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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Aug 28. 2023

갑자기 쫄딱 늙은 기분

카페 마감 후 글을 쓰고 가려고 노트북을 켠다. 주변 가게들은 모두 닫았고 거리는 어둡고 조용하다. 노트북을 닫는다. 내가 요즘 느끼는 공포는 이런 것이다. 종일 떠는 게 아니라 문득 움츠러드는 공포. 내가 마감 후 카페에 있다가 올 때면 엄마는 안 무섭냐고 묻곤 했다. 뭐가 무서워? 나는 대꾸했었지.


생전 처음 호신용 경보기를 샀다. 에? 진짜? 남동생은 희박한 확률이라고 말한다. 로또가 될 확률처럼. 로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신림동 성폭행 피해자도 신림동과 분당 칼부림 사건을 봤을 것이다. 나처럼 뉴스를 보며 혀를 차고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 잊어버렸을 것이다. 맞닥뜨리기 전까지. 


갑자기 칼에 찔리는 상상을 하는 게 어렵지 않다. 지금 죽는다면 나는 혼자 떠나 보지 못한 걸 후회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빠가 원망스러울 것 같다. 나는 아빠와 카페를 하고 있다. 같이 일하는 건 아니고 아빠가 차린 곳을 내가 꾸리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르지만 회장이 있다. 아빠와 딸이자 회장과 사장이자 고용주와 근로자이자 동업자인 셈이다. 


나는 대학원을 다니다 학비를 벌 겸 카페 일을 돕기로 했다. 그때 스물다섯이었는데 서른하나가 됐다. 갑자기 쫄딱 늙은 기분이다. 지금 생각하면 스물다섯은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였는데… 아쉬움에 입을 다신다. 이럴 땐 칠 년 뒤 서른여덟의 시선을 당겨쓴다. 그럼 서른하나의 나는 다시 무궁무진해진다. 

 

처음으로 혼자 떠나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스물네 살 때였다. 헤어지려던 남자친구가 따라오면서 그냥 여행이 됐다. 이후 일주일에 하루 빼고 아침부터 밤까지 홀로 카페를 꾸리게 되면서 여행을 꿈꾸기 어려워졌다. 마음 한 구석에 혼자 한 달 정도 발리에서 읽고 쓰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퇴사를 하고 잠깐 쉬는 친구들을 보면 회사를 다녔다면 저 틈에 다녀올 수 있었을 텐데 아쉽고 부러웠다. 칠 년이 흘렀다. 


시간은 발꿈치를 들고 조용히 걷는다. 우리가 주시할 때만 희끗 나타났다가 시선을 거두면 사라진다. 하지만 시간은 일상이라는 보호색을 입고 계속 걷고 있다. 그러다 어느날 워! 하고 우리를 놀라게 한다. 칠 년이라고요? 나는 벙찐다. 시간 고지서를 받아 든 채 생각에 잠긴다. 내가 한 달 동안 카페를 닫고 발리에 간다고 하면… 아빠는 아마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고 철없다고 비난할 것이다. 사장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임대료만 이백만 원인데 말이 안 된다고. 쉰 여파로 손님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나는 시간 고지서를 바라본다. 


고용주와 근로자이기 전에 아빠와 딸이니까 혹시 놀라면서도 응원해 줄 수 있을까? 아빠는 나의 꿈을 지지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높은 확률로 어처구니없고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내내 피한 게 바로 그 표정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 표정은 언제나 내게 상처가 된다.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서른하나인 지금까지도. 잘못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대학원 때 강사님과 점심을 먹다가 글 쓸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사라 제시카 파커를 닮은 그녀가 미소 지었다. 사십 대에 아이를 낳아 키우며 지방으로 강의를 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냅킨으로 입가를 톡톡 닦은 뒤 말했다. 시간은 점점 더 없어질 뿐이에요.


그녀는 냉소적으로 구는 사람이 아니었다. 맥락이 있었을 텐데 저 말만이 살아남아 이따금 떠오른다. 시간은 점점 더 없어질 뿐이다…. 지금 와서 보면 그때 나는 시간이 얼마나 많았나? 가정이 생기면 신경 쓸 거라곤 나 하나뿐인 지금이 또 얼마나 한갓진 시절로 보일까?


내년이면 서른둘. 나홀로 외국에서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앞으로 줄어들면 줄어들지 늘어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있는 마흔의 나를 상상한다.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아빠 때문에 못 했다고 말하고 있다. 모자라 보인다. 실제라면 일 핑계를 댈 거고 사람들은 먹고사는 게 그렇죠, 하며 쉽사리 고개를 끄덕여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두려운 건 카페를 한 달씩 닫는 것도 비용도 아니고 '저런 철부지' 하는 아빠의 눈빛이란 걸. 


외국에서 한 달 살면 뭐가 달라져? 아빠는 마른세수를 하며 물을 것이다. 내가 아는 건 지금 내게 그런 시간이, 새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뿐. 친구 름과 이야기하다 나오는 옛 이야기들이 거의 이십 대 초중반의 일이라는 걸 느낀다. 호프집에서 대학 때 이야기를 작년 일 마냥 떠드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떠오른다. 손이 베일 정도로 빳빳한 새 추억이 필요하다.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문장이 필요하다. 이야깃거리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불태운다고 해도 그 작품을 쓰기 전으로 그를 되돌릴 수는 없다. 불현듯 이 말이 떠오른다. 한 사람에게서 사진을 모두 불태운다고 해도 그 경험을 하기 전으로 그를 되돌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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