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숨을 들이마시고, 하나 둘 숫자를 세고
언젠가부터 이를 꽉 깨무는 습관이 생겼다. 선잠에 들었다가도 꽉 다문 이에 놀라 깨기도 하고, 추스르기 벅찬 감정을 느끼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위 아래 앙다문 이에 놀란다.
작년부터였나, 이 괴상한 습관이 시작되었는데 언젠가부터 갑자기 오른쪽 위 치아의 바깥쪽이 소름돋게 시린 느낌을 받았다. 특히 찬 물로 입을 헹구거나 달콤한 무언가를 씹어먹을때 그 시림이 느껴지는데 이가 썩은건지 부러진건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치과에 갔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치아경부마모증’ 잇몸과 이 사이의 경계부위가 파이면서 그 부위가 시리게 되는 상태라고 한다.
“딱딱한 음식을 먹거나 치아를 꽉 다물지 말아야해요. 그리고 치약은 시린이치약을 쓰도록하세요”
생각지도 못한 상태에 이를 꽉 깨물어야만 했던 지난 날들을 떠올렸다. 그럴만한 일들이 많았는지, 언제부터 습관처럼 이를 앙 다물었는지 생각했다. 혼자사는게 익숙해질때쯤 또 다시 상황들이 갑작스럽게 변하기 시작했고, 나 스스로도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어했다. 욕심이 생겼고 현실은 따라주질않았다. 정신과 마음이 지쳐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시린 이를 붙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앙 다문 이를 알아챌 때마다 얼굴에 힘을 빼고 마음을 다스렸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종종 속으로 숫자를 세기도 한다. 하나, 둘, 셋...하고. 그러면 긴장된 마음과 얼굴이 편안해진다. 그리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이를 앙다물지 않으려 노력하기를 한달 쯤 지나자, 앙 다문 이에 놀라 선잠에서 깨는 일은 사라졌다. 마음이 편안해져서인지,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노력해서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어찌되었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편안해진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일로 알게된건 수축과 이완은 어느 한쪽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마음을 다스릴때에도 말이다.
의사선생님의 말대로 이를 꽉 다물지 않으려 노력했고, 치약은 시린이 치약으로 바꿨다. 놓지 못한 채 꽉 붙들고있던 불안과 긴장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했고 내 힘이 닿는 곳 까지만, 딱 거기까지만 최선을 다했다. 뭐든 해결되지 않을 것에 대한 걱정, 지나간것에 대한 후회, 최선을 다 했을 나에게 하는 채찍질 같은 것들이 내 온 몸과 마음과 정신을 긴장시킨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고 여러모로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것들을 완전하게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이제 이를 앙 다무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언제가 됐든 또 다시 온 몸을 바짝 조이는 듯한 긴장감으로 이를 앙 다물때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 때가 오면 이번보다는 조금 더 좋은 방법으로 혹은 빠르게 나아질 수 있겠지 생각한다.
시린 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또 다른 시린 이들이 생겨나겠지. 그럼에도 삶은 계속 될 것이고 나는 또 다시 살아갈 것이다. 큰 숨을 들이마시고 하나 둘 숫자를 세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