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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감정의 부재 그리고 아름다움

by 오롯하게

언젠가는 나를 수도 없이 밑 바닥으로 내리치던 그 감정들이 어느순간부터 이토록 예쁘게 보일 수가 없다. 지나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떠올리고,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며 흘리는 그 눈물들이 이제는 너무나 투명하고 사랑스럽다. 내가 갖고있지 않은 것들은 늘 아름답고 예뻐보이던데, 이제는 내가 그런 감정들을 갖고있지 않아서일까? 문득 나에게도 있었던 그 예뻤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내가 그런 투명하고 어여쁜 감정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나는 뭘로 채워져있는걸까.


2016년. 어느 여름. 가슴아팠던 이별을 처음 한 해였다. 그와 헤어졌던 마지막 데이트날, 경비실 앞에 주저앉아 아직 출발하지 못한 그의 차를 보며 숨죽여 울던 그 더웠던 날이 떠오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뭐 이런 버러지같은 새끼가 있냐며 썩 꺼지라고 오물을 뒤집어씌였어야 했을 사람이었는데도 그때의 나는 경비실 담벼락에 몸을 숨겨 엉엉 우는 일 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모두가 날 이상한듯 쳐다봤어도 가는 내내 나라가 망한 것 처럼 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일은 당연히 할 수 없었고 조그만 틈이라도 보이면 가슴 속에 있던 눈물들이 울컥 쏟아져나와, 화장실로 옥상으로 도망가 알 수 없는 고통에 가슴을 움켜쥐며 울 수 밖에 없었다. 그 많던 눈물들이, 이제는 다 어디로 간걸까.


2020년. 어느 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연애를 마쳤다. 돌이켜서 수만번 수억번을 생각해봐도 왜인지 모를정도로 그를 좋아했다. 만난 기간에 비해서 정말 많은 날들을 함께 했고 정말 많이 웃었고, 정말 많이 울며 힘들었던 연애였다. 여러번의 헤어짐 끝에 정말 마지막 마침표를 찍던 날이었다. 내 무의식도 그날이 정말 이번 생에서 그와의 마지막 만남임을 알았는지, 알 수 없는 눈물들이 밤 새 끊이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품에 안겨 수천번 나를 다독였다. 괜찮다, 괜찮다. 그날 밤새 흘렸던 눈물은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과 그 순간들 속의 나를 모닥불에 넣고 활활 타 재가되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아직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울컥하고 눈물이 나려한다. 너무 많은 시간들을 함께 했기 때문이었을까? 너무나도 많은 일들로 함께 웃고 혼자 울었던 일들이 나를 채워놨기 때문이었을까? 과거에 힘들었던 나를 떠올리면서도 나는 그 과거가 밉지 않았다. 가장 투명했던 감정을 가졌던 순간들의 연속이었으니. 유리 구슬처럼 투명하게 솔직했던 나였으니.


웃고 울 수 있는 그 단순하고 당연한 것 같은 일들이 어쩌면 우리가 지루하게 버텨가는 하루하루들을 예쁘게 만들어준다. 내 안에서 감정을 찾을 수 없다는게 느껴지는 순간에는 참을 수 없을만큼 공허해지고 쓸쓸해진다. 그래서인지 감정에 호소하며 울고 웃는 이들을 보면 웃음이 지어진다.


아, 나에게도 저런 감정들이 언젠가 물 밀듯 찾아오길. 지금은 그저 한 바탕의 태풍들이 지나가고 고요해진 바다의 한 모퉁이일 뿐. 곧 나에게도 아름다운 태풍들이 밀려오길.

다시 한 번 투명한 감정들로 나를 가득 채울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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