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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Aug 28. 2021

엄마표 공부 : 나에게 던지는 면접 질문


아이를 가르쳐 줄 선생은 많습니다. 엄마보다 많이 배우고 엄마보다 친절하기까지 합니다. 또 엄마는 공부 말고도 챙겨야 할 것들이 많은데, 다른 건 이미 잘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왜 엄마가 아이 공부에까지 뛰어들려고 하는 겁니까?


만약 내 아이가 어른이었다면 던졌을 면접 질문입니다. 지금은 내가 아이의 보호자이므로 스스로 물어서라도 답을 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커서 물으면 답해줄 수 있겠지요.



1. 시간


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낼 것이냐를 생각해 봤습니다. 시간의 질 이런 거 따지지 말고, 그냥 물리적인 시간의 양 그 자체 말입니다.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인생에 주어진 시간은 다르지 않습니다. 내 소중한 인생을 왜 아이와 나누어야 합니까?


회사에 있던 시절 동료 한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 먹이고 입히고 하는 것은 대체가능한 단순노동이잖아요. 저는 엄마만이 해줄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고 대체 가능한 부분은 최대한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나와 아이의 삶을 모두 챙길 수 있죠." 


어, 신선하네... 동의 여부를 떠나 저렇게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다는 게 대단해 보였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저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습니다. 그 시간에 무얼 하든, 대체가능하든 아니든 그냥 좋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이들 기저귀 갈고 뗑깡 받아주고 이런 거 웃으면서 하는 보살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화가 나면 '고질라'가 되어 입에서 불길을 뿜는("니들 이 따위로 할거야아아?!") 지극히 정상적인 엄마입니다. 


제 경험만을 말하자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살아있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엄마가 그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간에 내가 돈을 벌면 얼만데, 이 시간을 이모님께 맡기면 나는 뭘 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돈을 벌고 이모님께 맡기는 것이 맞습니다. 


엄마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사람마다 제멋대로 부릅니다. '헌신', '희생', 혹은 '소유욕', '대리만족'. 세간의 평가란 참 간교한 것이, 엄마가 자기 일에 집중하면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면서, 또 아이들을 챙기려 들면 자아실현 못 한다고 비웃습니다. 남말에 휘둘리지 말고 순수하게 내 마음으로 들어가 인생의 얼마만큼을 아이와 나누고 싶은지 들어봐야 합니다. 


저는 아이가 허락만 해 준다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먹이고 입히는 단순노동도 하고 싶고, 더하기 빼기도 같이 하고, 책도 같이 읽고 싶습니다. 어느 순간 아이는 '그만'이라고 하겠지요. 그때는 순순히 물러나야겠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솔직히 미리 상상하는 것은 좀 슬프군요. 



2.  또, 시간


저는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아이들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마음 당연히 있고, 거기에 더해 입시를 초월한 멋진 공부도 시켜보고 싶습니다. 공부도 하면서 자유로운 시간도 충분히 챙겨주고 싶습니다. 


이 많은 욕심을 다 채우려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독서, 운동, 영어, 수학, 놀이와 여백 모두 다 놓치고 싶지 않은데 외부 시스템은 개별적이라 제 맘에 딱 들게 조합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현대를 살아가는 초등학생에게 부모가 챙겨줘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을 확보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부의 간섭이 너무나 많은 세상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외부에 의지할수록 가장 먼저 빼앗기는 것이 바로 이 자유시간입니다. 


결국 아이의 자유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최소한의 시간 투자로 필요한 공부를 다 하기 위하여 선택한 것이 엄마표 공부입니다. 학원 선생님에게는 아이의 공부시간만 중요합니다. 엄마인 저에게는 아이가 공부하지 않는 시간도 똑같이 소중합니다. 공부하지 않는 시간이 바로 엄마표 공부의 경쟁력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맡겨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3. 보여줘야 할 누군가가 없다.


공부의 영역에서 엄마의 경쟁자는 단연 학원일 겁니다(공교육의 태클도 만만치 않지만 학교는 갈 것이니 일단 접어둡시다). 학원은 소비자인 부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당장, 끊임없이 성과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과를 보여주는 방식은 상당히 교묘합니다. 어려운 교재로 끌어가면서 매일 엄청난 숙제를 내 주어 아이를 책상에 앉도록 만드는 것은 가장 단순한 방법입니다. 마케팅의 핵심은 바로 초등 공교육에서 접하지 못하는 '짜릿한 경쟁시스템'을 선보이는 데 있지요. 레벨별로 반을 나누어 탑반에 넘사벽 아이들을 확보해 어마무시하게 어려운 수업으로 끌어당기면, 그 이하 반의 아이들은 주루룩 줄 서서 탑반을 향해 달립니다. 


경쟁 마케팅에 성공한 유명학원은 이제 을이 아니라 갑입니다. 몇 달을 대기해야 학원에 들어갈 수 있고, 정기적으로 레벨테스트에서 승급심사를 하며 뒤쳐지면 강등되기도 합니다. 엄마들에게 '우리 아이가 어느 학원 무슨 반이다'는 '반포 어디 아파트 산다'와 같은 무한 자부심을 줍니다. 경쟁 속에서 달리고 있는 내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로도 부모의 마음은 벅차고 비장해집니다. 이 모든 것이 학원이 보여주는 성과입니다.   


공자왈 소리 하냐구요? 저 대안교육 이런 거 하나도 모릅니다. 저는 한국식 입시와 경쟁 시스템에서 꽤 좋은 성과를 내 본 사람입니다. 내 아이 역시 전국민이 달리는 경쟁 한 복판에 이미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경쟁을 외면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 아이는 경쟁할 것입니다. 하지만 경쟁'당하'도록 두지 않을 겁니다. 경쟁의 틀에 치이고 휘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특히 초등시기에는 더더욱 불필요한 자극에서 내 아이를 보호해야 합니다. 어른은 되돌아갈 수 없는 순수하고 경이로운 정신력을 간직한 때이니까요.


저는 마케팅과 성과의 부담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차근히 해 나갈 수 있습니다. 독후활동 없는 자유로운 독서, 시간제한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 레벨테스트 없이도 스스로 성장을 느끼는 공부같은 거 말입니다. 


학원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쯤 어떤 학원을 보내겠다는 계획은 머리 속에 두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 활용하면 됩니다. 콧대 높은 학원들은 집에서 공부하던 아이는 잘 안 받아준다던데, 그럼 말죠 뭐. 



4. 입시는 목표 중 하나일 뿐


스펙의 힘을 압니다. 여럿 사이에서 은근히 내 스펙을 드러내면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집니다. 드러내 표현하지는 않지만 그 기분 하나만으로도 좋은 대학 나오길 잘했네 싶습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그걸 모른다면 바보이거나 거짓말쟁이일 겁니다. 


동시에 저는 스펙의 한계도 알고 있습니다. 더 높은 스펙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는 스펙과 무관한 다른 차원의 조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변호사로 살면 개인적으로나 업무상으로나 소위 잘나고 많이 가진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납니다. 부러운 사람도 있고, 안 부러운 사람도 있습니다.


외부적인 스펙은 타고난 머리와 노력과 운이 모두 필요합니다. 부모든 본인이든 노력한다고 꼭 달성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만약 입시만을 지상최대의 목표로 삼는다면 엄마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보다는 실력있는 전문가를 찾아 맡기는 것이 더 안전하고 검증된 길입니다. 다른 부모들이 소싯적에 공부 못해서 학원에 애들 맡기는 게 아닙니다. 제 경우, 부지런히 돈 벌어서 아이들 과목별로 대치동 유명 학원에 보내는 것이 입시를 위해서는 가장 합리적인 전략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욕심이 많습니다. 내 아이가 입시에서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면, 거기에 사활을 걸고 싶지 않습니다. 대단한 스펙을 쌓지 못하더라도, 어릴 때 엄마와 함께 한 시간 자체가 아이의 인생에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입시는 인생의 여러 목표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걸 놓치면 다른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면 됩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입시 한 방으로 인생의 레드카펫이 깔리는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습니다.


입시와 더불어 그 이상의 것을 꿈꾸는 제 욕심을 알아주십시오. 둘 다 달성한다고 보장은 못하지만, 그건 나를 엄마로 만난 니 운명이니 그쪽을 탓하라고 말해주고 싶군요.



5. 순수한 엄마의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이 말하는 엄마표 공부의 단점 중에 제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아이가 순수하게 사랑만 듬뿍 주는 엄마를 잃을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엄마가 가르치며 평가하면, 아이는 잘 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좌절은 학원 선생님의 야단 한 마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상처이겠지요. 


이 부분은 제가 아직 고민 중입니다. 만약 그렇게 될 조짐이 보인다면 즉시 아이 공부에서 손을 떼야겠다고 막연히 마음먹고는 있지만, 욕심많은 제가 과연 쿨하게 하던 것을 다 놓을 수 있을지 스스로도 의문스럽기는 합니다. 이 엄마표 공부라는 것이 할수록 더 욕심나고 계획이 커지고 그렇거든요. 


일단 현재 노력하고 있는 것은 '잘한다 잘한다' 정책입니다. 아이의 성과를 미시적인 차원에서 테스트하지 않고 무조건 잘한다 잘한다 하고 있습니다. "네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는 엄마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도 자주 해 주고 있지만, 체감상 그런 말보다는 "우와! 잘한다"라고 말할 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잘한다'라는 말에 '못하면 싫어할거야'가 포함되어 심리학적으로 위험한 것일까요? 아휴, 그렇게까지 두세 번 꼬아서 생각하면 너무 어렵네요. 


면접의 모든 질문에 완벽히 대답하지 못해 송구합니다만, 열심히 하려는 제 의지도 알아주세요. 제 진심은 그저 함께 즐겁게 공부하고 싶다는 겁니다.   



6. 지금은 답을 알 수 없다. 


아이는 엄마표 공부를 선택할 수 있을까요? 아닐 겁니다. 엄마가 마음 먹으면 좋든싫든 따라가야 할 것이고, 사춘기 전에는 진정 원하는 것인지조차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울 겁니다. 결국 엄마 욕심이지요.


그렇기에 엄마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멀리 인생까지 논하지 않고 입시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공부를 잘하려면 결국 혼자하는 힘이 중요합니다. 아이의 초등시절에 공들여 함께하는 이유는 중고등시기에 혼자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저는 초등시기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엄마표 공부를 함께 해 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답을 알 수 없습니다. 엄마와 함께하는 공부가 즐거웠는지 고통스러웠는지는 아이가 크면 말해주겠지요. 아이를 몰아세우고 싶을 때마다 스무 살이 된 아이가 나에게 줄 평가표를 상상해 봅니다. 생각만 해도 떨리는 일입니다. 내 이상은 현실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본질을 잊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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