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래 버티는 놈이 강한 것이다

29살, 돌고돌아 늦깎이 연예기자가 됐다

by mulgae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대학새내기가 됐다. 원래 98학번이었지만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IMF직격탄을 맞아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재수를 원했지만 집에서는 편입을 권했다. 학업에 흥미가 없으니 학점도, 편입 점수도 엉망진창이었다. 결국 1년간 학교를 다닌 뒤 미련없이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00학번으로 대학에 발을 들여놓았다.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는 아니었다. 솔직히 그때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몰랐다. 그땐 그랬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기 위해선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에 접속해야 했다. 세기말 아이러브스쿨같은 서비스가 출범했고 21세기에 와서야 싸이월드가 출시됐다. 채팅과 리포트 작성 외에 딱히 PC를 다룰 일이 없던 여대생은 대학 졸업 후에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2002년 교회에서 영화 예고편 영상을 만들던 교회 오빠들을 주축으로 미디어 자료실이 생겼다. 프리미어 다루는 법을 배웠고 단편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잘 알지는 못했지만 미래는 영상이 지배할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생겼다. 학업에 큰 뜻은 없었고 엉덩이는 가벼웠다. 그때 결심했다. “방송국 PD가 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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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입사가 고시만큼 힘들어 ‘언론고시’라는 말이 유행할 때였다. 언론사 입사 준비 스터디에 들어갔다. 역시 공부는 뒷전이었다. 두툼한 시사상식책과 재정국어 책을 샀지만 ‘수학의 정석’이 분수에서 넘어가지 않은 것처럼 책은 깨끗했다. 스터디 모임인지 술터디 모임인지 모를 정도로 술만 마셨고 시국을 걱정했다. 노무현 정권 때였다. 한미 FTA 때문에 스크린쿼터제가 축소돼 한국영화계가 걱정된다며 격정 토론을 벌이곤 했다.


MBC 입사시험을 치렀다. 그때 시험문제가 그 유명한 아이돌 A팀과 B팀과 C팀을 더하면 몇 명인가라는 문제였다. MBC의 인기 드라마였던 ‘대장금’의 명대사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생각한건데” 관련 문제도 출제됐다. 허를 찔렀다. 보기 좋게 낙방했다.


남들보다 대학 입학도 뒤쳐졌는데 입사도 늦어지고 있었다. 요즘은 입사 장수생이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여자 나이 25세가 넘어가면 신입으로 입사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벌써 27살이었다. 어디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잡지사에 입사했다. 유치원 원장과 교사들을 위한 유아교육지를 만들던 회사였다. 대학시절 내내 보그를 끼고 살던 영향이었다.


보그와 유아교육지의 간극은 컸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체력은 더더욱 없었다. 밤샘마감에 허덕였고, 편집장의 갈굼에 멘탈은 바닥을 쳤다.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취업준비를 한다는 명목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구석에서 TV만 봤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런 나를 걱정하던 ‘아랑카페’에서 만난 지인이 넌지시 연예매체 입사를 권했다. 그는 한 연예매체에 입사했다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한 뒤 모 경제지에 입사했다. 지금은 유력 경제방송국 기자로 몸담고 있다.


“너 TV드라마 좋아하고, 영화좋아하잖아. 연예매체가 적성에 잘 맞을 수 있어.”


29살, 상당히 악명높던 한 연예매체에 입사 지원서를 냈다. 합격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선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강한 놈이 오래 버티는 게 아냐, 오래 버티는 놈이 강한거야. 버틸 수 있을때까지 버텨.”


그렇게 나는 연예기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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