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벌써 몇 시간째 마당에서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나뭇가지들을 쳐내고 있다. 며칠 전 주방 앞의 주목을 시작으로 매화와 배롱나무를 다듬더니 이제는 키 큰 목련 차례인가 보다. 한껏 늘인 사다리가 위태롭게 보인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내게 어떤 가지를 잘라내야 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사다리 위의 남편에게 이쪽, 아니 그 옆에, 그거 말고 그 옆에, 하고 외치면서 나무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우지끈! 제법 굵은 나뭇가지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얼굴만 한 목련 잎들 사이로 가려졌던 하늘이 보인다. 구름이 제 무게를 못 이긴 듯 내려앉은 게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기세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최대한 마당을 정리해 두었어야 했는데 올해도 때를 놓친 모양이다.
나는 초록색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색을 고를 수 있다면 망설임 없이 초록색을 골랐다. 초록색 필통, 초록색 연필, 초록색 신발주머니를 들고 학교에 다녔던 아이는 매해 다시 돌아오는 봄을 기다리느라 겨울이 깊어질수록 몸살을 앓는 어른이 되었다. 베란다 가득 화분을 늘어놓고 씨앗을 뿌렸다. 손톱만 한 잎이 나올 때부터 틈만 나면 화분 앞에 쪼그려 앉은 내 안에는 봄학기가 시작되기 전 성미 급한 별꽃이나 씀바귀를 찾아다녔던 아이가 여전히 살고 있었다. 오래 살던 아파트를 떠나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했을 때는 눈 닿는 모든 곳에 초록색이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오래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숨만 쉬고도 살 것 같았다.
추석을 얼마 앞두고 이사를 했으니 아마 초가을이었을 것이다. 마당에는 소나무 몇 그루와 회양목, 철쭉과 잔디가 있었다. 그 가을 내내 마당에서 살았다. 주말마다 꽃 시장을 돌아다녔다. 철이 지난 농원에서 형태를 알아보기도 어려운 뿌리들과 도무지 잎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묘목들을 샀다. 밤늦게까지 책을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구근과 씨앗을 주문했다. 마당에 눈이 한 자 넘게 쌓였는데도 내 눈에는 반짝거리는 연두색 잎과 부풀어 오르는 꽃봉오리들이 보였다. 온갖 식물로 둘러싸인 집은 그러나 한겨울의 꿈속에서만 가능했다. 이사 후 첫 번째 봄은 기다린 만큼 실망했다. 가을에 심으면 더 좋다던 장미도, 어렵게 구한 구근들도, 온갖 기화요초의 씨앗들도 모두 잠잠했다. 침묵의 봄이었다. 간혹 새 잎이 돋아나면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기뻤다. 몇 해가 지나면 보이는 족족 뽑아버릴 줄을 그때는 몰랐다.
집은 언덕을 제법 올라온 곳에 있었다. 아랫동네 보다 조금 더 춥고 눈도 많이 내린다고 했다. 식물을 기르기에 안 좋은 환경일까 불안해지는 마음을 달래준 건 어디선가 읽은 사막 식물들의 이야기였다. 사막 식물들은 대부분의 기간을 씨앗인 채 산다고 했다. 씨앗들은 모래 속에 숨어서 비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비가 오면 재빨리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은 뒤 죽는데 그 모든 일이 벌어지는 시간은 불과 채 20일도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막은 아니지만 기온이 낮고 햇볕이 야박한 내 마당에서도 그런 기적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 시간, 시간이 문제였다. 식물들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어야 했다. 내가 할 일은 기다림, 그것이었다. 근질거리는 손을 뒤로 감추고 다만 기다리는 일이 사실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그때 배웠다. 조바심을 감추고 울렁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봄마다 숨을 죽였다. 남몰래 몸부림하는 나와는 달리 마당은 차분했고 동시에 민첩했다, 몇 해가 지나자 꿈쩍할 기미도 보이지 않던 나무들이 느닷없이 꽃봉오리를 터뜨렸다. 사방에서 팝콘이 터지는 것처럼 맹렬하게 꽃들이 피고 순식간에 졌다. 꽃이 진 자리에 꽃보다 더 반짝이는 초록색 잎들이 달렸다. 순식간에 초록이 집을 에워쌌다. 봄날 모종 자라듯 내 욕심도 자랐다. 농원 나들이도 구근 고르기도 매해 거르지 않았고 씨앗상자도 늘렸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으나 봄은 해마다 점점 더 커진 모습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몇 해가 지났다. 계절이 오가는 모습이 소란했다. 봄은 작약과 은방울꽃의 붉은 촉을 앞세웠다. 튤립과 히아신스가 뒤를 이었고 목련과 매화가 지면 곰취와 명이가 올라왔다. 물망초가 푸른 안개처럼 화단을 물들이고 사이사이 제비꽃과 데이지가 틈을 메웠다. 무엇이든 더 심을 곳이 없을까 궁리하는 중에 장미가 피기 시작하면 여름이었다. 풀을 뽑고 시든 꽃을 자르며 곁순을 질러야 하는 시기였다. 매일의 풀 뽑기가 힘에 부칠 즈음 장마가 왔다. 식물들은 기다렸다는 듯 빗물을 받아 마시고 쑥쑥 자랐다. 아침마다 마당의 풍경이 달라졌다. 오이나 호박 같은 덩굴식물들은 순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감으려 들었고 나리와 백합, 수국들도 질세라 연신 꽃을 피우고 새순을 밀어 올렸다.
이른 봄부터 마당살림을 거른 날이 거의 없었으니 쏟아지는 비가 내심 반갑기도 했다. 유리문 안에서 바라보면 빗물이 초록색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장마는 집안에서 숨을 고르는 내게 보란 듯이 마당을 휘저으며 꽃과 나무들을 부추겼다. 마당은 와글와글 시끄럽고 부산해서 마치 장터 같았다. 장마 후에 마당은 순하고 보드라운 연두색에서 억세고 거친 청록색으로 변했다. 성난 것 같은 한여름의 초록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자르고 떼어내고 잡아 뽑는 일이었다. 빽빽하게 돋아난 제비꽃 포기를 한 손에 모아 그러쥐고 잡아당기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일도, 이리저리 엉켜있는 장미덩굴을 쳐내다가 가시에 긁히기도 여러 번이었다. 어느 날 해마다 자리를 넓혀가던 앵초가 바로 옆에서 자라던 바람꽃과 엉켜있는 걸 발견했다. 방금 전에 매발톱 사이에서 난데없는 범부채를 보고 놀랐던 참이었다. 갑자기 겁이 났다, 여름 식물들의 생명력이 징그럽고 무서웠다. 도망치듯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그대로 주저앉아서 여름을, 초록을, 욕심과 무모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필요한 건 이사 후 맞이한 첫 번째 봄에 배웠던 미덕, 바로 기다림이란 걸. 올려다본 하늘에서 가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초록이 가진 힘을 실감했던 때는 오히려 가을이었다. 블루베리 잎이 붉게 물드는 걸 시작으로 마당에 색이 섞이기 시작했다. 벚나무는 노랗게 남천의 열매는 붉게, 초록이 스러진 자리에 다른 색이 드러났다. 식물이 무성했던 자리일수록 숨어있던 색이, 그늘 아래 작은 생명들이 다채로웠다. 시든 백합과 구절초들을 베어내면 거기 놀랍게도 새싹이 돋아있고, 한 치 틈도 없이 붙어살던 은방울꽃을 솎으면 달팽이가 느리게 기어갔다. 멍든 나뭇잎을 떼어내고 꽃 진 줄기들을 자를 때마다 붉고 노란 가을이 갈빛을 품고 모습을 드러냈다. 숲에서 불어오던 바람까지 막아섰던 여름의 초록은 그악스러운 손아귀로 잡아챌 수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겨울이 봄에게, 여름이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방식처럼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알아차리는 것, 그게 필요했다.
마음껏 들인 식물들에 에워싸여 어쩔 줄 모르던 여름을 거듭 보내고 난 지금에서야 마당을 적당히 비워 놓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계절이 무리 없이 다가왔다가 자연스럽게 스러질 수 있을 정도의 밀도를 유지하게 하는 건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다. 지나친 욕심이 불러온 혼란과 무질서를 제 자리에 돌려놓으려면 앞으로도 몇 번의 여름을 웃자란 나뭇가지들과 엉킨 덩굴들 사이로 빛과 바람이 지날 수 있는 길을 터놓으며 지내야 할 것이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힐긋거리며 가지를 치고 풀을 뽑느라 종종거리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