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가족 14 - 아버지 (1)

중년 남자의 잡생각

by B 밀


아버지가 싫었다.


어느 하나 나와 맞는 게 없었고,

내 인생을 실패자로 느끼게 한 존재로

생각해서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친구들 아버지와 비교했을 때,

워낙 나이도 많으시고 생각이 고루하셨다.


어릴 적 나에게

무조건 법관이 되어야지,

그 이외의 것은 다 쓸데없는 것들이라고

교육을 시켰다.


초등학생 때는 너무 어린 나이라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나이가 먹어 중학생이 되며

내 꿈이 법관이 아닌,

컴퓨터 공학자나 천문학자 등에

있단 걸 알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내가 보기에도 문과보다는 이과가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의 첫 번째 틀어짐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갈 때,

과학고등학교를 가고 싶다고 했을 때였다.


세상 필요 없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며 화를 내시고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고,

“바보 같은 놈”을 무수히 말씀하셨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가장 자주 쓰시던 말이

‘이런~ 바보 같은…’이다.)


결과는

너무나 완강한 아버지의 반대로

원서조차 넣지 못했다.



두 번째 틀어짐은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가며,

문/이과를 선택할 때였다.


그때도 역시 이과를 지원하겠다는 나에게

퇴근 후 인사도 안 받으시고,

수 없이 세상 물정 모른다며

“바보 같은 놈”을 연발하셨다.


나 역시 집안의 집기를 부수며

내 인생이 아버지로 인해

어떻게 망가지는지 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난다.


결과를 따지고 보면

그렇게 소리를 질렀으면 이겼어야지,

결국 아버지 선택대로 문과를 갔으니 할 말은 없다.



문과 선택 후,

아버지에게 진 것에 대한 분함,

흥미를 잃어버린 공부,

딱히 원하는 과도 없던 나는

성적에 맞춰 경영학과를 진학했다.

역시나 아버지는

그런 과를 가서 무엇하냐고 나무라셨고

내 친구들 중 법대를 지원한 친구 녀석의

이야기만 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거의 없던 대학 시절,

아버지가 내게 하는 유일한 대화 거리는

법대를 간 친구 이야기였다.

학교도 다르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연락도 끊어버린.


그럼에도 나보다 더

그 친구에 대한 소식을 잘 아는 것이 신기했다.


그 친구가 사시를 합격한 것도,

어느 지검으로 발령받은 것도,

모두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그 친구가 승진했다고

축하 연락을 해보라 전화를 했다.


“아버지,

저 그 친구랑 연락 안 한 지가 10년도 넘어요.”


“이런 바보 같은 놈, 사람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빨리 연락해서 잘 지내냐고 물어보고, 화환 보내!”




시간이 꽤 흘러

회사가 너무 힘들어 육아 휴직을 결심했을 때,

부모님께 이런저런 이유로 좀 쉬어야 한다,

너무 걱정하시지 마라.. 말씀드릴 때도,


아버지의 첫마디는


“야. 검사 그 친구한테 연락해 봐.

힘드니까 도와 달라고 해.”였다.


정말이지 그날은 울컥하는 마음에

그만 좀 하시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아버지의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쩔 때는 화를 내기도,

어쩔 때는 부탁을 하기도 하면서

제발요.. 아버지.. 그런 말씀 하실 때마다

제 인생이 실패자인 것 같아요.

제발 좀 하지 마세요..

수 없이 말해 왔었지만,


육아휴직을 결심하고

나의 힘듦을 이야기를 하는 그 순간에도,

내 친구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참지 못하고 폭발을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같이 졸업했을 뿐이지,

30년간 연락 한 번 주고받은 적 없는 사람을

어떻게 친구라고 할 수 있는가?)




육아 휴직 기간 중

아버지에게 전화가 온다.


“야. 네 친구 아무개 있지? 이번에 검사 생활 접고, OO법무법인 간다고 뉴스에 뜨더라.

화환 좀 보내라”



진짜 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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