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자의 잡생각
육아휴직 기간,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큰 딸아이가 말한다.
“아빠! 티셔츠에 뭐 묻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을 정도지만
배 부분에 국물 자국이 미세하게 묻어 있다.
진짜 오랜만에
옷에 음식물이 튄 것 같다.
갑자기
회사에 올인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고
지위가 올라가며,
술자리가 늘고,
회사에 내 모든 것을 걸던 시절.
점심을 먹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옆의 누군가가 인사말로
“식사 맛있게 드셨어요? 뭐 드셨어요?”
라고 물어보면, 거의 절반은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대답을 못했던 것 같다.
분명히 점심식사를 마치고 방금 돌아왔는데
내가 어디를 갔었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가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밥을 먹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일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워낙 급한 성격에,
머릿속에 일만 생각하다 보니
항상 음식을 먹고 나면
옷 여기저기 튀기 일쑤였던 것 같다.
이 당시, 와이프가 매번
“음식을 입으로 먹는 거야? 옷으로 먹는 거야?
애도 아니고, 왜 이렇게 맨날 흘려?”
하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화장실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생리현상을 해결하면서도
머릿속은 “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러고 나면
앞 지퍼를 올릴 생각도 못 했던 것 같다.
이 역시,
음식 흘리는 것과 비슷하게
거의 절반 정도는
지퍼를 열어 놓고 나서
한 참 후에야 발견하고는
부랴부랴 지퍼를 올렸던 것 같다.
회사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무렵,
어느 날인가,
화장실에 가서 큰 일을 봤다.
큰 일을 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아. 이 자료는 언제까지 하고,
어디에 보내야 하지?
미팅은 연기해야 하나?
도대체 지금 뭐가 잘 못 되고 있는 거지?
누군가 나를 음해하는 건 아닌가?’
등등..
오만가지 생각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렇게 일을 본 후,
자리로 돌아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20분 지났을까?
업무에 다시 집중하여 올인할 때,
갑자기 느껴지는 싸한 느낌…
엉덩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끈적함이
나에게 당혹감을 주었다.
‘응? 어? 모야?
엉덩이에 이 싸한 느낌은 모지?
응? 내가 화장실 갔었나?
아.. 갔었지..
잠깐!
내가 뒤를 닦았던가?
안 닦았었나?’
갑자기 놀라
후다닥 다시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확인을 해 보니,
볼 일을 보고 뒤처리도 안 하고 나왔음을 깨닫는다.
‘아… 진짜…
나, 완전히 맛탱이가 갔구나.’
단지 와이프와 가정에만
충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나 스스로가
먹는 것에도 집중을 못해
무엇을 먹었는지도 모르고,
음식은 다 흘리고,
가장 기본적인 배설에 있어서도,
소변을 보고,
지퍼도 올릴 생각도 못하고,
큰 일을 보고 닦는 것마저 잃어버렸음을
깨닫고 나서..
나에게 심각한 위기가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이 사건 하나로 쉬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나의 힘듦과 무너짐 중
큰 사건으로 작용했음은 틀림이 없다.
육아 휴직을 하며,
이런 행동은 당연히 없다.
음식을 먹을 때도,
국물이라도 나올라치면,
과거와는 다르게
꼭 앞치마를 달라고 하고
튀지 않게 조심조심 먹는다.
빨리 먹어 무엇하겠는가?
즐기면서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