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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Oct 25. 2019

내가 너의 후견인이 될 수 있을까

연필이와 나의 미래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가급적 연필이에 대한 부담을 내게 지우지 않으려 하셨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책임감(?) 없어 보이는 면도 있었을지 모른다.

https://brunch.co.kr/@muistikirja/13

그렇다고 완전히 연필이에게서 자유로웠던 건 아니다. 마음 한쪽은 항상 연필이를 향해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연재할 생각도 했겠지.

엄마는 예전부터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과 연필이가 함께 생활하기 힘든 때가 오면, 그래서 장애인 생활시설에 가게 되면, 아주 가끔 찾아가 달라고.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연필이에게 돈이 필요한 일-주로 아픈 걸 거라 생각된다-이 생기면 연필이 몫으로 남겼을 얼마간의 돈으로 그것을 지불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일종의 성년후견제도의 후견인 역할을 나에게 해 달라는 거였다. 그 제도가 생기기 전부터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긴 하지만.


+성년후견제도-다음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47XXXXXXb989


시설은 연필이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사실, 이 모든 것은 다 추상적이고 불완전하다.

일단 돈이 얼마나 필요할지 알 수 없다. 물가는 해마다 오르고 화폐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진다. 실제 연필이가 시설에 들어갈 때, 서비스 제공 정도와 그에 따라 내야 하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어느 시점에 연필이가 시설에 입소하게 될지를 우선 모른다. 그래서 미리 열심히 알아봐 둔 시설이 있더라도 연필이가 입하려 할 때 그곳에 자리가 비어 있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수도 있다. 서비스나 비용 표준화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병원비도 생각해 볼 일이다.

그리고 연필이가 살게 된 곳이 없어지지 않고, 연필이의 보금자리 역할을 할까. 부모처럼 살뜰하게 챙겨주지 않더라도, 얼마만큼 정 붙이고 집처럼 생각할, 그런 곳이 될 수 있을까. 연필이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기본적인 것이라도 지켜줄까. 어떤 문제가 생겨 갑자기 폐쇄되거나, 일하던 누군가가 이용자들의 보증금(?)을 들고 사라져 버린다면 어쩌지. 그렇게 통째로 돈을 들고 사라지지 않더라도, 작은 횡령이나 배임 같은 걸 저지르면 어쩌지. 그걸 내가 알 수 없으면 어쩌지.


나도 나이를 먹는 걸


연필이와 나는 5살도 차이가 나지 않는데. 그것도 내가 더 나이가 많은데. 몸이 좋지 않은 고령의 내가 과연 성년후견인 역할을 제대로 할 수는 있을까. 나도 나이가 들고 노인성 질병이 걸려 판단 능력이 줄어들어 피성년후견인이 될지도 모를 일인데.

한 번은 엄마에게 화 비슷한 걸 낸 적이 있다. 나를 너무 믿지 말라고. 연필이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돈은 신탁에 맡기는 걸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성년후견인을 세우게 되면 제삼자로 하고, 나는 그냥 가족이자 일종의 감시자(?)로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했다. 엄마는 그렇게 되면 연필이가 있는 시설에서 연필이에게 쓸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냥 필요한가 보다 하고 집행되겠지, 누가 연필이 상태가 어떤지, 그게 꼭 필요한 지출인지, 그 돈으로 연필이에게 잘 사용되었는지 살펴보겠냐고 했다. 그러니까, 그게 내가 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도, 나이를 먹는데. 내가 연필이의 후견인을 못 할 수도 있다고.  

그렇게 끝없이 두려운 생각에 빠질 때면 연필이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를 떠올리려 한다. 자폐증이라는 것이 생소하던 그때, 등록된 장애인이 지금보다 훨씬 적던 그때. 우리가 어렸을 때에 비해 현재 사회가 얼마나 바뀌었는가. 전보다 많은 발달 장애인들이 오고 가는 걸 대중교통이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제도나 지원도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렇게, 앞으로도 조금씩, 더 좋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은 대책 없는 낙관적 바람을 가져야만 이 불안감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다.

종종 주변 사람들이 내게 쓸데 없는 걱정을 했다는 말을 한다. 미래에 벌어질 일을 너무 자세하게 고민하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생각해보고 그럴 땐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을 할 때 듣는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지나고보면 그렇게 고민해서 '이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해야지'라고 맘먹었던 것들 중 대부분은 그냥, 쓸모없이 잊혀져 버린다. 어찌보면 연필이에 대한 나의 고민도 그러려나. 내가 가능한 모든 변수를 다 생각해낼 수도, 그것에 대해 해결책을 모두 생각할 수도 없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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