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어느 한 짐승을 향한 우리의 비행에 대해

by 엽서시

리포트를 쓰고 있던 2009년 어느 날 밤의 어느 순간. 문득,

각 대륙간의 문명 발전과 가축 가능 짐승의 차이-

교양 수업 리포트 주제와는 상관없이 찾아든 생각이 내 머릿속의 오대양 육대륙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얕은 망상의 수면으로 고개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컴퓨터 화면의 커서가 깜박이는 것을 모르는 체 하면서.

인류의 문명은 농경과 함께 시작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인류의 문명은 목축에서 꽃을 피웠다.

혹자는 목축을 통해 정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고품질의 단백질이 호모사피엔스의 대뇌피질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도 한다.냉장고, 혹은 앞뜰에서 고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인 것이다.

가축을 사육하면서 인류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우제류에 밀려 사라져가는 기제류의 일족이었던 말은 긴 허리에 인간을 태우기 시작하면서 성공한 발굽짐승 중 하나로 떠올랐다. 우제류도 질 수 없었다. 낙타, 라마 등은 물론이거니와 소의 경우 믿을 수 없을 만큼 성공한 발굽짐승 중 하나로 꼽힌다.

설에 따르면, 사실 우리가 가축으로 기를 수 있는 짐승은 몇 속하지 않는다. 가축이 될 수 있는 짐승의 조건은,

1. 온순해야 하며,

2. 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이를 먹고

3. 적당한 크기까지 빠르게 성장하며

4. 사육 상태에서도 안정적으로 번식

해야 한다.

소, 말, 양, 염소, 개, 고양이 들이 바로 그렇다. 가축들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만 각광받는 낙타나 라마의 경우에는 특수한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도 있지만 사육 상태에서 안정적인 번식을 한다고 보기 어렵단다. 즉, 위와 같은 조건의 짐승들은 모든 대륙에 걸쳐 사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문명 발전의 속도는 각각 대륙에 걸쳐 다르게 일어났는데,

유명한 일화로 잉카의 인디오들이 스페인 기병을 조우했을 때, 인디오들은 철이나 화포의 위력보다도 스페인 기병들의 말과 투견 마스티프의 존재에 더 기겁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남아메리카에는 가축이 될만한 마땅한 짐승이 없고, 따라서 인디오들에게는 가축의 개념이 희박했다. 말마따나 지금까지 가축으로 길러지고 있는 짐승 들 중 남아메리카 출신으로는 모르모트나 이구아나 같은 애완동물들이 전부지 가축은 전무한 실정이다.

물론 라마나 바냐냐, 알파카 같은 낙타 류 발굽 짐승들이 있긴 한데 놀랍게도 이 짐승들은 사육 상태에서는 잘 번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알파카의 경우에는 야생에서만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아직까지도 그 털을 얻기 위해서는 야생 상태를 사로잡아서 길러야 한단다.

북아메리카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인디언하면 흔히 떠올리는 광경이 말을 타고 초원을 내닫는 모습이지만 사실 그 야생말들은 스페인에 의해 들어온 것이었다. 인디언들도 역시 인디오들과 마찬가지로 가축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우리가 아는 전사, 사냥꾼으로써의 인디언들은 말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없는 개념이라고 한다. 그전까지는 옥수수를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행복하게 살았지만,

말이 들어오고, 말 위에서 들소를 사냥하게 되고,

수렵과 목축을 시작하려는 그 순간,

3천년 전부터 말을 타온 유라시아 대륙의 노련한 군인들이 인디언들을 덮쳤다. 가축들과 부대끼며 사는 동안 겪었던 천연두, 수두, 콜레라 등의 질병과 함께.

결국 가축의 차이는 문명의 차이를 불러왔고, 결국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양 대륙에 살던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는 내용이 내 리포트 위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가축들이 먹기 쉬운 먹이를, 쇠죽을 쑤고 개밥을 만들고 건초를 만들어 주는 것처럼,

우주의 어떤 우월한 존재가 우리를 가축으로 만들기 위해 소와 말, 양과 염소, 개와 고양이라는 먹이를 던져 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가축인 우리 역시,

1. 온순하고

2. 쉽게 만족하고

3. 적당한 수준까지 빠르게 교육받으며

4. 안정적으로 번식하는

존재를 바라는 가축의 사회를 구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포트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임과 동시에,

온순하지도, 만족스럽지도, 교육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은 생각이었다. 그냥 이상한 생각이었고,

이상한 생각에 빠져 있던 내 자신이 한심해서 잠깐 웃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시가 넘어있었다. 리포트를 한 번 더 살펴보았다. 당연히 엉망진창이었지만 어차피 난

온순하지도, 만족스럽지도, 교육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은 놈이었기 때문에 그냥 이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인간에게 가축을 주는 외계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러다가 자꾸 이렇게 이상한 생각만 하다보면 그 애 말대로 나도 그 이상한 아줌마처럼 미쳐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고,

그 이후로는 아무 기억 없이, 잠이 들었다.

2010년 10월 19일까지 이런 생각은 정말이지 이상한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그 날 이후로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많은 것이 바뀌기도 했고,

바뀌지 않기도 했다.

이 이상한 이야기를 하려면, 그리고 이 모든 이상한 생각의 꼬리를 잡고 따라가다 보면.

-1-

우리는 근원의 공간에서 유래한 존재다.

우리는 생명의 창조자가 아니다.

우리는 질서의 창조자다.

우리는 감시자이며 심판자로서의 존재를 자처한다.

우리의 정의에는 의혹이 없다.

우리는 질서의 정착자요, 보급자다.

-2-

우리 아파트 단지에 살던 이상한 아줌마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상하다는 말이 입안에서 어색해질 때 까지 곱씹어보면, 이상하다는 건 정말 이상하다, 라는 말로 밖에 정의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 해보면 ‘상한’ 건데, 이상하다는 건 그 상한 상태마저 별다르게 상한 느낌을 준다. 아무튼 정상이 아니고, 제대로 되지 않고,

규격화되지 않고, 사회화되지 않고,

그러니까

온순하지도 않은 주제에 불평만 많고 교육적이지도 않고 불안전한 것들을 의미한다.

그 이상한 아줌마는 놀랍게도 이 조건에 딱 들어맞았다. 그야말로 만일 이 아줌마가 짐승이었다면 절대로 가축이 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처녀가 임신을 해도 할 말이 있듯이, 이 아줌마에게도 할 말은 있다. 이 아줌마도 처음부터 이상하지는 않았고, 이 아줌마가 이상해진 이유는

어느 날, 어느 순간 이후였다. 오전의 한가로운 때였다. 시장은 이틀 전 일요일에 봐 놨고, 남편과 딸자식을 각각 일자리와 학교로 보내놓고 늦은 아침을 먹은 후였다. 조용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을 무렵, 아줌마는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작게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TV를 껐다. 아침드라마의 사나운 치정 다툼 소리가 잦아들자 마루에 온통 조용함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그 소리가 들렸다.

수군수군, 수군, 수군수군,

딸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라고 했다. 아줌마 말에 따르면 벌레 기어가는 소리처럼 자글자글하던 이 소리는 마침내는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일정하게 똑, 똑 머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도무지 끊이지 않고 어느 때고 아줌마의 머리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오래된 라디오에서 주파수가 맞춰지는 것처럼, 도통 알아들을 수 없던 자글자글한 소리는 이내 목소리의 형상을 띠기 시작했단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무언가를 호소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명령하려는 것처럼.

알 수 없다. 가끔 침대에 누워 상상해봤지만, 대체 어떤 목소리인지 도통 알 수 없다. 벌레의 발자국을 닮은 목소리. 자글자글 끓는 듯한 목소리.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목소리. 머릿속의 난쟁이가 내게 귓속말을 속삭인다면 그 소리와 비슷할까.

하여간 그 목소리는 점점 그 빈도도 크기도 커져가고 있었다. 이제 아줌마는 그 목소리 비슷한 다른 소리에도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자다가도 딸이 잠그지 않은 화장실의 물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곤 했다. 모기나 파리의 잉잉, 붕붕거리는 날갯짓에도, 잎이 넓은 가로수를 뒤흔드는 바람 소리에도 벌떡 벌떡 일어났다.

차라리 뭐라고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라도 있으면 좀 나았겠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목소리였다. 발음도 성조도 불분명한 목소리였다. 그렇지만 점차 목소리의 꼴을 갖추면서, 그 목소리가 아줌마에게 바라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명령. 명령이었단다. 부탁도, 설득도 아닌 명령.

목소리는 밤이나 새벽에도 아줌마를 못살게 굴었다. 어느 날 아저씨는 새벽엔가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울고 있는 아줌마를 도저히 눈감을 수 없게 되었다. 새벽을 이은 추궁 끝에야 아저씨는 제 마누라의 고통을 어림잡을 수 있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라고 말하는 그 와중에도 머릿속의 목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하도록 하라, 수군수군, 당장, 수군수군, 하지 않으면,

날이 밝자 아줌마는 먼저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아줌마의 귀는 정상이었다. 당연했겠지만. 의사는 정신과를 권유했다. 그리고 큰 병원에 갈 것을 권유했단다. 버스에 올라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두 시간이 넘는, 그리고 십 몇 만원이 넘는 상담이 끝나자 의사는 마치 미리 적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아줌마의 증상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강박증을 비롯하여 과대망상, 정신 분열, 환청 증세를 동반한 정신병이었다. 의사는 아줌마가 상담이나 약 등 집에서 요양으로 치료할 수 있는 단계를 분명히 넘어섰다고 진료했다.

아줌마는 말로만 듣던 정신병동에 가게 되었는데,

입원 희망서와 몇 몇 각서를 쓰던 아줌마의 어깨가 왈칵 떨렸다. 미친년, 이라는 세 글자가, 머릿속에서 아무리 떠올라도 결코 입 밖으로 내뱉고 싶지 않던 그 낱말이 입 바깥으로 새나오는 순간 아줌마는 이때껏 보이지 않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단다. 그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옆에서 담배만 뻑뻑 빨고 있던 아저씨가 마침내 아줌마를 후려 안고 꺼이꺼이 울어대는 것도 모르게 울었단다. 당신, 울지마, 당신 왜 울어, 하던 아저씨 앞에서 아줌마는 입원은 때려 치고 내 이 목소리를 참지 못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저씨와 딸 자식과는 떨어지고 싶지 않았단다.

그때, 아저씨 고향 사람이었던가, 먼 친척이었던가 하는 한 사람이 용하다는 웬 무당을 소개했다. 무슨 산, 무슨 산서 무려 셋이나 몸주를 갖고 있다는 무당이랬다. 의정부 선녀보살, 도봉산 애기보살, 알게 모르게 정치인들도 선거철이면 봉투를 들고 찾아온다는 종로서 박통을 몸주로 모시고 있는 장군무당, 청계산 맥아더무당, 일간지에도 광고를 올리고 있다는 금정산 맥아더 무당까지 자기가 직접 몸신을 내려준 무당만 해도 도합 다섯이 넘는다는 용한 무당이었다.

이 용한 무당은 아줌마를 보자마자 얼굴에 팔자로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 무슨 근심이 가득하다, 며 첫 번째 ‘용’하더니, 두 번째로 쓰러져 앉는 폼 새를 볼작시니 남편, 자식, 쓰러져가는 집안 기둥 문제가 아니라 제 몸뚱이에 묶인 일이로세, 하고 혀를 차며 두 번 째 ‘용’ 했다. 무릎이 땅에 닿기도 전에 두 번이나 용한 걸 보고 아저씨 고향사람이래나 친척이래나 하는 사람은 무당에 혼이 팔린 듯한 눈빛으로 용하다, 용해를 거듭 되풀이했단다. 아줌마 얘기를 들은 무당은 혀를 차더니, 몸신이 왔네 그려 하며 세 번째로 ‘용’했다.

무당의 결론은 하나였다.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신내림을 거부하면 이렇게 몸주가 되어야 할 신이 영이 되어 그 대상을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무당이 용이 되는 동안 아줌마는 봉이 되어 결국 무려 1천5백만 원짜리 신내림 굿을 받기로 했다.

무당은 신내림 굿이란 원래 신이 내린 그 장소에서 해야 용하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안타깝게도 805호 동 대표 아줌마가 독실한 모 교회의 신자였던 고로, 신 내림을 받았던 207호 거실이 아닌 그 거실이 올려다 보이는 아파트 앞 잔디밭에서 굿판을 벌이게 되었다.

내 생각에는 805호 동 대표 아줌마 역시 이상한 사람 중 하나였지만, 어머니와 같은 교회를 다니는 일종의 어머니 친구였던 고로 그녀에 대한 내 개인적인 평가는 삼가도록 하겠다. 아무튼 냉소주의자이자 무신론자인 내 동생은 신이 내려온다면 가장 반가워야 할 교회 사람들이 아니냐며 아마 신이 내려오면 지들이 가장 먼저 개박살날 걸 알고 있기에 저렇게 신이 내려오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니냐는 이론을 내세웠다. 어머니가 흥분해서 동 대표 아줌마랑 통화하는 걸 엿들었을 때는 그 신이랑 이 신이랑 뭔가 서로 다른 신이었던 같았지만.

굿판은 길일을 잡고 정오에 열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어느 날 저녁 상 앞에서 들을 수 있었다.

당일 날 정오, 아침 댓바람부터 무당이란 사람이 알록달록 색동옷을 입고 말 그대로 난리굿을 떨어댄 통에 동네 사람들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산으로 몰려들었다. 뱀 발을 덧붙이자면 진짜로 떡을 주긴 줬단다. 그렇지만 가는 떡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건 옛말에 불과하고, 떡을 우물거리며 수군거리는 동네 사람들 목소리 안에서 아줌마는 이미 미친년으로 동네 공인을 받고 있었다. 그네들 말에 따르면 신내림 굿이 끝나면 아줌마도 무슨 보살이 되어 앞 산 범 바위 앞에 자리라도 잡을 판이었다.

아무튼 한 시가 가까워졌을 무렵 슬슬 굿판도 판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슬슬 해가 사람들 머리 꼭대기를 지르고 슬슬 무당의 흰자위가 눈동자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어디선가 벼락과 같은 노성소리가 들렸다. 동네 사람들은 무당이 입도 뻥긋하지 않고 그런 고함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보며 무당의 신기에 놀랐을 때, 돌진하는 황소 같은 검은 그림자가 굿판으로 뛰어들었다.

정녕, 그 고함은 장군의 고함이었고 교인들의 말에 따르면, 람세스의 군대를 등진 모세의 벽력같은 고함소리였다. 동네사람들이 홍해처럼 갈라진 것은 물론이다. 바로 이 동네의 장군이나 동네 교회의 범접할 수 없는 장군신인 805호 동 대표 아줌마였다.

후일 그 자리에 있었던 몇몇 교인들의 말에 따르면 그 싸움은 요한과 천사의 씨름을 방불케 했단다. 동이 틀 무렵까지 계속 된 그 씨름은 요한과 육화한 천사, 두 장정 사이에서 간혹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만이 울리는 조용한 싸움이었겠지만 이 싸움은 달랐다.

아줌마와 무당 간 상호 머리카락을 공유하는 처절한 몸싸움의 광경과 그 소음은 감히 인간의 언어로 묘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모든 구경꾼들의 평이었다. 다시 뱀 발을 덧붙이자면 오히려 굿판보다도 이 때 구경꾼이 더 많았다는 어머니의 말을 덧붙이고 싶다.

동 대표 아줌마는 놀랍게도 결코 장군신을 비롯하여 세 명이나 신을 모신 무당과의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게 바로 진정한 삼위일체의 힘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너무 805호 동대표 아줌마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녀의 가슴은 이단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는 동시에 끓어 넘치는 정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아줌마의 가슴이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넘쳐흐르는 정의감이 일곱 바구니하고도 반 바구니를 채우는 아줌마기도 했다.

나중에 듣고 보니 204호 아줌마네 형편도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대충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동 대표 아줌마는 아무리 무당이 적그리스도의 화신이라 할지라도 204호네 마음만 편해진다면 넘어갔을 것이다. 충분히 그럴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 굿판이 1500만원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가는 순간, 무당은 단순한 적그리스도의 화신이 아닌, 불쌍한 사람 등 쳐먹는 ‘사기꾼’ 적그리스도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 성전에서 동 대표 아줌마는 적그리스도의 머리 끄댕이 한 줌을 신의 전당에 바칠 수 있었다. 둘은 조금 헐한 머리를 한 채 경찰서까지 갔다. 일방적인 동 대표 아줌마의 폭력이라기엔 사실 장군 신을 모신 무당도 만만치 않았고, 후반전에 박수무당도 싸움판에 끼여 든 것을 때 마침 경찰이 본 바람에 동 대표 아줌마도 결코 불리하진 않았다. 어쨌거나 적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신자는 합의를 했고, 어쨌거나 204호 아줌마도 신내림 굿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나중에 듣기론 805호 동대표 아줌마가 그 때 굿판을 망친 것을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동 대표 아줌마의 순교 끝에 ‘어린 양’은 ‘사탄’의 꼬임에서 벗어났지만, 그 대신 ‘어린 양’은 성경책을 들고 줄기차게 찾아드는 동 대표 아줌마에게 시달려야 했다. 동 대표 아줌마는 그 목소리를 사탄의 목소리로 규정하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러나 장장 2시간이 넘는 기도와 찬송가, 그리고 직접 204호로 찾아온 목사의 안수기도에도 불구하고 아줌마에게 들린 사탄은 가실 줄을 몰랐고, 오히려 가버린 것은 목사의 목소리였다나.

그렇지만 안수기도와 찬송가가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목사의 중얼거리는 기도소리가 머릿속의 자글자글한 목소리 높이와 일치하는 순간, 아줌마는 그 목소리가 ‘또박또박하지는 않지만 아슴푸레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야 제대로 주파수를 찾은 것처럼, 목소리는 점차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알게 된 것은,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고, 그 목소리들의 정체도 알 수 있었다.

목소리들은 자기들이 공간 멀리에서 온 자, 라고 주장했다. 즉 우리말로 하자면 다른 별에서 온 놈들이고, 한자로 하자면

外界人이었다.

아줌마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는 순간, 그 새끼들 외계인 아냐, 씹쌔끼들, 하고 외치던 녀석이 불현듯 떠오른다. 내 불알친구, 로 정의할 수 있는 그 녀석이 지구인으로서 외계인에 대해 내뱉은 첫 의견이었다.

아줌마의 말을 들어보면 정말 그 외계인들은 씹쌔끼였다. 한 두 번 들어본 게 아니지만 정말이지 이 만큼 상황에 적절한 씹쌔끼는 그 이후로 들어 본 적이 없다. 십새끼도 아닌 씹쌔끼. 이 이상 동조할 수 있는 씹쌔끼에 대해서는 다시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씹쌔끼들의 요구는 요약하자면 두 가지로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자랑을 포함한 저들의 모든 말을 지구인들의 언어로 그대로 기록할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들의 계시를 지구인들에게 널리 알릴 것.

아줌마는 되는 대로 외계인들의 계시를 공책에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두 번째 조건에서는 망설였다. 805호 아줌마의 선전으로 동네에서 아줌마의 위상은 아직까지 이상한 아줌마라기보다는 불쌍한 아줌마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갑자기 아줌마가 외계인들의 계시를 널리 알리고 다닌다면?

강박증, 과대망상, 정신 분열

같은 단어들이 UFO처럼 아줌마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아줌마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아줌마는 오전에서 정오 사이 동네 입구에서, 또는 지하철 출구 앞에서 외계인들의 계시를 기록한 인쇄물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비록 사람들이 드물 때긴 했지만,

어머니를 비롯해서 몇 교인들이 805호 동 대표 아줌마에게 어떻게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눈치를 줬지만 동 대표 아줌마는 침묵으로 아줌마의 기행을 인정 내지는 동정했다.

그렇지만 이제 아줌마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질병에 걸린 가축처럼. 또는 가축이 될 수 없는 짐승처럼. 모두가 꺼려하는 존재가 되었다. 양계장 안의 닭들에게 야생 꿩 만큼이나,

아파트 단지에서 아줌마의 존재감은 나날이 커져갔다. 닭들의, 아니 동네 아줌마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 속에서

아줌마는 이제 온순하지도, 만족스럽지도, 교육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은

‘이상한 아줌마’였다.

온순하고, 만족스러우며, 교육을 신뢰하고, 안정적으로 번식하는 닭들 사이에서 이제 아줌마는 왕따나 다름없었지만,

양계장 안이 꼭 그런 닭들로만 가득 차있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아줌마가 이상한 인쇄물을 배포하고 있던 무렵 나와 내 불알친구인 녀석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교육의 의무를 갖고 태어난 우리는 이른바 양계장 속의 중병아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미 몹쓸 병이란 병은 모두 걸려버린 다른 의미에서의 중병앓이였다.

질풍노도, 부유하는 정체성과 반항심, 2차 성징 같은 중병들이 조류독감과 구제역과 돼지콜레라, 광우병을 모두 합친 것 보다 더 강한 전염성으로 우리를 칭칭 얽어 메고 있었다.

우리를 중병아리로 보고 싶어 했던 어른들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내쳐졌다. 사실 우리도 우리가 가진 전염성을 알고 있었기에 순순히 그 살처분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의미에서 죽지 않기 위해.

다행인 것은 그래도 우리가 말마따나 사람 꼴을 하고 있었기에 산채로 땅에 묻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를 바라보는 교사들의 눈빛은 분명 그들이 우리를 차가운 땅 속에서 산 채로 묻고 싶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법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가정은 우리를 지켜줄 수 없었는데 그건,

우리가 집에서도 내놓은 자식들이었다.

당시의 사회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무튼 중도주의가 멍석을 피면 실용주의가 굿을 노는 판이었다. 떡? 구경꾼에게 떡을 주는 인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가정도 지배하지 않았나 싶다.

뭐라 뭐라 단언하지는 않겠다. 어쨌거나 특히 우리 부모님 두 분은 시대가 요구하는 강한 실용주의자들이었다. 나와 동생에 대해서는 고전파 자본주의, 즉 애덤스미스의 자세로 초지일관했다. 이를테면 보이지 않는 손이 날 잡아갈 때까지 날 방치해둔다는 식이었다.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런 놈들 안 잡아가고.

어머니의 푸념이었다. 그렇지만 사실 눈앞의 교사와 부모도 어쩌지 못하는 나를 귀신이나 보이지도 않는 손 따위가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했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눈총을 즐기며 집에서는 먹성 좋게 식탁에 앉아 두 그릇 씩 밥을 먹고 학교에서는 햇빛 잘 드는 1분단의 자리에 책을 베고 잠들곤 했다. 밤이 되어 그들이 잠이 들면 우리는 눈을 떴고,

그때도, 그랬다. 고2 겨울방학. 달이 밝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우린 야자를 빼먹었다. 사실 뭐 방학 야자 따위를 빼먹는데 이유씩이나 있을 리는 없고, 사과가 땅에서 떨어지고 가을이면 잎이 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치나 순리로 보는 것이 적합했다.

유달리 달이 밝은 밤이었다. 귀신 따위도 돌아다니지 못할 만큼 밝았다. 이정도 달빛 아래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있을 리 없었다. 학교를 나와 PC방에서 시간을 때우고 저녁을 컵라면으로 대충 때웠다. 그렇지만 아직도 집에 가려면 한참을 더 때워야 할 시간이 많았다. 근처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낄낄거리며 뻑뻑 담배를 태우며 우리의 남은 인생을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가 뱉어대는 침들이 시멘트 바닥을 둥근 달 모양으로 적시고 있는 순간,

학생들, 시간 있어? 하는 목소리가 우리 뒤통수를 찰싹 내리쳤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아본 그곳에는 204호 아줌마가 서 있었다.

아줌마가 204호 미친년으로 명성을 떨치는 동안 나 역시 소소하지만 ‘403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대놓고 담배를 피워대는’ 걸로 끗발을 날리고 있었다. 이른바 우리 어머니와 805호 동 대표 아줌마, 나아가서 삼락 교회 부녀회 모두의 걱정거리였던 이 몸이다. 우리 둘의 만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유비와 제갈 공명의 만남, 한신과 유방의 만남. 삼장과 손오공의 만남이고 퇴계와 율곡의 만남이었다. 즉 전설 속의 주인공과 신화 속의 주인공이 만난 셈이었으니 포도밭에 복숭아꽃이 떨어질 만 했으나, 현실은 침에 젖은 시멘트 바닥만큼이나 차갑고 초라했다.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입에 담배를 꼬나문 채로, 아줌마는 손에 인쇄물을 든 채로. 버림받은 닭처럼. 구덩이에 던져져 머리 위로 한 삽의 흙이 떨어지기 전처럼.

녀석은 우리 동네에 살지 않았다. 버스로 두 정거장 정도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살았기 때문에, 녀석은 우리의 눈빛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녀석은 너 이 아줌마랑 친하냐, 라는 말로 우리 사이의 감정을 짐작했다.

녀석도 본질적으로 버림받은, 우리가 닭이라면 녀석은 아마 오리, 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셋은 아파트 사이에 둘러싸인 구덩이 같은 이 놀이터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아줌마의 사연을 듣는 동안, 벤치 아래에서 나와 녀석의 침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달이 서서히 그림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요?”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녀석이 침을 뱉고 난 후 물었다. 씹쌔끼, 의 외침처럼 녀석의 물음은 짧고 전투적이었다.

“얌마, 그러니까 아줌마가 외계인한테 괴롭힘을 안당하려면 우리가 아줌마 말을 들어줘야 한다 이거지 않냐.”

내 목소리였다.

그 만남이 있은 후로 아줌마와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그 놀이터에서 만났다. 약속을 정했던 건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냥 순리나 이치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아줌마는 꼬맹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듯이 우리에게 공책에 적힌 외계인들의 계시를 읽어주곤 했다. 만 1년 정도, 우린 아줌마를 통해 외계인들의 계시를 들었다. 아줌마가 계시를 전하고 나면 우리끼리의 강평이 있었다. 어느 신의 계시도, 이처럼 혹독한 강평을 겪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외계인을 비난하는 데 우리의 세치 혀를 놀렸다. 우리의 혀와 성대는 용맹한 기사의 창칼처럼 외계인을 마구 썰고 난도질 해댔다.

아줌마는 간혹 우리 욕의 수준에 놀라기도 했지만 주로 잠잠히 웃었다. 아마 속으로는 조금 통쾌해 하지 않았을까.

우리도 아줌마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담배를 입수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마치 외계인들과 같은 선생님들, 가정사 등등. 아줌마는 욕설을 퍼붓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비난의 수준을 유지하곤 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도 잠잠히 웃었다. 조금은 통쾌해하며.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둘러싸인 구덩이 안에서 두 닭과 한 오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일 년을 보낸 셈이었다. 그래서 그 1년 동안 우리에게 흙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3-

우리는 질서자다.

우리는 도덕자다.

우리의 기준이 법과 공간을 초월한다.

우리는 우리가 뿌린 씨앗이 거둘 열매를 짐작한다.

우리는 거친 풀과 조악한 종자를 다루는 마음으로

우리의 심판을 짐작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심판을 짐작하지 못하리라.

-4-

2년이 흘렀다.

2년 동안 뭐 이러저러한 일들이, 이 땅에서 고등학생으로 사는 사람들이 똑같이 겪은 일들이 있었다. 수능을 봤다. 모의고사 점수가 나오던 때는 교무실에서 머리를 맞았지만 수능 점수가 나오던 날은 맞지 않았다. 교사는 그냥 한숨을 쉬고 날 흘겨볼 뿐이었다. 전문적인 대학에 갔다. 따라서 전문적이지 않던 고등학교 시절은 금방 잊었다.

전문대학이라고 해서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았고, 대학이라고 해서 크게 배우지도 않았다. 사실 아무것도 다르지 않았다.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잊었는지도 모른다. 외우고 재미없고 지루하고 쓸쓸하다는 점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은 똑같았지만,

여자가 있었다.

나는 수평아리만 모아 놓은 양계장에서 중병아리 시절을 보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자라는 존재는 대단히 놀랍고도 흥미로운 존재였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여자란 대부분 예쁘고 가냘프고 팔랑거리고 잘 웃었다.

난 약간 변해버린 폐와 조금 구겨진 노트를 든 대학생이었다. 문예창작과, 청소년기 또래보다 지나치게 많이 흡입한 타르와 상상력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론 학교에 갇혀있던 다른 또래들보다 월등한 내 상상력의 원천이 외계인에게 괴롭힘 당하던 한 아줌마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또 문예창작과가 다른 과보다 등록금이 쌌다는 것도 내가 이 과를 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당연하리만큼, 당연하게도 문예 창작과에서는 문예창작을 하지 않았다. 비슷한 걸 하는 수업은 있었다. 뭐 산관없었다. 이미 세상은 내게 빈대떡이나 붕어빵 같은 이름으로 날 여러 번 속여먹었다. 그래서 놀라지 않았다.

이 당연한 대학생활에서도 무엇보다 내가 빼 놓을 수 없는 이야기라면.

그녀는 주로 검은 옷을 입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그녀는 내가 써는 조잡한 습작을 읽어주는 유일한 여자이기도 했다. 이제 고3이 된 동생 새끼와 그녀, 내 글을 읽는 유일한 독자들이었다. 물론 그녀도 내 글에 좋은 평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배은망덕한 냉소주의자 무신론자 동생 새끼처럼 아무 말도 없이 방바닥에 원고를 집어던진다던가 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게 뭐야’하면서 웃었는데, 그 모습은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 이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그녀를 보고난 날이면 정맥에 피 대신에 활자가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가끔은 그녀에게 그 이상한 아줌마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뭐야, 그거 또 네가 지어낸 얘기지? 하며 그녀는 웃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그녀를 보면 담배를 물지 않아도 니코틴이 심장에서 뿜어 나왔다. 정말로, 폐활량도 줄어든 것 같았다. 언제나 숨이 차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그 어떤 담배보다도 그녀는 내 시간을 빨리 흐르게 했다. 그녀가 웃는 그 순간만으로도 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또 있다.

-4-

2010년 11월 19일로 기억한다. 아니, 20일이던가. 어쩌면 19일에서 20일로 넘어가는 그 사이였는지도 모른다. 정확히 하기 위해서는 자료를 조사해도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 내가 겪은 일이기 때문에 난 철저히 기억에 의존하려 한다.

아무튼 그도 아니면 19일에서 20일이 넘어가는 바로 그 순간 즘이었다. 내가 대학교 1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이었다. 아직 그리고 난 그녀에게 고백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에겐 10개월가량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헤어졌고.

당신이 지구인이라면 왜 하필 그 시간, 11월 19일에서 20일로 넘어가는 바로 그 사이였냐고 물어 볼지 모른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건 그 녀석들이 외계인이었기 때문이다.

지구 곳곳에 깡통 모양의 은빛 물체들이 허공에 떠 있었다. 은빛 물체의 길이는 약 10M정도 되어 보였다. 말 그대로 둥근 깡통 모양이었다. 깡통의 양 끝에는 오목한 홈이 세 개가 파여 있었고, 그 이상의 파격적인 디자인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한 나머지 파격적이라고 할 만 했다. 더러 밤에 발견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다음날 아침 속보를 듣고서야 창문 밖에 떠있는 그것을 보았다. 난 지금 ‘대부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렇다.

그것들은 곳곳에 떠있었다. 신문에서 서울에서만 무려 13,072갠가가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왜 13,072개야, 하고 지구인은 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할는지 모르지만, 역시 이유는 없었다. 그건 그 녀석들이 외계인이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아무런 이유도 의미도 없는 은빛 깡통들이 갑자기 하늘을 메우고 둥둥 떠다니는 것을 봐야 했다. 정말 생긴 것마저 아무 이유도 의미를 찾을 수 없게 생겨먹은 것들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혹시 한국에서만 이것들이 나타났는지 궁금해 했다. 금방 뉴스가 나왔다. 외계인들은 정말 아무런 이유도 의미도 찾을 줄 모르는 재미없는 놈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전 세계 적으로 무려 10억여 개가 나타났다는 뉴스 속보에 사람들은 흥미는 물론이요, 입맛마저 잃었다.

외계인들은 지구상의 어떤 장소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외계인들에게 뉴욕이나 요하네스버그나, 강남 청담동이나 경기도 연천군 중면이나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하나의 특징은 대개 그 깡통들의 수는 각 도시의 주민수와 비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막이나 정글의 오지 같은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것을 보면, 외계인들은 인간이 어느 곳에 사는 지 이미 우리에 대해 정보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사실 우리가 이미 보이저를 비롯하여 숱한 우주 탐사선을 통해 우리의 정보를 쏴 보낸 걸 생각하면 외계인들이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당연하지만.

우리는 외계인들에 대해 무얼 알고 있었냐고 묻는다면, 깡통들에 대해 NASA의 중대 발표가 무려 두 차례 있었다. NASA는 물론 자신들은 이미 이 깡통들이 올 것을 예측했으며, 하는 헛소리를 늘어놨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귀로 이게 무슨 세균이 비소 씹어 먹는 소린가 하며 흘려들었다. 어쨌거나 나사보다 훨씬 눈에 띄는 것들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기 때문에,

그 물질이 외계에서 온 것임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분석결과 그 물질은 전도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단단하고 견고한 것도 아니었다. 딱히 가볍거나 비중이 낮거나 무언가 특별한 점도 없었다. 어쨌거나 결코 쓸모가 없는 물질임에 분명했지만, 그래도 외계에서 온 첫 물질이기 때문에 무슨 새로운 원소기호가 붙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은빛 물질들은 햇빛과 산소, 그리고 알 수 없는 지구의 무언가에 반응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시간 자체에 반응했는지도 모른다. 그 물질들을 보존하려는 어떤 노력도 무시하고 물질들은 이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정말 쓸데없는 물질이었음은 분명했다. 결국 나도 사람들도 그 쓸데없는 물질의 쓸데없는 원소기호는 잊어버렸다.

어쨌거나 이 깡통들이 사라지기 전에는 나름 사람들은 깡통들에 대해 걱정했다. 일부 사람들은 이 깡통 형태가 마치 방사능 폐기물통과 닮은 것을 우려했다. 일부 몰지각한 외계인들이 청정한 지구로 자신들의 산업 폐기물을 몰래 방류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동대표 아줌마가 불같이 화를 내야 했을 텐데.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은 그러니까 깡통은 화요일날 버려야 하지 않는가! 11월 19일은 무려 토요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어딘가의 아파트에서는 토요일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지도 모르지만.

NASA는 첨단과학기술을 이용해 깡통을 이모저모 요모조모 분석했다. 사실 깡통이 위험하면 가장 위험한 건 어쨌거나 그걸 다뤄야 하는 NASA인 것이다. 점잖은 사람들은 NASA가 깡통을 딸 때까지 허공에 떠있는 그 깡통을 그림의 떡처럼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다. 물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깡통의 은빛 표면에서 부서지는 햇살 때문이었다.

NASA의 안이 텅 비어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위험한 방사능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긴 외계인이 이곳까지 이 깡통들을 보낼 수 있는 기술이 있는데도 아직 쓰레기를 불법 투기하는 수준일리 없었다. 우리라면 몰라도.

그뿐이랴. NASA는 그 안에서 생체반응을 발견한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흥분했다. 외계인들의 산업폐기물이 아니었다니. 게다가 생체반응. 외계인들 망명자라도 되는 것일까? 피난민? 그도 아니면 불법체류자? 도대체 외계인들이 지구에 왜 나타난 거지? 말도 없이?

과연 사람들은 흥분했다. 지구는 온통 외계인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잠잠한 것은 일부 종교단체들 뿐이었다. 유명한 인사들도 의미 없는 질문들을 던져댔다. 저 외계인들이 왜, 뉴욕도 아니고 요하네스버그도 아니고 전 지구상에 동시에 수없이 쏟아져 나온 건 도대체 나타난 건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가.

마침내 NASA의 용맹스런 직원들이 전 세계의 TV가 생중계 되는 앞에서 깡통 하나를 땄는데,

지금 그 깡통의 숫자도 원소 기호도 잊었지만 그 깡통이 열어지는 순간은 내 가슴에 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그 순간만은 잊을 수 없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으니. 절단기가 은빛 깡통을 찌그러트리며 깡통을 잘라 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외계인들이 들어있었다. 오, 무려 네 명 아니, 네

마리가,

들어있었다. 외계인들을 묘사하자면. 어쨌거나 그것은 지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명체였다. 그래도 지구에 있는 단어로 그 외계인들을 묘사해보자. 아, 빼먹을 뻔 했다. 깡통 안에서는 심한 악취가 났다, 고 한다. 물론 NASA의 직원들은 방호복을 입고 있었으니 악취를 느낄 리 없었지만. 아무튼 우리 동네 깡통을 딴 소방수 아저씨들의 말이 그랬다. 참고로 우리 동네 깡통에서는 무려 여섯 마리나 되는 외계인들이 걸어 나왔다.

외계인들에게서는 심한 악취가 났다.

외계인들의 살빛은 흰 빛이 도는 연한 분홍색이었다. 외계인들의 발끝이나 코 끝, 귀 끝 등 끝에서는 조금 더 붉은 색을 띄었다. 그리고 외계인들의 온 몸에는 뻣뻣하고 흰 털들이 듬성듬성 온 몸을 덮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외계인들의 몸은 둥근 유선형의 몸을 띄었으며, 외계인들의 네 발은 땅을 딛고 있었다. 외계인들의 발은 아니, 발가락은 두 개로 갈라져 있었는데 꼭 소의 발과 닮았다고 했다. 다리와 꼬리는 짧은 편이었고, 삐죽한 주둥이가 있었다. 몸무게는 200~250Kg정도가 평균이었다고 한다.

얼굴에는 주름진 들창코가 있는 삐죽한 주둥이가 있었고 역시 주름진 눈과, 크고 펄럭이는 귀를 갖고 있었다. 물론 이빨은 뾰족한 편이었고 일부는 큰 엄니를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온순한 성격이었다. (일부 사나운 성격의 녀석들이 사살되기도 했다는 슬픈 후문이 들려왔다.) 그리고,

잡식성이었으며, 식성이 좋아 대단히, 대단히 많이 먹었다. IQ는 약 80정도, 지구로 치면 인간과 돌고래와 침팬지와 코끼리 다음으로 머리가 좋은 동물이 되었을 거란 말도 있었다. 일부 동물학자들은 이 외계인에게 땀샘이 없어 더위와 추위에 민감한 점을 들기도 했다. 이들 피하의 두꺼운 지방층은 어쩌면 이 때문이며, 또한 이들의 고향별의 온도가 온난했을 것을 의미하지만 일반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주장했다. 진화론자들은 이에 질세라 이들로 보아 이들 고향별의 생명체들 역시 땀샘이 없을 가능성도 있지만 사실 일반화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놀랐다. IQ를 봐도, 그리고 생김새를 봐도 이런 우아하지 못한 동물들이 이 깡통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올 가능성은 전무해보였다. 일부에서는 이 외계인들의 고향 행성이 파괴되면서 이들의 조상들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별인 지구로 항로를 조절했고, 오늘날 지구에 도착한 후손들은 이들의 조상보다 엄청나게 퇴화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했다. 우리 태양계와 가장 가깝다는 은하에서 왔다고 생각해도, 지구에 도착하려면 수천만 년이 흐른다는 계산과 함께.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깡통에서 발견된 녀석들의 배설물을 분석한 결과, 지구의 쌀과 밀, 콩, 옥수수 등으로 분석됐다. 과연, 지구에서 그렇게나 많이 식량이 생산되는 데도 아직도 기근이 일어나는 이유를 사람들은 납득했다. 바로 이 녀석들이 까먹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NASA는 혹시 미국 정부의 협력 하에 NASA가 그동안 외계인들에게 식량을 제공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에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뭐 사실 깡통을 딸 때 하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NASA가 그런 일을 저지를 만큼 대단해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이 외계인들이 지구의 곡식으로 살을 찌울 수 있었는지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지구인들이 쫄쫄 굶어 어딘가에서 수 천 명이 죽어가는 동안 이 녀석들이 깡통에서 먹어치웠을 곡식들을 생각하면 찝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곡식을 빼돌리는 능력 외에 외계인들에게는 별 다른 능력은 없어보였다, 아니, 사실 아무런 능력도 없었다. 이 녀석들은 이제 더 이상 곡식을 몰래 빼돌리기도 귀찮았는지, 지구인들이 제공해주는 우리와 먹이에 만족했는지, 그저 많이 먹고 싸고 더우면 누워있고 추우면 돌아다닐 뿐,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실망했다. 지구에서 처음으로 외계인을 맞이하는 지구인이 되겠다던 미국의 대통령처럼 한국에서 처음으로 외계인을 맞이하려던 한국의 대통령도 큰 실망을 겪었다. 외계인은 거의 한국 대통령의 손을 물 뻔 했다. 사회적으로 이들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몇몇 국가에서는 이 새롭게 등장한 외계인들에 대한 반발 운동이 일어났다. 어떤 종교 지도자가 이 외계인을 금지하자 곧 그 국가들에서는 대대적인 외계인 학살이 벌어졌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반대여론이 일었지만,

이대로 우리가 외계인을 마냥 먹여 살리기에는 더 이상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어떤 종교의 누구라도 하고 있었다. 몇몇 과학자들은 이 외계인의 몸의 구성성비가 대게 고품질의 단백질과 지방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으며, 놀랍게도 유전자의 구성이 우리와 흡사하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뒤이어 몇몇 식품공학자와 농학자들이 이 외계인의 맛(?)이 상당히 훌륭하며 이들의 생육속도도 괜찮은 편이라 일부 품종을 개량하여 가축으로 개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연구결과를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한 생명공학자는 이 외계인들의 장기를 꺼내어 대체 장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고 정부의 투자 하에 대대적인 연구에 들어가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 외계인들의 임신기간은 길어야 4개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 배에서 나오는 새끼는 무려 6~12마리였다. 암컷 외계인의 경우 임신한 새끼 수만큼 배에 젖꼭지가 새로 생기기도 했다. 정말 외계인처럼. 물론 긴 시간동안 관찰을 한 건 아니었지만 짝짓기나 번식기가 따로 없는 모양이었다. 녀석들은 원래 자신들의 별이라도 되는 양 지구에서도 자연스럽게 번식해나갔다. 그래서 산업화된 외계인들 2세는 외계인 개량종이라는 명목 하에 농장과 실험실로 들어갔다. 물론 1세대 외계인들은 여전히 정부가 마련한 우리 안에서 살고 있었다. 우린 이렇게 외계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라는 듯한 태도였지만. 사실 이제 1세대든 2세대든 외계인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외계인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연구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2011년 4월 12일이었던가, 하는 날은 심지어, 강원도 모 마을에서 처음으로 정부 주도하에 이 외계인들 사육 농장이 처음으로 언론에 선보이기도 했다. 외계인으로 강원도를 살려야죠, 라는 고딕체 제목으로 정치인들이 외계인의 개량종의 고기를 맛나게 구워 먹는 모습과, 우리에서 뛰노는 외계인의 개량종의 모습이 보였다.

외계인을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지, 정부는 농림부 차원에서 행사를 벌였다. 온갖 이름들이 다 나왔다. 사람들의 상상력에 다시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돝, 되야지, 대지, 돗, 도티, 데아지, 도투, 도애지, 뒈야지, 똘또리, 똘또지, 냉가리 등의 이름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결국 외계인을 부르기로 한 말은 따로 있었지만.

학명은 Sus scrofa domesticus로 붙여졌다. domesticus, 길들여졌다는 그 낯익은 말이 섬뜩했던 것도 사실이다.

-5-

우리는 계시자다.

우리는 심판자다.

우리는 우리의 심판을 가리지 않는다.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 순간은 가볍지 않다.

그 순간은 가혹할 것이다.

-6-

그러던 어느 날이었던가, 그날도 밤을 새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핸드폰이 웅, 하고 울렸다. 모르는 숫자가 아니었다. 액정 화면에 뜬 것은 녀석, 녀석의 이름이었다.

“나, 군대간다.”

하고 녀석은 전화로 웃었다. 씹새끼, 연락도 안하고 사냐는 녀석의 말에 그러는 너는, 새꺄, 하며 웃었다. 불알친구. 사실 불알도 그렇다. 가장 중요한 거지만 팬티를 들추기 전까지는 거기에 붙어있는지 떨어졌는지 신경 쓰지 않고 산다. 그렇지만 떨어지면 가장 아픈 게 불알 아닌가.

전화로 약속을 잡았다. 녀석이 넌 언제 가냐고 물었다. 그 말에 난 때가 되면 어련히 가겠지, 하며 웃었다. 때가 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었다. 내 생각엔 앞으로 영원히 그 때가 올 것 같지 않았지만.

낮술을 먹었다. 그러고 나니 저녁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놀이터에서 담배를 태웠다. 적당히 술을 먹었고 적당히 취해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담배 맛도 적당했다. 그리고

2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야, 아줌마다! 하고 녀석이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고개를 돌리자 아줌마가 놀이터 저 쪽에서 비척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술을 먹어서 인지, 갑자기 아줌마가 엄청나게 반가운 사람처럼 느껴졌다. 우린 구덩이에 묻혔던 친구가 되살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아줌마, 아줌마하면서 손을 흔들어댔다.

“걔네들이, 걔네들이······.”

“왜요, 아줌마.”

녀석이 담뱃대를 입에서 빼면서 빙글 웃었다. 푸우, 하고 내뱉은 연기가 은하수를 닮은 무언가를 그리다가 사라졌다. 아직 담배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지 아주머니는 몸을 떨고 있었다. 아직도 기침을 하며,

“그 놈들이 말하라고 했어······.”

“왜요, 또 꿀꿀대요??”

녀석이 낄낄거리고 웃었다. 나도 풋, 하고 웃었다. 사실 난 아줌마가 아직도 그 외계인들의 계시를 받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그것들은 꿀꿀, 거리고 엑엑, 거리고 잇잇, 거리는 짐승에 지나지 않는데.

아줌마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창백했다. 아줌마가 녀석을 바라봤다. 나도, 한 대만 줘봐.

녀석은 눈동자를 빙글 굴리고는 아줌마에게 담뱃대를 쥐어드렸다. 예의, 돗대는 아버지가 달라고 해도 안주는데, 하는 말을 하면서. 아줌마는 라이터의 누런 불빛에 담배를 대고 한참을 있었다. 마침내 답답해진 내가, 아줌마 빨아야죠, 하고 한소리를 냈다.

마침내 담뱃대에 불이 붙었다. 아줌마는 잠깐 흡, 하고 빨아들였고

그 순간 아줌마 폐 속에 있던 모든 공기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폐 속에 있는 모든 공기를 쏟아낼 것처럼 웃었다. 아씨, 난 또 아줌마 필 줄 아는 줄 알았잖아요, 괜히 쫄았네. 하고 녀석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줌마도 웃었지만 얼굴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

“왜요, 아줌마. 담배까지 펴가면서, 뭔 일 있어요?”

“그 놈들이, 그 놈들이·······.”

마침내 나도 입을 열고야 말았다. 에씨,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오른손이 힘껏 남은 담배꽁초를 뿌렸다. 검은 어둠 속으로, 불꽃이 꼬리를 이끌고 사라졌다. 빨간 불똥이 사라지고 나서도 잠깐 별똥별 같다, 는 생각을 했다.

또는 지구인에게 격추당하는 UFO라던가.

“그 놈들이 이제 머지않았다고 했어.”

“뭐가요?”

아줌마는 잠깐 말이 없었다.

“심판.”

아줌마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술을 먹어서 였을까. 터무니없는 농담 같은 그 말에 우리는 괜스레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잠깐 무어라고 말을 꺼내려던 녀석이 놀이터 흙에 담배를 툭, 던졌다. 한참 동안 우리 모두 말이 없었다. 빛을 내는 둥근 전함, 외계인들의 침공, 그리고 심판

같은 소리로 어디선가 차가 크게 클락숀을 울려댔다. 어디선가는 고양이가 섧게 우는 소리가 들렸고 어디선가는 애가 엄마에게 맞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505호에서는 우리 집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동생 녀석이 차라리 재수를 하겠다며 바락바락 대들고 나선 지금 이 마당에는,

차라리 둥근 전함과 외계인들이 지구를 심판해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우리들 중 한 사람도 이 지구에 정붙이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원래 지구는 건강한 사람들, 온순하고 쉽게·······. 아무튼 그런 것들을 위한 것이니까.

녀석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도, 에씨, 상관없잖아요, 아줌마, 그래도, 그러니까, 우린 이제

“고등학생이 아닌걸요.”

하고 녀석은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 순간에야 난 아, 정말 녀석이 군대를 가는구나 싶었다. 원래 세상은 우리 게 아니고 우리 게 아닌 세상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세상은 녀석에게 이 구덩이만큼의 세상도 주지 않으려 한다. 이제 한 삽의 흙을 뿌리는 시간이 온 것이다. 곧 포크레인이 우리에게 흙을 뒤덮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 이제 세상이 어떻게 되도 상관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정도 놈들이 우릴 심판한다는 게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럼 요샌 목소리도 좀 조용하겠네요.”

내가 말했다.

“응.”

아줌마의 힘없는 대답이 꺼져가는 담뱃불처럼 들려왔다. 아줌마 입에서 흐리게 풍기는 담배냄새가 조금 거슬렸다. 주머니에서 껌을 꺼냈다. 아줌마는 잠깐 그 껌을 바라보듯이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고마워, 하고는 껌을 받았다. 그렇지만 씹지는 않았다. 대신 아줌마는 다시 우리에게, 학생들 고마워, 하는 말을 연신 하고는 다시 어깨를 움츠리고 아파트 사이로 사라졌다.

잠깐 동안 우리는 그 놀이터에서 다시 담배를 태웠다. 무슨 말을 했던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곧 우리는 다시 술집으로 향했다. 아직 녀석이 군대를 가기 전까지, 세상의 아주 약간의 일부, 적어도 아직 흙이 쏟아지지 않은 이 구덩이만큼은 우리 것이니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6-

우리의 전함이 하늘을 메운다.

우리의 천체와도 같은 빛이 미약한 것들의 눈을 멀게 한다.

우리의 항성과도 같은 열이 탐욕한 것들의 몸을 불사른다.

너희 미약하고 탐욕한 것들아.

너희는 이제 기도를 멈춰라.

너희의 회개는 늦었노라.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원치 않노라.

우리의 무겁고 가혹한 심판이 있으리라.

너희 가엾은 것들아.

우리가 너희를 용서하기에는 시험의 결과가 너무 크도다.

-7-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올 즘에 황사가 찾아왔다. 역대 최악의 황사라고 TV가 떠들었다. 은빛 깡통이 떠 있던 푸른 겨울 하늘은 납과 중금속이 섞인 얼룩덜룩한 봄 하늘로 바뀌어 있었다. 차갑고 신선하던 공기마저 냉장보관하지 않고 밖에 내놓아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뜨뜻미지근하게 덥혀진 것 같았다. 외계인의 폐기물일지도 모르는 깡통이 떠 있을 때는 끄떡없던 사람들도 마스크를 썼다. 황사에 그렇게 그 고기가 좋다며, 하고 TV가 온통 떠들어 댄 통에 외계인 고기도 어느새 꽤 많이 팔리고 있었다. 물론 사람들은 외계인 대신 다른 단어를 썼지만, 난 꿋꿋이 외계인이라는 단어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 고기를 집어먹는 내 마지막 양심이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외계인은 기준에 맞는가. 내가 리포트를 쓰며 요약한 가축의 기준,

1. 온순해야 하며,

2. 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이를 먹고

3. 적당한 크기까지 빠르게 성장하며

4. 사육 상태에서도 안정적으로 번식

말이다. 대충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소름이 돋았다.

혹시 이 동물이 외계인이 아니라, 외계인이 보낸 동물이라면 어쩌나. 지금 우리가 길들인 소나 말, 양과 염소, 개랑 고양이도 사실 외계인들이 보낸 거라면 어떨까?

잉카인들은 말을 타고 오는 사람들을 신으로 생각했다지? 백인들은 그게 자신들을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외계인들이 말을 타고 나타났었던 건 아닐까? 그러니까, 외계인들이 소랑 말, 양이랑 염소, 개랑 고양이를 들고 이 세상을 돌아다녔던 게 아닐까? 어쩌면 지금 이, 외계인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부르는 이름대로, Sus scrofa domesticus, 그러니까 '돼지'처럼 깡통에 넣어서 보냈을 수도 있고.

그러면 외계인들은 우리가 자신들이 보낸 동물들을 가축으로 부리고 있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도 가축 아닐까.

우리도 사료를 주면서 가축을 기르잖아. 더 빨리 자라고 더 뚱뚱해지길 바라면서. 외계인들은 우리에게 무얼 바랐을까. 문명일까. 올바르고 포동포동한 문명을 바랐을까.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만든 문명이 외계인들의 생각 다르면 어떻게 하지?

가축을 강제로 일을 시키고 개량하고 대량으로 사육하고 대량으로 죽이고 먹고 가죽을 벗기고 장기를 꺼내는 우리를 보면서.

서로 강제로 일을 시키고 개량하고 대량으로 사육하고 대량으로 죽이고 먹고 가죽을 벗기고 장기를 꺼내는 우리를 보면서.

그녀는 또 웃었다. 그게 뭐야, 고양이가 외계인이라는 거야, 우리가 외계인들의 고양이고? 넌 진짜 이상하다니까, 하면서. 한참 웃던 그녀는 내가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잠깐 웃음을 멈춘 얼굴로 날 바라봤다. 고양이를 닮은 그녀의 얼굴에는 그 어떤 외계 기술로도 따라할 수조차 없는 큰 눈이 웃음기를 담뿍 베어 문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기분이 상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너 요새 진짜 이상하다니까, 맨날 외계인 이야기만 하고, 꼭 네가 접때 말했던 그 아줌마 같아. 그 말에는 나도 배시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내가 이상해진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날 이상하게 만드는 주범인 그 여자애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결국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난 그날 그 여자애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어떤 조잡한 단어들이 그 황홀한 대답을 이끌어 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때 그녀는 역시나 웃음기가 베인 눈으로 날 바라봤고, 좋아, 라는 대답을 했다는 것뿐이다.

시간은 천천히 가면서 또 빨리 흐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라는 말을 할 새조차 없는 것 같으면서도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결국 난 초, 분, 시간으로 나뉜 시간체계가 결코 객관적이며 정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객관적이고 정확한 것은 시간은 흐른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결국에는.

여자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하는지 잘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여태까지 그녀와 웃고 떠들었던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거대한 어색함이 날 붙들고 있었다. 내 어깨와 팔꿈치를 붙잡고 있던 그 어색함을 뿌리쳐 준 것은 바로 그녀였다. 미소와 웃음과 눈맞춤이 얼마나 고마운 것이 될 수 있는지 그제서 알았다. 원래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영화를 보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마치 오늘 하루가 이 세상의 마지막 하루인 것처럼,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사실 오늘 당장에 심판날이 와서 이 세상이 끝장난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이라면 용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예창작과라는 이름에 미안하게도 그 어떤 미완성 습작도 아쉽지 않았다. 오로지 신이 만들어낸 최대의 걸작이 내가 마시는 공기를 같이 마시고 있는 이 완성된 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서로 이야기하고 웃고 먹고 마셨다. 그래서 그녀와 같이 살았다, 고 까지 할 수 있을 만큼의 추억이 내 몸 안 구석구석을 흐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빌어먹을 객관적이고 정확한 시간이 흘렀다. 심지어 이제 ‘늦은 시간’이 돼 있었다. 처음으로 난 그녀에게 집에 데려다 주겠다는 말을 건넸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 다 잠깐 취해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말 우리가 마셨던 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갑작스럽게 들이킨 추억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우리가 먹은 외계인 고기의 밝혀지지 않은 부작용 때문이었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난 정말 모르겠다.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골목은 다행히도 어두컴컴했다. 난 붉어진 얼굴을 감출 수 있었다. 잠깐 어둠이 그녀의 얼굴을 가리곤 했지만 사실 내 망막 안에 있는 그녀는 결코 가릴 수 없었다. 그녀의 집 앞에서 잠깐 이야기를 했다. 사소한 이야기였다고 기억되지만 어쩌면 그 이야기들이 세상을 뒤집어놓을 만한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세상이 눈을 감았다. 그래서 그녀가 눈을 감았다. 그랬기에 나도 눈을 감았다. 그러다,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세상도 잠깐 눈을 감았던 것이 확실하다. 세상의 주인이 바뀐 것도 확실했다. 어쩌면 새로운 세상의 주인은 그녀와 입을 맞추고 있는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영화에서처럼 혀를 섞지도 어깨를 끌어안지도 않았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리지도 나팔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내 삶에 있어 가장 밝은 순간이라면, 그녀와 함께 눈을 감았던 그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말캉한, 세상에서 모든 긍정적인 단어를 촉촉하게 빨아들인 입술에 내가 입을 맞추고 있었다. 영원과 순간이 교차한 시간이 끝났다.

그녀가 입술을 땠다.

그녀를 바라보기엔 어쩐지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역시나 배시시 웃고 있었다. 눈과 얼굴에 담긴 웃음을 보는 순간, 난 다시 그 달콤함을 베어 물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때 그녀의 눈이 커졌다. 내 등 뒤의 무언가에 놀란 것처럼 보였지만 난 이미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있었다. 다른 것에 놀랄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어디선가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떨리는 목소리.

“저게······. 저게 뭐야?”

그 순간에야 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았다. 달과,

딱 달만한 크기와 빛을 가진 둥근 것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달이 수십 수백 개로 불어난 것처럼도 보였다. 하늘이 온통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저 외계에서 내려다보면 이 지구도 하나의 복작복작한 구덩이 정도에 지나지 않을까.

아, 순간 저것들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저것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나와 녀석, 그리고 아줌마 밖에 없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알기에는 늦어버린 셈이지만. 잠깐 그녀를 다시 바라봤다. 그렇지만 그녀는 날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전함’들이 하늘의 저편에서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사이렌 소리가 멎었다. 문득 산 저편이 지나치게 환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산 저편에서는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산등성이를 넘은 빛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결코 썰물이 없을 밀물처럼 흘러들고 있었다.

그녀가 내 옷소매를 꽉 잡는 것이 느껴졌다. 살며시 내 손을 그녀의 손에 얹었다. 아직도 세상은 내 것임이 분명했다.

순간 난 이것이 아무리 터무니없는 심판이라 해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keyword
이전 08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