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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Sep 14. 2024

결혼

만약 레너드의 신과도 같은 선량함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얼마나 여러 번 죽음을 생각했을까?

                                                                 1930년 5월 28일,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레너드는 리튼과 버지니아가 청혼 소동을 벌이던 때 인도에 있었다. 레너드는 마르고 긴 얼굴에 냉소적인 푸른색의 눈과 긴장하면 손을 떠는 젊은이였다. 그는 리튼 스트래치뿐만 아니라 죽은 오빠 토비의 친한 친구였고 버지니아와도 가까웠다. 그렇지만 버지니아가 아는 많은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온 이방인이기도 했다. 토비를 포함한 캠브리지 친구들이 졸업한 후 대부분 문화계로 진출하던 것과는 달리 레너드는 인도로 가서 식민지 관리가 되었다.

   리튼은 레너드에게 편지를 써서 버지니아에게 청혼했던 얘기를 털어놓았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레너드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 부추겼다. 너는 버지니아와 결혼해야만 해. 그녀는 기다리고 있어. 그녀는 이 세상에서 머리가 좋은 유일한 여자야. 그녀가 존재한다는 것은 기적이야.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레너드는 리튼의 편지를 읽으면서 차츰 버지니아에게 매혹되었다. 그리고 1911년에 1년간의 휴가를 얻어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가족을 만난 후 곧장 캠브리지와 블룸즈버리의 삶으로 빠져 들었다.


    한편 버지니아는 리튼의 청혼이 해프닝으로 끝난 후 예전보다 더 결혼에 대해, 자신이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29살이 되고도 결혼하지 않았다니. 실패야. 아이도 없고, 미친 데다가, 작가도 아니잖아.”


    바네사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것도 그즈음이었다. 바네사는 남편과 두 아이가 있고 촉망받는 화가였다. 게다가 연인도 있었다. 버지니아는 바네사를 지켜보면서 결혼에 대한 질문을 키워가는 동시에 조용한 시골에서 읽고 쓰는 삶에 대한 욕망을 키웠다. 서식스에 작은 집을 구해서 ‘리틀 탈랜드 하우스‘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지냈던 콘월의 탈랜드 하우스에서의 여름을 잊지 못하던 버지니아는 이제 어른이 되자 서식스를 사랑했다. 평생 런던과 서식스를 오가던 생활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911년 11월에 그녀는 동생 에이드리언과 의논한 후 이사를 하고 메이너드 케인즈와 던컨 그랜트를 세입자로 받았다. 하숙집 여주인이 된 것이었다. 버지니아는 여자였고 나머지 네 사람은 남자였다. 점잖은 계급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관습에 심하게 어긋나는 일이어서 친척들은 걱정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모른 척 외면했다. 버지니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가 나오는 검소한 하숙집으로 집세는 비용을 충당할 정도였다. 일층 주민은 동성 커플인 메이너드 케인즈와 던컨 그랜트였고 2층 주민은 남동생 에이드리언, 그리고 3 층에는 버지니아 자신이 살았다. 가장 싼 꼭대기 층으로 빈털터리 유대인인 레너드가 이사를 왔다. 


    레너드는 이미 버지니아에게 매혹당한 상태였지만 확신을 하지 못했는지 리튼에게 버지니아와 사랑에 빠지는 게 위험하지 않을까 묻기도 했다. 겨울이 끝나기 전에 레너드는 버지니아에게 청혼했다. 그건 모험이었다. 당시에 레너드는 관료로서의 성공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버지니아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그 길을 포기해야 했다. 청혼은 눈앞에 보이는 성공을 포기하고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버지니아는 거절했다.

 

    청혼은 거절당했지만 그들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일하고 싶은 욕망도, 시골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같았고 공통의 친구들도 많았다. 차츰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까워졌다. 1912년 5월에 둘은 서로에게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녀는 만드릴(커다란 못생긴 비비)이었고 그는 몽구스(작고 사나운)였다. 5월 29일에 버지니아는 청혼을 받아들였다. 6월, 두 사람이 서명한 짧은 편지가 리튼 스트레치에게도 도착했다. 편지에는 HA! HA! 알파벳 4 글자만 쓰여 있었다.


    청혼을 받아들이기 전, 버지니아는 레너드에게 자신이 그에게 성적으로 끌리지 않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엄청난 힘으로 생동하는, 항상 살아 숨 쉬고, 항상 뜨거운’ 결혼 생활을 기대한다고 썼다. 이때 버지니아가 보낸 사진 속의 그녀는 잘 알려진 연약하고 섬세해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손은 뒷짐을 진 채 거친 트위드로 지은 카디건을 입고 모자를 쓴’ 모습이었다. 버지니아는 레너드가 레이스와 시폰으로 감싸고 우아하게 머리를 틀어 올린 모습으로 자신을 보기를 원하지 않았다. 버지니아는 솔직하고 싶었다. 자신을 어느 정도 혼자 내버려 두기를 원한다는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레너드가 ‘언제나 자신과 함께 있고 또 자신에 관해서 모든 것을 알기를 원한다면 바로 그 지점이 자신을 난폭하고 냉담한 극단으로 치닫게’ 만들 거라고도 썼다. 버지니아 스티븐이 결혼한다면 그녀에게 고독하고 사적인 공간이 많이 주어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정직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같은 편지에서 그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그녀의 어려움 중 하나라고도 고백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비슷한 정도로 서로에게 솔직했다. 열렬히 사모하는 상대와의 결혼이 아니라 깊이 신뢰하는 상대와의 결혼이었다. 두 사람이 계획하는 삶은 작업하는 삶, 자유로운 삶이고 두 사람의 사랑은 공감에 기초한 즐거운 사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다. 버지니아는 유태인을 싫어했다. 버지니아가  약혼 소식을 전하려고 친구나 친지들에게 썼던 편지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빈털터리 유태인으로 시작했다. 레너드의 가족들을 만나는 것도 싫어했다. 특히 시어머니를 두려워했던 버지니아는 레너드 집에 다녀올 때마다 친구들에게 말이 많은 사람이 되곤 했다. 정형화된, 그리하여 잃어버린 자신의 어머니와는 정반대로 거대하게만 보였던 유태인 시어머니의 존재는 버지니아에게 압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어머니 마리 울프는 어린애처럼 끊임없이 관심과 애정을 요구했는데 특히 레너드에게 유독 그랬다. 하지만 훗날, 이 시절을 회고할 때 버지니아는 공평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나이 든 노부인의 지혜와 통찰에 감명을 받기도 했다고 인정했다. 1930년대에 들어서서야 그녀는 자신이 속한 계급과 시대의 편견에 자신도 공모하고 있었던 걸 의식하고 부끄러워했다.


    레너드 울프와 버지니아 스티븐은 1912년 8월 10일 세인트 판크라스 구청에서 결혼했다. 결혼 후 버지니아와 바네사는 보통 자매의 결혼에 자연스럽게 따르기 마련인 정도보다 조금 더 소원해졌다. 바네사는 버지니아가 커플이 되었다는 사실에 당황했고 혼란스러워했는데 그건 6년 전에 버지니아가 언니의 결혼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을 연상시켰다. 끊임없이 버지니아를 돌보는 일은 지치는 일이었지만 레너드를 완전히 믿을 수도 없었던 바네사로서는 걱정과 안도감, 불안함 사이를 오가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바네사는 “나는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만큼만 볼 수 있어요. 이제 그들은 나를 원하지 않거든요.”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버지니아와 레너드는 각자의 세계에서 둘 다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레너드는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했고 버지니아는 보호가 필요했기에 그들의 결혼은 이상적이었다. 비록 논쟁이 잦았고 견해 차이가 많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문화적으로 영향력 있는 부부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하게 되었다. 동시에 외부인들에게는 모호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장난스럽고 정이 담긴 사적인 공간에 안주했다. 버지니아에게 있어 결혼의 완벽함은 그것이 사적이라는 데서 출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삶의 큰 성공은 우리의 보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손댈 수 없는 평범한 것들 말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버스를 타고 리치먼드로 가고, 풀밭 위에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고, 상자에서 편지를 꺼내고, 마못(다람쥣과의 동물)에게 바람을 쐬어주고, 그리즐(개)을 빗질하고, 얼음을 만들고, 편지를 뜯고, 저녁 식사 후에 “형제여, 당신의 자리에 있어” 하고 말하면서 나란히 앉는 것을 즐긴다면, 그 무엇이 이런 행복에 파란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
                                                                                    1925년 6월 14일 일기


    버지니아와 레너드는 행복한 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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