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by 오롯하게

엄마는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고 말했다. 내 주변의 어떤 이가 나와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이러이러하게 행동했다고 투덜거리니, 엄마는 모든 사람이 나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을 내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냥 네가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라고 하신다. 맞다. 모든 사람이 나 같지는 않다. 나도 잘 안다. 그럼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 투성이다. 이해라는 단어만 들어도 이제는 지칠 노릇이다. 고작 30년도 살지 않았는데 말이다.



사라지는 걸 인정하면 엄한데 힘주고 살지 않아.


‘사라지는 걸 인정하면 엄한데 힘주고 살지 않아.’ 어느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저런 말이다. 맞다. 나만 내려놓고 나만 포기하면 쉽다.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도, 받아들이기 힘든 친구의 넋두리도 모두 완벽하게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렇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내려놓으면 나에게 찝찝하게 남는 것이 없다. 그저 애초에 나와 맞지 않는 톱니바퀴를 억지로 끼워 맞추다가 상처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말했다. 생각을 누군가와 말하는 것은 싸우고 고집하는 것이라고. 그저 고분고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흔한 배려나 이해, 양보 같은 것들로 쉽게 물러서기에는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모든 관계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다양한 관계들 중 보통 연인 혹은 부부간에서 흔히들 ‘성격차이’라고 하고 발생되는 문제들은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음에서 시작된다고 생각된다. 징그럽지만 지구 상에 있는 이 70억 이상의 인구들은 모두 다르게 생기고 다르게 생긴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함께’ 살아간다. 서로 부딪히지 않고 마찰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심지어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부모와도 그 관계가 어긋날 수 있다. 완전한 남이라면 더하면 더했지 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연인 간에 혹은 부부간에 틀어짐과 헤어짐은 무조건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상대는 완전히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당연하다는 편협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게 대화의 시작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는 물음에는 당연하게 ‘당연히 그럴 수도 있어’라는 답이 붙는다



사실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는 물음에는 당연하게 ‘당연히 그럴 수도 있어’라는 답이 붙는다.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다르기에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 당연하다. 그럼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와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때마다 나의 생각을 잠시 뒤로 미룬다. 그렇다고 하여 나의 생각을 잊거나 지워버리면 안 된다. 그냥 잠시 작은 서랍 속에 넣어두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를 이해하는 데에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생각 씨름에서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몇몇 이들이 나의 말을 조건 없이 한번 믿어봤으면 한다. 그러면 그들이 갖고 있는 많은 관계들이 조금은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다 보면 이 세상이 조금씩 더 몽글몽글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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