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자의 잡생각
난
아버지가 싫었다.
어느 하나 나와 맞는 게 없었고,
내 인생을 실패자로 느끼게 한 존재로
생각해서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친구들 아버지와 비교했을 때,
워낙 나이도 많으시고 생각이 고루하셨다.
어릴 적 나에게
무조건 법관이 되어야지,
그 이외의 것은 다 쓸데없는 것들이라고
교육을 시켰다.
초등학생 때는 너무 어린 나이라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나이가 먹어 중학생이 되며
내 꿈이 법관이 아닌,
컴퓨터 공학자나 천문학자 등에
있단 걸 알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내가 보기에도 문과보다는 이과가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의 첫 번째 틀어짐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갈 때,
과학고등학교를 가고 싶다고 했을 때였다.
세상 필요 없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며 화를 내시고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고,
“바보 같은 놈”을 무수히 말씀하셨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가장 자주 쓰시던 말이
‘이런~ 바보 같은…’이다.)
결과는
너무나 완강한 아버지의 반대로
원서조차 넣지 못했다.
두 번째 틀어짐은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가며,
문/이과를 선택할 때였다.
그때도 역시 이과를 지원하겠다는 나에게
퇴근 후 인사도 안 받으시고,
수 없이 세상 물정 모른다며
“바보 같은 놈”을 연발하셨다.
나 역시 집안의 집기를 부수며
내 인생이 아버지로 인해
어떻게 망가지는지 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난다.
결과를 따지고 보면
그렇게 소리를 질렀으면 이겼어야지,
결국 아버지 선택대로 문과를 갔으니 할 말은 없다.
문과 선택 후,
아버지에게 진 것에 대한 분함,
흥미를 잃어버린 공부,
딱히 원하는 과도 없던 나는
성적에 맞춰 경영학과를 진학했다.
역시나 아버지는
그런 과를 가서 무엇하냐고 나무라셨고
내 친구들 중 법대를 지원한 친구 녀석의
이야기만 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거의 없던 대학 시절,
아버지가 내게 하는 유일한 대화 거리는
법대를 간 친구 이야기였다.
학교도 다르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연락도 끊어버린.
그럼에도 나보다 더
그 친구에 대한 소식을 잘 아는 것이 신기했다.
그 친구가 사시를 합격한 것도,
어느 지검으로 발령받은 것도,
모두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그 친구가 승진했다고
축하 연락을 해보라 전화를 했다.
“아버지,
저 그 친구랑 연락 안 한 지가 10년도 넘어요.”
“이런 바보 같은 놈, 사람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빨리 연락해서 잘 지내냐고 물어보고, 화환 보내!”
시간이 꽤 흘러
회사가 너무 힘들어 육아 휴직을 결심했을 때,
부모님께 이런저런 이유로 좀 쉬어야 한다,
너무 걱정하시지 마라.. 말씀드릴 때도,
아버지의 첫마디는
“야. 검사 그 친구한테 연락해 봐.
힘드니까 도와 달라고 해.”였다.
정말이지 그날은 울컥하는 마음에
그만 좀 하시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아버지의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쩔 때는 화를 내기도,
어쩔 때는 부탁을 하기도 하면서
제발요.. 아버지.. 그런 말씀 하실 때마다
제 인생이 실패자인 것 같아요.
제발 좀 하지 마세요..
수 없이 말해 왔었지만,
육아휴직을 결심하고
나의 힘듦을 이야기를 하는 그 순간에도,
내 친구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참지 못하고 폭발을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같이 졸업했을 뿐이지,
30년간 연락 한 번 주고받은 적 없는 사람을
어떻게 친구라고 할 수 있는가?)
육아 휴직 기간 중
아버지에게 전화가 온다.
“야. 네 친구 아무개 있지? 이번에 검사 생활 접고, OO법무법인 간다고 뉴스에 뜨더라.
화환 좀 보내라”
진짜 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