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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증, 커밍아웃해도 될까?  

조울증 투병기 #2

by 무아 Jan 25. 2025

병식이 생기고, 가장 먼저 든 고민은 ‘지인들에게 내가 조울증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였다.


감추고 싶지만 동시에 위로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네가 조울증이어도 괜찮아.’ ‘우리는 변함없이 너와 친구야!’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나의 고민을 듣고, 다른 질병은 몰라도 조울증은 커밍아웃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하셨다. 약만 잘 먹으면 충분히 관리가 가능한 질병이므로 굳이 색안경을 쓴 사람들에게 나를 물어뜯을 여지를 줄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왜일까. 나는 자꾸만 새로운 관계의 사람들이나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가 조울증임을 말하고 싶어졌다. 조울증임에 당당하고 싶었다. 이를 숨기는 것이 조울증이 나의 흠임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후 가장 가까운 친구들부터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게까지 커밍아웃의 과정은 계속됐다. 상대방과 나의 거리를 가늠하기 위한 시행착오였다. 얼마나 가까워야 나의 병을 알고도 편견 없이 나를 대해줄까. 어떤 성향의 사람에게는 숨기는 것이 관계를 지속하는데 더 도움이 될까. 여러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어느 날, 무작정적인 커밍아웃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구나, 깨닫게 된 날이 있었다.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조울증임을 밝혔을 때였다. 지인은 차분히 내 이야기를 듣고는 말했다. ‘ㅇㅇ아. 나는 너 얘기를 듣고 이건 그냥 너의 한 사정일 뿐이라고 받아들였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아. 냉정하게 말하자면 조울증이라는 지병은 너라는 사람의 결함처럼 보일 수 있어.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바꾸기는 어려워. “ 주치의 선생님의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색안경을 낀 사람을 원망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내 속만 상하고 세상에 대한 나의 분노만 커질 뿐이지.


결론은, 자신의 정신질환이 자신의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라면 굳이 주위에 알리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는 것이다. 알리지 않는다고 해서 본인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가 만나는 사람마다 ‘저는 고혈압이 있어요!’ ‘저는 당뇨라 평생 약을 먹고살아야 해요!‘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함구하는 것이 관계에 있어서 상처받지 않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너무 답답하고 억울해서 털어놓지 않고는 못 버티겠다면, 정말 믿을만한 친구 (당신의 질환을 악의적으로 소문내지 않을 만한) 에게만 밝히는 것을 추천한다. 너무 무겁지 않게, 나 사실 조울증이다?라고 말한다면 상대방도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것이다.


예외로, 교제하는 이성 혹은 결혼 상대에게는 언제가됐든 밝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게 관계를 끝내는 이유가 될지라도 말이다.


정신질환자는 상처받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갖게 된 질병에 억울하고 서럽지만, 그래도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당신의 병명을 듣고 누군가는 도망가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래? 그게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결함은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유니크한 결함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모든 주인공들은 모두 시련과 풍파를 견디며 언젠가는 그게 어디든 도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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