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멀리 Jul 07. 2022

숙소가 있었는데요 사라져 버렸습니다

#5 그런데 제 돈은 돌려주셔야죠


2016년, 스위스 소재의 숙박 예약 사이트 한 곳이 한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한국어 매뉴얼이나 응대는 없었지만, 최저가 숙박 업체로 알음알음 입소문이 났다. 저렴한 공급가를 가능하게 한 이곳의 운영 방식은 프리페이드Pre-Paid였다. 가능한 가장 저렴한 금액으로 숙박시설을 홍보해 소비자들에게 예약금을 미리 받아놓은 후, 이 금액에 맞는 숙박을 찾아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 덕에 소비자는 저렴하게 객실을 얻기도 했지만, 반대로 돈을 내고도 예약을 취소당하거나 여행지에 가니 객실 예약이 되어 있지 않은 황당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많은 부작용과 논란을 달고도 이 사이트는 살아남았다. 2019년 9월까지는 말이다.


아마도 우리의 공급 업체들이 당신의 예약을 취소할 겁니다.


9월 14일, 새벽 6시. Y가 받은 메일의 첫 문장을 해석하자면 이랬다. 메일의 제목은 Cease Trading Notification. 영업 중지 알림. 발신인은 아모마AMOMA. 바로 Y가 예약한 숙박 예약 사이트였다.

이거 스팸메일 아니야? 나는 Y가 보내온 캡처를 보고도 믿기지 않아 몇 번을 되물었다. 무슨 사이트가 이렇게 하루아침에 망해. 그것도 토요일 아침부터 이런 메일을 보낼 리가 없잖아. 하지만 아무래도 Y가 보기에 메일은 진짜인 모양이었다. 벌써 힐튼 가든 인 와이키키 비치에 확인 메일도 보냈다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호텔도 찾아봤다고 했다. 그의 불안과 달리 나는 이 상황이 그닥 실감 나지 않았다. 정말 아모마가 망했나? 우리 예약이 취소되나? 만약 취소된다면 결제한 금액은 돌려받나? 애초에 숙박비가 얼마였더라? 단번에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 날 리 없었다. 예약을 3월에 했는 걸. 나는 차라리 아모마 측에 메일을 보내보는 게 깔끔할 것 같았다. Y가 받은 메일에 곧장 회신을 하려 했지만 그제야 발신인의 메일 주소가 눈에 들어왔다. no-reply@amoma.com. 이런.


인터넷에 아모마를 검색하자 구글과 트위터에서 아모마 측의 일방적인 메일을 받았다는 외국인들의 한탄 또는 분노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이 메일은 꿈은커녕 스팸도 아니었다. 명백한 현실이었다. 하와이 호텔을 예약해둔 숙박대행 사이트가 망했다. 그것도 하루아침에, 폭삭. 출국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물론 할 수 있는 건 고작 남들은 어쩌고 있나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 아모마 측이 호텔에 최종 결제를 했다면 예약은 안전할 거라는 글을 봤다. 맞아. 벌써 6개월 전이라고. 우리가 낸 돈을 아모마가 여태껏 들고 있을 리가 없어. 마침 친구 한 명이 미국 현지에 있었다. 나는 곧장 그 친구에게 연락해 힐튼 가든 인 와이키키 비치에 전화해 우리의 예약이 유지되어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예약되어 있대. 두 시간 뒤 캘리포니아에서 돌아온 대답은 명쾌했다. 심지어 호텔 측에서 새로운 예약 번호까지 알려주었다. 그 열 자리 숫자를 본 순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다 된 밥에 코 빠뜨리기 쉽지 않아. 나는 행운을 안고 사는 사람이라곤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불행을 몰고 다닌 적도 없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불행이 나의 것일 리 없었다. 다음 날 아침, Y가 받은 힐튼 가든 인의 회신은 그 확신에 힘을 더했다. 메일에는 10월 3일부터 10월 8일까지라는 정확한 호텔 일정과 예약 번호가 쓰여있었다. 그 번호는 캘리포니아의 친구가 확인해준 열 자리 숫자와도 동일했다. 더 이상 걱정할 건 없었다.

나는 다시 꿈결 같은 하와이 계획으로 돌아왔다. 이제 자잘한 것들만 신경 쓰면 됐다. 사소해서 행복한 것들. 워터슈즈와 방수팩을 사고, 필름 카메라를 챙기고, 하와이의 맛집을 찾아보고 스테이크의 굽기가 미디엄 레어가 나을지 미디엄이 나을지 고민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던 미국의 식재료들을 쇼핑할 기대와 파타고니아에서 하와이 한정 티셔츠를 사는 상상이 가득한 그런.


“그런데 우리 호텔 말이야. 디파짓이랑 리조트피 합치면 꽤 나오지 않을까?” 모든 게 잘만 흘러가던 때에 Y가 문득 말을 꺼냈다. 우리의 공금 카드가 호텔의 추가 요금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면서. 처음엔 과한 걱정이라 여겼다. 여행지에서 쓸 목적으로 개설한 모임 통장엔 3월부터 각자 15만원씩, 매월 30만 원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액티비티 예약금으로 일부를 미리 쓰기도 했고, 어느 정도는 달러로 환전할 예정이어서 그렇게 넉넉하지만은 않긴 했다. 조심해서 나쁠 거 없지. 우리는 우선 호텔 측에 메일을 보내보기로 했다. 우리의 예약에 리조트피가 포함되어 있었는지, 추가로 내야 한다면 얼마를 내야 할지, 그리고 디파짓은 얼마로 책정되어 있는지. 추가금이 큰 걸림돌은 아니었다. 그저 확인차 보낸 메일이었다. 예산 밖의 금액이라면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가면 될 일이었다. 내라고 하면 내야지, 뭐. 하와이잖아.

호텔의 회신은 이틀 만에 돌아왔다. Aloha! 반가운 인사와 함께 시작된 메일은 짧고 명료했다.


After reviewing your reservation, I found out that this booking has been canceled.


날벼락 같은 내용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럴 수가. 보름 전과 똑같은 상황의 반복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호텔 측에서 예약 취소를 명확히 언급했다는 것이다. 그럼 그때 준 새로운 예약번호는 뭐였는데? 우리 예약이 유지되고 있다는 대답은 왜 한 거지? 이제 와서 예약취소를 통보하는 게 말이 돼? 납득 가능한 답을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부메랑처럼 돌아온 불행에 머리가 어질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9월 29일, 출국까지 고작 나흘을 남긴 일요일이었다.

하와이에 가는 과정은 아폴론의 태양마차에 비교할 게 아니었다. 그렇게 근사하고 대단하지 못했다. 굳이 찾자면 이카로스에 가까웠다. 그것도 한참은 억울한 이카로스. 신화 속 이카로스는 제 욕심에 밀랍을 녹여 바다로 떨어졌다지만 우리는 대체 뭘 잘못했단 말인가. 그저 알뜰하게 여행하자는 것뿐인데. 우리가 고른 밀랍은 사실은 밀랍을 가장한 껌딱지라도 되었던 걸까. 태평양을 건너기도 전에 우리의 날개는, 아니 우리의 숙소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속았지? 그러게 싸구려 (스위스산) 밀랍으로 감히 태평양을 건너려 했던 죗값이다, 하듯이.


이대로 날개 없이 하와이에 추락할  없었다. 이번엔 진짜 비상상황이었다. 메일을 주고받을 여유조차 없었기에 Y 19시간의 시차를 뛰어넘어 곧장 힐튼 가든  와이키키 비치에 국제전화를 걸었다. 비록 별다른 소득은 없었지만. 아모마 측이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으니 예약을 유지할 수가 없다는  호텔 측의 주장이었다. 물론 우리의 예약이 완전히 사라진  아니었고 유지할 방법이 있긴 했다. 딱 하나. 지금이라도 숙박비를 지불하면 됐다. 힐튼 가든 인이 요구한 5박의 숙박비는 1490. 1490불은 그때의 환율로 무려 178 원이었다. ? 뭐라고요? 우린 6개월 전에  방을 90 원에 예약했었는데요. 그런데 이제 와서  배를 주고 재예약을 하라니요! 하와이에 닿지 않을 울분을 굳이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우리는 황급히 호텔 예약 사이트들에 접속했다. 힐튼 가든 인의 가장 저렴한 객실이 120만 원에 올라와 있었다. 출국일이 바로 코앞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미 마이너스 90만 원인 상황에서 또 숙박에 거액을 지불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오션뷰고 뭐고 따질 게 아니었다. 나와 Y는 선택 가능한 모든 호텔들을 다 뒤졌다. 급등한 금액 탓에 남은 건 변변찮은 것들 뿐이었지만 우린 최선을 다해 선택지를 선별했다. 에와 호텔 와이키키, 와이키키 가든 빌라, 아쿠아 뱀부 와이키키. 호텔뿐만이 아니었다. 한인텔과 게스트하우스, 에어비앤비까지. 6개월 전에는 쳐다도 보지 않았을 선택지들을 면밀히 들여다봤다. 캐리어 2개씩 들고 방황하는 미래의 하와이 홈리스들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면서.


우리의 결정은 그 어느 때보다 빨랐다. 아쿠아 뱀부 와이키키. 오션뷰도 아니고, 굉장히 낡은 데다 수영장마저 어린이 풀장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도 5박에 69만 원이나 했다. 대신 우리의 기존 숙소인 힐튼 가든 인 와이키키 비치와 그다지 멀지 않다는 이점이 있었다. 온갖 픽업 위치가 힐튼 가든 인 앞으로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결코 작지 않은 메리트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린 이 상황에 지쳐가고 있었다. 최선을 찾던 열정은 사라지고 최악을 피하려는 오기만 남은지 오래였다. 더 이상 숙박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면 최선이지, 뭐. 아고다에서 최종 결제를 진행하면서 간절히 바랐다. 여기는 망하지 않게 해주세요. 적어도 우리가 하와이 여행을 마치기 전까지는요.


어떻게든 급한 불은 껐다. 이젠 너덜너덜해진 정신머리를 붙잡고 잃어버린 돈을 찾을 차례였다. 2주 동안 해방되었던 아모마 이슈를 다시 찾아보니 그새 한국소비자원의 행동지침이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첫째, 예약한 호텔에 연락해 예약이 유효한지 확인할 것. 2주 전에는 예약이 유효했었지. 이제는 아니지만. 나는 얼른 다음 문장으로 내려갔다. 둘째, 호텔 예약이 되어 있지 않거나 취소된 경우, 예약 시 사용한 신용(체크)카드사에 연락해 차지백 서비스(국제거래에서 소비자가 피해를 입은 경우 신용카드사에 이미 승인된 거래를 취소 요청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신청할 것. 이거다 싶었다. 세상은 그렇게 잔혹하지 않았다. 글로벌 사기꾼을 방어할 에어백, 아니 차지백이 있었다. 여행 카페에도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아모마의 폐업 메일을 받았을 때는 호텔 예약이 유지가 되었었지만 여행 직전 확인해보니 따로 결제를 하지 않으면 예약이 취소될 거라는 통보를 받은 여행객들. 그들에게도 한결 같이 차지백을 하라는 조언이 달렸다. 그러나 이 방법이 언제나 답은 아니었다. 카드 승인 후 6개월 이내의 내역에만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는 단서가 있었다. 비극적이게도 우리의 호텔 결제일은 3월 20일. 6개월 하고도 딱 9일 전이었다. 9일이라니. 처음 아모마의 폐업 메일을 받았을 때 이의제기를 했다면 취소가 가능했던 일정이었다. 왜 호텔은 우리에게 예약이 있다고 했을까. 왜 우린 안일하게 호텔의 말만 믿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이쯤 되자 아모마 측에서 이의제기를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호텔 예약이 유지된 척한 게 아닐까 싶은 의심마저 들었다. 그렇잖아. 주말에 영업 중지 메일을 보낸 것부터 수상했다니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예약을 Y의 이름으로 하고 결제는 내 카드로 했다는 것도 신경 쓰였다. 심지어 나는 지난 6개월 사이에 그 카드를 잃어버려 사용 정지까지 해둔 상태였다. 어떻게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꼬일 수 있을까. 이 정도로 인생이 드라마적일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도저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을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으니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식어갔다.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이 상황을 차근차근 정리했다. 최초의 예약 바우처와 아모마의 폐업 메일, 호텔 측이 보내준 두 번째 예약 번호, 그리고 취소를 확인한 알로하 메일까지 모두 캡처해 순차를 매겼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한카드에 상담 신청 메일링을 보냈다. 국제거래 소비자 포털에 글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라진 객실의 숙박비는 약 90만 원이었다. 둘이서 나눠도 인당 45만 원. 결코 작지 않은 금액을 잃어버린 셈 쳐야 했다. 이렇게 돈을 버릴 수도 있구나. 그러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자꾸 웃음이 났다. 허, 참. 허허. 하하하. 그동안 2만 원짜리 아쿠아슈즈나 3만 원짜리 여행자 보험 따위를 고민했던 게 그냥 장난 같았다. 그동안 그렇게 아끼며 오션뷰를 따지고 최적의 동선을 계산한 게 대체 무슨 의미였던가. 어차피 한순간의 신기루인 것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하하하하.

인생무상의 감정으로 지난 일을 되짚어봤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놀랍게도 이건 최악의 상황이 아니었다. 만약에 우리가 호텔에 미리 메일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Y가 리조트피와 공금 카드의 한도를 고민하지 않았더라면. 행복과 기대감으로만 가득한 채 하와이에 도착했더라면. 하와이에 가서야 이 문제를 맞닥뜨렸을 테다. 그럼 현장에서 너무 당황한 나머지 다른 선택지는 생각도 못하고 얼레벌레 170만 원을 결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생각까지 닿자 어쩌면 메일까지 보내게 한 Y의 갑작스러운 불안은 미래의 Y가 보낸 간절한 경고의 메시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게 최악의 경우는 아니야. 우리는 적어도 5G 통신망 아래에서 새로운 숙소를 찾았잖아. 나는 Y와 함께 소리 내어 웃으며 주말을 마무리했다. 힘들 땐 웃는 자가 일류라더니 하와이 여행이 우리를 일류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월요일이 되자 신한카드에서 회신이 왔다. 아모마 결제 건에 대한 이의제기가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아모마에 결제를 했다는 정확한 증거를 요구했다. 게다가 확인이 되어도 최종 환불까지는 세 달 정도가 걸리며, 결제한 금액을 백 퍼센트 돌려받는다는 보장 역시 할 수 없다고 했다. 보수적인 대답이었지만 나는 그 회신 자체만으로도 기뻤다. 6개월의 제한 때문에 이의제기가 아예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회사 컴퓨터 바탕화면에 폴더 하나를 만들었다. 폴더명은 ‘사기꾼잡기’. 이 폴더에는 우리의 지난 6개월이 데이터로 차곡차곡 쌓일 예정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불행이 찾아오더라도 내가 불행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나는 즐길 자신이 있었다. 출국까지 고작 사흘이 남아있었고 이러나저러나 여행은 곧 시작된다. 아폴론의 태양마차도, 이카로스의 날개도 없지만 어쨌든 비행기는 뜨기 마련이니까.


이전 04화 여행과 인생의 공통점이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