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나 20 - 느림의 미학

중년 남자의 잡생각

by B 밀


육아휴직을 하고

몇 개월이 지나다 보니

시간들이 느리게 가기 시작한다.


워낙 성격이 급해

남들 1 개비 담배를 필 동안

2 개비를 피웠고,


한 시간 반만 지나면

만취가 되어 집으로 가야 할 만큼

술도 빨리 마셨다.


나에게 맡겨진 일은

순식간에 끝내고 보고를 해서

보스가 좋아라 했지만,,,


생각해 보면

내 급한 성격을 맞추느라

밑의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때는 생각 못했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빨리 안 하냐?”

“언제 끝나?”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담당자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거렸으니

그 사람은 진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다.



그런데

몇 개월을 쉬고 나니,

나의 모든 행동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느리게 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빨리 무엇인가를 할 필요도 없고,

오늘 안 하면 내일 해도 되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만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삶이 느려진 것 같다.



어쩌다 회사 동료가 찾아와

함께 담배를 피우다가 놀란다.


“아니. 저 1 개비 필 때, 2 개비 피우시던 분이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이렇게 늦게 피세요?”


“응? 아.. 나 사실 요새 담배 잘 피우지도 않아.”



동료나 친구와의 술자리에서도

누군가 급하게라도 마시려고 하면


“야. 야. 천천히 좀 마셔. 시간 많잖아.”


라고 말해 상대방을 놀라게 한다.




전투적으로 술을 마셨는데,

쉬다 보니

맥주 1, 2 잔만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고,

이런저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술을 안 마시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이

놀랍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과거엔 왜 그리 급했을까?




P.S. 그럼에도 하나 고쳐지지 않은 것은,

가족끼리 어디 놀러 갈 때,

혼자 옷 다 입고, 신발 신고, 마스크까지 쓰고

현관에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와이프가 항상 이야기한다.

“오빠! 애들하고 나 아직 옷도 안 입었는데,

왜 다 차려입고 현관에 서 있어? 사람 불안하게!”


keyword
이전 08화058 동료/친구 8 - 내가 잘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