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밥반찬 다이어리 Jan 06. 2025

그와의 약속 전야

사무실로 돌아간 미리는 다른 직원들이 저녁으로 시켜 먹고 남은 피자 조각을 보았다.

‘아 피자가 있었군. 그러게 나도 피자나 먹을 걸 그랬나.’

미리는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앉아 허락된 몇 시간을 활용해 마무리를 지어보자고 다짐했다.

문서 파일에 보고 내용이 채워질수록 미리의 미간 주름도 같이 깊어졌다.


한참 집중을 하며 일을 하다가 창 밖을 바라보니 겨울 밤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는 걸 알았다.

“과장님. 언제까지 하실거에요? 저희는 이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마무리됐고 내일 잠깐 나와서 조금 더 수정하려는데요. 과장님이 종합적으로 취합해서 보고하셔야 되서 미리 맞춰보긴 해야될텐데 어쩌죠. 저희쪽은 내일 나와서 맞춰보기로 했거든요. 일요일은 다들 일정이 있다네요.”

“아. 다들 벌써 다 한거에요? 아. 그러게요. 제가 토요일에 좀 일이 있어서 못나올 것 같은데.. 어쨌든 들어들 가세요.”

“네. 내일 뵐게요. 과장님. 안되시면 연락주세요.”     

문을 열고 나가는 기획팀 세 명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사람들의 온기가 완전히 사라지자 그야말로 미리는 혼자임을 실감했다.

순간 불안감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미리의 몸을 에워싸고 올라오는 듯 했다.

“아. 대체 어떻게 해야된단 말이지? 내일 나올 수가 없는데. 휴. 후우.” 

그녀의 상체까지 에워쌌던 공포가 어느 새 머리까지 타고 올라오자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금형과의 약속을 되뇌인 미리는 다시 자세를 곧추세워 보고서에 자신의 분량을 채워나갔다.   

  

“째깍째깍”

밤이 깊을수록 사무실의 침묵은 깊어졌고 시계 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듯 가까워졌다.

그래도 부지런히 보고서의 내용을 순차적으로 작성한 결과 미리가 해야할 몫의 상당량은 채워졌다.

하지만 영업기획팀 팀원 네명의 보고서를 취합해서 하나의 보고서로 만들 시간이 없었다.

‘몰라. 일단 퇴근해야겠다. 너무 어두워졌잖아 이거.’

미리는 피로에 젖은 몸과 마음을 추슬러 일으키고 사무실 문을 걸어 잠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