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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Jun 23. 2023

기차 맛집에서 살기

소음 공해와 함께 살기


이사    . 여시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  차선 도로가 교차하는 네거리 위로 경부선 열차가 지나가는 동네다. 조용한 곳을 찾던 그는 뭐에   성급하게 결정했다. 천천히 알아보고 정하자는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사 오던  "쏴아아 철거덕 철거덕 쿵쾅쿵쾅"  소리에 놀라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아이 다섯은  낳아야 되겠는데농담을 던지며 웃었지만 진정한 웃음이 아니었다. 가차소리가 이렇게 요란한데 잠을   있겠느냐는 소리다. “고속도로옆에는 가림막이라도 있지만 기찻길옆에는 그런 것도 없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불편한 마음을 달래는 중이었다. 적응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 잘한 선택이잖아속으로만    듣더니  됐지 . ,   .


이삿짐을 정리하다 '쿵쾅 철거덕철거덕' 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기찻길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노래를 자동으로 부르고 있었다. 어릴 때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입으로만 불렀던 노래다. 이곳이 기찻길옆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가사에 집중하여 노래를 불러 보았다. 쿵쾅거리는 기차소리에도 아기는 정말 잘도 잘까. 이 소리가 자장가로 들릴까.


이 집을 처음 본 날  넓고 좋지만 소리와 냄새에 예민한 나는 나프탈렌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해서 싫다고 했다. 코를 자극하는 그 냄새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기차소리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때는 기차가 지나가지도 않았나 보다. 기차소음까지 인식했으면 끝났을 일을 모르고 넘어간 셈이다. “냄새는 사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진다.”라고 내 말은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생각하면 저지르고 수습하는 타입인 그는 재느라 결정 못하는 나와는 반대다.


기차 타고 도시를 가로질러 지나갈  기찻길옆에 빈틈없이 들어선 집들을 보며 여기서 어떻게 살까. 우리는 절대로    같았다. 기찻길옆에 사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조상이 물려준 땅이라도 있다면 모르지만 구태여 시끄러운 곳으로 찾아가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기찻길옆으로 이사를 왔다. 조상님이 물려준 땅도 집도 없는 이곳에  왔을까. 정말 웃긴다. 우리도 이제는 소음에도 끄떡없이 단잠을 잘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거실에 앉아서 무궁화호, KTX, 화물기차를 맘껏 바라볼  는 기차맛집이다. 소리만 들어도 무궁화인지 화물차인지 KTX 인지 알아챈다. 무궁화호는 이용객이 많이 없는지 기차 길이 짧다. KTX 기차 이도 길고 소리도  길게 난다. 컨테이너 화물기차는 멀리서부터 ‘쿠당탕 쿠당탕 털거덕 털거덕소리도 요란하고 느리다. 유조차인지 가스차인지 줄줄이 비앤나 소시지 같은 기차도 심심찮게 지나간다. 기차를 손으로 집어 올려도   같은 기차뷰 최고다.


제일 문제 삼았던 냄새는 바로 해결됐지만 기차 소리는 신경 끄고 빨리 적응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다 당신 편의를 위해 결정했으니 고마운 줄 알아."

네에, 너무 고마워서 골이 흔들리네요.’ 바닷가에서 오두막 집을 짓고 철썩철썩 파도소리 들으며 사는  좋을까. 기찻길옆에서 쿠당당거리는 기차소리 들으며 사는  좋을까. 예상치도 못한 소음을 직접 체험하며 여러 생각이 겹친다.


이삿짐 정리하며 기찻길옆 오막살이를 수없이 불렀다니까. 아들 며느리는 “오막살이는 아닌데 역세권이죠.” 맞아 그렇긴 하지. 지하철이나 대중교통 이용하기는 좋은 곳이니까. 가만히 앉아 딴짓하던 손녀는 “철거덕” 소리만 나면 "아, 기차다." 하면서 거실 창가로 달려가 신기한 듯 기차를 바라본다.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재미있다. 기차소리가 시끄럽게 나든가 말든가. 손녀는 "할머니 이사 오니까 좋다." 왜 좋은데? "그냥 좋아." 아이들의 순수한 그 마음을 어찌 다 알까. 좋아하는 아이라도 있으니 참 다행이다.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마음이라면 잠도 잘 잘 것 같다.


인생이 생각한 대로 말한 대로 살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용한 곳을 찾다가 왕소음 구덩이에 빠졌다. 이 상황에 더 웃기는 것은 이사 온 지 한 달째 처음 며칠 적응기간을 빼면 기차소리 차소리 변함없는 소음 속에서도 깊은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이다. 못 살 것 같았지만 환경에 적응하며 산다는 것이 신기하다. 뭐라도 포기를 해야 편해지고 다른 것이 보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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