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는 취기가 오른 눈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금형의 기분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낮에 갑작스럽게 고부장이 강제로 회사를 떠나게 된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럼 다시 옛날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잖아.’
미리는 그간 금형의 마음을 힘들게 했던 임부장의 사건이 이제서야 그 안에서 화해를 하고 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다시 깨워 일으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참. 미리님. 저번에 제 친구가 미리님 따로 불러서 본 적 있었죠?”
“어. 금형님.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얼마 전에 그 친구가 저한테 말해주더라구요. 참 좋은 녀석이죠. 어릴 때부터 남을 챙기는 마음이 되게 넓은 친구였어요. 그래서 그 친구한테 많이 의지를 하고 살았던 것 같네요. 나도 모르게. 근데 녀석이 그간 만나고 있던 여자친구랑 다음 달에 결혼한다네요. 잘됐죠. 조금은 뭐랄까 섭섭한 마음도 들긴 하지만. 허허. 미리님 저랑 같이 가요.”
‘오늘은 고백을 두 번이나 받은건가.’
진지하게 만나보자는 말에 이어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같이 가자는 건 술 취한 미리에게도 애정에 대한 분별력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말로 들렸다.
연이어 술잔을 비워내던 미리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술집 문을 열어젖히더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발 씩 내딛기 시작했다.
“후아. 오늘은 좀 많이 마셔버렸네요. 금형님. 사실 저희 고부장님 오늘 회사에서 짤렸어요. 그토록 바랐던 일인데 왜 기분이 싱숭생숭할까요? 그렇게 고압적이던 인간이 손을 벌벌 떨면서 짐을 싸는데 사실 좀 애처롭고 안됐더라구요. 뭐 솔직히 그게 내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들었으니 그런거 아닐까. 나만 그런가요? 세상은 참 이상하고 납득하기가 힘들어. 나 스스로한테도 말이야.”
미리는 한동안 큰 소리를 내면서 따지듯 금형에게 말했다.
“미리님만 그런 거 아니에요. 인간이란 다 비슷한 동물 아닐까. 저도 그렇구요.”
“모르겠어요. 내 기분이 왜 이런지. 아 오늘 금형님 기분 좋은 날인데. 이렇게 망칠 생각 없었는데 미안해요.”
미리는 까만 어둠이 짙게 드리운 골목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찾는 듯 했다.
미리의 하얀 얼굴에 비친 핸드폰의 빛이 더더욱 그녀의 얼굴을 창백하게 보이게 했다.
“나 이제 갈게요. 금혀ㅇ니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