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국 Oct 11. 2024

브랜디

후회하지 말고

술 종류, 술 가격, 술맛도 모르는 사람임을 강조하는 순이는 가끔 술꾼 곁다리로 술맛은 본다. 소주, 맥주, 막걸리, 포도주, 고량주, 사케 등 잔의 크기에 따라 한잔정도는 먹어 봤지만 술의 매력은 아직도 모른다.


그런 순이가 브랜디의 매력에 빠져 첫사랑이라도 만난 듯 좋아한다. 이런 술이라면 가끔은 마셔 볼 마음이 생겼다. 손만 내밀면 잡을 수 있는 우리 술 막걸리보다 소주보다 브랜디에 마음이 더 가는 걸 보니 순이는 독주체질인가? 술꾼도 아니면서 깔끔한 양주가 좋다며 브랜디를 노래하는 순이의 술취향이 웃긴다.


꼴랑 브랜디 두 숟가락 맛보고 왔다면서 침이 마르도록 브랜디 브랜디를 노래한다. 난 독주체질이라는 순이의 극성에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데 순이가 왜 이럴까. 술 마실 때마다 째려보던 그 순이는 어디 갔을까. 째째 씨는 당황스럽다. "브랜디 한 병 사줄게" 어깨에 힘을 주며 머리를 좌우로 한 번씩 두두둑 꺾어 바로 세우며 앞서가던 째째 씨. 술매대를 힐끗 보고는 무심코 지나쳐 버린다. 그러면 그렇지. 순이는 째째 씨 등 뒤에서 눈을 홀기며 뒤따른다. 소주 한잔 안 마셔도 속 떨리고 손 떨려서 살 수 있을까. 기대는 안 했지만 말부터 앞세우는 그가 얄밉긴 얄밉다.


평생 술을 먹으며 속을 뒤틀리게 해도 수십 수백 번 참아주며 살아온 순이를 생각한다면 브랜디 한 병쯤은 거금을 들여서라도 사줘야지. 술을 외면하며 살아온 그녀가 처음으로 브랜디를 사랑한다는데 그 마음을 보듬어 줄 줄 알아야 진정한 술꾼이지. 아닌가, 당신이 술꾼입니까?


"술을 뭐 맛보고 먹냐 술은 취하려고 먹는 거지. 술은 역시 소주가 최고야." 소주 백 병을 먹었으면 먹었지 브랜디 한 병과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소시민. 그 마음을 순이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술에 취해 벌겋게 달아올라 입이 닳도록 쉼 없이 말잔치나 하다가 그냥 꼬꾸라져 잘 거면서. 다음날 아침 속 쓰림을 감당 못해 배를 움켜 잡고 끙끙거릴 거면서 왜 취하려 하는지. 술 취하면 뭐가 좋은지.


순이는 정반대다. 한잔 술을 마셔도 입안에 쫙 퍼지는 향긋함과 목구멍을 스치며 지나가는 상쾌함과 개운함. 독하지만 화끈하게 톡 쏘는 그 느낌이 좋다. 산뜻한 그 맛에 홀린 순이는 소주 백 병보다 독한 브랜디 한 병을 선택할 것이다. 술은 취하려고 먹는 게 아니라 상쾌한 기분을 위해 분위기 따라 적당히 먹는 거지. 난 독주체질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