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꿈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어릴 적 꿈이 참 많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위인전을 보며 군인을 꿈꾸었고, 초등학교 체육선생님이 멋있어 운동선수의 꿈도 꾸다가, TV의 드라마를 보며 잠시 호텔리어가 참 멋있다고 생각이 드는 와중에 잡지의 멋진 CEO를 보며 사업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제 꿈 그 어디에도 직장인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시 '미생'이란 드라마를 방영했더라면 직장인을 꿈꾸었을 수도 있겠네요.
학창 시절, 선생님과 어른들은 '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라고 항상 말씀하십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의 저는 또래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말의 뜻을 몰랐고요.
하지만 별다른 특기나 능력이 없었기에 그냥 남들 하는 만큼 야자도 하고 독서실도 다니며 평범한 수준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대학이란 곳을 들어가야 할 시점이 와버렸고, 그 누군가 그랬듯이 저 또한 제 꿈과 제가 하고 싶은 전공과 원하는 학교가 아닌 성적에 맞추어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제 점수로 인하여 선택받게 되었지요.
대학이란 곳에 입학하니 확실히 고등학교 시절보다는 자유로웠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만약 자유로운 내 시간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저였지만 막상 너무나도 많은 자유 시간이 생기니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 또한 그냥 남들 노는 만큼 신나게 놀았습니다.
술도 마셔보고, 여행도 가보고 친구들과 밤새 게임도 해봤습니다.
그러다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도 다녀왔습니다. 힘들다면 힘들었고 재밌다면 재밌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란 세월이 흘러 대학으로 돌아가니 친구들은 모두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나게 놀고 힘들게 군대를 다녀온 저에게 취업이란 너무 막연했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직장이란 곳에 들어가려 영어도 준비하고 자격증도 따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혼란스러운 저 자신에게 물어봤습니다.
'넌 꿈이 뭐니?'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 꾸었던 그 수많은 꿈들이 온데간데 없어지니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꿈을 찾기 위해, 꿈을 다시 꾸기 위해 직장이란 곳에 우선 들어가야겠구나'
달리 방법이 없던 저는 그렇게 취업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영어공부도 하고, 이력서도 썼습니다.
단, 남들과 달랐던 점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의 취업을 위해 미국직장으로 이력서를 넣은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패기인지는 모르지만 영어도 잘 못하면서 어떻게 미국에서 일할 생각을 했을까 싶습니다.
정말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당연하게도 저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만약 편의점 알바를 지원했다면 진작에 뽑혔겠지만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현지인도 힘든 일반 직장의 취업을 영어가 서툰 제가 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원한다면 이루어진다고 했나요.
정말 운이 좋게도 한국과 거래가 많은 미국회사에서 저를 뽑아 주었습니다.
넓디넓은 미국 땅 LA라는 곳에 위치한 그곳에서 저의 첫 직장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직장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