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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Aug 31. 2021

엄마표 공부 : 나만의 정리노트 만들기


저는 초등 저학년에는 교과 학습이나 문제풀이보다는 순수한 독서와 자유로운 시간의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입시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인터넷상의 정보를 자주 검색해 보는데, 출처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중복되는 것도 많고 당장은 '아~ 그렇구나' 싶은데 제대로 기억되지 않아 그냥 사라지는 정보들도 많습니다. 어떤 때는 '이거 좋은 정보같은데 지금 보기 귀찮으니까 일단 저장만 해 두자'라고 북마크해놓고 그냥 잊고 살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비효율이 너무 큽니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궁금증만 그때그때 검색할 게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을 잡고 엄마표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서 정리노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정리와 기록이라는 작업이 개인의 성향을 타는 것인지라 그 유용성은 각자가 판단할 부분입니다. 제 경우 만드는 과정은 상당히 고통스러웠지만 해 놓고 나니 그동안 겪었던 비효율을 상당히 줄일 수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그 방법론을 한 번 소개해 볼게요.




본론에 앞서 짚어두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2021년 기준으로 6학년 학생들부터 고교과정 및 대입제도가 크게 변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현행 입시 관련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되실 겁니다. 


제가 추천하는 방안은, 현재로서는 바뀔 제도는 잠시 잊어두고 내 아이도 현행 입시로 대학을 간다고 생각하고 정보의 유용성을 판단하시라는 겁니다. '수능 없어진다던데 이 문제집은 수능대비니까 기억할 필요 없겠지'하고 넘기지 마시라는 뜻이지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선 그렇게 수능관련 자료를 다 빼다보면 전체 큰 틀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수능이라는 것이 결국 '대입실전 준비'이므로, 대입제도가 바뀌더라도 사람들이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실전준비를 한다는 것 자체를 미리 배워두면 도움이 됩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입시제도의 특성때문입니다. 새로운 입시제도는 무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제도의 약점을 극복하려는 개선안이므로, 기존 입시제도의 이해 없이는 새로운 입시에서 무엇이 핵심이고 곁가지이고 연막고 함정인지 제대로 간파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입시란 것은 겉으로 표방하는 것과 그 실질이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정치적 이유로 급조한 정책은 내세운 목표를 달성하기는 커녕 그 반대의 부작용만 낳기도 합니다(과연 부작용인지 의도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부분도 많습니다). 교육불평등 문제는 이미 입시정책의 수정만으로 다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정치적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 서울대 입시가 놓친 우수 인재들을 끌어오려는 다른 상위권 대학의 틈새전략은 제가 학생때인 20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합니다.


따라서 현재 초등 저학년 부모라 할지라도 현행 입시를 딴나라 일처럼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행 입시를 이해해야만 내 아이가 치를 다음 입시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입시의 변화를 감안하지 않고 현재 기준으로 좋은 정보라고 판단되면 모두 취합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원칙을 미리 정하는 것이 노트 정리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1단계> 필요한 정보를 즐겨찾기한다.


기초가 된 정보는 크게 두 종류였습니다. 그동안 틈틈히 저장해 두었던 북마크 자료들, 그리고 N사 포털의 '상위 1%카페'라는 웹카페 글들입니다. 전자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으니 후자만 잠시 언급할게요.


위 카페는 이름에서 노골적으로 보여주듯이 공부의 상위 1%를 목표로 미취학부터 전력질주하는 학부모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저처럼 애들 어릴 때 편하게 놔 두자 하는 사람으로서는 '애들 너무 잡는 거 아냐?'싶을 정도로 학구열이 엄청난 곳이지요.


비판적인 시각은 일단 접어둡시다. 사실 뭐가 '지나친' 것인지의 기준도 모호할 뿐더러, 어차피 나중에 각자 판단하면 될 문제이니까요. 회원수가 많다보니 정보의 양이 워낙 많습니다. 다양한 가치관과 방법론을 모두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 카페가 같은 생각만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보다 '정보의 바다' 역할에서는 더 유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좋은 정보 몇 개를 얻기 위해 수많은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이는 인터넷 자료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됩니다. 위 카페는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므로 어떤 소스를 사용하실지는 각자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저는 노트에 위 카페 정보를 많이 활용하였으니 이를 기준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모바일 버전으로 카페에 들어가면(PC버전도 되는지는 제가 잘 모르니 패스) 인기글만 따로 볼 수 있는 탭이 있습니다. 거기서 기간 설정을 '최근 7일', '최근 30일', '전체' 등으로 할 수 있는데, '전체'로 설정합니다.


러면 전체 기간동안 가장 인기있었던 글들이 두 가지 기준으로 정렬됩니다. 하나는 '좋아요'많은 순, 다른 하나는 '댓글' 많은 순입니다. 제가 지금 해 보니 171위까지 뜨네요. 두 리스트는 상당부분 겹치므로, 일단 '좋아요'순으로 먼저 보고, 그 다음 '댓글 많은 순'으로 봐서 안 본 것들만 골라 보면 200개 전후로 볼 수 있겠지요? 또, 좋은 글이다 싶으면 작성자가 쓴 지난 글들도 챙겨 보세요. 분명 보석들이 나옵니다.


상위 랭크 순으로 글을 하나씩 봅니다. 정독할 필요 없이 쓱 훑어본 후 도움되겠다 싶으면 즐겨찾기를 해 둡니다. 포털이 제공하는 즐겨찾기 기능을 활용해도 좋고(저는 이렇게 했습니다), 웹브라우저의 북마크를 활용해도 좋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컨텐츠의 내용에 따른 분류를 고려하지 말고 좋다 싶으면 무조건 북마크만 해 놓습니다. 200개 넘는 글을 보며 분류까지 생각하면 너무 피곤해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2단계> 즐겨찾기한 글을 세 그룹으로 분류한다.


기본 정보 수집이 끝났으면, 다음 세 가지 하위 폴더를 생성하여 분류합니다.


[그룹1] 긴 흐름의 로드맵을 보여주는 글 :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을 졸업하거나 대학입시에 성공한 학생 또는 학부모가 중학, 고등 공부 전체의 노하우를 적은 글, 혹은 특정 과목에서 초중고 수년을 아우르는 장기 로드맵을 제시한 글(공·사교육 선생님들의 글이 꽤 있습니다) 등 1년 이상의 긴 호흡으로 본 경험담을 적은 글들을 여기에 모아 둡니다.


[그룹2] 미시적인 정보 제공의 글 : 특정 문제집이나 강의에 대한 평가, 학교시험을 보고 난 뒤 느낀 짧은 생각들 등 긴 흐름보다는 세부적 정보 자체에 주목한 글들은 여기에 모읍니다.


[그룹3] 입시제도 관련 글 : 내신, 수능, 학종, 세특, 생기부, 선택과목 등등 입시제도와 관련한 팁이나 의견에 관한 글을 분류합니다.



<3단계> 항목별로 1차 정리노트를 만든다.


[그룹 1]과 [그룹 2]의 글을 정리, 요약한 노트를 만듭니다. 노트의 항목을 어떻게 분류하는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크게 6가지로 나눴습니다.


<국어>, <수학>, <영어>, <초등 일반>, <중등 일반>, <고등 일반>


우선 기본이 되는 국영수 노트는 말 그대로 각 과목에 관한 노하우를 정리합니다. 과목별 노트를 다시 초, 중, 고로 나누지 않은 이유는 한국 교육의 현실에서 '선행'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현재 공교육은 학습부담을 줄인다는 명목 하에 중1에 자유학기제를 두고 교과범위를 줄여서 아이들이 공부 별로 안 하게 만들어 놓고선, 정작 고등학업 수준은 그만큼 낮추지 않고(예전에 비해 줄어든 거라고는 합니다만) 고1 내신이 대입 입시 반영에 결정적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그래서 중학 수준 A에 만족하며 "나 공부 잘 하고 있네"하던 아이들은 고1때 '현타'를 맞게 되고, 뒤늦게 정신차려봤자 고 2, 3내신으로는 고1 내신의 구멍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을 맞는다고 합니다. 반면 발빠른 아이들은 중학 때 이미 고1 내신을 본선으로 대비해 준비하지요. 문제는 공교육의 그 누구도 이런 말을 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초등시절의 과도한 선행을 경계하는 입장이지만, 이는 선행의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이지(저학년부터 선행하느라 독서 등 더 중요한 것을 놓치기 싫다는 뜻) 공교육의 체계와 진도에 동의해서가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국영수의 진도는 초중고 구분에 구애받지 않고 아이의 수준에 맞추어 진행할 계획이고, 그래서 노트를 <초등국어>, <중등국어> 식으로 세분화하지 않고 그냥 <국어>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나머지 3개의 노트인 <초등 일반>, <중등 일반>, <고등 일반>은 국영수 과목을 제외한 각 시기별 생활 및 공부 노하우를 정리하는 곳입니다. 이 곳에는 학습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부모와 아이의 관계, 정서, 인성에 관한 팁도 적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절대 학습에 관한 질문부터 하지 말라. 오늘 재밌었니?, 기분은 어떠니? 등 아이의 마음부터 챙겨라'라는 등입니다. 공부팁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여 저는 각 <일반>노트의 맨 앞부분에 생활과 마음가짐에 관한 조언을 모아 적어두었습니다.


그 외 <일반>노트에 들어갈 학습 관련 조언으로는 '중등 수행은 각 과목별 선생님이 타과목을 고려하지 않고 숙제를 내 주어 한번에 여러 과목이 몰리니 대비할 것'이라던가, '중등 내신은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성적표가 나오는데, 고등과 저러저러한 차이가 있다'는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또 내신 대비를 어떻게 했다는 중고생 본인의 생생한 후기도 가끔 볼 수 있는데, 귀중한 정보가 됩니다.


노트의 형식은 개인마다 선호도가 다를 것입니다. 아무래도 정보 양이 많으니 수기보다는 워드, 한글, 엑셀 등 문서편집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겠지요. 복사가 가능한 글은 긁어 붙이고, 안 되면 요약해 옮겨 적습니다.


[그룹3]의 입시와 관련된 글은 별도로 정리해 둡니다. 이건 출력할 필요 없이 스스로 이해가능한 수준으로 정리한 뒤 가끔 읽으면 됩니다. 두고두고 써먹을 정보라기보다는 한 번 이해하면 그 뒤로 기억이 유지되는 부분이니까요.



<4단계> 1차 정리노트를 다시 정리 요약하여 2차 정리본을 만들어 출력한다.


정리되지 않은 지식은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또 1차 노트는 워낙 많은 정보를 긁어 모으기만 한 것이므로 중복된 내용이 많습니다.


따라서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중요사항으로 별표를 해 두고, 중복되는 내용은 삭제하고, 장황한 말은 줄이고 하여 최소한의 분량으로 요약합니다. 저는 30쪽 분량으로 요약한 후 출력해서 책처럼 넘기며 읽을 수 있도록 클리어화일에 꽃아두었습니다(아래 사진 참조).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읽습니다.




<5단계> 중3 겨울방학까지 공부계획표를 짠다.


적어도 고1 수준은 중3까지 미리 달성한다는 각오로 초등 4학년부터 중3까지 9년간의 공부계획을 짭니다. 저는 엑셀을 이용해, 한 학년을 '겨울방학-1학기-여름방학-2학기' 4단계로 나누어 국영수 세 과목의 스케쥴을 짰습니다.


이 때 가능한 상세히 정하면 좋습니다. 단순히 '1학년 심화'라는 식보다는 어떤 문제집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풀고, 어떤 강의를 듣겠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내 아이가 중학생이라고 생각하고 당장 적용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만드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어차피 입시가 바뀔 것인데 초등 저학년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5단계>의 과정은 굉장히 고통스럽고 오래 걸립니다. 엑셀 한 칸을 채우기 위해 수십 개의 글을 보고 몇 시간의 검색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 공들여 만들어봤자 이 계획표는 아마 내 아이가 중학생이 될 시점에는 대부분 수정되어 있을 겁니다. 제가 의미를 두는 것은 계획표의 내용 자체보다 그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2차까지 정리한 노트의 지식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또 문제집 이름만 들어도 '아, 뭐구나' 하고 알 수 있기에, 이후 입시관련 글들을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유지 및 관리>


정리노트 및 공부계획표는 아이 입시를 마칠 때까지 계속 추가하고 보완하면 됩니다. 실제로 해 보면 2차 정리본에 웬만한 지식은 거의 들어 있으므로, 그 이후로 접하는 정보 10개 중 1개 정도만 진짜 '새로운' 정보가 됩니다. 정리노트가 수정될 때마다 출력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므로 6개월 정도 텀으로만 새로 출력해 교체하면 됩니다.


그리고 앞서 제가 즐겨찾기 폴더를 3개로 분류했지요? 그중 [그룹2]의 글들은 정리노트에 반영되었다면 삭제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룹1]의 글들은 계속 보관해 두고 몇 개월에 한 번씩 반복해서 봅니다. 그 그룹의 글들은 몇 년에 걸친 개인의 경험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미시적인 특정 정보(무슨 문제집을 풀었다는 등)외에도 행간에 담긴 의미가 있습니다.


즉, 글의 내용을 넘어 글쓴이라는 사람 자체에서 배울만한 무엇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좋은 책을 소장해서 틈틈히 읽는 것처럼, 시간을 두고 가끔 읽으면 필요한 양식이 됩니다. 훌륭한 글은 아이가 중학생쯤 되면 스스로 읽어보게 하는 것도 좋겠다 싶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얻은 것>


1. 우선 나 스스로의 레벨이 쑥 높아집니다. 그 전에는 막연히 '뭔지 모르지만 알아둬야겠다'고 대충 넘겼던 신문기사, 유튜브 영상에 담긴 입시전문가들의 말이 이제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지요. 내가 많이 알게 되니 더 많이 보이는 것입니다.


2. 또한 시간 절약의 효과가 큽니다. 불필요한 정보를 거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중복되는 단순정보성의 많은 글들에 지치고 치여서, 정작 좋은 글을 만나도 '힘드니까 일단 북마크해놓고 나중에 보자'라며 클릭만 해놓고 잊고 지냈습니다.


이제는 새로 보는 글들 10개 중 9개는 이미 알고 있어서 굳이 저장해놓을 필요 없는 정보입니다. 그러다 가끔 짧은 글이지만 '고오급 정보'가 담긴 것을 발견하면 '득템!!'을 외치고 정리노트에 추가하면 됩니다. 5분도 안 걸려요.


정리노트를 만드는 데 쓰인 많은 시간 이상으로, 불필요한 정보에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게 된 것이지요.


3. 또다른 중요한 효과는 멀리 보는 시각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초등 사교육 중에는 아이의 입시나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초등맘의 조급함과 불안에 기대어 활개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교육카페, 맘카페나 파워블로거의 후기는 이미 바이럴 마케팅의 무대로 변질된지 오래입니다.


막연한 공포나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나와 아이가 직시하게 될 입시의 정체를 분명히 알아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정리한 노트에는 어떤 고등학생이 공부에 필요한 여러 능력들을 '바짝 하면 따라올 수 있는 능력', '따라올 수 없는 차이', '따라오기 힘든 차이' 등으로 구분해 재미있게 표현한 글이 있는데, 여기서 그 학생은 '따라올 수 없는 차이' 중의 하나로 "국어 장지문 읽는 실력/해석능력(어릴 때 많은 책을 읽은 자만이 승자가 될 수 있는...본인 국어 90 아래로 단 한번 내려감!)"이라고 썼습니다.


이는 초등시절에는 성급한 문제풀이나 글쓰기보다는 충분한 독서가 장기적으로 도움된다는 여러 학부모님 및 전문가의 조언을 뒷받침해주는 생생한 후기입니다. 제가 제시한 방법으로 정리노트를 만들다 보면 최소 100사람 이상의 의견을 접하게 됩니다. 옥석을 가리는 것은 오로지 읽는 이의 몫입니다.


4.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소득은, 바로 내 아이의 입장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집이 이렇게 많고 어렵구나. 수업에 수행에 선행에 내신에 수능까지 아이는 하루종일 공부에 치여 살겠구나. 문제집 하나씩 알아보며 공부계획을 짜면 내 아이가 마주서야 할 힘든 현실이 바로 몸으로 체감됩니다.


엄마표 공부가 종종 잔인해지는 이유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실행'이라는 부분은 아이에게 미루고, 엄마는 성취감이라는 단물만 빨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생 엄마 주제에 너무 단정적인 표현인가요? 제 자신에게서 그 무서운 욕망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성과를 테스트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 성격에 따라서는 이를 즐기기도 합니다. 단, 그것이 '남의 일'이라는 전제에서 말이지요. 정작 그 공부를 하는 아이에게는 얼마나 큰 부담인가요. 혹시 내가 계획과 성취의 단맛에 빠져 아이를 몰아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엄마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응용>


이상의 노하우는 아이의 도서목록(한글책 또는 영어원서)에 응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내 아이가 초3이라고 해서 '초3에 읽으면 좋은 책'만 검색할 것이 아니라, 고3까지 읽을만한 책들을 미리 알아두고 리스트로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책 제목만 적을 것이 아니라 그 옆에 코멘트도 적습니다. "번역이 엉망이니 원서로 읽을 수 있으면 더 좋다. 영과고생은 읽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고등학생 수준에는 어렵다는 평." 또는 "어려운 주제이지만 작가의 입담이 좋아서 중학생도 재밌게 읽는다는 평이 많다"는 등 다른 사람의 평도 적고, "작은 애가 좋아하는 영역이니 5학년쯤 관련된 ~책과 함께 보여주자"는 식의 내 생각도 적습니다.


첫 발만 들여놓으면, 처음에는 보잘 것 없던 리스트가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면서 어느새 나만의 독서 로드맵으로 풍부해지고 완결되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상당히 뿌듯하지요.



<주화입마에 빠지지 마시라>


정리노트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입니다. 공부할 때 정리에 필기에 열심인 학생도 있지만, 눈으로 휙휙 읽기만 해도 100점맞는 학생도 있잖아요. 자기 방식에 맞게 하면 되는 겁니다.


혹시 정리벽이 있거나 필기병 갖고 계신 분들(막 찔리시는 분 있지요?ㅋㅋ)께는 조금 잔소리를 보태고 싶습니다.


위 작업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됩니다. 급하게 만들면 정리노트의 완성도가 떨어질 뿐더러 무리하면 일상에 지장이 갈 수도 있습니다. 저도 주말에 틈틈히 하느라 6개월 이상 걸렸고 기본 자료 수집은 1년 전부터 해 오던 것입니다. 초등 부모라면 당장에 급할 것이 없고 어차피 아이 대학입시까지 계속 수정할 노트입니다. 그러니 긴 호흡으로 천천히 조금씩 만들어 나가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엄마의 계획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아이라면 기분나쁠 것 같아요. '내 공부 계획을 엄마 마음대로 세워놓고 나를 인형처럼 부리려는 건가?'하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제 의도는 그게 아닙니다. 아이 공부를 돕기 위해 엄마가 앞서 공부하자는 뜻일 뿐이에요. 어디까지나 엄마의 공부인 것이지요.




긴 글을 쓰고 나면 머리가 멍~합니다. 멋진 마무리는 제 욕심뿐인 듯합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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