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일이 생겼다
전화로 영업하는 직업도 아니고 전화로 낙을 삼고 노는 사람도 아니니 전화기는 주로 진동상태로 둔다. 필요할 때 아니면 전화와 별로 친하지도 않다. 보이스피싱 사기 전화에 걸려들까 봐 무서워서 모르는 전화, 저장되지 않은 전화는 받지 않는다. 전화에 별 신경을 안 쓰다 보니 가족들이 필요해서 전화해도 제때 반응을 못 할 때가 종종 있다. “전화기는 뭐 하러 들고 다니느냐”면서 성질 급한 사람은 허파 뒤집어진다고 난리다.
내 스타일을 내가 알기에 며느리에게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전화번호를 미리 저장해 두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웃자고 하는 말인지 어느 며느리들은 시댁이 싫고 시자가 싫어서 시금치도 안 먹고 시청 앞도 지나가기 싫다는 그 말을 생각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딸내미에게 언니 전화번호 아냐고 살며시 물어보니 당연하다는 듯이 “나도 몰라”한다 그래도 전화번호는 알고 있어야 되지 않겠냐니까 “엄마, 시어머니 짓 한다고 싫어한다. 가르쳐 줄 때까지 가만히 있어”라며 단칼에 자른다.
시엄니가 무슨 죽을 죄인이라고 시엄니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제지도 많다. 내가 시어머니가 아니라 우리 딸내미가 날 시집살이시키는 시어머니 같다. 그래 알았다 언제라도 연락 올 때까지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자. 내게도 며느리들이 싫어한다는 시자가 달렸으니까.
어느 날 밤 전화가 울린다. 저장 안 된 전화번호다. 다른 때 같으면 당연히 무시하고 넘기는데 오늘은 무슨 마음으로 함 받아 볼까 하고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귀에 대고 '여보세요'라고 했다. 젊은 여자 목소리가 “어머니, 어머니” 하며 귓전을 울린다. 나에게 어머니라 부를 사람이 누가 있지 누구세요? 하고 물었다 다시 “어머니, 어머니” 한다. 또다시 누구세요? 하고 물었더니 “전화 잘못 걸었나 봅니다.” 한다. 그러면 그렇지 어떤 어린이집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건다는 게 잘 못 걸었나 보구나 하고 낯선 전화번호는 바로 삭제해 버렸다.
좀 있으니 아들이 전화를 했다. 아드님 웬일이세요. 했더니 엄마 좀 전에 이상한 여자 전화 안 받았냐고 묻는다. 무슨 전화? 며느리가 전화했는데 왜 잘 못 걸렸다고 전화 끊었냐고 한다. '하하하' 그랬구나 내가 잘 못 걸렸다고 끊은 게 아니라 상대편에서 "전화 잘못 걸었나 봅니다"해서 끊었다니까 아들도 우습다고 허허허 웃는다. 어머니, 어머니 해서 어린이집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전화한 줄 알았다 하니
"어린이집 선생님 전화받기에는 아들이 너무 커네요" 하면서 서로 한바탕 웃었다. 왜 미리 전화번호를 안 가르쳐 줘서 이런 실수를 하게 하냐니까 다 알려 준 줄 알았단다.
"아까 그 번호 며느리 전화니까 잘 저장해 두세요." 난 잘 못 걸린 전화라고 바로 삭제했다니까 며느리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받으면서 둘이 또 한바탕 웃었다. 내 이럴 줄 알고 전화번호 미리 저장해두려고 했는데 시어머니라는 죄로 눈치만 보다가 역시나 웃기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결혼식장에서는 사돈끼리 맞절하다 둘이 머리를 박아서 모든 하객들을 웃게 만들고, 며느리도 시엄니도 서로 목소리 못 알아봐서 웃기고 참 웃기는 일도 많다.
서로 자주 볼 겨를도 없었지만 전화통화는 처음이라 알고 건 사람이나 모르고 받은 사람이나 둘 다 절대음감은 아닌듯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바람에 많이 웃었으니까 우는 것보다는 건강에 더 좋은 영향을 주었겠지. 예상했던 문제가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된 날이다. 그런데 무엇이 내 맘을 끌어당겼을까. 어떻게 모르는 번호였는데 용감하게 받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