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2월에 버지니아는 남편 레너드와 런던에 갔다. 버지니아가 드레스를 사기 위해 웨스트엔드를 돌아다니는 동안 레너드는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결국 파란 드레스를 하나 샀다. 버지니아가 그날 남긴 일기를 보면 그녀가 평소 옷에 대해 가진 생각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정말 누더기를 입고 다닌다. 나이가 드니까 고급 상점이 덜 무섭다. 데븐햄과 마셜즈를 쓸고 다녔다. 그런 뒤에 차를 마시고, 어두울 때 채링크로스까지 천천히 걸어 내려가며, 써야 할 구절과 사건들을 궁리했다. 이러다가 명대로 못 살고 죽지 싶다. 10파운드 11 페니 짜리 파란 드레스를 샀다. 지금 그 속에 앉아 있다. (1915. 2. 15 일기)
버지니아 울프의 회고록 [지난날의 스케치] 말미에는 1년에 50파운드씩 받은 돈으로 자신을 보일 만하게 만드느라 분투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한 번은 가구점에서 의자를 만들 때 쓰이는 저렴한 녹색 직물을 사서 특이한 실내용 드레스를 만들었다. 그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가 검은 넥타이를 맨 정찬 재킷 차림의 조지 앞에 섰을 때 버지니아는 ‘새 옷을 입었을 때의 불안하면서도 의기양양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버지니아가 조지에게 들은 말은 ‘가서 그걸 찢어 버려.’였다.
그녀의 옷 콤플렉스는 이때 시작된 게 아니었을까? 새 옷을 선택하고 입고 나타나는 것은 매번 그녀를 공포와 당혹스러움으로 경직시켰다. 버지니아의 안경은 비틀어져있기 일쑤였고 옷을 너무나 못 샀으며 자신의 옷조차 제대로 채워 입지 못했고 머리를 올릴 수도 없었다. 머리는 커다란 고리 모양으로 내려왔고 핀으로 약하게 꽂혀 있었다. 스펀지와 머리빗을 잊고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버지니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비길 데 없이 괴짜로’ 보였을 것이다. 그녀에게 상류사회란 ‘차려입는 것’을 의미했으므로 상류사회 역시 공포와 자의식에 관련이 있었다. 버지니아가 자신의 ‘옷 입기에 관한 열등감’을 단편소설 [새 옷 New Dress]에 집어넣었다는 사실이 당연하면서도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비밀이든 두려움이든 표현되면 그 강도가 약해지니까.
댈러웨이 부인의 파티에 초대받은 메이블은 파티를 위해 특별히 만든 노란색 새 드레스를 입었다. 파티에 도착해 망토를 벗으며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낀 순간에 메이블은 ‘언제나 숨기려고 했던 불행, 깊은 불만’에 다시금 빠져버린다. 메이블이 재봉사의 집에서 수수하고 고풍스럽고 매력적이라고 여겼던 그 옷이 댈러웨이 부인의 집에서는 바보 같아 보이는 구식의 실크 드레스에 불과했던 것이다. 메이블은 부끄러움과 굴욕감에 휩싸여 자신을 되돌아본다. ‘언제나 초조해하고, 연약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어머니였고 불안정한 아내였고, 분명하거나 뚜렷한 어떤 존재도 아닌, 일종의 어스름한 존재’라는 게 부끄러웠다. 괴로워하다가 메이블은 파티에서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런던 도서관에 가리라고 결심한다. 그곳에서 ‘신기하고 놀라운 책’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혹은 ‘스트랜드 거리를 걸어 내려가다가 광부가 탄광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집회장에 우연히 들를 수’도 있겠다고. 그녀는 새로운 사람, 그러니까 옷에 마음을 쓰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남의 말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변화시킬 것을 다짐하며 소파에서 일어나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이 아니다.
댈러웨이 부인에게 파티가 즐거웠다고 말하는 메이블, 댈러웨이 씨에게 즐거웠다고 인사를 하는 메이블, 자신을 도와준 배넷 부인에게 감사하는 메이블, 낡은 망토로 몸을 감싸는 메이블의 모습은 어쩐지 그녀의 삶이 변할 것 같지 않은 예감을 준다. 메이블의 결심, 메이블로 하여금 파티를 떠나게 할 힘을 주었던 그 단호함이 이어질지 의심스러워 거듭 읽어보게 된다. 메이블이 결심한 변화라는 것도 어쩌면 한 순간의 상상에 그치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 반 페이지도 되지 않는 분량으로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의 모호함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
1920년 가을, 버지니아 울프는 몽크스 하우스를 방문하려는 T. S. 엘리엇에게 "옷은 가져오지 마세요"라고 썼다. 이건 버지니아와 레너드가 격식을 차리느라 애쓰지 않으며 또한 방문객들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관습을 무시한 초대였다. 그건 버지니아 울프와 블룸즈버리 그룹의 멤버들이 얼마 전부터 지켜오고 있던 일종의 규칙이었다. 버지니아와 바네사가 젊은 여성으로서 파티에서 착용해야 했던 까다로운 의상들과 몸을 옥죄는 코르셋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이드파크게이트의 집을 떠날 때 그들이 원했던 새로운 삶의 방식은 새로운 형태의 옷을 입는 걸 의미했다.
오틀린 모렐의 초상화
블룸스버리의 인물들은 종종 페미니스트와 평화주의자들이었다. 버지니아 울프와 교류했던 가싱턴 장원의 레이디 오톨린 모렐 Ottoline Morrell 역시 퀴어였다. 당시 외부인들이 보기에 정상에서 비켜난 그들의 삶은 옷에 대한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모렐은 공식적인 남성복의 중요성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는 벨벳 바지를 가지고 있었다. 허리는 좁고 엉덩이는 과장되게 넓은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패러디하기도 했고 한쪽 주머니에 담배를 넣어두기도 했다. 흡연은 모렐이 자신의 성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가싱턴의 파티에서 휘황찬란하게 차려입은 모렐을 일컬어 버지니아 울프는 ‘스페인 무적함대’라고 칭하기도 했다.
옷을 입는 것이 자기표현의 한 방법이라면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들 코르셋에 익숙할 때 헐렁한 옷을 입으면 움직임이 자유로워지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아 타인과의 상호작용도 달라진다. 두껍고 무거운 직물로 만든 드레스에 벨트를 단단히 여미고 크리켓을 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사진과 해변에서 장난을 치거나 헐렁한 옷을 입고 몸을 웅크린 사진에서 보이는 버지니아 울프의 변화는 인상적이다.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데 편안한 옷차림의 역할도 있었을 거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버지니아 울프는 몸의 선을 따라가는 넉넉한 옷을 좋아했다. 꽉 끼는 허리나 정교한 디테일은 없었다. 기둥처럼 곧게 뻗은 케이블 니트 카디건, 털실로 짠 재킷, 단순하고 넉넉해서 팔을 마음껏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재킷, 헐렁한 바지와 펌프스가 셔츠 위에 걸친 스웨터와 짝을 이루었다. 그녀는 주황색과 노란색 스타킹, 꽃무늬와 기하학적 무늬 등 색깔과 프린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네사 역시 자신의 옷을 직접 만들어 입고, 수선하고, 안전핀으로 고정한 옷들을 만들었다. 외관은 느슨했고 울퉁불퉁한 데다가 솔기가 보이는 등 대충 만든 옷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때 연인이었던 던컨 그랜트가 그린 초상화에서 바네사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다. 이 옷은 그녀의 몸을 덮거나 가리는 대신에 단단하고 강한 몸과 팔을 노출시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 준다.
어떤 옷을 입은 사람을 보았을 때, 그 옷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면 1923년 모렐이 자신의 집에서 찍은 버지니아 울프의 사진을 보는 것은 즐겁다. 줄무늬 드레스에 챙이 넓고 깃털 장식이 달린 모자와 꽃무늬 숄이 아니었다면 비타 색빌 웨스트와 사랑에 빠진 동시에 ‘옷 입기의 즐거움’까지 새롭게 발견한 버지니아 울프의 기쁨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