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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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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y 09. 2020

화나는 일 하나 더 추가요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안방 창문을 활짝 연다. 지난 밤동안 나와 남편, 그리고 내 곁에서 함께 잠을 잔 반려견이 뿜어낸 탁한 공기가 밖에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에 밀려 사라진다.

 수술을 한 후로는 창밖 풍경이 더 새롭다. 특히 구름처럼 몽실몽실한 이웃집 향나무는 아침마다 나와 눈을 마주치며 첫인사를 나누는 친구다.


오늘 아침, 창밖의  나무에게 아침인사를 하려다 나는 그만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나무의 한 귀퉁이가 뭉텅 잘려 나갔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예쁘게 전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럴 수가...

나무도 자세히 보면 웃는 나무가 있고 외로운 나무, 아픈 나무가 있다. 옆집의  향나무는 지금 울고 있다. 얼굴도 바로 들지 못하고 추해진 자기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나를 바로 보지 못한다.

화가 난다. 도대체 누구야 누가 그랬어?


마침 집 주인아저씨의 운전기사가 골목을 쓸고 계신다.

나무가 잘린 이유를 알았다. 어제 전지를 하는 중에 집 할매가 자기 집 안으로  뻗은 나뭇가지를 쳐달라고 했단다, 자기네 담장 안으로 나뭇잎이 떨어져서 지저분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웃끼리 다투기 싫어서 고분고분  잘라 주었는데 자기네도 무척 속이 상하다고 한다.

참 유난스런 할매다.(맞춤법에서 자꾸만 할머니로 고친다 나는 다시 할매로 고쳤다)


요즘 들어서 화가 나는 일이 많다

작년에 이어 강원도 고성에 산불이 난 원인이 화목 보일러 때문이라고 한다. 누군가의 실수로 수십 년 자란 나무들이 불에 타는 모습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을씨년스러운 산등성이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연휴로 그동안 발이 묶인 사람들의 마음이 풀리면서 뒤늦은 상춘객들이 전국의 관광지를 물들인다. 그들이 떠난 후  자리에는 하염없이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반려견만 남아있다는 슬픈 소식을 듣고 또 화가 났다.


자신들이 키우던 강아지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심장을 가진 사람들일까..,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세포가 더 많이 파괴되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놈의 사회가 나를 치매환자로 만들려나 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잘려나간 나뭇가지를 보며 화날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살다 보면 가끔 남에게 피해를 보고 억울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법으로  해결해야 만큼 심각하지 않다면 서로 대화로 타협하면서 해결을 하고 산다. 

이웃집 나뭇가지가 내 집으로 넘어왔다고 해서 가지를 잘라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그 나무에 황금이 열린다면 그래도 잘라달라고 하겠냐고 묻고 싶다. 그런 사람은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야 한다. 오히려 창 밖으로 사철 푸르름을 볼 수 있어서 눈이 맑아지는 값, 좋은 공기와 향긋한 나무향을 거저 마신 값을 톡톡히 받아야 될 판이다. 그렇다고 보기 좋게 잘 자란 나뭇가지를 선뜻 잘라버리는 주인은 또 뭔가...,


요즘 우리 집은 노란 송화가루가 날아와서 먼지처럼 뿌옇다. 비염이 있는 나는 요즈음에 재채기를 가끔 한다. 바로 윗집의 소나무에 송화가 노랗게 피어있다. 나뿐 아니라 우리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계절은 겪는 고충이다. 그렇다고 지금껏 소나무를 베어달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제 소나무집주인을 만났다, 자신이 먼저 꽃가루 때문에 힘드시지 않냐고 묻는다. 꽃이 피기 전에 전지를 해야 했는데 시기를 놓쳤다며 죄송하다고 한다. 별말씀을... 소나무는 그 집 말고도 뒷산에 수두룩하다. 참고 살아야지요, 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날려주었다.


초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봄비치고는 꽤 성깔이 있다. 앞집 할매의 붉은 양철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 봄비가 사정없이 지붕을 후려갈긴다. 속이 후련하다.

봄비 한 번으로  온 동네에 노랗게 흩뿌려진 송화가루는 모두 닦여져 나갔다. 때가 되면  자연이 다 알아서 해 주는 것을...., 


나무야 미안해... 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지금 많이 프다.

                           잘려나간 나뭇가지 ..,마음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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