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밀도와 농도가 있습니다. 어떻게 상대를대하는가에 따라 사랑의 넓이와 깊이가 달라집니다. 사랑이란 단어는 소중하지만 남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각자 사랑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작 필요한 순간에 사랑표현은인색합니다. 자식에게는 자주 쓰는 말이지만 부모님, 조부모, 부부 사이에는 멈칫하며어색할 때가 있습니다. 표현하지 않은 만큼 이해보다 오해가 생깁니다.가족에게만큼은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아야겠습니다.
요즘 들어 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두 가지 이유입니다. 마음 한편에 여백을 만들기 위해, 시를 읽고위로를 받고 싶어서입니다. 읽을 때마다 무뎌진감수성은조금씩깨어납니다. 묵상하면차분해지고 담백해집니다. 곱씹을수록 상징과 은유 그리고 압축미에 푹 빠지게 됩니다. 조동화 님의 <나하나 꽃피어>, 정호승 님의 <수선화에게>, <바닥에 대하여> 정현종 님의 <방문객>, 안도현 님의 <너에게 묻는다>, 나태주 님의 <행복>, <풀꽃>, 도종환 님의 <흔들리며 피는 꽃>, <담쟁이>, 문태준 님의 <오랫동안 깊이 생각함>의 시들을 암송하며 지친 삶을 다독였습니다. 좋은 벗처럼 옆에만 있어도 든든합니다.
시는 가까이 있지만
시는 항상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책에서, 지인이 보낸 메시지에서, 우연히 들른 공중화장실 벽면에서, 카페의 메뉴판에서도 보입니다. 시를 나누고자 하는 누군가의 마음씀 덕에 접한 경우가 많습니다. 시를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마음의 여백이 없을 때는 시는 글자에 불과합니다. 직장 선배 중 문인협회 활동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고통을 한 올 한 올 엮어 시를 짓는다"라며 답답할 때마다 시로 승화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에게서 시가 배달 올 때면 힘드시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시라는 돛을 달고 인생항해를 하는 분이셨습니다.
시를 좀 더 나누어야겠습니다. 황폐한 세상에 단비 같은 시를 나누며 소중한 분들에게 잠시 멈춤을 선물해야겠습니다. 심순덕 님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를 나누니 어머니께 전화드리며더 챙겨야겠다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시를 보자.
마음의 눈을 뜨기만 한다면 시 한 편쯤은 암송하며 삶에 쉼표를 줄텐데요. 작년부터 브런치에 [시작 시작]에37편 의 자작시를 올렸습니다. 주로 힘듦극복, 순간 깨달음, 의미 있는 일을간직하고 싶었습니다. 호기롭게 꾸준히 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실함만으로는 분명한계가 있었습니다. 막고 품는 분야는 아니었습니다. 진솔하게 경험을 녹아낸 시를 쓰고 싶었지만 일기 같은 고백에 머무를 때가 많았습니다. 다듬고 다듬는 것은 말저럼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대상을다르게 보는 시선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습니다. 느끼는 데로설명할 수 없기에 자주 혼동스럽습니다.그럼에도 아내의 사랑이 고마워서, 인간의 나약함을 고백하며, 사진에애써 의미를 찾다가, 순간 떠오르는 감동을 붙잡고 싶어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그렇게 일상을 지었습니다.
연애할 때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하던가요. 여자 친구가 귤을 좋아하니 귤에 대해 시를 지었고, 연애편지도 그리움을 담아 자작시로 표현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사람을 위한정성덕에애써 점수를 후하게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한다면서도 상대가 원하는 것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그것이 사랑이라 착각했습니다.말이 너무 앞섰고 실천은 더뎠습니다. 사랑하는 노력은 게을렀습니다. 한용운 님의 사랑하는 까닭을 일찍 접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상대를 진정 사랑한다면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부족함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기다리면서도 오히려 도울 일을 찾습니다. 더 기도하게 됩니다. 주어도 주어도 부족하게 느껴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하다면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