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지방을 가는데 중간 기착지인 신경주역 쯤에서 중년의 부부 두 커플이 내 뒷줄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주로 숙면을 취하는데 어제는 이상하게 잠이 푹 들지 않았고, 그렇게 선잠을 잔 탓에 피곤함도 같이 동승하여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하여 난 잠을 자려고 애를 쓰던 참이었다.
기차를 타고 초반엔 핸드폰을 좀 뒤적거리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강제로 눈을 감았다.
“좀 자자.”
잠이 들락말락 하던 그때 내 뒤에 나란히 앉은 중년의 부부 두쌍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목소리를 낮추거나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조차 없었고, 심지어는 점점 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평소엔 열차에서 서로를 위해 통화는 밖에서 하고 대화는 자제하라는 안내방송이 그렇게도 자주 나오더만, 열차 안내방송도 이 기센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눈치를 보는 것일까.
아무리 기다려도 그 안내방송은 나오지 않았고, 난 화가 치솟았다가 결국엔 체념하는 상태에까지 다다르게 됐다.
열차는 조용했고 승객도 많지 않았다.
잠도 포기했고 마음을 내려놓자 목소리 큰 중년 아저씨가 하는 말이 귀에 들려왔다.
“식당 잡아서 술묵고 놀자.”
어른들의 대화는 대체적으로 그렇듯이 각자의 말만 앞에다 대고 뱉어내기 바빴다.
아주머니는 우리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자 하면서 신나했고, 그 와중에 통로 건너편 부부에게 자기 목소리가 닿을 수 있게 좀더 큰 목소리로 아저씨는 한번 더 말을 했다.
“식당 잡아서 술묵고 놀자.“
난 녹음기를 틀어놓은 줄 알았다.
뒤통수에서 두번이나 들려온 말소리였기에 그 음성이랑 톤에 더 집중할 수 있었는데, 처음 말소리와 정말 똑같았다.
”얼마나 술을 먹고 싶었으면 토씨 하나 톤 하나 틀리지 않고 저리 똑같이 말을 하지?”
약간은 한심해 보이던 아저씨가 갑자기 측은하게 느껴졌다. 보다 못해 건너편 아저씨가 술을 애원하며 앵무새처럼 말하던 아저씨에게 대답했다.
“난 낮에 술맛이 안나. 술은 밤에 먹어야지.”
“와 이 아저씨 뭘 아네. 그리고 굉장히 괜찮은 거절 표현이다.”
나도 낮술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수 많은 내 주변사람들이 낮술을 권했지만 난 도저히 술맛이 안나서 왠만하면 먹지 않았는데, 이 아저씨가 뭘 좀 아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안내방송이 나왔다.
나는 내려야 했고, 뭘 좀 아는 아저씨의 얼굴이 살짝 궁금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 뭘 좀 아는 아저씨를 뒤로 하고 역을 빠져나와 생각했다.
“오늘 저녁엔 괜찮은 집에서 술 한잔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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