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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 정문선 Feb 01. 2022

[시 감상] 수건

시가 주는 울림을 기록합니다.



    수   건

                  (정채봉)


눈 내리는 수도원의 밤

잠은 오지 않고

방 안은 건조해서

흠뻑 물에 적셔 널어놓은 수건이

밤사이에 바짝 말라버렸다

저 하잘것없는 수건조차

자기 가진 물기를 아낌없이 주는데

나는 그 누구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고

켜켜이 나뭇가지에 쌓이는

눈송이도 되지 못하고


<정채봉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중>




건조한 방에 수건에 물을 적셔 펼쳐두곤 했습니다. 물기를 머금은 수건은 자고 일어나면 뻣뻣한 천이 되곤 했습니다. 밤새 물을 조금씩 내어준 것입니다. 덕분에 목은 한결 나았습니다.  


몸을 씻을 때마다 몸의 물기를 가져갔던 수건임에도 고맙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시인에게는 물에 젖은 수건돈오점수의 재료가 된 모양입니다. 수건은 몇 년이 지나면 걸레로 바뀌어 더러운 곳을 닦거나 훔쳐 내며 닳고 닳아 업을 다할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난 사람은 어떤  살아야 할까요. 없이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시인의 시선이 당연함을 깨우치는 죽비가 되었습니다.


*돈오점수 : 문득 깨달음에 이르는 경지에 이르기까지에는 반드시 점진적 수행 단계가 따름을 이르는 말.


#정채봉시집#정호승#시감상#수건#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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