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첫 직장생활
회사 면접 에피소드 먼저.
이 회사의 면접은 전화로 보았습니다.
회사 매니저가 교포분이신 듯 한국말도 어느 정도는 하실 수 있더군요.
당연히 영어로 물어보고 영어로 대답하였는데, 서툰 영어로 더듬대며 대답을 끝난 후 떨어졌구나 직감했습니다.
어차피 떨어진 거 할 말은 하자 해서
'마지막으로 한국말로 제 할 말 좀 하겠습니다'
하고 아마 10분은 떠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뭘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다는 뭐... 그런 뻔한 말들이요. 아주 후련하게 하고 싶은 말들 다 했습니다.
헉, 그게 통했는지 바로 다음날 출국준비 하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미국에서의 첫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정규직이 아닌 1년 계약직이었지만 설레는 마음 절반, 두려운 마음 절반을 안고 환승을 3번 하는 가장 저렴한 항공을 이용하여 미국에 도착하였습니다.
미국에서의 회사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좋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처럼 월스트리트 빌딩 숲 속에서 정장을 입고 한 손에는 커피,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출근하진 않았습니다. 그 대신 덩치가 커 위협적인 흑인과 멕시칸들 속에서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출근하였습니다.
회사에서는 영어가 서툰 저에게 그렇게 어려운 수준의 일을 주지도 않았고(물론 기대도 안 했겠지만) 업무 자체도 나름 재미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월급도 나름 많이 주었습니다.
미국의 회사문화는 정말 자유로웠습니다.
막내가 무언갈 나서서 해야 하고, 팀장이 퇴근하지 못하면 같이 못하고, 야근 및 특근은 숙명적인 일이며, 주말이 지나면 누가 뭐랄 것 없이 주말에 있었던 나의 사생활을 보고해야 하는 그런 문화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회사문화보다 더 좋았던 점은 퇴근 후의 생활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시에 회사를 나와 바닷가를 산책하거나, 날이 어두워지면 로스앤젤레스 도심으로 들어가 높은 빌딩들 사이의 야경을 감상하며 조금 무리만 한다면 박찬호 사진이 붙어있는 다져스 스타디움에서 야구경기도 볼 수 있다는 점은 정말 좋았습니다.(야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또한 주말이 되면 근처의 관광지도 둘러보고 가끔 라스베이거스까지 차를 몰고 가서 쇼를 보거나 슬롯머신도 하였고, 그 유명한 벨라지오 호텔이나 MGM 호텔 뷔페도 먹었습니다.
휴가 기간에 LA에서 북부 시애틀을 지나 동부 시카고까지 횡단하는 엠트랙 기차를 타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이대로라면 굳이 다른 직업을 택하지 않고 직장인만 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생각해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어린 나이의 패기와, 계약기간이 끝나면 결국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확정적 종료의 시간이 주는 안도감,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양할 가족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계약의 종료시점이 다가올 때쯤 회사는 저에게 영주권 지원을 제안하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 즉 정규직 제안을 하였습니다.
만약 회사의 제안을 수락한다면 미국에서 최소 7년 이상은 더 거주해야 하기에
저의 깊고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