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
서점에 가면 오래 머무는 편이다. 사고자 마음 먹은 책이 정해져 있고 마침 그 책이 매장에 있다면 오래 머물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겠지만 눈길을 잡아끄는 표지나 마음은 흔드는 제목을 가진 무수한 책들의 세상에서 초연한 척 그냥 나오기가 쉽지는 않은 까닭이다. 가끔 횡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아, 저건 내 책이구나 하는 책들을 만날 때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만나는 건 그러니까 내게는 로또 당첨 만큼이나 놀랍고 즐거운 일이다.
그런 작가 중의 하나, 최윤정이다.
그녀의 글을 처음 만난 건 거의 이십여 년 전이다. 문고판처럼 작고 얇은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를 통해서였다. 아이는 다섯 살이었고 막 글자와 그림에 빠져 있을 때였는데 아이에게 책을 골라주는 건 결국 어른이라는 걸 아주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쩌면 어른의 시각으로 아이가 세상을 만나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하게 만들었던, 그래서 초보 엄마였던 나를 긴장시켰던 책이었다. 몇 년이 지나고 만난' 양파 이야기' , 다시 세월이 흐른 후에 '우호적인 무관심', 그리고 이번에는 '입안에 고인 침묵'이다. 첫 번째 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점에서 지나가다 그녀의 이름을 보고 반가워서 집어들었고, 그녀가 마치 나인 양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웃고 같이 아파하며 읽었다.
번역과 평론, 편집과 출판을 하면서 평생을 글의 숲에서 살아온 그녀의 글은 식물성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한다.
무덤덤한 것 같은데 그래서 웃기지도 않고 그리 슬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는데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새 내가 웃고 슬퍼하고 화를 내고 있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아이들과 아이들의 가족과 자신과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면 그토록 거대한 열정을 이렇듯 건조하게 포장할 수 있을까. 단맛이 거의 없고 산도가 좋은 화이트 와인 같은 책이라고 할까. 말을 안 한다고 모르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찬성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과 저곳,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경계를 무수히 넘나드는 일상의 피곤함을 견뎌낸 문인의 문장이 차분하다.
날씨가 좋아서 세상의 모든 고민과 걱정거리가 모두 사라진 듯한 착각에 빠지기 좋은 날이었지만 정직해서 힘 있는 책 한 권을 막 읽은지라 햇살과 바람에 마냥 취해있을 수 없었다. 뭐라도 해야 이 바람을 잡을까? 만만한 게 빵 굽기다.
밀가루 300그램, 이스트 1 작은 술, 소금 1/2 작은 술, 설탕 2 작은 술, 물 200ml를 섞어 반죽이 어느 정도 뭉쳐지면 랩을 씌워서 따뜻한 곳에 둔다. 반죽이 1.5배에서 2배 정도로 부풀 때까지 두는데 온도가 안 맞는다면 발효기능이 있는 밥솥이나 오븐을 사용해도 좋다. 반죽이 부풀면 꺼내어서 여러 번 치대어 공기를 빼고 오븐에 들어갈 수 있는 무쇠냄비에 유산지를 깔고 반죽을 넣어 이차발효를 시킨다. 요즘은 집안보다 마당이 더 따뜻하니까 해가 잘 드는 곳에 냄비를 가져다 두었더니 놀랄 만큼 잘 부풀어 오른다. 190도로 예열한 오븐에 뚜껑을 덮은 냄비를 넣고 30분, 뚜껑을 열고 30분 구워내면 완성이다(본래의 레시피에는 200도로 나와있지만 우리 집 주방의 오븐에서는 190도가 맞는다).
잘 구워진 빵을 잘라서 석쇠에 구워 토스트를 했다.
버터와 꿀을 듬뿍 올려 바사삭 소리를 내며 먹는다.
오늘의 차는 마리아주플레르의 마르코폴로.
가슴속에 눌러 둔 울음은 늘 터질 기회를 필요로 하는 모양이다. 67
열정과 욕심을 헷갈리지 말자. 욕심이 바라보는 것은 대가지만, 열정이 바라보는 것은 결코 대가가 아니야.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이 욕심이라 느껴진다면 과감히 버려. 하지만 그것이 열정이라면 멈추지 마. 71
무언가 잊고 싶어서 영화관에 가는 것이다. 머리를 쓰고 싶어서 영화관에 가던 시절도 있었는데 172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음악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연기든 모든 예술이 그럴 것이고 예술뿐만 아니라 인생도 그런 거 같다. 자식이든 제자든 가르친다고 하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가르칠 수가 없는 거 같다. 다만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아 주고 환경을 조성해 줄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이런 말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새로워서가 아니라 당연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게도 당연히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행하는 것이다 180
그리움. 이런 낱말에 나는 좀처럼 정서적 반응을 하지 않는 편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씁쓸하다.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의 대상이 없는 것 만한 불행도 없을 테니까. 그런데 요즘 들어 가끔 그때, 그 들판들이 떠오른다. 돌아가고 싶은 가. 잘 모르겠다. 아니, 그리운 것은 그 공간이 아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어 허허롭고 그래서 내가 온전히 눈이 되는 것 같던 그때. 보는 즐거움으로 한가해지던 기억, 모든 내면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뭔가 살아나는 것 같던 기분. 어쩌면 그게 바람의 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21
임시로 산다는 거, 내가 속한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산다는 거, 좋은 일임에 틀림이 없다. 인생이 여러 가지 차원에서 간단해지는데 집안일만 해도 그렇다. 일단 짐이 없다. 275
나는 왜 이렇게 매사 거꾸로 가는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다 크고, 부부가 다 머리를 너무 많이 써야 하는 우리 집 환경으로는 가끔씩 '바보처럼'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건 다행에 속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57
주목이 붉은 열매를 달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