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장판을 틀어놓고 따뜻한 이불속에서 친구가 추천해주었던 드라마를 보며 연신 미소를 지었던 나의 따뜻했던 밤이, 누군가에게는 짙은 어둠에 깔려 가쁜 숨을 내쉬던 생의 마지막 밤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턱, 하고 막혀온다. 제 일을 하던 숨이 한 숨, 한 숨 가라앉는다.
요 근래는 나에게 꽤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알 수 없는 우울감과 헛헛함에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그때뿐.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가며 흘린 눈물방울들이 가련한 먼지들을 흩트려트리길 여러 번.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나를 덮쳐버린 우울함을 옷장 속에 가둔 채 아무 생각 없이 친구가 추천해준 화려한 영상의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이마저도 소용없을 줄 알았지만 이게 웬걸. 화려한 드라마 속 영상과 의상은 뜨뜻미지근한 채 나를 옥죄어오던 텁텁한 공기들을 시원한 바람이 되어 흐트러트려주었고 멍했던 생각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더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우울감을 조금이나마 털어냈다는 시원한 기분으로 잠에 들었다. 해가 떠올랐고 출근길에 발을 올렸다. 그간의 우울했던 날들과는 조금 다르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마음에 기분 좋게 일을 하다 맞이한 오후. 납작한 액정 위로 떠오른 그 이야기. 어떡하냐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입을 틀어막고 멍하니 그 납작한 액정 위에 쓰여있는 몇 안 되는 글씨를 읊조렸다. 입을 틀어막은 두 손과 양 팔에 돋은 소름은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인지 공상인지 헷갈려하는 나를 명확하게 현실로 이끌어주었고 숨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세상이 낯설게 느껴졌던 지난날들 중 가장 반짝였던 어젯밤이 떠올랐다.
나에겐 아, 이제 좀 살겠다 싶었던 작게나마 반짝이던 어젯밤이 누군가에게는 생의 마지막 밤이었겠구나. 덮쳐온 텁텁한 공기들에 결국 떠오르지 못했구나 하며. 턱 막힌 숨을 내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저 한 숨, 한 숨 가라앉을 뿐. 오늘 밤은 따뜻하다.라고 생각했던 어제의 생각이 연신 그에게 미안하다 고개를 숙여야 할 것만 같았다. 나의 밤만 따뜻하게 보내서 미안해요 하며 눈물을 훔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잘 알진 못했지만 떠올리면 그때마다 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던 그녀에게 늦게나마 고마움을 전한다. 차갑고 날이 서있는 세상에서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기란 쉽지 않으니까. 또 짧게나마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갔던 사람으로서 이유모를 미안함도 함께 전하고 싶다. 미안하고 고마웠던 그녀의 밤이 이제는 언제나 쉬지 않고 따뜻하고 포근하기만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