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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증 - 나의 첫 우울기

조울증 투병기 #3

by 무아

날씨가 조금 풀린 오늘, 그동안의 우울기를 돌아보며 글을 쓴다.


겨울 동안 나는 우울기를 겪었다.

조증기와 우울기가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이 조울증의 특징인데, 이는 계절을 타기도 한다. 나에게는 추운 날씨의 겨울이 우울기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우울기에는 잠이 평소보다 많아진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어려워지고, 무기력함과 우울감이 늘어난다. 뭐라고 해야 할까.. 모든 욕구가 침대와 핸드폰에만 집중된다고나 할까. 그저 누워서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 스케줄들은 어찌어찌 어렵사리 해냈다.


주치의 선생님은 이제 막 새로운 약에 적응됐으니 (약을 바꾸지 않고) 조금 더 지켜보자며, 운동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하지만 우울기에 가장 하기 싫은 게 운동인걸.. 이 시기에 살도 3kg가량 증가했다. (어떻게 뺀 살인데..!) 탄수화물과 당이 당겼고, 밥을 먹고 난 후에는 식곤증과 함께 낮잠을 자곤 했다.


우울기에 가장 어려웠던 게 뭐냐고 묻는다면, 바로 내가 나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기에 머리를 맞대는 간단한 루틴을 지키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침대에 누워 ‘조금만 더, 조금만 더..’가 계속됐다. 통제 밖의 나는 너무나 무기력했다.


만일 내가 정시에 출퇴근해야 하는 직장인이었다면 이 우울기를 조금은 수월하게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내 얘기지만, 강제성이 동반되는 시간 약속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데에 도움이 되곤 했다.



게으른 게 아니다. 온몸을 짓누르는 우울감 때문에 잠시 느려진 것뿐이다.


나처럼 우울기를 겪고 있는 조울증 환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책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해야 하는 것은 ‘탓’이다. 고약한 조울증 탓을 해야 맞는 것이다. 내가 게으른 게 아니라 조울증 때문에 잠시 우울함이 스쳐 지나간다는 걸 인지하고, ‘이런 날도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게 된다. 이불을 걷고 가뿐한 마음으로 산책을 나갈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조울증 환자가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면서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그럴 때일수록 나를 통제하는 작은 습관들을 만들어나간다면 조금씩 무기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기. 일어나자마자 샤워하기 등등. (우울기 때 느낀 거지만 샤워가 생각보다 정말 도움이 된다.)


온갖 노력에도 우울감이 사라지지 않고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하다면 꼭 병원에 내원해 전문가와 상담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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