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 나 17 - 먹고 싸기 힘드네

중년 남자의 잡생각

by B 밀


육아휴직 기간,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큰 딸아이가 말한다.


“아빠! 티셔츠에 뭐 묻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을 정도지만

배 부분에 국물 자국이 미세하게 묻어 있다.

진짜 오랜만에

옷에 음식물이 튄 것 같다.

갑자기

회사에 올인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고

지위가 올라가며,

술자리가 늘고,

회사에 내 모든 것을 걸던 시절.



점심을 먹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옆의 누군가가 인사말로


“식사 맛있게 드셨어요? 뭐 드셨어요?”


라고 물어보면, 거의 절반은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대답을 못했던 것 같다.


분명히 점심식사를 마치고 방금 돌아왔는데

내가 어디를 갔었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가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밥을 먹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일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워낙 급한 성격에,

머릿속에 일만 생각하다 보니

항상 음식을 먹고 나면

옷 여기저기 튀기 일쑤였던 것 같다.


이 당시, 와이프가 매번


“음식을 입으로 먹는 거야? 옷으로 먹는 거야?

애도 아니고, 왜 이렇게 맨날 흘려?”


하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화장실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생리현상을 해결하면서도

머릿속은 “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러고 나면

앞 지퍼를 올릴 생각도 못 했던 것 같다.


이 역시,

음식 흘리는 것과 비슷하게

거의 절반 정도는

지퍼를 열어 놓고 나서

한 참 후에야 발견하고는

부랴부랴 지퍼를 올렸던 것 같다.




회사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무렵,

어느 날인가,

화장실에 가서 큰 일을 봤다.

큰 일을 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아. 이 자료는 언제까지 하고,

어디에 보내야 하지?

미팅은 연기해야 하나?

도대체 지금 뭐가 잘 못 되고 있는 거지?

누군가 나를 음해하는 건 아닌가?’

등등..

오만가지 생각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렇게 일을 본 후,

자리로 돌아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20분 지났을까?

업무에 다시 집중하여 올인할 때,


갑자기 느껴지는 싸한 느낌…


엉덩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끈적함이

나에게 당혹감을 주었다.



‘응? 어? 모야?

엉덩이에 이 싸한 느낌은 모지?

응? 내가 화장실 갔었나?

아.. 갔었지..

잠깐!

내가 뒤를 닦았던가?

안 닦았었나?’



갑자기 놀라

후다닥 다시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확인을 해 보니,

볼 일을 보고 뒤처리도 안 하고 나왔음을 깨닫는다.



‘아… 진짜…

나, 완전히 맛탱이가 갔구나.’



단지 와이프와 가정에만

충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나 스스로가

먹는 것에도 집중을 못해

무엇을 먹었는지도 모르고,

음식은 다 흘리고,


가장 기본적인 배설에 있어서도,

소변을 보고,

지퍼도 올릴 생각도 못하고,


큰 일을 보고 닦는 것마저 잃어버렸음을

깨닫고 나서..


나에게 심각한 위기가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이 사건 하나로 쉬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나의 힘듦과 무너짐 중

큰 사건으로 작용했음은 틀림이 없다.




육아 휴직을 하며,

이런 행동은 당연히 없다.

음식을 먹을 때도,

국물이라도 나올라치면,

과거와는 다르게

꼭 앞치마를 달라고 하고

튀지 않게 조심조심 먹는다.


빨리 먹어 무엇하겠는가?

즐기면서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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