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깜순이
용하게 냄새는 잘 맡는다. 기름 냄새만 나도 뭐 먹을 게 있나 싶어 동네 길고양이들이 모여든다. 밭에 들어가 볼일 보는 투톤 얼룩이, 담장 위에서 눈알을 굴리며 바라보는 노랑이, 가만히 있는 친구에게 양양거리며 시비 거는 삼색 얼룩이, 잔디밭에 혼자 뚝 떨어져 노는 깜순이 모두 눈치꾼들이다. 여차하면 달아날 거면서 숨바꼭질하듯 몰래몰래 한 발씩 다가 오기는 잘도 온다.
오랜만에 깜순이를 보니 반갑다. 이 깜순이가 얼마 전 사라진 그 깜순인가. 깜순이에게 눈길을 주며 살펴본다. 깜순이 사라진 지가 한참 지났고 깜순이에 대한 애증도 잊어가는데 흡사 깜순이다. 깜순이와 입옆에 검은 점까지 쏙 빼닮았다. 깜순이 혈통이긴 한데 얼굴을 보나 털의 윤기를 보나 그 깜순이는 아니다. 깜순이 손녀쯤 되는지 어린 티가 난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영역을 넘겨준 건지 그 깜순이와 비슷한 느낌만으로도 마음이 끌린다. 손 한 번 잡은 적 없고 털끝하나 만져본 적은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깜순이에 대한 애증이 되살아 나는 듯하다.
오래 기다려도 먹이가 주어지지 않으면 하나 둘 슬금슬금 알아서 다른 곳으로 사라져 준다. 그런데 이 깜순이는 끝까지 기다리고 앉았다. 밖에서 고기를 굽고 프라이팬으로 남은 고기를 덮어두고 들어 왔다. 고양이가 있다는 걸 깜박 잊었다. 한참 후 아차, 난리 났겠지 하고 창밖을 보니 깜순이는 얌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세상에 착하기도 하지’ 여차하면 뒤집고 물어낼 텐데 두 번 세 번 확인해도 그 자리다. 너무 착한 깜순이에게 고기 한점 챙겨줘야지. 고양이에게 감동받아 기분이 들뜬다. 손님 떠나고 설거지 다할 때까지 깜순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뒷수습을 하다 창밖을 내다본 주인양반 “깜순이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있어.” ‘아이고 어쩌나 제는 뭐 좀 챙겨줘야 되는데 깜빡했네.’ 주인장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고양이 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네. 참 깨끗하게도 먹었다.” 냉장고를 닫고 다시 창밖을 보더니 안 되겠는지 프라이팬을 집어 들며 “계란 프라이 두 개는 해줘야겠지.” 계란대신 차라리 고기를 주는 게 좋겠어요. 고기냄새 지금까지 피웠으니까. 깜순아 오늘 얌전하게 잘 기다린 덕분이다.
길 고양이가 밥상머리교육 잘 받은 아이처럼 저렇게 점잖은 양이는 처음이다. 기회를 엿보다 물고 도망칠 만도 한데 끝까지 기다리는 뚝심에 졌다 졌어. 가까이하기엔 먼 우리 사이지만 깜순이의 착한 인내심에 감동이다. 안 주고 모른 척했다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거야 깜순이 손님도 대접하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