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을 꾸는 월요일
앨런 러스브리저가 지은 <다시, 피아노 Play It Again>이란 책을 지난 설 연휴부터 읽기 시작했다. 가디언지의 편집장이며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 저자가 쇼팽의 곡 중,가장 난해한 곡으로 꼽히는 '발라드 1번 G단조'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드럼 연주에도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앨런은 도전에 성공했고 나는 도전 중이다. '발라드 1번 G단조'에 비하면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는 조족지혈 아니겠는가.
전인권이 특유의 쉰 목소리로 '에히~ 에~'라고 포효하며 곡의 시작을 알린 후, 쿵따쿵따다둥~ 쿵치따치쿵쿵따치~로 시작하는 '걱정말아요 그대'의 전주 부분은 묘한 긴장감을 준다. 전인권은 곡 내내 걱정 말라며 위로하지만 드럼 스틱을 난생처음 만져 본 내게는 이 곡의 연주를 해내야 할 걱정이 차고 넘쳤다.
드럼을 연주하기로 마음먹은 건, 술자리에서의 치기 어린 밴드 결성에서 시작됐다. 작년 말, 동네 포장마차에서 모인 술친구 넷은 같은 곡을 각자 연습해서 2월 말에 합주를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퍼스트 기타 1 명, 베이스 기타 1 명, 드럼은 나 외에도 또 한 사람이 고집해서 나중이야 어찌 됐든 일단 둘이 함께 연습을 시작하기로 했다. 밴드의 이름은 '포클랜드'로 정했는데, 밴드의 이름 또한 실없이 정해졌다. 술자리에서 먹던 안주가 마침 홍어전이어서 밴드 이름을 '홍어전'으로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홍어전이 어떤가? 신중현을 흠모한 일본인들이 만든 밴드 이름은 '곱창전골'아니었던가. 그래도 너무 없어 보인다는 평가가 주류여서 밴드명 '홍어전'은 아쉽게 접어야 했다. 메뉴판을 다시 보니 홍어전의 원산지명이 '포클랜드'로 표기 돼 있었다. 우린 약 5초간의 심사숙고 과정을 거친 후 만장일치로 밴드명을 '포클랜드'로 정했다.
스내어, 베이스, Tom1, Tom2, Tom3 등으로 구성된 다섯 개의 북과, Crash, Hi-Hat, Ride 등으로 구성된 3개의 심벌로 이루어진 드럼 세트 앞에 처음으로 앉았다. 양손에 스틱 두 개를 쥐고, 양 발로 하이햇 심벌과 베이스 드럼의 페달을 밟고 시작한다. 복잡한 프로그램 속으로 들어온 듯 위압감이 든다. 생소한 음표가 어지럽게 배열된 악보 앞에서 주눅부터 든다. 젊은 드럼 강사가 가르치는 대로 드럼을 두드려 본다. 긴장한 티가 역력했던지 어깨에 힘부터 빼라고 말한다.
강사와 드럼을 배우는 시간은 일주일에 한 시간에 불과했다. 어떤 일이든 그렇겠지만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연습뿐이 없다는 걸 안다. 가능한 매일 학원에 들려 연습을 하려 노력했다. 연습을 게을리한 후 강사를 만난 주에는 나도 강사도 부족함을 느꼈고, 학원에 자주 들렸던 주에는 강사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소설가 김연수는 말했다. 재능 탓하면서 그만두겠다고 한다면 핑계일 경우가 많다고.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 때 대개 재능 탓을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재능이란, 괴로운 시간을 견디는 힘이다.
왼손과 오른손이 함께 움직여야 할 때, 가령 스내어와 크래쉬를 동시에 쳐야 하는 부분에서는 따로 움직였고, 함께 쳐야 하는 부분에서는 따로 움직여 엇박자를 만들기 일쑤였다. 특히 발로 쳐야 하는 베이스 드럼의 경우 박자에 맞춰 페달을 밟기 어려웠다. 베이스 음표 두 개가 연달아 있거나 한 음표 사이로 건너 쳐야 할 때는 지나치게 힘이 들어갔다. 악보대로 한 마디를 맞게 연주했다고 해도, 박자의 속도를 정확하게 맞추는 일은 무엇보다 어려웠다. 휴대폰에 깔아놓은 메트로놈 앱을 작동시킨 후 박자 연습을 했지만 시작할 때 보다 중반부에 가면 박자가 빨라지는 일이 잦았다.
지난 월요일. 천신만고 끝에 '걱정말아요 그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연주를 해 냈다. 아무도 봐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연주를 마친 후 벌떡 일어나 양손을 허공에 치켜들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강사는 처음 스틱을 잡아 본 사람 치고는 빠른 편이라고 했고, 포클랜드 멤버들은 너무 늦다고 했다. 누구 얘기가 맞는지 몰라도 난 성취감을 맛봤다. 전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자 연습이 조금씩 재미있어졌고 연습시간도 자연히 늘어났다. 학원에는 드럼 외에도 기타와 피아노 등을 강습했는데, 방음 시설을 해뒀지만 옆방의 악기 소리를 완벽히 차단하지는 못했다. 나와 같은 시간에 연습을 하던 재즈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환상적이었고, 전자기타의 테크닉은 화려하게 들렸다. 드럼 소리는 다른 악기의 음량을 압도했다. 한 달이 넘도록 같은 곡만, 박자를 틀려가며, 시끄럽게 연주하는 소리를 묵묵히 참아준 이름 모를 옆방의 연습생들에게 사과드린다.
2 주 후면 포클랜드 팀원들과 약속한 첫 합주일이다. 가장 궁금한 건 나와 경쟁하는 또 다른 드러머의 연주 실력이다. 나보다 연습량이 적었을 그 친구가 내 실력을 능가하지는 않으리라 짐작해 보지만, 만일 나보다 뛰어난 연주를 했을 때 그 좌절감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약간의 기대감과 다소의 초조감을 안고 오늘도 연습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