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

지옥과 천국의 사이에서

by 엽서시

1.

한 영혼을 두고 천사와 악마는 내기를 벌였다. 악수를 하며 천사의 볼에 보조개가 팼다. 악마는 돌아서서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천사 앞이라 할지라도 잇몸을 드러내면서 웃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꼴사나운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1967년 6월 14일이었다. 수요일이었다. 그 날 영호는 처음으로 베트콩을 보았다. 훈련이 없던 날이었다. 영외외출신고를 하고, 추럭을 타고 부대 근처의 전략촌에 도착했다. 인근 지역에 베트콩이 출몰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어, 영외외출자도 소총을 메고 외출했다. 마을이라고 해봤자, 할 짓이라고는 맥주를 마시거나, 아니면 노닥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맹호거리 가서 좆에 때나 뺄까. 누가 중얼거렸다. 웃을 힘도 없다는 듯, 누군가 힘없이 웃었다. 영호도 껌을 씹거나 난간에 늘어뜨린 다리를 까딱거리고 있던 해병들에 섞여있었다. 그때 그 말이 무슨 씨가 된 것처럼 맹호거리 쪽에서 다라락, 총소리가 들렸다.

해병들은 맹호거리라고 부르는 거리는, 쉽게 말하면 유흥가였다. 블록 하나 정도의 거리에는 창을 간신히 가린 지저분한 시멘트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 앞에는 뽀이들이 주로 영업을 했다. 기껏해야 열둘, 아니면 열서넛 살처럼 보이는 뽀이들은, 군인들만 보면 ‘붐붐? 붐붐?’하고 물으며 달려들었다. 흥정은 뽀이들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담배나 C레이션으로 흥정을 하는 것이 일종의 원칙이었고, 달러를 직접 주는 군인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담배나 C레이션은 받지 않는 뽀이들도 있었다. 흥정이 통하면 뽀이가 안내하는 방으로 가거나, 아니면 뽀이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 앉아 마을 외곽의 오두막 같은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후자를 택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했고, 실제로 마을 외곽에서 죽으면 시체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런 미친 짓을 하는 군인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무튼 맹호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청룡이 파월해병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맹호는 파월육군의 상징이었다. 아마도, 맹호라는 말이 붙은 건 그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총소리가 들리자 다들 길 위로 몸을 굴렸다. 다라락. 다시 한 번 콩 볶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씨발.

-뭐야.

해병들은 저마다 중얼거리며 엎드린 채 철모와 총을 찾았다. 어쿠, 누군가 비명을 질러 다들 뒤를 돌아보았다. 다리가 길쭉한, 철모에 포제 하사 계급장을 단 부사관이 자기 앞에 엎드린 해병 하나를 발로 걷어찬 모양새였다.

-일어나, 이 병신 새키들아. 안 일어나?

파라락, 하는 바람 소리가 나도록 해병들은 벌떡 일어났다. 하사는 주변에 있는 해병들의 촛대뼈를 걷어차기에 바빴다.

-병신 새키들아. 저게 에이케이 총이냐. 저건 엠씩스틴 소리야. 빨리 일어나, 새끼들아.

영호는 철모를 집어다 머리에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엠씩스틴은 국군과 미군이 쓰는 자동소총이고 , 베트콩들이 쓰는 자동소총은 에이케이였다. 칵칵칵, 하는 에이케이와 다라락, 연이어 하는 엠씩스틴은 그 소리가 달랐다. 방금 들린 총소리는 다라락, 하는 엠씩스틴에 가까웠다.

-웬 병신이 술 처먹고 허공에다 총질이야.

하사는 혼자 중얼거리더니 철모를 챙기며 몸을 일으키고 있는 해병들을 바라보았다.

-두 명, 나랑 같이 빨리 애인 챙겨서 따라 나와. 나머지는 엠피 부르고.

엠씩스 총소리라면 아군이 쏜 총이다. 따라락, 갈긴 소리가 두 번이 들렸다. 술에 취한 놈이 한 번 실수로 땅겼다기에 애매하다고 영호는 생각했다. 뭔가 싸움질이 일어났거나, 아니면 적과의 교전이거나 둘 중 하나다. 본토에서나 월남에서나 엠피는 해병으로 보지 않았다. 따라서 엠피가 오기 전에 해병들이 가 먼저 처리하는 게 맞는 순서였다.

하사는 벌써 거리를 건너는 중이었다. 총소리 때문인지 거리는 텅 비어있었다. 영호가 총을 챙겨들고 뛰는 동안, 뒤에서 일등병 계급장을 달고 있는 해병 하나가 헉헉 거리며 따라 붙었다.

-일병 김상조.

영호가 툭, 일병을 치자, 해병이 관등성명을 댔다. 영호는 김 일등병의 명찰에 시커멓게 숯칠이 되어있었다. 전투배치를 받으면 명찰을 떼거나, 명찰에 숯을 문댔다. 정글에서 빨간 명찰이 눈에 띄면 표적이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맹호거리는 조용했다. 누구도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거리는 스콜이 쏟아지기 전처럼 괴괴했다. 거리의 복판에 군복바지만 입은 남자 하나가 엎드린 채 쓰러져 있었다.

-싯팔. 일 났네.

벽 뒤에 기대어 카빈 총구를 까딱거리던 하사관이 손짓을 했다. 영호가 뛰어갔다.

따라락.

총소리가 들렸다. 귀 옆에서 쏜 것처럼 시끄러웠다. 영호는 거리 옆에 주저앉은 자동차 쪽으로 몸을 굴렸다. 김 일등병은 반대쪽으로 몸을 굴렸다. 반대쪽에 있는 엄폐물이라고는 다리가 부러진 나무탁자와 버려진 등나무 장롱 같은 것들밖에 없었다. 저 병신 새끼. 영호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싯팔, 총 뒀다 국 끓여 먹냐, 쏴, 이 새키들아!

하사가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영호는 차 위로 소총을 내밀고 몇 번 갈겼다. 따라락. 따라락. 황동 탄피가 팔뚝을 스치고 땅에 떨어졌다.

-김상조, 뭐해! 이쪽으로 굴러!

총소리에 귀가 먹먹하면서도 영호는 외쳤다. 그제야 김 일등병은 무어라 입을 달싹이며 이쪽을 바라봤다.

-야, 니들, 똑바로 안 쏴?

하사는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는 중이었다. 모두가 왁다글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새된 여자의 비명소리도 들렸다. 탄창을 갈아 끼우며 영호는 찌그러진 차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오자이를 입은 월남 여자 하나가 어디서 난 것인지 엠씩스틴 총을 쥔 채 소리치고 있었다. 월남 말에, 여자의 울음까지 섞여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영호는 총을 겨누고 고래고래 손들어, 손들어하고 고함을 쳤다. 한쪽 손등으로 눈을 훔치더니 총을 내려놓았다. 김상조, 가서 총 치우고 포박해, 영호가 외치는 동안,

무슨 소리가, 귓구멍이 간질간질하도록, 귀가 따갑게 총성이 들렸는데,

여자가 픽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영호는 가늠자에서 눈을 뗐다. 퍽, 하고 무언가가 뒤통수를 때렸다.

-싯팔, 야, 니들 똑바로 쏘랬지?

영호의 뒤통수를 때린 하사가 의기양양하게 카빈총을 한 바퀴 돌리더니, 총구를 후 불었다.

-끝났습니까?

김 일등병은 아직도 엎드린 채로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그래, 이 새끼야.

이번에는 김 일등병의 뒤통수를 소리 나게 한 대 치더니, 하사는 다시 손을 까닥였다.

-뭐해.

-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길가에 퉤, 침을 뱉더니 하사가 군화로 김 일등병의 허리를 툭 쳤다.

-찔러. 확인해야지.

아. 영호는 귓동냥으로 듣던 고참병들의 말이 떠올랐다. 베트콩들 중에는 죽은 척, 쓰러져 있다가 총질을 하고 도망가거나, 수류탄을 쥐고 죽은 척 하는 놈들이 있다던 얘기였다. 머뭇거리던 김 일등병이 대검을 쥐고 몸을 일으켰다. 영호도 혹시 모른다 싶어 다시 가늠자에 눈을 댔다.

칵칵칵.

영호는 자기도 모르게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총을 맞은 것 같지는 않았다. 싯팔, 뭐야! 놀란 김 일등병도 사뭇 반말조였다. 하사는 가슴팍이 벌겋게 물들어 쓰러진 채로 다리를 떨고 있었다. 칵칵칵, 다시 총소리가 들렸다. 영호는 고개를 숙였다. 분명한 에이케이 소리였다.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여자가 악을 쓰며 사방에 에이케이 총을 갈겨대고 있었다. 영호는 일단 엎드린 채 김 일등병의 덜미를 잡아 이쪽으로 끌었다.

-내가 서서 쏠 테니, 넌 차 저쪽에서 엄호해라.

-저쪽에서 엄호하겠습니다.

죽다 살아난 덕분인지 김 일등병의 표정이 단호했다. 영호는 차 위로 몸을 내밀고 총을 갈겼다. 다라락, 칵칵칵, 두어 번 교전이 오갔다.

-이번에도 여잡니다.

김 일등병이 중얼거렸다. 에이케이 총을 들고 있는 베트콩은 여자였다. 영호는 힐긋, 고개를 돌려 하사 쪽을 바라보았다. 하사는 이제 움직이지 않았다. 자칫하면 자신이 저 꼬라지로 쓰러져 다리를 떨다가, 숨을 거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흰 샤츠를 입고 월남치마를 두른 여자는 앳된 얼굴이었다. 아까 총에 맞은 여자와 다르게 제법 견착까지 한 꼴이 진짜 베트콩이지 싶었다. 총은 여전히 이쪽으로 겨누고 뭐라 뭐라, 계속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여자는 얼굴이 온통 빨갛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말은 꼭 띠용띠용 떼떼떼, 하고 아이가 떼쓰는 것처럼 들렸다.

-총 내려놔!

-총 내려놔, 이 베트콩 창년아!

뒤에서 김 일병이 함께 악을 썼다. 다시 여자가 무어라 악을 썼다. 영호는 땀이 속눈썹을 넘어 흐르는 통에 눈을 감게 만들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옷소매로, 땀을 닦을 수도 없었다.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 거리에서 세 명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개구리들처럼 그저 악을 내지를 뿐이었다.

따라락.

총소리가 귀를 때렸다. 영호는 자신이 방아쇠를 당긴 사실도 눈치 채지 못했다. 여자는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여자가 든 총도 불을 뿜었다. 하얀 불빛이었다. 그러나 여자를 때린 불빛이 조금 더 먼저였던 것 같았다. 여자가 피를 뿜으며 쓰러진 후에도 영호는 그대로, 가늠쇠에 눈을 대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영호의 총구 앞으로 김 일등병이 달려 나갔을 때, 영호는 번갯불에라도 맞은 사람처럼 놀라 그제야 총을 내렸다. 김 일등병은 쓰러진 여자에 달려가더니 허리에 찬 대검을 뽑아 쥐었다.

-뭐하냐.

영호는 자기 목소리가 떨리는 것처럼 들리지 않기만을 바랐다. 김 일등병은 허리를 숙였다. 무얼 챙기는 것처럼 여자 쪽을 뒤적거리는 모양새로 팔을 휘두르더니,

-확인했습니다.

하고는 피 묻은 대검을 들어보였다. 영호는 대답도 잊은 채 그 일등병을 바라보았다.

-대단하십니다. 해병님.

김 일등병이 훤히 이빨을 드러냈다. 뭐가, 하고 영호는 대꾸하고 싶었다.

-이년이 쏘기 전에 박영호 해병님이 먼저 쏘셨습니다. 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저희 모두, 여기 똑같이 쓰러져 있었지 말입니다. 진짜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내가 아냐. 영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정말로 영호는 자신이 아니었다고 믿고 싶었다. 절그럭, 영호의 발밑에서 황동탄피가 밟혔다. 쎄무워커 밑으로도 둥글고 단단한 탄피가 느껴졌다. 세 발이었다. 영호는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숙여 그 탄피를 주워 들었다. 탄피는 아직도 뜨끈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황이 끝났음을 알자, 시체에 파리가 꼬이듯 사람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엠피들이 올 때까지 영호는 그 자리에서 시체를 지키고 섰다. 엠피들은 분필로 죽은 해병과, 하사를 들것에 실었다.

-수고했다.

엠피 하사 하나가 영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영호는 자기도 모르게 대꾸했다.

-가서 술이나 한 잔 해라. 나중에 보고서 쓸 때 부를 테니까, 그때 얘기하고.

하사는 영호의 얼굴에서 눈을 돌렸다. 영호는 무언가 잘못한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하사가 다시 손을 들어 영호의 등을 투덕거렸다.

-씨스터.

뭐라구? 맥주병을 가져 온 뽀이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더니 다시 한 번,

_씨스터.

하고 뭐라고 더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해병이 뽀이랑 몇 마디 말을 주고 받더니, 영호에게 그 말을 옮겨주었다.

-첫 번째로 죽은 년이 두 번째로 뒤진 년 언니였답니다.

-언니?

-예. 씨스터랍니다.

씨스터. 영호는 중얼거리며 병을 입에 물었다. 전말을 들은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엠피 하사가 전해준 전말은 대충 이러하였다. 영호와 김 일병이 거리로 들어갔을 때 죽어 있던 해병은 박 모 상등병이었다. 매춘을 하러 들어간 방에서 박 상병이 우연히 침대 밑에서 에이케이 소총을 보고, 여자와 말다툼이 있었다.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덤벼드는 박 상병에게 여자가 박 상병의 엠십육 소총을 먼저 들고 겨누었다. 거리 밖으로 달아나는 박 상병에게 여자가 총을 갈겼다. 이후 영호와 김 일병, 김용진 하사(이름은 이때 알게 되었다)와 교전이 있었고, 김 하사가 여자를 사살했다. 시체를 확인하던 중 여자의 여동생이 방에 있던 에이케이 총을 들고 나와 김 하사를 쐈다. 그리고 영호가 그 여자를 쐈다. 두 자매가 모두 브이씨(VC:베트콩을 부르는 다른 말) 돈줄이었던 모양이라고, 엠피 하사가 말했다.

꼴랑꼴랑, 맥주가 목구멍을 넘어갔다. 내가 쏜 게 확실한가? 알 수 없었다. 영호는 방아쇠를 당긴 기억이 없었다. 술집 선풍기가 털털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정말이지 지랄맞게 더운 나라라고, 누군가 중얼거렸다. 영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맥주 따위로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지랄맞게 더운 날씨였다. 그게 영호가 베트콩과 처음으로 마주한 기억이었다.

2.

천사가 얼굴을 찌푸렸다. 악마는 고개를 으쓱했다. 내기를 계속 하려면 어쩔 수 는 듯한 몸짓이었다. 미간에 주름 잡힌 얼굴로 천사는 손가락 하나를 길게 빼어 가로 저었다. 알겠다며, 이번 한 번은 넘어가자는 듯, 악마가 천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째깍째깍.

손목에 찬 플라스틱 손목시계가 밤을 헤아리고 있었다. 짙고 더운 공기가 막사에 가득했다. 한밤중이었다. 영호는 대체 자신이 왜 눈을 뜬 것인지 몰라, 자리에 누운 채로 숨을 골랐다.

혹시 무슨 소리라도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주변의 낌새는 그렇지 않았다. 한 번 깬 잠이 다시 오지 않았다. 막사 안은 관짝 안처럼 조용했다. 문득 영호는 자신이 신병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신병이 처음 전투부대로 오면, 신병의 침상은 막사 입구 쪽이었다. 밤에 적이 들어오면 그쪽 침상부터 모가지를 따기 때문이라 했다.

밤에 적이 들어온 적이 있습니까하고 신병이 묻기도 전에 고참병들은 왁자지껄, ‘자기도 신병 때 들었다는’ 얘기, 또는 ‘근처 미군 부대에서 실제로 일어났다며’ 얘기를 지껄였다.

밤에 몰래 막사에 들어온 베트콩이 대검으로 자고 있는 군인들 머리를 따간다는 얘기였다. 베트콩이 막사로 들어오는 경로도 다양했다. 빨랫감을 실은 차에 들어있기도 했고, 하수도를 통해 들어오기도 했다. 빤쓰만 입고 온 몸에 먹칠을 한 베트콩이 스콜이 쏟아지는 밤을 틈타 부대로 기어들어오는 얘기도 있었다. 어느 베트콩은, 그러니까 새키야, 들어봐, 똥통에 숨어서 사흘을 버텼다는 거 아니냐, 사흘 말입니까? 그래, 사흘, 거기서 푹 찌르면, 한 놈밖에 못 죽이지만 밤에 막사로 들어오면 소대 하나를 죽일 수 있으니까, 사흘을 버텼다는 거다, 그렇게 버틴 베트콩이 냄새를 씻어 내릴 수 있도록, 스콜이 쏟아지는 밤에, 막사로 들어와, 한 놈씩 싹, 그리고 막사 바닥에, 죽은 놈들 피로, 글자가 쓰여 있는데,

-웰컴 투 베트남

-월남에 온 걸 환영한다는 말이지.

하고 다른 고참병들이 참견을 했다.

베트콩에 대한 괴담은, 베트콩의 무용담이나 다름없었다. 옛날이야기가 늙은이의 입에서 손자의 귀로 전해지듯, 베트콩에 대한 괴담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이야기도 월남의 공기와 습기 속에서 가지를 치고 뿌리를 뻗었다. 이야기 속 베트콩은 거의, 귀신이나 도깨비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베트콩은 어디에도 숨어 있었고,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월남 사람들은 작고 까맣고, 총을 겨누면, 벌벌 떨며 손을 들고 시끄럽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저들이 베트콩이었고, 밤이 되면 소리 없이 나타나 칼로 목을 따는 귀신이 되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빨갱이가 되면 저렇게 작고 순한 사람들이 귀신이라도 되는 것인지. 어떻게 그렇게 지독스러워 지는 것인지.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소피라도 볼 생각에 영호는 몸을 일으켰다. 막사 밖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말이었다. 영호는 막사 뒤편으로 돌아 들어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들으니 땡삐와 상고였다.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불렀다. 본명으로 불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월남의 더위는 사람을 말리고 진을 빼게 하는 것이라 우리는 별명을 짓는 것에도 성의가 없었다. 베트콩들은 빨치산처럼, 아군을 기습하고 귀신같이 숨었는데, 주로 우리가 토끼굴이라고 부르는 땅굴로 달아났다. 땡삐는 그 땅굴을 두 번이나 들어갔다가 살아났다고 해서, 땡삐라 불렸다. 한 번은 땅굴에서 베트콩들이 연기를 피우는데, 그때는 앞도 안 보이고 숨이 막혀 정말 죽는 줄 알았다며, 땡삐는 다시는 땅굴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땡비는 두 번 더 땅굴 소탕 작전에 들어갔다. 상고는 상고 출신이라 상고라고 불렀다. 그 외에도 얼굴이 동그랗게 생긴, 서울 출신의 해태와 경상도 사투리가 진한 후로꾸란 놈도 있었다. 후로꾸는 총기 분해도 제대로 할 줄 몰랐는데, 월남까지 어떻게 온 것인지 도통 그 연유를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월맹 정규군과의 교전도 한 번 겪었는데 그 곳에서도 살아 남았다. 후로꾸로 월남에 와서 후로꾸로 살아났다고, 우리는 그를 후로꾸라고 불렀다.

가까이 가니 목소리는 더욱 분명했다. 땡삐와 상고가 누군가를 다그치고 있었다.

-헛짓들 하지 말고.

영호가 다가가자 땡삐와 상고가 차렷 자세를 취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놈에게서 흘러나왔다. 영호는 그놈의 얼굴을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까지, 이른바 ‘닦이고’ 있는 놈이라면 똥통이 분명했다. 똥통은, 흔히 말하는 고문관 같은 놈이었다. 특히 땡삐가 놈을 싫어했는데, 땡삐의 논리는 딱 하나였다.

-저 새끼랑 땅굴 들어가는 건 그냥 브이씨한테 뒤지러 가는 거랑 똑같습니다.

영호는 알아서 하라는 입장이었다. 어차피 아랫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은 영호가 맡은 일은 아니었다. 병기 당번도 넘겨준 영호는 일이병들이 지지고 볶이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적당히들 하고 자라.

똥통이 고개를 들었다. 영호는 눈물이 가득한 똥통의 눈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것을 보았다. 막사에 다시 누웠을 때, 영호는 누군가가 작게 킬킬거리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누구지, 묻고 싶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영호는 깊게 잠이 들었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다음날 정찰이 있었다. 영호가 속한 2중대는 부대를 떠나, 계곡으로 향했다. 이른바 ‘촛대봉’이라고 이름붙인 곳이 정찰 포인트였다. 물론 병들은 촛대봉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육봉바위라는 별명은 그나마 얌전한 별명이었다. 최근 브이씨들의 활동이 뚜렷하다하여, 개활지가 아닌 정글을 뚫고 가야 했다. 늘 가던 길이 있었지만, 월남에서 늘 가던 길은 늘 위험한 길이나 다름없었다.

영호는 첨병을 섰다. 같이 첨병조에 포함도니 후로꾸는 출발도 하기 전에 욕을 지껄였다. 첨병조에 똥통이 같이 끼어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싯팔, 누구 하나 뒈지면 다 저 새끼 때문입니다.

-저 새끼를 베트콩 새끼들보다 더 싫어하십니다.

-베트콩은 쏠 수나 있지, 저 새끼는. 어휴.

후로꾸가 침을 찍 뱉었다. 영호는 후로꾸의 머리에 툭, 알밤을 먹였다.

월남에 온 후로 정글은 언제나 덥고 습하고 시끄러우면서도 조용하고, 그리고 충격적으로 위험한 곳이었다. 늘 중대가 가던 길이라고, 영호는 병들을 안심시켰다. 딱히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위안이었다.

부대를 떠나 네 시간은 갔을까, 영호는 주먹을 쳐들었다.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싯팔, 영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눈 앞에서 수풀이 출렁이듯 움직이고 있었다.

-확인불상의 동작 포착.

-확인. 짐승 아닌지 대기하고 지속되면 확인할 것. 이상.

무전 너머에서 선임하사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있었다. 영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다시 한 번 닦았다. 누가 봐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수풀이 흔들리고 있었다. 짐승의 움직임과는 달랐다. 짐승이라면, 이렇게 시끌거리고 있는 동안 달아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눈 앞의 움직임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채, 법석이고 있었다.

-누구 하나 보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땡비가 중얼거렸다. 영호도 같은 생각이었다. 중대 전체가 멈춰 설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첨병 전체가 위험을 무릅쓸 수도 없는 일이었다.

-똥통, 저 새끼, 저거 보내십시오.

땡비가 속삭였다. 영호는 머뭇거렸다. 영호가 판단하기에, 저 움직임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영호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비록 교전지는 아니지만, 이곳은 언제나 적지나 다름없었다. 수상하게 보이는 것은 언제나 수상한 것이었다. 수상한 것이 목숨을 빼앗는 곳이 적지였다. 누굴 보내야 할까. 하지만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다.

-똥통, 가 봐라.

똥통이 어물거렸다. 영호가 엄한 표정으로 고갯짓을 했다. 똥통은 멈칫거리며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여전히 수풀이 움직이고 있었다. 불규칙적인 움직임이었다. 영호는 의식적으로 방아쇠울에서 손가락을 내렸다. 돌발 상황에서 자칫하면 전방의 아군에게 총질을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똥통이라도 아군은 아군인 것이다.

똥통은 부석거리는 수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1초, 2초, 3초. 시간이 째깍거리며 지나는 것이 들리는 것 같았다. 영호는 짜증이 확 치밀었다.

-뭐야.

-어, 이게, 그러니까….

똥통이 어물거렸다. 분대원들 모두가 잔뜩 긴장한 터라 더욱 똥통이 어물거리는 모습은 더욱 더디게 느껴졌다. 영호는 자기도 모르게 저 똥통 새끼, 하고 욕이 나오려는 것을 참아야 했다. 똥통이 고개를 들었다. 비죽거리며 웃는 얼굴이었다.

-원숭입니다.

휴, 누군가 들리도록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는 피식 웃기도 했다. 영호는 어느새 눈썹까지 스민 땀을 손등에 묶은 수건으로 문질렀다. 원주민이 설치한 올무에 원숭이가 걸린 모양이었다. 똥통은 대검을 들고 주저앉았다. 올가미를 푸는 모양이었다. 똥통이 주둥이가 수건으로 묶인 채 발버둥치고 있는 원숭이를 집어 들었다. 군인들은 예상 밖의 일에 저마다 피식거리며 웃었다. 어린아이만한 원숭이는 주둥이가 빨간 수건으로 묶여 끙끙, 앓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해태가 들었다는 그 아이 신음소리가 아마 이 소린가 싶었다.

-야, 그런데 잔나비 주둥이는 누가 묶어 놓은…….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칵, 칵, 적 소총 소리가 들렸다. 엎드려, 외치는 소리와 함께 해병들은 사방으로 튀었다. 굵직한 나무 뒤로 빠르게 숨은 영호가 고개를 내밀었을 때, 똥통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보지는 못했지만 똥통이 총에 가슴팍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영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후로꾸와 해태가 보였다. 무얼 알고 쏘는 것인지 둘은 머리 위로 소총을 갈겨 대고 있었다.

-후로꾸!

영호의 외침에 후로꾸가 영호 쪽을 돌아다보았다. 영호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인 뒤 그 손으로 제 눈을 가리켰다. 브이는 베트콩을 뜻하는 수신호다. 베트콩을 눈으로 보았냐고 물어본 것이다. 후로꾸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제 눈을 가리키고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다. 눈으로 확인한 놈이 세 놈이란 뜻이다. 후로꾸가 손바닥으로 앞을 가리켰다. 계곡 너머였다.

계곡 너머, 눈으로 확인한 놈만 셋. 게릴라다. 아마 탄창 하나 정도만 갈겨 대고 달아날 것이었다. 씨발롬들. 영호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속으로는 안심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을 뱉기 위해 욕을 뱉었는지도 모른다고 영호는 생각했고, 그 생각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영호는 주먹을 세워 자기 가슴팍을 두 번 치고 손바닥을 세워 빙 둘렀다. 자기가 우회해서 공격하겠다는 뜻이었다. 후로꾸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해태에게 무어라 지껄이는 것을 보고 영호는 몸을 숙였다.

칵, 칵, 칵,

에이케이 소총의 신경질적인 사격음이 공기를 긁어댔다. 정글 바닥을 기어가는 것은 정굴 바닥으로 온 몸을 얻어맞는 것과 비슷했다. 나무뿌리, 덩쿨, 바위설퀴가 영호의 몸을 때렸다. 느리게 기어가도 안 되고, 수풀이 흔들릴 만큼 빠르게 기어도 안 된다. 가끔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았다. 나무껍질이나 풀 부스러기가 날리며 쉥, 하는 소리가 났다. 총알이 소리보다 빠르기 때문에 때로는 사람이 죽고 총알소리가 난다고 고참병들이 지껄이던 말을 영호는 기억했다.

투 쎄컨드라고, 브이씨 저격순데, 내가 본 놈 중에서는 그 놈이 제일 굉장했지. 아니, 진짜 본 건 아니고, 이 새끼야, 그 새낄 봤음 내가 뒤졌지, 넌 선임이 싯팔, 뒤졌음 좋겠냐? 암튼 투 쎄컨드가 이 게 이 초란 뜻이거든. 이 새끼한테 저격당하면 이 초 뒤에 그 총소리가 들린다는 거야. 이 초 동안 이 새키는 또 다른 데로 도망가니까. 절대 못잡는 거지. 이 새키는 또 대굴빡만 쏴요. 암튼 저번에 깜 빈인가, 우리가 도깨비 마을이라고 부른 데가 있었는데, 이 투 쎄컨드 새끼가 강 너머에서 쏘는 거야. 어디서 쏘는지, 기가 막히대. 애들은 픽픽 쓰러지고, 우리는 돌아버리겠는데. 나중에 양키 놈들이 거기에 그냥 폭격을 때려버리더라고.

허벅다리 중간까지 잠기는 시내를 건너면서 영호는 베트콩들이 이쪽을 보지 않기를 바랐다. 물을 건널 때는 어디에 숨을 수도 없었다. 10M 남짓한 시내를 첨벙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허리를 숙여 건너고 있는 영호는 멧짐승보다도 쏘기 쉬운 표적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영호가 시내를 건너는 동안 총알은 날아들지 않았다. 우거진 고사리 사이로 몸을 숨긴 영호는 고개를 내밀고 적들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멀리서 쏘면, 우회까지 한 기습의 의미가 없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아군의 총에 맞을 수 있었다. 제가 우회한 것을 아는 사람이라곤 후로꾸와 해태 정도, 몇 명 더 붙었다 해도 서너 명 정도가 최선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고사리 숲을 돌아나갔다. 총소리가 정글을 울려댔다. 교전이 시작한지 오 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인데 세상은 온통 터지고 쏘는 소리로 가득했다. 원숭이가 깍깍, 비명을 질렀다. 웃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웃는 것이다. 영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저주했다. 아무, 생각, 하지, 말자. 영호는 속으로 다짐했다. 시계 방향으로 돌아 나갔다. 과연 영호는 과연 베트콩들을 찾을 수 있었다.

수풀 사이로 대나무를 짜 만든 베트남 삿갓인 논이 쉽게 보였던 것이다. 논을 쓴 두 놈이 총으로 교전 중이었고, 녹색 철모를 뒤집어 쓴 두 놈은 조금 뒤에서 무언가를 만지고 있었다. 무엇인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베트콩들이 미군의 바주카포처럼 쏴대는 적탄통이라면 큰일이었다. 베트콩들은 쏘련제 로켓포를 따라 만든 적탄통을 가지고 아군 전차나 토치카에 쏘아댔는데, 근거리에서는 그 파괴력이 대단했다. 스콜이 낮에도 두세 번씩 쏟아지는 이런 때에는, 불이 날 염려도 없었기에 베트콩들은 아무 때나 적탄통을 날려댔다. 그러면 부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군의 시체도 찾을 수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영호는 숨을 고르고, 가늠자에 눈을 댔다. 철모를 쓴 놈 중에서도 계속 손가락질을 하며 무어라 떠드는 놈을 먼저 겨냥했다.

다락.

풀썩, 놈이 쓰러졌다. 쓰러진 놈 마주 앞에서 무언가를 조작하고 있던 놈이 당황하여 일어났다. 일어나더니 계곡 너머로 총을 쏘고 있는 놈들에게 무어라 떠들어댄다. 후퇴하자는 말 같다. 영호는 놈의 가슴팍을 조준하고 숨을 멈췄다.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다라락.

놈도 쓰러졌다. 논을 쓴 베트콩들은 당황하여 입을 짝짝 벌리고 뭐라고 떠들더니, 영호가 숨은 쪽으로 총을 난사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영호는 고개를 숙였다. 놈들이 정조준을 하고 쏘는 것은 아니지만, 눈 먼 총알에라도 맞으면 죽는 것은 매한가지다.

에이케이 총소리가 드문해졌을 때 영호는 일어나 놈들이 달아난 방향으로 총을 갈겼다. 그러나 이미 놈들은, 해병들이 토끼굴이라고 부르는, 땅굴이나, 아니면 몸만 겨우 뉘일 수 있도록 파놓은 구덩이에 숨었을 것이다. 베트콩들은 숨는 것에는 토끼마냥 이력이 났기 때문에, 정글에서 한 번 놓치면 다시 잡는 것은 힘들었다. 수색작전을 하다가 당하는 것은 오히려 이쪽이 되기 쉬웠다.

-상황 끝났다!

영호가 외쳤다. 엠씩스틴 소총을 높이 쳐들고 휘둘렀다.

-누구냐.

저쪽에서 누가 외쳤다.

-박영호 상병이다.

-확인했습니다.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 정글에서 몸을 일으켰다. 후로꾸가 첨벙거리면서 영호 쪽으로 달려왔다. 뒤에는 언제부터 숨어있었는지 모를 선임하사가 헐떡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이거 따발총 아닙니까?

철모를 쓴 놈들이 만지고 있던 것은, 알피디라고 부르는 대대 경기관총이었다. 기관총은 적탄통만큼이나 무서운 무기였다. 들고 있으면 허리가 휘청거리는 엠육공보다 가볍고 짧았기 때문에, 베트콩들이 정글 속에 숨어 총알을 난사하기에 좋은 무기였다.

-이 씹새끼들. 총은 또 좆나게 좋은 거 들고 있었네. 나가긴 하냐?

-안 나가는 거 같습니다.

선임하사가 상고를 찾았다. 상고가 무전기를 짊어지고 헉헉거리며 달려왔다.

-대대로 보고해라. 적 사살 두 명. 적 무기 노획 알피디 일 정, 칼빈 일 정. 권총 일 정. 아군 피해 사망 한 명.

-대대에서 수색 중지하고 부대로 복귀하랍니다.

진짜냐? 누군가 환호성을 질렀다. 선임하사의 지시에 따라 베트콩들의 주머니를 뒤졌다. 사진 두 장이 나왔고, 한자로 적힌 편지가 한 장 나왔다. 사진 중 하나는 늙은 여자의 사진이었다. 어머니의 사진이겠지, 싶었다.

-야, 누구 사진기 가진 사람 없냐. 이 베트콩 새끼 대가리 깨진 거 봐라. 이거 장관인데.

영호는 베트콩 시체 주위에 서서 웅성거리고 있는 무리를 떠났다. 어쩐지 있기가 머쓱했다. 문득 똥통 생각이 났다.

-똥통은 어떻게 됐냐.

-아까 의무병이 간 것 같던데, 저쪽입니다.

영호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베트콩 시체들만큼은 아니지만 군인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죽었습니다. 뭐 가슴을 맞았으니. 의무병이 말을 줄였다. 영호는 똥통의 주검을 내려다보았다. 눈을 허옇게 뜬 채였다. 영호는 손바닥을 내밀어 허연 눈을 까뒤집고 있는 똥통의 눈꺼풀을 내렸다. 헬기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 미군 건십이라고 누군가 아는 체를 했다. 집결하랍니다. 누가 외쳤다. 다들 총을 어깨 위로 짊어지고 모였다. 의무병과 얼굴이 낯선 일등병 한 명이 들것에 똥통을 들고 따라 붙었다.

-오늘 작전은 끝났네.

누군가 중얼거렸다. 담배 연기 냄새가 났다. 해태가 볼이 홀쭉하도록 담배를 빨고 있었다. 영호는 고개를 돌렸다.

-담배 꺼. 이 새끼야.

영호의 낮은 목소리에 해태가 담배를 집어 던졌다. 옆에 있던 워커로 담배를 밟았다. 타타타타타, 헬기 소리가 점점 커졌다. 영호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똥통의 주검을 내려다보았다. 가슴팍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데 똥통 이 자식 이름이 뭐였지. 똥통의 성이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문득 영호는 궁금해졌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들 헬기 쪽으로 손을 흔들거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영호는 똥통의 이름을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싯팔. 왠지 모를 욕이 흘러 나왔다. 오늘 작전 끝났답니다, 누군가 영호의 어깨를 쥐고 흔들며 신나했다. 영호도 입술을 들고 웃어 보였다.


3.

‘당신과 악마는 어떻게 다른 거죠?’

천사를 따라가던 영혼이 천사에게 물었다. 천사가 답했다.

‘이승으로 치면 맥도날드와 버거킹 정도의 차이가 있지요.’

그때 저 편에서 악마가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영혼에게 외쳤다.

‘저 속삭임을 믿지 마시오. 그를 따라가지 마시오. 그 쪽은 지옥입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혼란에 빠진 영혼이 울부짖자, 천사와 악마는 배를 잡고 헐떡거리며 웃었다.


-필승!

경례 소리에 동국은 뒤를 돌아보았다. 웬 시커멓게 탄 해병이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얼굴은 익숙한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표는 시커멓게 먹칠을 해 놓아 소용이 없었다. 동국은 얼결에 저도 같이 웃어 보이며 반가운 시늉을 했다. 잇몸까지 보이며 웃던 병사는 동국이 내민 손을 힘주어 잡아 흔들었다.

-저 박영호 해병입니다, 소대장님!
그제야 동국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병사를 알아보았다. 동국은 더욱 환하게 웃으며, 병사의 손을 마주 흔들었다.

-월남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아, 이번에 그렇게 됐어. 자네는, 자네는 아주 일 년 만에 월남 사람이 다 됐구만.

-얼굴 말씀이십니까? 소대장님도, 금방 시꺼멓게 타실 겁니다.

동국은 영호와 함께 왁자지껄, 웃었다. 동국은 월남에 와 처음으로, 제게 먼저 다가와 아는 체를 한 영호가 내심 반가웠다. 동국은 모든 장교는 자원을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자네, 소대는 어떻게 되나?

-2중대 1소대입니다.

-아, 그럼 자네, 이번에도 내 소대구먼. 이거 운명일세.

-그렇습니까? 두 번이나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대장님.

-자네는 지금 어딜 가는 중인가?

-애들 수색조 보낸 곳에 잠깐 한 바퀴 돌러 갑니다. 애들이 브이씨 하나를 잡았다 합니다.

부대 근처에서 브이씨를 잡았다니. 대단한

68년 구정 공세 이후로, 월맹군은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한국군을 뜻하는 ‘따이한’은 전략적으로 건드리지도 말라고 선전하던 말도 옛말이었다. 월맹군의 공격은 노골적이고 직접적이었다. 새벽에 부대 안으로 수류탄을 던지고 달아나는 놈들부터, 부대 근처의 전략촌에 박격포를 포격하기도 했다. 온 정글의 그늘마다 베트콩들이 숨어 앉아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월남 사람들이 가져온 정보도 두 번 세 번 확인하라는 상급부대의 지시가 있었다. 부대는 전술기지 근처로 끊임없이 수색조를 돌렸다. 그 수색조가 월남에 있는 한국군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정보였다.

-음, 나도 따라가지.

-예, 좋습니다. 진짜 브이씨도 한 번 보시고, 정글도 한 번 둘러보십시오.

-정글이, 많이 위험한가?

-뱀이나 악어 말씀이십니까?

영호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동국도 시골에서 자란 터라, 뱀이나 벌레 같은 것에는 이력이 나있었지만, 정글은 또 달랐다. 동국이 부대 배치를 받은 첫날, 낯이 익은 선임하사 하나가 ‘악어를 쏘러 가자’며 애들 두 명과 소총을 둘러매고 부대를 나섰다. 동국은 칼빈 소총을 쥐고 있었다. 어차피 악어가죽을 뚫지도 못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권총은 아예 챙기지도 않았다.


‘악어 호수’라고 부르는, 강가에 이르렀다. 선임 하사가 손가락으로 진흙 무더기 같은 것들을 가리키더니 저것들이 악어라고 소리쳤다. 그렇다는 듯이 동국은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동국의 눈에 악어처럼 보이는 것은 없었다. 선임 하사가 소총을 갈겼다. 무언가 시커먼 것들이 통나무가 물에 빠지는 텀벙 소리를 내며 강에 빠져들었다.

시커멓고 넓적한 짐승 하나가 꼬리를 뒤틀었다. 아마 저 놈이 총에 맞은 놈이리라. 동국은 등줄기를 타고 허벅지까지, 소름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조금 있다가 갑시다, 저 놈들 명줄이 길어요. 발버둥이 멎은 후에 병사들이 그 시커먼 것에 총을 겨누고, 동국은 선임하사와 함께 빙 둘러 쩝, 선임하사가 입맛을 다셨다. 우리 소대장님 악어 고기 한 번 대접하려 했더니, 글렀습니다. 동국은 의아했다. 이건, 저, 악어가 아니라 도마뱀입니다, 도마뱀. 사지를 쭉 뻗고 갈라진 혀를 내밀고 죽어 있는 그것의 몸통은 작은 돼지만 한 크기였다. 대가리는 총을 맞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과연 몸통과 꼬리를 보면 도마뱀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거미는 손바닥만한 것이 기어 다니질 않나, 지네는 한국의 작은 뱀만한 것도 있었다. 심지어 전갈 같은 것들은 손가락 마디 크기의 것들이 많았는데 쏘이면 종아리가 썩어 들어간다고 했다.

이런 것들에 쏘이지 않으려면, 먼저 길을 알아야 했다. 특히 악어나 도마뱀 같은 것은 그래도 사람 다니는 길에는 대놓고 나타나지 않는 법이라 했다. 동국은 영호와 같이 미리 길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또 이곳에 대한 정보나 소대원들에 대한 정보도 미리 들을 수 있으리라 싶었다.

영호는 무전기에 대고 새로운 소대장님이랑 간다, 브이씨는 살려 둘 것, 하더니 매고 있던 총을 바로 쥐었다. 부대를 나서 정글로 들어서자 영호는 말은커녕 웃음기 하나도 엿볼 수 없는 것이었다. 두 눈만 허옇게 이리저리 굴려대는 것이 온통 몸에 긴장이 가득해 보였다. 동국은 저도 따라 칼빈 소총을 쥔 채 애꿎은 수풀의 그림자만 겨눴다. 그렇게 십여 분, 고사리 수풀을 헤치며 다니자 무슨 왁자한 소리가 들렸다.

-월남에서 이 정도면 장총 아닙니까?

-야, 총이 땅 따라서 권총되고 장총 되냐. 권총이면 권총이고 장총이면 장총이지.

군인들은 모여서 왁자지껄 웃고 있었다. 군인들 가운데에는 논을 쓴 월남 사람 한 명이 하반신을 벌거벗은 채, 손을 머리에 올리고 무어라 꽥꽥 외치고 있었다.

-저게, 이봐! 다들……!

동국은 자기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지르다가 멈췄다. 군인들이 자신을 바라보았다. 저 중에는 자신의 소대원도 있을 것이다, 생각이 들었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동국은 목덜미에 축축하게 배어 나오는 땀을 닦았다. 이곳은 월남이다. 동국은 여태까지 자신이 군에서 행동해왔던 것은 전부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한국에서, 물론, 대대장이나 부사관들 중 실전을 겪은 사람들이 있었다. 동국은 그들에게 많은 것들을 배웠다. 때로는 존경스럽게, 때로는 혐오스럽게 말이다. 그러나 월남에서는 달랐다. 실전을 겪은 사람들이 이제 제 부하였다. 동국은 지금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뭐하는 거야.

영호가 입을 열었다. 동국은 입을 다물고 있기로 결정했다.

-아까 잡은 브이씨입니다. 그런데…….

영호를 알아보았는지 슬쩍 목례를 하던 놈들이 동국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동국은 다시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참았다. 베트콩들이 장교들만 저격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래서 정글에서는 장교고 병사고 서로 경례를 하지 않았다.

-새로 오신 소대장님이시다.

영호의 말을 듣고서야 놈들이 슬쩍슬쩍 목례를 했다.

-이 사람은 양민이 아닌가? 무기도 없는데.

동국이 입을 열자 놈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불쾌함이 이마 끝까지 밀려들었다. 동국은 영호를 돌아보았다. 영호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실려 있었다. 동국은 혹시 이것이 무슨 소대장 길들이기와 같은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총은 여기 있지 않습니까.

놈들 중 떠버리같이 생긴 놈이 빈정거리는 어조로 일렀다. 놈은 월남 사람의 하반신을 제 소총으로 툭툭, 쳐댔다. 그럴 때마다 월남 사람은 우는 조로 무어라 떠들었다.

-이 놈이 장총을 찬 줄 알고 수색해봤더니 권총 아닙니까.

떠버리의 말에 둘러싸고 있는 놈들이 다들 낄낄 웃어댔다. 동국은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그들이 웃고 있는 건 월남 사람의 벌거벗은 하반신이 아니다. 지금 이 놈들은 동국을 시험하는 중이었다.

-집어 치우고 보내줘라.

동국 대신 영호가 손가락질을 했다. 동국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보내줘라.

놈들이 무어라 다시 말하려는 것에 영호가 다시 말을 덧붙였다. 놈들은 입을 꾹 다문 채 총을 치웠다. 아까 그 떠버리 같이 생긴 놈이 뭐라뭐라, 월남 말을 하자 엎어져 있던 월남 사람이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깜먼, 깜먼, 고맙다는 뜻이리라, 동국은 짐작했다. 월남 사람이 바지를 집고 입으려 하자, 영호가 소총으로 그 팔목을 툭 쳤다. 월남 사람이 헤 입을 벌리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총집은 두고 가야지.

아까까지 굳어있던 놈들의 얼굴에 슬그머니 웃음이 피었다. 다시 월남 사람이 우는 소리를 하자 영호가 권총을 끄집어냈다. 동국도 이번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화도 낼 수 없었다. 월남 사람처럼 어안이 벙벙하게, 저런 표정이라도 지을 수 있다면, 싶었다.

-해태, 이 새끼한테 권총집 두고 가라고 전해.

-바지 말씀이십니까.

-어.

해태라고 불린 떠버리 놈이 윽박지르듯, 무어라 월남 말을 하니 그 사람도 다른 말은 없었다. 동국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어정어정, 벌거벗은 하반신으로 달아나는 월남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병사들은 그 꼴을 보며 배를 잡고 웃어댔다.

-자네들이 지금 브이씨를 만든 거야. 적어도 뿌락찌라도 만들었겠군.

동국은 아까부터 하려던 말을 차갑게 내뱉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게.

아까부터 싱글거리던 눈이 부리부리한 놈이 대드는 어조로 맞섰다. 동국은 벌개진 얼굴로 놈을 내려다 보았다.

-자네들이 양민을 희롱하지 않았는가.

-땡비, 이 씹새끼가, 소대장님한테.

동국이 답하기가 무섭게 철썩, 누군가가 놈의 얼굴을 후려 갈겼다. 영호였다. 영호가 바로 욕을 뇌까리자 ‘땡비’라고 불린 놈은 고개를 푹 숙였다.

-중대에는 내가 보고할 테니까. 헛짓들하지 말고 있어.

한 마디 더 윽박지르더니 영호가 동국에게 고갯짓을 했다. 누가 간부이고 누가 병인지 알 수 없었지만, 동국은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영호를 따라나섰다.

-소대장님은 저 놈들 상대하지 마십시오. 안 그러셔도 됩니다.

부대 쪽으로 한참을 걷고 있을 때 영호가 슬쩍 말을 건넸다. 동국은 무어라 답을 해얄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줄줄이 말을 늘어놓는 것은 영호였다. 아까 부대를 떠나 정글로 들어설 때와는 숫제 다른 모양이었다.

-소대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해병은 해병이 다루는 법 아니겠습니까. 저한테만 말씀하셔도 족치고 어르고 알아서 하겠습니다. 못 배워먹은 놈들이라 소대장님이 말씀하시면 더 뻗대는 놈들이고.

-자네는 저따위 짓이 옳다고 생각하나.

영호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동국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기에, 그 다음 말은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영호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표정이 나타내는 부정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소대장님은.

영호가 입을 열었다.

-월남을 잘 모르십니다.

-한국에서는, 신문들마다 자네들 칭찬일세. 자네들이 월남에서 다리도 놓고, 학교도 놓고 한다고. 싸울 때는 귀신 같지만 양민 보호에는 열심들이라고. 백 명 베트콩을 놓쳐도 한 명 양민을 구한다고. 그래서 미군도 혀를 내두른다는 거야.

-저희들도 안전지에서는 대민 지원도 하고 합니다. 저희들도 뭐 다르겠습니까. 그렇지만…….

영호는 다음 말을 한참 고심하는 듯 보였다.

-‘양민’은 없습니다. 누가 양민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걸 말하는 게 아냐.

동국은 잘라 말했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저따위 나쁜 짓하라고 나라에서 이역만리 땅에 자네들을 보낸 게 아니지 않나.

-저는 나쁜 짓 안했습니다.

이번에 동국 쪽을 쏘아보는 것은 영호였다. 동국은 그 눈빛을 마주 보았다. 철모 밑의 시커먼 얼굴에서 살기등등한 눈빛이 동국의 눈을 맞받았다. 한참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즈음에 영호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다시 앞으로 걸어 나섰다. 그러나 동국은 자신이 이겼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영호가 말하는 ‘나쁜 짓’이 무언지 추궁하려던 생각도 사라졌다.

꽤액꽤액.

처음 듣는 희한한 새 소리였다. 나무를 두리번거려도 새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동국은, 그 소리가 원숭이 우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임하사들은 잔나비 우는 소리라고 했다. 꼭 까마귀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직박구리 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 월남을 떠나는 날까지 즈음해서야 동국은 새 우는 소리와 원숭이 우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었다. 하나는 날개가 달린 새고, 다른 하나는 사람처럼 팔다리가 달린 짐승인데도, 둘이 우는 소리가 그렇게 같았던 것이다.

4.

* 길에서 빛나는 것을 보고 악마는 고개를 숙였다. 악마가 주워 든 것은 낡은 지포라이터였다. 라이터에는 남아있는 각인을 보고 악마는 허리를 굽혀 가며 폭소했다.

‘저승에서 나는 천국에 갈 것이다. 이승에서 나는 지옥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을 차지하려면, 개활지를 확보해야 했다. 개활지를 확보하려면, 개활지 너머의 고지를 확보해야 했다. 개활지 너머의 고지에 숨어있는 베트콩들은 햇빛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었다. 마을은 베트콩의 생명줄이었다. 고지를 확보하려면 마을을 차지해야 했다.

대대의 명령은 개활지를 확보하라는 것이었지만, 그래서 중대는 고지로 향했다.

-특등사수가 그렇게 자랑스럽냐.

-자랑스러운 게 아닙니다.

후로꾸는 언제나 가슴팍에 특등사수 마크를 달고 다녔다. 촌스러운 짓이었다. 그러나 후로꾸는 입는 옷마다 특등사수 오바로크를 박아버렸다. 영호는 그것을 이죽거린 말이었지만 후로꾸의 대답은 반듯했다. 아마도 영호가 이죽거린 말을 잘못 들은 것 같았다.

-요, 요 가늠자, 요 바늘구멍 같은 가늠자 안에 있는 것만이라도, 제발 다 맞추고 싶은, 그냥, 그런 겁니다. 씨발.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이 안에 있는 걸 못 맞추면 죽고 싶습니다. 이 씨발좆같은 전쟁터에서 무언가 어떻게든 제가 할 수 있는 건 요 바늘구멍 안이 전부인데.

영호는 무어라 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영호는 후로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었다. 진심이었다.

해가 쨍했다. 어느 누구도 논을 가로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논 사이에 난 소로를 통해 고지까지 가는 건 오히려 날 잡아 잡수라는 것과 같았다. 차라리 대각선으로 논을 가로지르자는 것이 선임하사의 생각이었다. 숨을 곳이 없는 건 논도 마찬가지였다. 수답지는 최대한 신속하게 돌파하되 양민의 재산피해가 없게 하라는, 하나마나한 명령이 전부였다.

다들 첨벙거리는 소리에 싯팔거리는 욕을 숨겼다. 군화 안에 시커먼 흙구정물이 배어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제일 앞서 나가는 것은 땡비였다. 그 뒤로는 새로 전입을 온 일병 두 놈이 있었고, 그 뒤로 해태, 그 뒤로 영호와 후로꾸가 있었다. 상고는 휴가였다. 싯팔새끼, 운도 좋다며, 늘 붙어 다니던 땡비가 중얼거렸다.

제일 먼저 쓰러진 건 땡비였다. 총소리는 그 다음에 울렸다. 저격수다, 누군가 외쳤다. 토껴! 영호가 외쳤다. 슁, 바람 소리와 함께 영호 옆의 물이 튀었다. 총소리가 울렸다. 영호는 정신없이 달렸다. 흔들리는 눈앞에서 일병 하나가 두 팔을 벌린 채 엎어지는 것이 보였다.

논둑의 수렁이 보이자 영호는 몸을 날렸다. 슁, 귓가에 총알 날아가는 소리가 들었다. 부레옥잠이 둥둥 떠다니는 미지근한 구정물에 고개를 처박고, 영호는 숨이 컥 막혀올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지자 몸을 반 돌려 숨을 고르고, 그제야 몸을 바로 뒤집었다.

조용했다.

교전을 한다면 누군가 다라락 총을 갈기거나, 아니면 중대로 무전을 치는 소리가 들릴 텐데, 그런 소리조차 없었다. 총소리가 멎고 난 세상은 언제나 죽은 것처럼 조용했다. 얼마나 죽은 걸까. 영호는 자신이 본 것들을 떠올렸다. 영호의 눈으로 본 것만 두 명이 총을 맞고 엎어졌다.

조용히 머리를 내밀었다. 구정물에는 부레옥잠과 개구리밥이 가득했다. 고개를 들었더니 방금 달려 나온 개활지가 보였다. 다섯 명이 엎드려 있었다. 영호는 눈시울이 벌게지는 것을 느꼈다. 삽시간의 일이었다. 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아, 다섯 명이 엎어진 것이다.

총알은 고지 쪽에서 날아왔다. 저격수는 그쪽에 숨어 있을 것이다. 쏘는 속도가 빨랐다. 아마 근거리에 숨어 있을 것이다. 영호는 천천히 고지 쪽으로 기어갔다. 모기들이 꼬였다. 월남의 모기들은 과일에 끼는 파리처럼 작았다. 이 작은 모기들은 살아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죽은 시체에도 잔뜩 엉겨 붙었다. 모기들이 귓가에 신나서 잉잉대는 것을 영호는 참았다. 움직임이 커질 때마다 진흙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고 영호는 속으로 다짐했다.

한 시간 가까이 기었다. 땅에서 숨결보다도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뜨겁고 축축한 바람이었다. 오백 미터도 채 기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영호는 속으로 다짐했다. 덤불들의 키가 점차 커졌다. 영호는 슬그머니 무릎을 짚고 반쯤 몸을 세웠다. 작은 산길이 보였다. 산길을 오른쪽에 두고 영호는 비탈길 아래로 엎드렸다. 인기척이 있었다.

영호가 엎드린 수풀에 하필 개미굴이 있었다. 개미들이 영호가 짚고 있는 오른팔의 팔뚝으로 따끔따끔 기어올랐다. 기어올라 잔뜩 물어댔다. 그래도 영호는 숨을 죽였다. 인기척은 꾸준히 커지고 있었다. 걸음 소리가 가벼웠다. 한 명이다 싶었다. 게다가 영호는 기습을 하는 입장이었고, 소총이 있었다.

죽여야지, 영호는 다짐했다. 베트콩들이 이런 마음이랴 싶었다. 덤불 너머로 슬쩍 고개를 들어보았다. 어떤 놈이 내려오는지 얼굴을 보았다.

여자였다.

옅은 회색 아오자이를 입고 있었다. 몸이 가녀렸다. 손에는 무슨 바구니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영호는 방아쇠울에서 손가락을 내렸다. 그냥 보낼까, 싶었지만 그래도 내려오는 것을 보니 물어보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 따이렌(손 들어)!

영호는 소총을 쥐고 헐떡였다. 이럴 때 월남 말 몇 마디라도 할 수 있는 해태가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다. 월남 말 교육을 들었을 걸. 그러나 영호가 방금 자신이 외친 말이 맞는지 고민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영호의 차림을 보더니 여자가 갑자기 몸을 돌쳐 달려가기 시작했다.

여자가 달려가는 방향에 웬 오두막이 있었다. 이 년이 저격수다 싶었다. 총이 나가지 않았다. 노리쇠에 물풀이라도 감겨 들어간 것일까. 영호는 총을 내던지고 손으로 땅을 더듬었다. 손에 주먹 만한 차돌을 집혔다. 그것을 그대로 집어 던졌다. 허리 중동이에 돌을 맞은 여자가 휘청거렸다. 영호는 잽싸게 달려가 머리채를 끌어 쥐었다. 이 싯팔년, 영호는 그대로 여자를 잡아끌었다. 여자가 무어라 소리를 질렀다. 조용해라, 이년아. 영호는 머리채를 쥔 그대로, 여자를 돌려 세웠다. 그리고 뺨을 후려갈겼다. 여자가 침을 뱉었다.

다시 한 번 뺨을 후려쳤다. 여자의 코에서 주르르 피가 흘렀다. 그래도 여자는 영호를 쏘아보았다. 이 싯팔 베트콩년이. 영호는 욕을 지껄였다. 여자도 무어라 월남 말을 지껄였다. 영호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따이한’이라는 말이었다. 그래, 싯팔, 내가 따이한이다. 영호는 주먹으로 여자의 배를 후려갈겼다. 여자는 허리를 푹 숙인 채 고꾸라졌다. 영호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오두막으로 향했다.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오두막의 창가에는 베트콩 저격수들이 쓰는 소총이 있었다. 이걸 보라지. 영호는 다시 한 번 여자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창틀에는 칼로 새긴 바를 정(正)자가 있었는데, 방금 새긴 정자가 하나, 그리고 그 옆에 한 일(一)자 하나가 있었다.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네가 죽였지, 이 썅년. 윽박질렀다. 여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여자의 눈에는 벌겋게 눈물이 고였다. 썅년이. 영호는 다시 한 번 여자를 윽박질렀다. 어쩐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여자가 다시 몸부림을 쳤다. 키는 영호보다 머리 하나가 넘게 작은 여자였지만, 힘이 셌다.

머리채를 다시 한 번 틀어쥐었다. 영호의 머리 바로 앞에 여자의 얼굴이 있었다. 여자가 몸부림을 멈추고, 영호를 노려보았다. 영호는 여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코 아래로 검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눈이 제법 컸다. 여자의 진한 몸 냄새가 풍겼다. 영호는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오두막 안에 탁자가 있었다. 탁자 위에는 호롱불 하나가 놓여 있었고 대나무일지 갈대일지를 짜 만든 그릇이 하나 있었다. 제 몸으로 여자를 눌러 놓았다. 이제 무얼 해야 하지. 영호는 여자의 몸을 수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스스로 변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여자의 몸을 더듬는 것이, 어느새 움켜쥐고 있었다. 이래도 소리를 안낼 테냐. 속으로 그런 생각도 든 것 같았다. 그럼 어디까지 소리를 지르지 않나 보자. 영호는 단추를 끌러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몸을 밀어 넣었다. 이 싯팔 년이 우리 애들을 죽였어. 그 짓을 하며 영호는 생각했다. 그러면 그냥 쐈으면 되지 않았냐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아옹다옹 말다툼이라도 하는 것마냥, 생각과 생각이 서로 치고 받으며 물어뜯었다.

몸이 나른했다. 여자의 하반신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여자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죽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호는 여자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뗐다. 불덩이를 쥔 것처럼 손가락 끝이 뜨거웠다. 숨에 비릿한 냄새가 훅 풍겼다. 몸을 일으켜 여자의 하반신을 바라 보았다. 갑자기 여자가 어깨를 젖히더니 팔꿈치로 영호의 얼굴을 후려쳤다. 아쿠, 영호가 얼굴을 쥐고 쓰러졌다. 동시에 여자가 탁자 앞으로 훌쩍 뛰었다. 총, 창가에 여전히 저격총이 있었다. 싯팔, 욕을 뱉으며 영호는 한 손으로 코를 쥔 채, 탄띠에 찬 권총을 뽑아 쥐었다.

여자의 등에 총을 갈겼다. 아차, 싶은 건 갈기고 나서였다. 여자는 문가에 엎어져 있었다. 창가 쪽으로 뛴 게 아니었다. 몇 발을 맞았는지, 허리께가 검게 피범벅이 된 채로, 여자는 몸을 질질 끌며 기어나가고 있었다. 기어나가면서도 신음 소리 하나 없었다. 영호는 여전히 나른했다. 권총을 쥔 손가락 끝이 뜨거웠다.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피비린내였다. 웅웅, 모기 떼같은 것이 달겨드는 것 같았다. 아니면 누가 킬킬, 웃고 있는 것 같은 소리가 마치 모기 떼처럼 귓가에 성가셨다. 그러나 영호는 손을 들어 그 웃음 소리를 쫓을 생각도 없었다. 싯팔거, 될 테면 되라지 싶은 기분이었다. 바지를 올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영호는 여자의 등판에 권총을 겨누었다.

한 탄창을 다 비우도록 갈겼다. 빈 방아쇠를 당기고 당기고 다시 당기다가 그만 권총을 집어 던지고 말았다. 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벌러덩 드러누웠다. 누가 뒷문을 박차고 왔을 때, 영호는 뒷문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조차 안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가옥 수색을 할 때 가장 기본인 것인데. 영호는 몸을 굴렸다. 무릎 아래로 내려가 있는 바지 때문에 달릴 수도 없었다.

바닥에 놓인 권총을 쥐었다. 권총의 검은 가늠자 너머로 시커먼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을 때에는, 철컥, 빈 방아쇠 소리가 들렸다.

영호는 총에 맞은 것처럼 몸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굳어가는 손가락을 겨우 움직여 영호는 울부짖고 있는 베트콩에게 권총을 집어 던졌다. 베트콩의 손에는 칼빈 소총이 들려 있었다. 베트콩은 영호 몸에 칼빈 소총 탄창 하나를 전부 갈겨대면서도 계속 시끄럽게 소리를 쳐 댔다. 형편없는 실력이었다. 칼빈 소총 탄창에는 서른 발이 들어가는데, 영호가 맞은 것 고작 네다섯 발이었다. 그러므로 영호의 사인은 과다출혈이었다. 허벅지가 터져나간 채, 대동맥에서 피를 뿜으며, 영호는 흐릿하게 감기는 눈으로, 베트콩이 자신에게 갈겼던 칼빈 총을 집어던지고 영호가 쏘아죽인 여자의 시체에 엎어져 울부짖으며 여자의 머리에 입을 대다가, 두 손으로 여자의 손을 쥐더니 허공에다 귀가 따갑게 소리를 질러대는 것을 보았다.

웃음이 났다. 나는 지옥에 가겠구나. 나는 분명하게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영호는 그런 생각을 했다. 총에 맞은 배는 뜨거웠는데, 팔은 차가웠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엎어져 죽어가면서 영호가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이것이었다.

내가 그짓을 하기 전에 저 새끼가 들어와서 날 쐈다면, 그 때는, 괜찮았을까. 그 때 죽었으면 천국에 갈 수 있었을까? 아니겠지.

천국에 갈 수 있으려면, 나는 언제 총을 맞아야 했을까?

정글에 들어서기 전? 똥통 아니면 그 베트남, 시끄럽게 소리 지르던 씨스터. 그도 아니면 이 월남 땅을 밟기 전.

춥다. 춥구나. 나는, 언제부터, 천국에서, 쫓겨나, 꾸역꾸역, 살고 있었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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