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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Feb 17. 2021

할아버지의 자랑, 오리온 맥주


三ツ星かざして高々と (별 셋 가려 드높이)
オジー自慢のオリオンビール (할아버지의 자랑 오리온 맥주)
『オジー自慢のオリオンビール』 by BEGIN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술은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와모리라고 불리는 소주이고, 다른 하나는 오리온 맥주이다. 덥고 습한 오키나와에서 우리는 오리온 맥주를 특히 더 즐겨 마시곤 했다.


오리온 맥주는 오키나와에서 시작되어 오키나와에서만 생산되는, 말 그대로 오키나와의 맥주이다. 슈퍼마켓, 편의점, 술집, 식당 그 어디서든 오리온 맥주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식당에서 굳이 오리온 맥주를 콕 집어 주문할 필요 없이 '나마비루(생맥주)'를 주문하면, 아마 높은 확률로 시원한 오리온 생맥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오키나와에서는 오리온 맥주가 다른 일본 맥주들보다 싼 편이다.


오리온 맥주는 청량감을 자랑하는 라거다. 종종 시즌 한정판으로 페일 에일, 세종과 같은 다른 종류도 보이지만, 역시 메인은 시원한 라거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오리온 맥주는 다른 일본 맥주보단 오히려 카스, 하이트와 같은 한국 맥주와 닮았다. 끈적끈적하고 무더운 밤에 한국 맥주의 시원한 청량감과 목 넘김이 그리울 때 오리온 맥주를 마시곤 했다.


오리온에서 나온 다양한 맥주. (왼쪽) 오리온에서 나온 무알콜 음료. 맥주처럼 보이지만.. 외관만 닮았다. (가운데) 오리온 생맥 (오른쪽) 오리온에서 나온 에일 맥주



오리온 - 하늘에도, 식탁에도


오리온 맥주는 1950년대 미군 오키나와 통치 시절부터 생산되었다. 첫 시작은 진한 독일 스타맥주였으나 시장 반응이 마땅치 않아, 지금과 같은 청량한 미국 스타일로 바꿨고, 그러자 매출이 크게 올랐단다. 아무렴. 후덥지근한 오키나와의 날씨에는 지금과 같은 시원한 라거 스타일이 훨씬 잘 어울린다.


오리온이라는 이름은 신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공모하여 정해졌다. 공모전에 출품된 수백여 개의 이름들 중에서, 오키나와 밤하늘에서 항상 밝게 빛나는 별자리를 딴 '오리온'이라는 이름이 제일 많은 사랑을 받아서 결정되었다고 한다. (당시 오키나와를 점령하던 미군의 최고지도자가 쓰리스타여서 입김이 작용했다고 하는 썰도 있다).


그리하여 오리온자리의 허리에서 빛나는 별 3개는 지금 오리온 맥주의 로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오키나와를 여행 중이라면, 이들 빛나는 별 3개를 맥주와 밤하늘에서 찾아보자. 맥주를 한잔하면 더 쉽게 발견할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의 자랑, 오리온 맥주


오리온 맥주에 대한 오키나와 사람들의 애정은 남달라 보인다. 심지어 오리온 맥주에 대한 노래가 있을 정도다. 오키나와 이시가키섬 출신의 밴드 BEGIN이 부른 오지지만노 오리온 비루 (할아버지의 자랑, 오리온 맥주!)는 오리온 맥주 광고 음악으로 쓰였는데, 청량한 산신 (오키나와 전통 악기)의 음색과 오리온 맥주가 제법 잘 어울린다.


산신 연주를 들려주는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저씨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미야코섬으로 여행을 갔을 때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오자, 게스트 하우스 주인아저씨 (라기엔 동년배 정도로 보였지만)가 우리를 포함한 손님들을 위한 작은 콘서트를 열어주었다. 그는 일본 본토에서 살다가 산신의 매력에 빠져서 오키나와 미야코로 이주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직접 산신을 연주하며 여러 노래를 들려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오지지만노 오리온 비루이다.


노래와 함께 들려준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택시 운전사였던 자신의 산신 선생님을 쫓아다니며 산신을 배운 이야기, 손으로 시사를 만드는 방법 [1], 오리온 맥주에 있는 별 3개가 오리온자리라는 것도 그때 들은 이야기다. 그때 도쿄에서 왔다는 다른 일본인 손님들도 오리온 별자리와 오리온 맥주 로고의 별 3개 간의 연결고리는 처음 듣는다는 듯했다. 하늘에서 오리온을 찾기 어려운 곳에서 온 사람들은 아마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1] 왼손의 1, 3, 4번째 손가락은 굽혀서 서로 만나게 하여 시사의 다문 입을,  2, 5번째 손가락은 펴서 시사의 귀를 만든다. 오른손도 비슷하게, 다만 1,3,4번째 손가락이 만나지 않게 하여 입을 열고 으르렁 거리는 시사의 깨알 디테일을 표현한다.


난쿠루나이사 (어떻게든 되겠지!)


다시 노래 이야기로. 오지지만노 오리온 비루 (할아버지의 자랑, 오리온 맥주). 까랑까랑한 산신 소리와 흥겨운 리듬만큼, 그 가사도 재밌다. 가사 중간중간에는 우치난추 (오키나와 사람)의 색깔도 드러난다. 


金がないなら海にが行くさ 魚があれば生きられる
(돈이 없으면 바다에 가지. 물고기가 있다면야 살아는 지겠지)

なんくるないさ やってみれ 働くからこそ休まれる
(뭐라도 되겠지. 해보자. 일하고 나면야 쉴 수 있겠지.) [2]


특히 위 두 번째 줄 첫마디 - 난쿠루나이사 (뭐라도 되겠지/어떻게든 되겠지) - 는 유명한 오키나와 방언 중에 하나이다. 그냥 들으면 마냥 낙천적인 오키나와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그 구절 앞에 '바른 일을 하다 보면' 이란 말이 생략되었다고 하니, 낙천적일 뿐 아니라 성실한 오키나와 사람들을 표현하기도 다 [3].


유튜브에서 밴드 Begin의 공연 실황 영상을 보면 더 재밌다. 가사 중간중간에 '건배 (간빠이)'를 외치는 부분이 있는데, 마치 오리온 맥주에 취한 듯 모두가 즐겁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콘서트장에서 조용히 노래를 듣는다고 하는 일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2] 번역은 <https://blog.naver.com/hag1122/220913817820> 를 참고했다.

[3] 하지만 여전히, 일본 본토 사람들에게 오키나와 사람들은 '게으르다'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오키나와에 갔을 때만 해도 오리온 맥주를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여기저기 일본식 술집에서 종종 보인다. 알아보니 일본 극우기업 아사히 맥주가 롯데를 통해 한국에 유통을 시작했단다.


그러니, 한국에선 조금만 참자(어차피 한국 라거 맥주랑 비슷한 맛이다).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종식되면 오키나와에서, 후덥지근한 밤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하늘에서 빛나는 오리온 자리 아래서 마셔보자. 단언컨대, 오리온 맥주를 훨씬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일본 아사히 맥주를 마시는 것 보다 오키나와 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



덧. 비루 (맥주)와 하포슈 (발포주)


오키나와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일본은 처음이었고, 일본 맥주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던 차에, 슈퍼마켓 주류 코너에 진열된 많은 맥주를 보며 "내 이들을 모두 다 맛보겠노라" 하고 작은 다짐을 했다.


그런데. "읭?" 가끔 어떤 맥주는 맛이 너무 이상했다. 맥주라고 하기엔 너무 밍밍한 맛? 알고 보니, 그런 녀석들은 맥주가 아니라 발포주 (맥아 함량이 맥주보다 낮은 술)였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발포주가 제법 많이 퍼져 있지만 (필라이트, 필굿), 그때만 하더라도 발포주라는 개념이 낯설었다. 맥아의 비율이 낮은 만큼 가격도 맥주의 거의 반값 정도로 훨씬 저렴하다.


발포주는 대부분 주류 코너에 맥주와 나란히 놓여있기 때문에 맥주를 고르려다 발포주를 잘못 고르는 수가 생긴다. 맥주는 비루 (ビール)라고 보통 정면 하단에 표기되어 있으니 꼭 확인해보고 사자.  


 


참고 문헌.

오리온 맥주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날마다좋은ㅎㅏ루 님의 브런치 글을 추천한다.



노래.

할아버지의 자랑, 오리온 맥주  @ Begin 콘서트 현장

https://youtu.be/i5_xR2gGU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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