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묻지 않았다면 없었을 오늘의 나

나를 키운 건 8할이 질문이었다.

by 로건리

병원에서 일을 하며 많은 제약회사, 의료장비 회사의 영업사원 분들을 만났다.

나도 잠시 영업 쪽 일을 해보며 최종보스까지 향하는 여정에 큰 어려움을 느꼈기에 나는 그분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하지만 그분들은 총괄실장인 나를 원장님을 만나기 위한 문지기처럼 느꼈던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어려워했다.


몇 년 전이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라는 게 뭔지도 몰랐던 2019년 이전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신입사원이었는데 유니크한 스타일이었다.

쉽게 표현하자면 사회성 떨어지는, 대화의 핀트를 못 맞추는,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스타일.

그는 원장님을 못 만나더라도 커피 한잔을 사 와서 나와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가끔은 그의 질문이 기분 나쁘게 꽂히는 날도 있었다.


"실장님은 지방 전문대 나와서 어떻게 이 일을 하시게 됐습니까?"


"원장님이 월급 많이 주십니까?"


"OO병원은 행정실장님이 인사도 잘 안 받아주시고 원장님을 한 번도 못 만나봤는데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습니까?"


지방 전문대 나오면 이 일 하면 안 되는 건가?

젊은 친구가 이런 사고방식을 가졌다니..


월급 많이 안 주는데 나 맥이는 건가?


사수가 노하우를 전수해주지 않은 걸까?

아님 나처럼 사수 없이 맨 땅에 헤딩을 하고 있는 중인 걸까?


긍정보다 부정적 감정이 1% 더 많이 들게 하는 질문들..

솔직한 심정은 커피 내 돈 주고 사 먹어도 되니까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컸다.

불편하기도 하고, 그런 질문에 쏘아붙이면 상처받을까 봐 친절하게 답해주는 내가 답답하기도 했다.



하루는 내 불편한 감정을 눈치챈 건지 내 눈치를 보는듯한 분위기였다.


"오늘은 질문이 없네?"


"실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퇴사해?"


"저 이직하기로 해서 오늘 마지막으로 인사드리러 온 겁니다."


사람 감정이 참 오묘하다.

농담으로 던진 질문에 이직을 위한 퇴사, 마지막 인사라는 말을 들으니 미안한 감정이 생겼다.

그동안 그와의 일들을 떠올리며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저 항공사로 이직하는데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요?"


그의 마지막 질문,


"질문 많이 해. 나한테 했던 것처럼. 대신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고."


나의 마지막 대답이었다.

그날 퇴근길 막히는 차 안에서 유독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타고난 머리가 아주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어떤 일을 맞이하게 되면 이해하기까지의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

특히 문자를 이해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1 레벨정도 떨어졌던 것 같다.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잘못 기억하기도 하고,

심지어 극기훈련 안내문 속 장소를 잘못 이해하기도 했다.

이런 증상의 원인은 20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건 내가 글자를 '건성건성' 대충 스치듯 보고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20대 시절의 나는 하루에도 3가지 직종의 아르바이트를 했야 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의 인원수가 자연스럽게 많았다.

어떤 사람과는 말이 그냥 잘 통했고,

어떤 사람은 한두 번 말을 섞다가 나를 피했다.

그런데 유독 나에게 비수를 꽂는 말을 하는 형이 있었다.


"너는 그게 이 상황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야 너는 그렇게 말을 하면 어떡하냐?"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질문이 이해가 안 되냐?"


그 형을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워 그 알바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때의 난, "이길래? 질래?"라는 질문에 늘 지는 쪽을 선택했었으니까.


함께 일하던 분들이 일을 마치고 조촐한 회식을 준비해 주셨다.

그 자리에서 누나들은 그저 응원의 말들만 해주었고,

별로 친하지 않은 형들은 나와할 말이 없었던 것 같다.

평소 나를 피하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오지도 않았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낯익은 모습.

청바지에 노란색 파카, 그 위로 빨간색 야구모자.

얼핏 보면 교관처럼 느껴지던 그 형이 들어온 것이다.


소주를 몇 잔 주고받다가 그 형이 말을 꺼냈다.


"너 나 때문에 그만두는 거라며?"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돌아다녀놓고."


".... 죄송해요."


"나가는 애한테 더 할 말은 없고, 이것만 기억하고 살아라."


"????"


"사람하고 말을 할 때 그 말에 집중을 좀 해.

너 내가 말할 때 무슨 생각해?

형이 볼 때 너는 딱 이거야.

다음에 이 말해야 하는데 저 얘기 언제 끝나지?

아 지겨워. 나 할 말 있는데 빨리 말해야 하는데!!!!"


생각해 보면 너무 찐한 팩트라 한 마디의 반박도 못했다.

그러니까 엉뚱한 대답이나 하고 상황에 맞지도 않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문자 이해능력도 떨어지는데, 말의 이해능력도 떨어진다는 사실이 그땐 너무 아팠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렇게 말하는 그 형이 너무 미웠다.


"근데 너한테 제일 큰 장점이 뭔지 알아?"


"제가 장점이 다 있어요?"


"이렇게 비꼬는 것도 고칠 점!

어쨌든 질문을 한다는 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

적어도 네가 모르는 게 뭔지는 알고 있는 거잖아.

그걸 모르면 개선이 안돼.

대신 사람 말에 집중 좀 해라 이 자식아."


그래도 장점이라는 말에 기분이 조금은 풀렸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 제약회사 영업사원과 마지막 인사를 떠올리며 내가 받은 선물을 그에게도 전달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잘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는 지금 이직한 회사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보다 더 궁금한 건 나에게 조언해 줬던 그 형의 안부.


학창 시절, 어른들은 답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나만 답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 답을 찾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질문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질문이라는 걸 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사람이었다.


또 한 가지.

함께 일하는 멤버들은 나의 캐릭터가 '힐러'라고 표현하곤 한다.

힘든 순간 나에게 털어놓으면 뭔가 후련하고, 때론 답을 줄 때도 있다고 한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건 '경청'을 잘해줘서라고 한다.


물론 지금도 상대방의 말이 끝난 줄 알고 끼어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부족한 인간....)







돌아보니 질문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병원 일을 시작했던 그 해.

전임자가 제대로 된 인계도 없이 떠나고 혼자 남겨졌던 그 여름.

바다 한가운데 작은 보트 위에 혼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구조선을 스스로 찾아야만 했다.


#공문


보건소, 건강보험공단에서 온 공문을 처리하기 위해

무작정 그 주변에 큰 병원 원무과에 전화를 걸었다.


"저 ㅇㅇ병원인데요, 보건소에서 공문이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전화드렸습니다.

바쁘실 텐데 정말 죄송해요."


죄송하다는 말과 계속된 질문으로 간신히 업무처리를 시작했다.



#노무


직원들에 대한 노무 관련 내용을 전혀 몰랐던 그때.

임금 체불로 원장님 대신 노동청에 60번도 넘게 불려 갔다.

친하게 지내던 직원들과 그 자리에서 만난다는 건 참 곤욕스러웠다.


"근데 왜 미지급 급여가 이 금액이 나오는 거예요?

계약한 거보다 많이 주면 안 되는 거예요?"


"마이 주도 않고 뭘 마이 줬다 캅니까.

계산이 안 맞으니까네 근로계약서를 가오라는 거 아입니까"


급여 체계나 근로계약서에 대한 개념도 없던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통해 인사노무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정식 교육을 신청해 수료하고 직원이 입사하는 순간부터 챙겼다.


그러나 인사노무에 100% 해결이란 없었다.

늘 예상하는 대로, 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문제가 생겼고,

그걸 해결해야 함의 연속이었다.


# 새벽시장


거래처 미수 때문에 식당 식재료 배송이 끊어졌던 시절.

급하게 경차 하나를 구입해서 새벽 시장에 직접 달려갔다.

20대 시절 트럭장사를 해 본 경험이 없었다면 할 수 있었을까?

더 저렴하게 물건을 받을 수 있는 도매처를 찾기 위해 매번 질문을 던졌다.


"병원에서 환자 식당 들어갈 물건인데 얼마에 가능해요?"


나중에 정산해 보니 30~40% 정도의 식재료 비용을 절감했다.

경영자에게 아쉬웠던 건 이런 내용을 내가 이야기 꺼내지 않으면 잊는다는 것.

원래 사람은 자신이 준 것을 더 오래 기억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남의 사업장에서 열심히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문자는 대충 봐도 일을 대충 하지는 못하는 성향인가 보다.



# 세무조사


세무조사를 당한 후 그야말로 폐업 위기에 처했던 날.

그날은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사업주도 아닌데..

나는 조사관 앞에서 꼬랑지를 내렸다.

세무회계 지식이 제로였던 나는 2주 동안

뭔지도 모르는 소명자료를 찾고 만들어 제출했다.

다행히 최소한의 추징으로 폐업은 면했다.


당장 세무회계 교육을 신청했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질문을 쏟아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영수증 한 장부터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그 후로 매출은 늘었지만 세금은 이전보다 줄어드는 경험을 했다.


# 유튜브


아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러나 아쉬웠다.

아기 때의 목소리, 표정, 몸짓 하나까지도 남기고 싶었다.

고등학교 방송반 시절 나를 지켜줬던 국장형을 만났다.


"왜 사진으로만 남겨?"


"그럼 뭘로 남기면 더 좋을까요?"


"유튜브를 해봐. 너 영상 편집할 줄 알잖아."


그랬다. 나는 새벽 시장에서 장을 보며 병원일을 하고 있지만

한 때 영상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유튜브는 곧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내 채널도 해당 카테고리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때 지금 영상제작회사 대표가 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 마케팅


병원이 정체기에 접어들자 나는 마케팅에 관심을 가졌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매주 수업을 들으러 다니고,

온라인에 유독 약했던 나는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질문을 시작했다.


나의 질문이 사라질 즈음

블로그, 인스타, 카페, 유튜브 채널까지 직접 만들어 관리하고 성장시키며

병원에 실제 고객유입까지 이어졌다.


모든 순간, 나의 성장에는 질문이 있었다.


# 대표이사


나는 그저 병원의 총괄 실장으로써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나씩 했을 뿐이었다.

그 시간이 10년 넘게 축적되었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갔다.

적은 월급 쪼개고 모으고 때론 대출까지 받아가며 배운 나의 지식과 경험은 지금을 위한 투자였다.


다른 병원, 다른 회사

분명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구멍가게 대표이사가 되었다.


사실 당시 내 꿈은 병원 종합 컨설팅 회사로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의 영상기획과 제작을 좋게 봐주시는 곳이 생겨 회사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 연주로 전하고 싶은 피아니스트의 말 <<


이런 의미 있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나의 성향과 역량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니까 컨설팅은 마음을 접었다.


대표이사가 된 이후 또 다른 질문이 시작되었다.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치열한 질문들..






오늘 브런치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얌전히 앉아 타이핑을 하고 있는데 아들이 질문을 던졌다.


"아빠 이 게임 다운로드 해도 돼요?"


아빠 바쁜데 나중에 하라는 엄마의 말에도 꿋꿋하게 태블릿을 내미는 아들.

나는 태블릿의 비밀번호를 풀어주었고 아들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할머니, 오락실 가서 한 판만 하고 오면 안 돼요?"


마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어린아이의 질문도, 사회 초년생의 질문도, 어르신들의 질문도..

황당무계하게 들릴 수도,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질문은 삶을 지속하고 있다는 신호이자 불빛이다.


우리의 질문이 끝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아마도 내 숨이 끝나는 순간 아닐까?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묻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질문이었으니까!

오늘도 많은 질문들로 채워진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 글을 남긴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질문을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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