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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밀 Nov 07. 2022

088 나 27 - 선택적 청력

중년 남자의 잡생각


귀가 잘 안 들린다.


진짜 귀가 안 들리는 것이 아니라,

관심 없는 말들은

듣지를 않는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일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내 주변에서 들리는 소음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과거

너무 시끄러운 옆 팀 팀장과

우리 팀원 간의 다툼이 있었다.


오랫동안 참아 왔다가,

그 시끄러움을 도저히 못 참고 터진 듯한데,

공교롭게 그 사람 둘 사이에

내 자리가 있었다.


나에게

너무 시끄러운 것 아니냐를

인정해 달라는 팀원의 눈빛과

내가 그렇게 시끄러운 것은 아니지 않냐를

인정해 달라는 옆 팀 팀장의 눈빛이

동시에 느껴졌다.

(솔로몬 왕이 된 기분이랄까?)


솔직히 옆 팀 팀장이 시끄러운지를

느낀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팀원을 무시할 수 없어서

상당히 난처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팀장은 엄청 시끄럽기로 유명했다.)



또 한 번은

동료 중 하나가

회사에서 일을 하는 건지, 애를 키우는 건지,

자리에 앉아 매일 전화로

아이에게 연락을 하여


“너 숙제는 했냐?”


“학원은 갔냐?”


“어디까지 숙제 안 하면 엄마한테 혼 날 줄 알아!”


등등.. 자식 교육에 대한 과정을

큰 소리로 화내며 이야기하여,


주변 사람들이

휴게실에 가서 하던지,

이게 무슨 민폐냐며

나에게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정작 바로 앞에 앉은 나는


“아? 그랬어? 난 못 들었는데?”


라고 이야기하니,


그 시끄러운 소리를

어떻게 못 들을 수 있냐며 신기하게 생각했다.

(근데 정말로 일할 때는 주위 소리가

거의 들리지를 않는다.)




그런 유사한 일이

반복되다 보니

동료들에게 나는

남들 이야기 관심이 없고,

귀가 막힌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러다 언젠가,

20명 정도가 함께 한 회식 자리.


2차로 옮긴 맥주집에

누군가와 담배 한 대를 피고 들어가는 바람에

테이블 끝 쪽에 앉게 되었다.


때마침 들리는 소리.


“B밀님은 진짜 일 빨리 하시는 거 같아.

어디서 오더만 들어오면, 며칠 걸릴 것 같은데도

1-2시간이면 다 하신다니까?”


“어? 누구야? 내 이야기 한 사람이?”


사람들이 동시에 쳐다본다.


“응? 무슨 소리요?”, “뭔 소리?”


“아니.. 나 일 빨리 한다고 칭찬 한 사람 누구냐고?”


나의 대각선.

맨 끝에 앉은 직원이 자기라며 손을 든다.


갑자기 주변이 떠들썩하다.


“아. 뭐예요? 남 이야기 하나도 못 듣는 사람이

자기 칭찬하는 건 다 들려요?”


말한 사람조차,

자기 앞 동료에게 조용히 이야기 한 걸,

그 끝에서 어떻게 듣냐며 신기해한다.



그날 이후,

사람들에게 난

자기 칭찬만 듣고,

다른 이야기는 안 들리는

선택적 청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이것 역시 집안 내력인 건지,

큰 딸아이가 나와 똑같다.


맨날 수도 없이 잔소리하는 와이프의 말이

자기는 하나도 안 들렸다고 하다가도,


거실에서 내가 와이프에게

큰 아이 칭찬을 하기라도 하면

방문을 열고 나와

내 이야기 뭐 했냐고 다시 물어본다.


반면 거실에서 엄마가 큰 딸 욕할 때는

방문이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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