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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Nov 06. 2020

그녀의 밤이 날마다 따뜻하고 포근하길.

전기장판을 틀어놓고 따뜻한 이불속에서 친구가 추천해주었던 드라마를 보며 연신 미소를 지었던 나의 따뜻했던 밤이, 누군가에게는 짙은 어둠에 깔려 가쁜 숨을 내쉬던 생의 마지막 밤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턱, 하고 막혀온다. 제 일을 하던 숨이 한 숨, 한 숨 가라앉는다.

요 근래는 나에게 꽤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알 수 없는 우울감과 헛헛함에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그때뿐.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가며 흘린 눈물방울들이 가련한 먼지들을 흩트려트리길 여러 번.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나를 덮쳐버린 우울함을 옷장 속에 가둔 채 아무 생각 없이 친구가 추천해준 화려한 영상의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이마저도 소용없을 줄 알았지만 이게 웬걸. 화려한 드라마 속 영상과 의상은 뜨뜻미지근한 채 나를 옥죄어오던 텁텁한 공기들을 시원한 바람이 되어 흐트러트려주었고 멍했던 생각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더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우울감을 조금이나마 털어냈다는 시원한 기분으로 잠에 들었다. 해가 떠올랐고 출근길에 발을 올렸다. 그간의 우울했던 날들과는 조금 다르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마음에 기분 좋게 일을 하다 맞이한 오후. 납작한 액정 위로 떠오른 그 이야기. 어떡하냐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입을 틀어막고 멍하니 그 납작한 액정 위에 쓰여있는 몇 안 되는 글씨를 읊조렸다. 입을 틀어막은 두 손과 양 팔에 돋은 소름은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인지 공상인지 헷갈려하는 나를 명확하게 현실로 이끌어주었고 숨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세상이 낯설게 느껴졌던 지난날들 중 가장 반짝였던 어젯밤이 떠올랐다.
나에겐 아, 이제 좀 살겠다 싶었던 작게나마 반짝이던 어젯밤이 누군가에게는 생의 마지막 밤이었겠구나. 덮쳐온 텁텁한 공기들에 결국 떠오르지 못했구나 하며. 턱 막힌 숨을 내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저 한 숨, 한 숨 가라앉을 뿐. 오늘 밤은 따뜻하다.라고 생각했던 어제의 생각이 연신 그에게 미안하다 고개를 숙여야 할 것만 같았다. 나의 밤만 따뜻하게 보내서 미안해요 하며 눈물을 훔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잘 알진 못했지만 떠올리면 그때마다 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던 그녀에게 늦게나마 고마움을 전한다. 차갑고 날이 서있는  세상에서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기란 쉽지 않으니까. 또 짧게나마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갔던 사람으로서 이유모를 미안함도 함께 전하고 싶다. 미안하고 고마웠던 그녀의 밤이 이제는 언제나 쉬지 않고 따뜻하고 포근하기만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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