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남편과 나는 책에 대한 욕심이 많다. 책도 악세사리나 옷 쇼핑하는 것처럼 보면 볼수록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항상 고르기가 힘들다. 남편은 책을 실제로 자투리 시간에 쪼개서 어떻게든 읽으려고 하는 스타일이라 그래도 꽤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반면 나는 책 전체를 한 번에 이어서 읽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계속 미루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일년에 책을 몇권 읽을까 말까 한다.
우리 각자의 책장을 보면 책이 더 이상 꽃을 데가 없이 빈틈에도 책이 다 들어가 있는데, 둘의 책 컬렉션이 사뭇 달라서 너무 웃기다. 책만 봐도 각자의 성향과 어떤 베이스를 가지고 공부했는지, 어떤 거에 관심이 많은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내 책장에는 예술 관련 서적, 학부와 석사 시절 공부한 인류학과 범죄 심리 관련 책들이 대부분이다. 간간히 세계명작이나 현대 소설들,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도 보인다. 남편의 책장의 책들은 대부분 최첨단을 달리는 주제가 많다. AI, 챗GPT, 부동산 투자, 주식 관련 책들이 정말 많다. 내가 죽을 때까지 저 책을 읽을 일이 있을까 생각이 드는 책들만 있다. 반대로 남편도 내가 읽는 범죄 관련 책들은 나의 수다를 통해서만 전달받겠지. 이렇게나 다른 우리가 인생에 있어서는 같은 방향을 보고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면서도 책장 속 무지하게 다른 종류의 책들을 보며 남편이 나와 다른 한 사람의 인격체이고, 내가 의식적으로 항상 존중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을 되새긴다.
나에게 책은 그냥 읽지 않고 꽃아두기만 해도 마음이 풍족해지는 대상이다. 물론 책은 문장 하나, 단어 하나 곱씹으면서 읽고 작가가 전달하려고 하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마치 오브제처럼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책 제목이 잘 보이게끔 항상 내 가까운 곳에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가끔 내 마음에 전혀 들어와 있지 않던 책에 꽃히는 날이 오면 몇 장 들춰 볼 수도 있고, 날 잡고 그 책을 독파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요즘에는 책장이 너무 과부하라 책을 새로 사면 꼭 기존에 있던 책 중에 버리려고 노력한다. 책이라는 게 그냥 물건이랑 다르게 내가 언젠가는 저걸 읽을 것만 같고, 내가 살 때의 그 기분이 생각나다 보니 사면서도 계속 끌어안고 있게 된다. 그런데 세상에 읽을거리는 계속해서 나오고 나라는 사람도 변하다 보니 특정 책이 나에게 주는 의미 또한 달라진다. 그래서 최대한 나의 현재에 필요한 책들 위주로만 서가를 구성하려고 노력중인데 아직도 여전히 과감하게 책을 버리는 일은 어렵다. 위에서는 오브제처럼 책을 그냥 둬도 의미가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내 무의식적으로 책 안에 있는 것들에 꽤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올해부터는 남편만큼은 아니더라도 책 자체를 읽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내가 꼭 앉은 자리에서 완독을 하고 내용을 200% 이해해서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해도, 그냥 나의 바쁜 일상을 쪼개 책을 읽는 데 시간을 쓰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책을 완독할 시간을 내지 못해 아예 책을 읽지 못하는 상황을 벗어나 몇 권이라도 책을 읽어보려 한다. 특히 요즘에는 자기 전에 30분 정도만 짧게 침대맡에 놓아둔 책을 읽고 자보려고 하는데, 중간 중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기가 아직은 힘들다. 그럼에도 알고리즘을 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30초 남짓하는 숏폼 영상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는 것보다 잠들 때 훨씬 편안하고 맑은 기분이 든다. 이런 기분을 조금씩 늘려가며 느끼다 보면 내 책장의 수많은 책들이 오브제 이상의 역할을 더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