 달았어도 마음먹으면 힘껏 헤엄쳐 다시 수면 밖으로 올라올 수 있을지. 고개만 넣고 이리저리 계산해 봤다.
하지만 나는 오늘 다른 바다에 들어갔었다. 내가 내려놓지 못하고 쓰러질 듯 짊어지고 있는 무게를 내 옆에서 온몸으로 함께 지탱하고 있는 소중한 아이들의 마음으로. 조용히 묵묵하게, 짜증 날 정도로 버겁게, 살갑고 따뜻하게 각자의 방식으로 나의 슬픔을 함께 견디고 있는 아이들의 아름다운 바다에서 삶의 의지와 목적을 찾고 전속력으로 헤엄쳐 나왔다. 아직도 숨을 헐떡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