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 밀 Nov 03. 2022

087 가족 37 - 좋은 사람이 누구야?

중년 남자의 잡생각


와이프는

TV에 나오는 사람들 중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TV에 나오는 여자들 중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같이 TV를 보다 보면,


“A는 얼굴을 다 고쳤나 봐!

아휴, 옛날이 훨씬 나은데 왜 저렇게 했대?”


 “B는 참 인상이 안 좋아 보여.

저렇게 생긴 사람은 내 타입이 아니야.”


“C는 옛날에 무슨 사건 있었잖아.

진짜 이상한 사람 같아.”


하여튼,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칭찬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사람을 싫어해 본 적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친구들이 인정하는 것 중 하나가,

내가 누가 싫다고 이야기하는 거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인데,

과거 보스에게는 그 부분을 지적도 당하였으나,

아니.. 사람이 싫지 않은데..

그걸 어떻게 고쳐야 하나?)

남들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는 것이

듣기 거북하나,

뭐라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단지, 영혼이 없이 공감하는 척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매일의 삶 속에서 부딪히는 사람도

싫은 사람이 없는 나이기에,

TV에 나온 사람에게는

아예 아무런 감정조차 존재하지 않는데,

그 사람이 무슨 해코지를 했다고

나올 때마다 뭐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것도 여자들만.




육아휴직 기간,

가족이 모여 맥주파티를 했다.

‘아는 형님’을 보고 있었는데,

여자 연예인들이 대거 나온 편이었다.


역시나 와이프는

나온 연예인들 하나하나를 꼬집으며

A는 어떻다,

B는 어떻다,

C는 어떻다.. 를 이야기하고 있다.

 


갑자기 큰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 근데 왜 엄마는

TV에 나오는 여자들을 다 싫어해?”


“응? 내… 내가 언제?”


생각지 못한 큰 애의 질문에

와이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나 역시도 큰 딸아이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거라 생각하지 못해 놀랐다.


“아니, 엄마는 TV에 나온 여자들

좋다는 사람이 없잖아.

왜 그렇게 다 싫으냐고.”


“마자, 마자, 엄마는 TV 나오는

여자 다 싫어해!”


이번에는 둘째 딸아이까지 첫째를 거든다.


“내… 내가 언제 다 싫다고 했어?

괜찮은 사람도 많지. 너희들이 못 들어서 그렇지.”


“응! 우리는 한 번도 못 들어 봤는데?

누가 괜찮은데?”



딸 둘은 와이프를 코너에 몰기 시작한다.

황당한 상황에 나 역시 놀라기는 했으나,

맘 속으로는

딸아이들을 응원하고 있다.


“참 나, 누가 괜찮냐면.. 응? 저기.. 응? 응?”


와이프는 ‘저기..’와 ‘응?’만 무한 반복하며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뒤지며

괜찮은 사람을 찾는다.


“아.. 모야? 괜찮은 사람을 찾으려고

인터넷까지 찾아야 해?

싫은 사람은 TV를 틀기만 하면 나오는데?”


평소 봐 왔던 우리 딸들이 맞나..

싶을 정도의 당돌함과

훌쩍 커버린 듯한 아이들에게

나 역시 놀라고 있다.


한참을 인터넷을 검색하던 와이프는

이 사람 괜찮다며 사진을 보여준다.

연예인 ‘수애’ 다.


‘와이프가 이 사람을 좋아했었나?’


라고 싶을 정도로 너무 뜬금없는 인물이다.

(사실 누구의 사진을 보여주건,

뜬금없다 느꼈을 것 같다.)


아이들 역시 급조된 티가 나는

와이프의 좋아하는 사람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갑자기 와이프가

연예인 ‘수애’에 대한

폭풍 칭찬을 하기 시작한다.



너무 낯설다.

 



P.S. 이 사건이 있은 후, 처가를 방문했었다.

함께 TV를 보다 보니, 장모님께서

TV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을 그렇게 욕하신다.

와이프와 나는 눈이 마주치며,

얼마 전 사건이 떠올라 함께 ‘씩’ 하고 웃는다.

그러다 장인어른이 누구에 대해 한 마디라도 하면


“당신은 왜 TV 나오는 사람을 다 싫어해?

나처럼 그냥 좀 TV 보라고!”


하고 말씀하신다.



와이프가


“지금까지 엄마가 계속 욕했잖아?”


라고 하니,


내가 언제 그랬냐며,

그런 일 없다고 잡아떼신다.


아… 와이프가 누굴 닮았는지 알았다!


이전 12화 086 나 26 - 로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