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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슨의 불행한 금요일

딱 하루의 어느 나쁜 날에 대하여

by 엽서시

0.

“화씨 212도가 되면 물은 끓기 시작하지. 사람도 마찬가지야. 그 순간이 오면 사람도 물과 마찬가지로 끓어 폭발한다네. 물론 대개의 사람들은 그 지점까지 다다르지 않아. 그런 일을 겪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아니면 그전에 이렇게 위스키로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거나. 하지만 종종 그 그릇을 깨뜨리는 사람들이 있고 하지.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렇게 폭발하지 않아. 왜소한 체구. 얌전하거나 내성적인 성격. 주변 사람들은 약속 한 것처럼 말하지. 주변 사람들에겐 상냥했다.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다고.”

“어떤 한 사람이 위험해보일 때 주변 사람들은 그를 경계하게 된다네. 그럴 때 공동체는 하나의 생물처럼 행동하네. 경계의 임계점에 달하면 공동체는 제도를 통해 그를 구속하지. 그러나 공동체의 입장에서 그 조짐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저 친구 오늘 좀 이상하구먼, 이 정도 생각하다 고개를 갸웃하고 술집에서는 모두들 잊어버리곤 하지. 만일 그들의 경계심을 모두 합쳤다면 예방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네. 그런 사람에게 사람들은 기울이는 관심은 개 한 마리한테 기울이는 관심보다도 적으니까.”

“1862년 이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은 이런 점에서 몹시 흥미롭다네. 범인 스티븐슨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36명을 사살했어. 그리고 망루 위에서 스스로에게 총을 쏘았다네. 그는 피해자들을 사냥하듯 쏘아 죽였지. 피해자 대부분은 그의 지인이었지만 그는 거리낌이 없었네. 일부 목격자들은 그의 태도가 ‘카우보이가 양을 쏘아 죽이는 것’처럼 덤덤해 보였다고 진술했네.”

“이런 범죄는 우발적인 분노에서 비롯했다고 보는 게 통설이지. 그렇다면 그 분노의 임계점은 어디였을까. 이 화씨온도계로 치면. 10? 아니면 20? 그도 아니면 30? 다른 의문도 있어. 왜 마을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를 경계하지 않았을까? 또는 몇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까? 사건 당일 총을 메고 사다리를 오르는 스티븐슨을 보며 집안 문을 걸어 잠근 사람은 몇이나 되었을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어야 스티븐슨 같은 사람을 막을 수 있을까? 그 임계점은 몇일까. 10? 아니면 20? 그도 아니라면…….”

“궁지에 몰린 개는 사람을 물기 전에 짖는다네. 그러나 궁지에 몰린 사람은 침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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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목동이었네. 스스로 명사수라고 여긴 모양인데, 자료를 보면 그가 몇 사격대회에서 수상을 한 기록이 있어. 뛰어나진 않았지만 그런 작은 마을에서는 제법 자부할 만한 총잡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는 그날 교대를 마치고 목장주 허스번에게 주급을 받았다고 하더군. 그는 늘 자신의 실력에 비하면 허스번은 자신을 거저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떠들어댔지. 그는 자신이 총잡이일 뿐 아니라 늑대 사냥꾼이라고 말했다 하네. 자기가 애리조나에서 멍청하게 늑대를 다 쏴 죽이지만 않았어도 아직까지 사냥꾼 일을 했을 거라고 말야. 그 정도로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은 않지만. 어쨌거나 그는 자기 주급은 하루 술잔만큼밖에 안된다며 투덜거려 댔어. 얼마 남는 돈이 있어도 포커로 다 잃기 십상이었던 것 같더군. 그는 자기에게는 언젠가 한 번 운이 좋은 날이 찾아 올 것인데, 그 날이 오면 주머니 두둑하게 이 술집을 나올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하네. 사람들은 그의 성격이 쾌활하고 활달했다고 증언하지만, 그에게는 안 좋은 버릇이 있었던 것 같네. 애리조나 출신 카우보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도 술에 취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버릇이 있었네. 특히나 술 때문이건, 포커 때문이건 주머니에 돈이 동나고 나면 그는 어떻게든 아무하고나 싸움을 붙었던 모양이더군. 그것 말고도 그는 가까이 하기 힘든 남자였어. 그는 늘 ‘다운’이라는 이름의 사냥개를 데리고 다녔는데, 그는 늘 그 다운이 늑대의 피를 이어받은 개라고 주장했지. 자기가 쏴 죽인 늑대 새끼라고 말야. 물론 그가 늑대사냥꾼이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아무튼 주점으로 들어서는 순간에도 ‘다운’ 때문에 몇 명과 시비가 붙었던 모양이야. 첫 번째 총격이 있었던 시간이 정오니까, 무튼 그때까지 그는 코가 삐뚤어지게 마셨던 모양이지.

그의 이름은 프랭크 다라본트. 사건의 두 번째 피해자였네. 그는 총소리를 듣고 다시 주점으로 들어가 소총을 들고 나왔다가 총에 맞았지. 첫 번째 총알은 그의 허벅지를 관통했네. 허벅지 근육이 안쪽으로 말려들어갔고, 피가 솟구쳤지. 그는 총을 놓쳐버렸네. 다시 주점으로 도망가고자 했지만 계단을 오르기 쉽지 않다고 판단한 모양이야. 그는 발코니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었고 어찌나 잘 숨었던지 우리가 그를 찾기 전에 파리들이 먼저 그를 찾아냈지. 그의 허벅지의 총상에는 벌써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어. 결국 허벅지의 출혈로 목숨을 잃었던 게야. 내가 궁금한 건 이거야, 그는 그날 술값을 하나도 치르지 않았네. 과연 그날 그는 주점 문을 나서면서 자신이 한 푼도 쓰지 않은 날을 운수가 좋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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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사거리에는 총포상이 딱 한 군데 있었네. 사실 총포상이라고 하기 부끄러울 규모이긴 했어. 총포상이라기보다는 잡화상이라고 하는 게 맞았을까. 이런저런 약도 취급했던 모양이고, 무쇠덫이나 청산가리처럼, 서부에서 목동이 살아남으려면 필요한 것들도 팔았던 모양이지. 프랭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진짜 늑대 사냥꾼이었어. 총포상에 걸려있는 회색 늑대 가죽이 그가 잡은 것이었으니까. 회색 늑대와 달리 가죽을 가져 올 수 없어, 진짜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뉴멕시코 지역에서 아파치 전투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하고. 아마 살아온 역사로만 보면 그는 이 사거리에서 가장 위험한 사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네. 그는 이 거리에서만도 두 번이나 결투를 한 적이 있었다네. 두 번 다 보안관이 말려서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술에 취하면 셔츠를 벗어대곤 했는데, 몸에 남은 흉터들을 자랑하곤 했지. 특히 왼쪽 어깨에는 큰 총상이 남아있었다네. ‘붉은 수건’ 에프런과의 결투에서 입은 상처라나. 왼쪽 어깨를 다치기 전까지 그는 왼손으로 자기보다 빠르게 총을 뽑는 사람은 없었다고 하더군. 그 말을 믿는 사람이건 아닌 사람이건 사거리에서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은 없었네. 꼭 결투가 아니더라도 그는 제 심기에 거슬리는 사람에게는 유태인처럼 바가지를 씌워댔거든.

그의 이름은 개럿 애드워즈. 그는 첫 번째로 총을 맞은 사내였어. 그날 아침 그는 가게 문에 또 다른 자물쇠가 묶여있는 것을 보고 꽤나 놀랐을 게야. 보안관에게 철을 빌리러 가는 동안 총을 맞았지. 일격에 쓰러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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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 소년은 동부 출신이었어. 덩치는 조금 작았고. 약간 소심한 성격이 있었지만 그래도 손재주는 제법인 녀석이었지. 그에게 흠이 있다면, 지나치게 싸구려 소설에 심취했다는 점이야. 그는 주점 앞을 기웃거리면서 주정뱅이들의 허풍에 넋이 나가곤 했어. 언젠가 한 번은 오른손 손가락이 하나도 없는 거렁뱅이 늙은이에게 주급을 털어가며 술을 사주는 것도 본 적이 있었지. 개럿이 술에 취해서 제 몸의 상처를 짚어가며 떠들어 댈 때 그가 램프 불빛에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채 이야기를 듣던 게 눈에 선하구먼. 그는 결투 이야기에 거의 중독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문제는 이 사거리에서 그에게 총을 팔거나 빌려주는 얼간이는 없었네. 양장점 조수인 그는 언젠가 자신이 유명한 총잡이가 될 것이라는 꿈을 꾸었지만 정작 총을 쏴 본 일은 한 번도 없었던 게야. 개럿은 차라리 그에게 군대에 입대를 하라고 말했지, 그때에는 아직도 서부 남쪽에는 인디언들이 남아있었으니까 말이야. 한번은 양장점 주인에게 혼쭐이 난 적이 있었는데, 양장점 주인 터슨의 리볼버를 슬쩍 했던 것이 들통 났거든. 사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리볼버를 슬쩍했다는 사실보다는 터슨이 양장점 서랍장 안쪽에 총을 그렇게나 많이 숨겨놨다는 사실에 놀랐네. 리볼버 4정에 윈체스터 엽총 1정. 거기에 다이너마이트까지. 그 늙은이가 인디언 전쟁에 나가는 기병들보다도 총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셈이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터슨은 서부 출신이었고. 그가 살았던 마을이 코만치 인디언과 싸운 적이 있었다고도 했으니. 마을 사람들의 호들갑에 보안관이 터슨에게 이야기를 하고 다이너마이트는 보안관 사무실에 보관하기로 한 모양이지만,

이 야심만만한 소년의 이름은 잭 가르시아. 학살이 있던 날, 녀석은 시체 틈바구니에 숨어 죽은 체 하려 했던 모양이야. 나쁜 생각은 아니었지. 스티븐슨이 시체 하나하나에 다시 총알을 박기 시작하지만 않았다면 말이야.”


7.

“그녀 말인가? 그래, 자네 눈에 띌 줄 알았네. 보는 것처럼 썩 미인이지. 이런 작은 마을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사였지. 그녀에게 그 금요일은 괜찮은 하루는 아니었던 것 같아. 아니, 자네도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어떤 날을 계기로, 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한 날. 그녀에게는 그 날이었다네.

전날 그녀는 전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네. 그녀는 동부에 있는 도시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는데, 다른 남자의 말에 홀딱 넘어간 까닭이지. 그날 그녀는 오후에 역으로 출발하기로 했다네. 그녀는 그날 짐을 가지고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어.

아, 그 사진도 보았나? 그녀의 이름은 애니 스타벨. 그녀는 총소리를 듣고 달아났다가 짐 때문에 다시 마차로 왔다네. 아마 기차표가 짐 안에 있었던 모양이야. 다시 짐을 들고 가지는 못했어. 짐을 포기하고 달아나던 그녀는 얼굴에 정면으로 총을 얻어맞았다네. 거기다가 때마침 길바닥에 쓰러진 그녀를 말들이 짓밟고 가버린 것 때문에 그녀를 알아보는 데 꽤나 수고스러웠지. 누군가 그녀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신원미상의 시체로 남았을 거야. 그녀는 왼손 네 번 째 손가락에 전 애인이 선물했다던 반지를 끼고 있더군.”


11.

“그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젊은이였다네. 붉은 머리칼, 주근깨, 밝은 색깔의 눈동자에 걸맞게 늘 웃고 다니는 청년이었지. 오른쪽 바지주머니에는 늘 하모니카를 가지고 다녔지만 실력은 썩 좋지 않았던 모양이야. 그는 양산을 들고 교회를 나서는 처녀들을 보면 혼자 얼굴을 붉힐 만큼 순진한 청년이기도 했고, 웃음이 많은 청년이기도 했어. 길바닥에 나동그라진 사람을 보면 얼굴이 빨개지도록 웃음을 터뜨렸다네. 사람들은 그가 웃는 것만 보고 따라 웃기도 했어, 말 그대로 길바닥이 뒤집어지도록 웃곤 했던 모양이야.

그의 이름은 애런 존슨. 그는 총격이 시작되자 누구 것인지도 모르게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산탄총을 향해 몸을 날렸네. 그가 산탄총을 들고 일어섰을 때, 그를 스쳐지나간 총알이 길바닥을 때렸지. 그가 몸을 숙였을 때 두 번 째 총알이 그의 사타구니를 맞췄어. 그는 고통에 몸을 굽혔지. 세 번 째 총알은 없었네만, 그는 결국 출혈로 죽고 말았어. 불쌍한 애런. 만일 누가 애런에게 불알에 총을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배가 찢어져라 웃었겠지. 그러나 자기 자신이 불알이 터져 죽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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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는 롤랑 주점의 주인이었네. 롤랑이라. 주점 이름을 보면 주인인 그가 프랑스계 사람인가 생각할 법도 하지, 천만에. 그의 집안에 프랑스 피라고는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어. 그가 롤랑 주점의 주인인 것은 다분히 이전 가게의 간판을 바꾸기 싫었기 때문일 게야. 그는 소문난 구두쇠였으니까. 그렇지만 그는 빚이 많았네. 장사 수완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어. 여기저기서 말아먹은 농장만 해도 몇 백 헥타르는 될 거란 이야기도 있었고. 남부 몇 개 주에서는 발도 붙이지 못할 수배자라는 이야기도 떠 돌았지. 사실 이 마을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네. 거리에 늘어서 있는 가게는 전부 그의 채권자들이나 다름없었지. 그에게 그 작은 가게들의 간판들은 묘지에 늘어선 비석 아니면 변호사가 읽어줄 유언장처럼 보였겠지. 어쨌거나 이 작은 주점만큼은 나쁘지 않게 운영했던 모양이네. 뭐, 이런 촌구석에 처박힌 사람들이 얼마나 술을 잘 알겠냐마는. 싸구려 위스키건 노새 오줌이건 취할 수만 있다면 고개를 처박고 들이킬 놈들이 아니겠나. 그날, 그는 평범하게 하루를 보냈던 모양이야. 걸레로 마룻바닥을 닦고, 구정물을 가게 밖으로 집어던졌겠지. 한 마리뿐인 늙어빠진 노새에게 짚단을 가져다주고, 새로 들여다 놓은 브랜디의 맛을 보고. 어쩌면 아침부터 떠날 생각을 않는 프랭크에게 무어라 잔소리를 늘어놓았을지도 모르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허치슨. 어쨌거나, 정오 무렵 한 발의 총성이 그의 귀를 울렸어. 프랭크가 쏜살같이 뛰쳐나가는 것을 보고 그도 무어라 외쳤겠지. 외상값을 받으려 했던 걸까. 아니면 총 소리 때문이었을까. 그는 산탄총을 들고 거리로 달려 나갔네. 그는 주점 앞에서 뒹굴고 있던 프랭크 때문에 집중하지 못했던 모양이야. 어쩌면 걸려 넘어졌을 수도 있고. 먼지 바닥에서 뒹굴던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네. 몸을 일으키고 있을 무렵, 총알이 관자놀이를 뚫고 지나갔거든. 그래, 비교적 깔끔한 죽음이었다고 볼 수 있지."


17.

“그는 썩 잘생긴 청년이었네. 늘씬한 키, 찰랑거리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마치 신화 속 아폴론처럼 전형적인 미남이었지. 다만 여자문제로 말썽을 일으킨 적이 몇 번 있었던 모양이야. 헌금만 낸다면 칠면조가 와도 환영했을 목사마저, 그가 교회에 나오는 것을 꺼려했다지? 이 마을에서 그는 마차를 몰며 지냈는데, 사실 일이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았던 모양이야. 마차를 구할 돈이 어디에서 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머리 빈 여편네들의 치맛자락에서 나왔을 수도 있고. 그는 항상 동부로 떠나겠다고 떠벌렸는데, 사업을 할 계획이었던 모양인 것 같네. 그가 떠벌린 내용을 들어보면, 아마 동부에 그의 지인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모두가 다 입에 발린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이름은 아린 그레이엄. 그날 그는 총소리에 놀라 날뛰는 말들 때문에 꽤나 애먹었던 모양이야. 이상하게도 그날 그는 총소리를 듣고도 사거리로 곧장 마차를 몰았네. 아마 그를 기다리는 금발 처녀라도 있었던 겔까. 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었어. 그는 싸구려 소설 속의 보안관이 아니었네. 소설 속 추격전과 달리 몇 발의 총알이 어지럽게 마차를 뚫었고, 아마 그는 등에 총알을 맞았던 것 같아. 사실 그를 곧장 죽인 건 총알이 아니었어. 그는 마차 아래로 굴러 떨어졌네. 마차 바퀴가 그의 몸을 가로질렀지. 부러진 갈빗대와 살이 엉켜 죽은 그의 모습에서는 금발도 늘씬한 키도 찾아볼 수 없었다오.”


19.

“보안관. 총을 차고 거리에 나왔을 때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인물. 더욱이 그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법 했어. 왜냐면 그가 총을 뽑은 일은 그가 보안관이 되고 나서 첫 해가 마지막이었거든, 그 첫 해에 총을 뽑은 것도 결투가 아니라, 마을에 웬 미친 개가 나타났기 때문이라나. 뭐 그의 전적은 그 미친 개를 쏘아죽인 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는 평화로운 작은 마을의 보안관답게 무시와 존경 속에서 늙어버렸네. 그래서 대낮부터 취해있는 일이 잦았어. 일은 불쌍한 보안관 보조들이 전부 하기 십상이었는데, 그 밑에서 삼 년을 넘긴 보조는 없었다고 하더군. 어쨌거나 꽤나 괴팍한 성격이었던 건 사실이었나 봐.

그의 이름은 롭 하우웰. 그 날, 어쨌거나 그는 총소리를 듣고 거리로 달려 나왔어. 그가 보안관이 되고 두 번째로 총을 뽑는 순간이었지. 양 손에 리볼버를 든 채 그는 망루를 노려보았네. 그는 마구잡이로 쏘아댔지만 행운은 그의 편이 아니었어. 망루에서 총성이 울리자, 그의 오른손이 피범벅이 되어버렸지. 으스러진 손을 잡고 울부짖는 그에게 무차별적인 총알이 날아왔어. 그는 피해자 중 가장 많은 총상을 입었네. 무려 일곱 발. 아마 그가 보안관으로 쏜 총알보다 그의 몸에 박힌 총알이 더 많았을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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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그는 목사였네. 독실한 목사였지. 그의 아버지도 목사였는데, 강 상류의 읍내에서 꽤나 유명한 목사였다더군. 그는 금욕적인 것으로 이 거친 마을에서 유명했네. 사실 살짝 벗겨진 앞머리와 구부러진 코만 보더라도 그가 세속적인 욕망을 탐하리라고 보이진 않지만, 뭐, 목사들은 겉과 속이 다른 법이니까. 아무튼 그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목사였네. 특히 부인네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았지. 그는 작은 마을 몇 개를 돌며 순회 설교로 명성을 쌓았어. 그의 목표는 이 사거리에 작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지. 그의 자랑은 그의 유일한 기쁨인 ‘가브리엘’을 타고 도도하게 거리를 오가는 것이었네. 아, 가브리엘은 목사의 검은 말이야. 꽤 품종이 좋은 모양인데. 서러브렛이라던가. 사실 이 말 때문에 뒷말이 있기도 했어. 그 말만 팔아도 엔간한 돈이 됐을 거라며. 어쨌거나 그에게는 포기할 수 없었던 기쁨이었던 것 같네. 그 스스로도 젊었을 때 꽤나 승마로 이름을 날렸던 것 같기도 하고.

그의 이름은 마이클 던컨. 먼저 총을 맞은 건 가브리엘이었네. 안장에서 나동그라진 그는 한참 후에야 일어났던 모양이지. 다행일지, 불행일지 그는 말의 안부를 살필 겨를도 없었네. 그는 가슴을 맞았거든. 허파를 곧장 꿰뚫은 총알이었지. 아마 천국은 그를 몹시도 기다렸던 모양이야.”


29.

“참, 그는 늘 술에 취해 있었네. 아마 마을의 골칫거리였을거야. 그는 멕시코 전쟁에 참가했다고 떠들어 댔지만 입증할 자료는 없네. 어쨌거나 그가 군에 소속했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아. 그는 어디에나 있는 상이군인이었지. 오른쪽 발목이 없었거든. 그는 간혹 술에 취하면 망루에 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정을 하기도 했어. 사람들은 만일 그가 죽는다면 주정을 잘못 집어먹은 수탉이 횃대에 떨어지듯, 망루에서 떨어져 죽을 것이라고 추측해댔지. 실제로 롤랑 주점에는 그가 언제 떨어져 죽을 것인지 내기를 한 기록이 있더군. 그는 늘 구형 엽총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는 자신이 이 엽총으로 쏘아 죽인 멕시코 군이 한 개 중대는 될 거라고 떠벌렸지. 그러나 그 총에 실탄이 장전되어 있는 것을 본 사람이 드물다니, 아마 술꾼의 뻔한 허풍이지 싶어.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의 총을 몹시 싫어했다네. 그는 늘 그 총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을 걸곤 했거든. 그는 하루에 두세 명씩 자빠뜨리지 않으면 하루를 보낼 수 없는 사람처럼 굴었지.

그의 이름은 패트릭 맥구한. 그는 가장 처참하게 죽은 사람 중 하나야. 성한 왼쪽 발목에 총을 맞고 쓰러졌어. 마치 덫에 걸린 코요테처럼 피를 뿌리며 발버둥 쳤다고 하더군. 그가 흩뿌린 피가 길에 흥건했지. 그는 어디에라도 숨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어 다녔지만 소용없었어. 그리고 등과 어깻죽지에 한 발씩 더 맞았지. 병 걸린 코요테처럼, 그는 마구간에 머리를 처박고 죽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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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그 날, 그는 유독 불행한 청년이었네. 전날 애인에게 결별을 통보받은 사내처럼 불행한 사내는 없는 법이지. 그는 느지막이 일어나 치안소로 향했어. 어쨌거나 그는 보안관 보조였으니까. 보안관 보조를 맡은 지 벌써 삼 년이 흘렀지만 별다른 소식은 없었네. 이런 작은 마을에 보안관이 둘이나 필요할 리는 없었고, 늙은 롭은 괴팍하지만 건강했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십 년은 무리 없이 보안관 직을 수행할 수 있을 터였고, 술도 마시지 않는 롭이 사고로 죽는 걸 기다리는 건 현명한 생각은 아니었다네. 그러니 그는 뚜렷한 미래가 있는 청년은 아니었어.

치안소로 가던 도중 그는 웬 청년과 어깨를 부딪쳤네. 프랭크였지/ 그가 사과하기도 전에 그는 다리에 격한 통증을 느꼈지. 프랭크의 사냥개가 발목을 물어버린 거야. 개가 부츠가 엉망이 되도록 대가리를 흔드는 동안 그는 프랭크 녀석에게 온갖 욕을 들어야 했어. 씨팔, 머저리 같은 새끼가 보안관이 된 줄 알고 어디서 길을 막는 게냐 등등.

이러나저러나 그는 평소보다 늦게 치안소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던 게지. 당연히 늙은 보안관 롭은 그에게 먹고 있던 샌드위치를 집어던졌네. 그가 얼굴에 묻은 양배추 피클을 털어내는 동안 롭은 그에게 수통을 건네며 롤랑 주점에 외상 심부름을 시켰지. 롭은 혼자 사는 늙은이라 저녁은 롤랑 주점에서 먹었다네. 물론 주점의 분위기는 싫어했기 때문에 그를 시켜 스튜를 치안소로 가져오게 했지.

거리에 나선 그는 문득 길 건너편에 서있는 여자를 보았어. 애니. 그의 애인, 아니, 전 애인.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씩 웃어 보이려 했지만 애니는 양산으로 얼굴을 가렸지. 이대로 그녀를 보내면 끝장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애니가 손에 여전히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보기라도 한 것일까. 그는 길을 건너 그녀에게 무어라 말이라도 건네려 했던 모양이야. 그때 목사의 외마디 고함 소리가 들렸어. 그는 엉겁결에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네. 목사의 키 큰 말이 투레질을 해댔지. 말의 침 거품이 그의 얼굴에 떨어졌어. 그는 그제야 엉덩이가 축축한 것을 느꼈네. 그리고 웅덩이에 나자빠진 자신을 보았지.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폭소하고 있는 것을 보았어. 얼굴이 붉어졌지.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양장점 애송이마저 자신에게서 눈을 피하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네. 그는 애니의 얼굴을 다시 볼 생각을 접어버렸네.

롤랑 주점에 들어서려는 순간, 주점 주인이 내던진 구정물을 맞았어. 다른 쪽 부츠는 물론 셔츠까지 푹 젖어버렸지. 그는 애써 웃어보였다네. 주점 주인은 아무리 보안관이라도 더 이상 외상을 안 된다며 그에게 꺼지라고 손짓했어. 별 수 있나.

그는 다시 치안소로 향했어. 늙은 보안관 롭은 조수가 시키는 심부름 하나 제대로 받아오지 못한 것을 보고 부아가 치밀었지. 롭의 두툼한 손바닥이 그의 뺨을 내리쳤어. 썩 꺼져. 롭이 외치는 말을 들으며 그는 치안소를 다시 나왔다네. 치안소를 나오자 그는 정오라는 사실을 깨달았어.

문득 그는 주점 뒤 마구간에 묶인 사슬을 집어 들고 길을 가로질러 총포상으로 향했다네. 총포상 주인 개럿은 정오가 되어야 출근하는 사내였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네. 그는 총포상 문을 사슬로 단단히 걸어 잠그고 망루를 바라보았어. 교회 쪽에서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네. 이제 망루에 오를 시간이었지. 그는 잊어먹지 않고 총알을 챙겼다네.

이제 자네도 알거야. 그의 이름은 스티븐슨. 그는 망루에 올랐네. 망루에 오른 자신이 할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지. 정오의 태양은 참으로 따가운 것이었다네. 망루 위에서 거리는 돋보기를 들이댄 것처럼 환하게 잘 보였어. 그의 눈에 애니가 여전히 사거리에서 짐과 양산을 든 채 서성거리고 있는 게 보였네.

애니, 제발. 제발. 이러지 마.

아니. 난 마음을 정했어. 너야말로, 제발 이러지 마.

왜 이러는 거야, 애런, 애런 그 개자식 때문이야?

그 사람한테 그렇게 말 하지 마. 오, 스티븐슨.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어. 제발 이러지 마.

스티븐슨 역시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지. 그는 조용히 총을 집어 들었네. 그리고 개머리판에 뺨을 대고 가늠자를 바라보았지. 세상 모든 것이, 그에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뿌옇게 보이고, 가늠자 위의 초점만 유일하게 또렷하게 보였네. 어깨를 짓누르는 개머리판의 무게를 느끼며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더듬었네. 그는 명사수로 이름을 날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 그러나 그는 어쩐지 어느 표적도 놓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들었네. 아니, 이 날만이라도 그래야 했지. 그래야 공평했으니 말이야. 그도 그럴 것이, 그 날은 스티븐슨에게 아주 불행한 금요일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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