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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밀 Oct 27. 2022

081 가족 34 - 느림의 미학

중년 남자의 잡생각


우리 가족은

성격이 급하다.


나의 급한 성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였지만,


와이프 역시 급한 성격이기에,

그나마 나의 빠름을

어느 정도 맞춰 줄 수 있었다.


그런 급한 성격을 가진 부부에게서

태어난 큰 딸아이는

둘을 합쳐 놓아, 업그레이드가 된 듯하다.

(어릴 적 보던 드래곤볼이란 만화에서

손오공이 슈퍼싸이어인이 된 것 같다.)



과거에

큰 딸아이와 동갑인 아이를 가진

동네에 사는 부부와 동반으로

속초의 콘도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두 가족이

콘도 로비에서부터

멀리 보이는 정자까지 이동을 하는데,


우리 가족은

그 어떤 것도 보지 않고

정자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 도착한다.


5분 만에 도착하여,

뒤를 돌아봤는데,


함께 간 가족의 아이는

두 세 걸음 걷다가 앉아서

지나가는 개미를 보고,

풀을 보고, 꽃을 보고,

부부는 그 모습을 보며

하하호호하는 웃음과 함께

계속해서 사진을 찍으며

5분 거리를 30분에 걸쳐 오고 있다.


나와 와이프는 답답했지만 차마 말을 못 했고,

큰 딸아이는 저 집 왜 안 오냐고

엄청 짜증을 부렸다.




해변을 놀러 가자고 하여

해변에 도착하면, 큰 딸아이는


“우리 이제 어디가?” 하고 묻는다.


그냥 바다를 보며 즐기는 거라고 이야기를 하면


“아이. 그게 뭐야? 빨리 어디 가!”라고

다음 목적지를 연신 물어보고,

바람처럼 걸어간다.




 

아울렛을 가면

도착과 동시에 이런 대화가 이루어진다.


“우리 여기서 뭐해?”


“응? 그냥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밥도 먹고.. 쉬는 거지”


“빨리 밥 먹고 집에 가.”




둘째가 태어났다.

조금씩 걷기 시작하고, 말을 하기 시작하고,

한 살 한 살 먹으며, 우리 가족에게선 볼 수 없는

놀라운 모습이 발견된다.


두 세 걸음 걷다가 앉아서

개미를 보기도 하고,

꽃을 보기도 하고,

지난가는 도둑고양이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우리 가족의 핏줄인가?

하는 행동을 보인다.




육아휴직 기간,

나의 모든 것이 달라져

조금씩 느려지던 시기,


작은 아이야 원래 성격이 그러했지만,

나와 와이프 역시

한 걸음, 한 걸음이

과거에 비해 엄청 느려졌다.


주변을 돌아보고, 자연을 즐길 줄 아는

그런 시야가..

우리 가족에게 생기기 시작한다.


놀라운..

그러나 바람직한 변화이다.




 


“아빠, 모해?”



20m쯤 앞에서

큰 딸아이가 빨리 오라고 손짓하며 외친다.


아..

아직 한 명은 동화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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