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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Mar 12. 2017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시장 보고 나서 즐겨 가는 서점의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한 건 작년 늦여름이었다. 제목과 표지가 인상적이었는데 선뜻 들고 오지 못했다.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고 있는데 남아있는 여름이라니, 어쩐지 조금은 슬퍼질 것 같았고 나는 그때 슬픈 걸 원하지 않았었다. 비록 그 슬픔이 허구라 할지라도 말이다. 몇 번을 보고 지나치다가 하루는 책을 들어서 펼쳤다. 숲속의 별장, 비가 그친 후에 숲으로 난 창문을 여는 장면이었다. 서너 문장이 이어져 있는데 그 속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고 비가 그친 숲의 흙냄새가 날 듯 했다. 그날 장바구니에는 초록색 표지의 아름다운 책 한 권이 더해졌다.


비는 한 시간 남짓해서 그쳤다. 유리창을 열자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가 흘러 들어왔다. 비에 씻긴 초록에서 솟구치는 냄새. 서쪽 하늘이 이상할 정도로 밝아지면서 일몰 직전의 광선을 숲에 던진다. 완전히 황혼에 가라앉아가던 나무들의 잎사귀 가장자리가 오렌지색으로 빛난다.( pp.151-152)


겨울에 읽는 여름이야기


건축사무소와 건축가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만큼 건축물의 설계와 시공에 관한 전문적인 건축 관련 용어가 많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음악을 듣는 듯한 아름다운 음조의 문장들이 푸른 숲 속의 오솔길처럼 구불구불 이어진다. 오래전에 읽었던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집을 순례하다’에서 만났던 건축가들 중 아스플룬드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점도 인상 깊었다. 요시후미의 건축 이야기를 읽을 때 내가 주목했던 건 건축가가 지은 건물들이 완공된 후 건축가들의 섬세하면서도 앞으로 나서지 않은 의도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어우러져 또 다른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는 거였다. 집을 단지 무형물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여기는 건축가의 이야기가 신선해서 한동안 요시후미에게 빠져 지냈던 적이 있었는데 마쓰시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집이 사람을 만들고 사는 이에 따라서 집도 영향을 받아 계속 성장한다고 믿는 내가 빠져들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었던 책 한 권.


겨울, 나무들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 p.180 )
     
암흑은 집 밖에 머물러 있었다. 집은 옛날부터 이렇게 어둠의 압력에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존재했을 것이다. ( p.248)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아이들에게도 똑같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속한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아이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살아가는 데 하나의 의지처가 되겠지. 독서라는 것은, 아니 도서관이라는 것은 교회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혼자 가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야. (  p.181 )

    
이런 생각을 하는 건축가가 설계하고 지은 집과 별장과 도서관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아오야마에 있는 건축 사무소는 여름이면 가루이자와에 있는 여름별장으로 옮겨서 일을 계속한다. 맑은 날, 나무 사이로 들이비치는 햇살이 투명하게 빛나고 바람이 불 때마다 그림자가 흔들리는 풍경이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인다. 가루이자와라는 곳이 그토록 아름답다면 나는 언제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하, 사노 요코의 책에도 가루이자와의 바로 옆 동네인 기타가루이자와라는 지명이 나온다. ‘소가 음매음매 울고 때가 되면 비료 냄새가 푹푹 풍기는 곳’에 사노는 집을 짓고 스토브에 장작을 땐다.
     
매일 이곳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봄이 끝날 무렵엔 산이 온통 잿빛을 띤 분홍색으로 부풀어 올랐다. 마치 산이 웃음을 참는 듯 보였다. 새싹이 하룻밤 사이에 1센티나 자란 걸 확인했을 땐 정말 놀랐다. 신기하게도 매년 놀란다. 놀라움은 기쁨이다. 그 기쁨은 공짜다, 마당에 자란 머위의 어린 꽃줄기도 두릅도 다 공짜다. 소리 없이 쌓이는 눈을 멍하니 볼 때의 도취감도 끝없이 펼쳐진 은세계도 공짜다.  (사노 요코, 문제가 있습니다. p.191)


여름,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가루이자와의 숲 속 여름 별장에서 건축가들이 국립현대도서관의 설계 경합을 준비하는 과정을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보고 있자면 거기도 사람이 있어서 누구는 사랑에 빠지고 누구는 가슴 속에 사랑을 키우다가 그대로 묻는다. 삼색제비꽃을 좋아하는 연인이 꽃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로 집에 어울리지도 않고 실용적이지도 못한 아주 작은 발코니를 만드는 마음은 바로 작가의 마음이란 생각을 한다. 작가는 삶의 기쁨은 작은 것에서 온다는 것, 그러니 눈여겨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삼색 제비꽃처럼 작은 것들이 사실은 큰 것들이고 인생에 그런 작은 기쁨이 많을수록 우리 삶이 아름답고 고귀해진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여름을 기억하는 건 여름이 아닐 때다. 지긋한 나이에 접어든 중견건축가가 오래전의 치열했던 여름을 회상하는 건 단지 어느 해의 여름이 아니라 순수와 열정을 간직했지만 서툴렀던, 어쩌면 그래서 더 아름답고 아쉬운 젊은날이었거라고 짐작한다. 아, 내 여름은 언제였을까. 내 여름의 색은 초록이었는지, 꽃향기가 났었는지 부드럽고 서늘한 바람이 불었는지 아마 기억 속의 저 안쪽 서랍 어딘가에 내 여름도 차곡차곡 접혀서 놓여 있을까. 나의 지난여름을 한동안 골몰히 생각하다가 탁 놓아버렸다. 이제 와서 불러냈다가 덜컥 후회스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다만 그리우면 다행이지만. 그리운 건 그리운 대로 그냥 놔두면 되니까.


마쓰이에 마사시의 두 번째 작품 <가라앉는 프랜시스>의 번역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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