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하면서 존귀한 것, 재주에 대하여
1.술판
호롱불 위에 달이 돋았다. 나방의 날갯짓에 달이 휘청거렸다. 늦더위에 취한 구름이 달려들었다. 구름은 진한 먹선을 남기며 달을 희롱한다.
절그럭, 질그릇이 개다리소반에 부딪친다. 통갓을 쓴 넙데데한 얼굴의 곰보가 어이쿠, 입으로 장단을 맞춘다. 그러더니 주전자를 들어 표주박에 탁주를 따랐다. 젖처럼 뽀얀 탁주가 마른 박에 가득 차오르는 것을 보고나서야 마주앉은 노인은 흡족하게 수염에 묻은 탁주를 빨았다.
노인이 왼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핥고 지나간 달은 창창하기 그지없다. 영감이 입을 벌린 채 달을 올려다보는 것이 한없이 길어질 듯하다. 그러자 노인의 눈치를 보고 있던 곰보가 잔뜩 볼멘소리를 궁얼댄다.
도대체 글씨는 언제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요, 어르신.
돌에 맞은 수면처럼 노인의 눈가에 주름이 일었다. 노인은 그저 헤헤 웃는다. 그러더니 마른 조롱박을 든다. 휘청거리던 탁주를 노인은 합조록한 입으로 벌컥벌컥 들이켠다. 다시 수염을 빠는 노인의 얼굴은 갓 탈피한 나비만큼이나 매끈한 얼굴이다.
어르신을 두고 사람들이 신필이라 일컫는데, 이렇게 술만 드시다간 그 신필도 다 삭아 없어지겠습니다요.
곰보가 비 맞은 중처럼 불평을 이어간다.
나리께서 어르신께 선대인 제사 때 쓸 병풍글씨를 받잡고자 하는 이유가 호사가들과 다르다는 것은 어르신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요. 어르신께서 선대인과 교분이 두터우시다고, 마치 그 무어냐, 물과 고기가 서로 어우르는 사이, 그렇지, 수수지교라 하셨습니다요.
노인은 곰보의 말 속에서 송강 정철을 떠올렸다. 조선 팔도에서 가장 속된 사나이. 누구는 그를 두고 신선인체 하는 도척과 다름없다고 흉을 보았다. 도척이 누구냐. 사마천이 그 준엄한 붓을 들어 사기(史記)에서 말하기를, 사람의 간을 안주로 내어 먹었으며 공자의 제자가 일갈해도 뻔뻔하게 대꾸했다는 사람. 과연 중국 역사 최악의 도적이라 불리는.
도척, 아니, 정철이 죽인 선비가 1,000명이 넘다 하외다, 누군가 혀를 내두르며 그렇게 전했다. 과연 정철은 본격적인 동인의 수장으로 홍진(紅塵)을 묻히던 당시의 모습은 노인이 알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노인이 아는 송강(松江)은 그저 그의 호 그대로, 귀뚜라미 소리가 우거진 강가에서 자신과 함께 솔잎을 베고 누워 달을 보고 술을 따르던 선비였다.
풍채가 좋고 수염이 좋던 사람. 술이 익었단 소리를 달이 떴다는 소리만큼 좋아하던 사람. 정철이 고인이 된지도 수해가 넘었지만 노인은 아직도 정철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수어지교(水魚之交). 고기가 물을 벗하고, 물이 고기를 벗하여 노님이 어찌 물과 고기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함 끝에 나온 것이랴. 수어지교의 고사 속 제갈량과 유비도 그러하였으리라. 유비가 제갈량을 어찌 이해하고, 또 제갈량은 자신의 군주를 어찌 이해했으랴. 그저 서로 즐겁게 노닐 수 있다면 그 뿐.
어르신께서 신필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자 하신다면, 이름과 함께 글씨를 남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요. 뭣이냐, 범은 죽어서 거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도 글씨를 남기는 법이라고. 헤헤.
곰보가 머리를 긁적인다. 주제에 맞지 않게 입에 고사를 올린 것이 그래도 제 딴에는 썩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노인도 마주 웃었다. 곰보가 노인이 병풍을 그려주면, 선고(先考)의 제사에 쓰겠노라는 정철의 차남, 정종명의 말을 전한 것이 어언 춘삼월의 일이다. 그에 노인은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벚꽃이 채 꽃망울도 올리기 전의 일이 어느덧 귀또리가 울음을 헤는 늦여름까지 늘어졌다. 곰보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마따나 오뉴월 쇠불알도 자신마냥 늘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글을 쓰지 않겠다는 노인의 고집만큼이나 제 주인의 뜻을 받들고야 말겠다는 곰보의 충심도 질겼다.
노인은 다시 정철을 생각했다. 늙은 목구멍 속에 가득한 것이 가래뿐이랴. 노인이 시조를 뱉었다.
짚방석 내지마라, 낙엽엔들 못앉으랴
관솔불 내지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이야,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없다말고 내여라.
흥, 그게 무슨 노래랍시구.
타령에 흥을 돋우며 기생이 치는 질장구는 커녕, 곰보의 콧방귀 뀌는 소리가 전부지만 노인은 흥이 돋았다. 정철과 성흔, 셋이 마주 앉아 시정잡배들이나 부를 법한 시가를 부르며 낄낄거리던 일이 지금 일처럼 떠오른다. 그래, 시정잡배가 따로 없었지. 어깨가 들썩인다. 누군가 붓을 쥐어준다면, 글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곰보는 노인의 철 지난 흥이 눈꼴시기만 하다.
곰보가 술잔을 들어 낙엽에 흩뿌린다. 잔 바닥에 남아있던 탁주가 수십 개의 둥그런 달이 되어 허공을 가른다. 노인의 눈도 공중에 멎는다. 바닥을 향해 낙하하는 물방울을 좇아 노인이 추억을 더듬는다.
2. 영빈관
공중을 날던 시커먼 핏방울들이 후두둑 낙하한다.
시커먼 얼룩이 족자에 번진다. 방안에 침묵이 흐른다. 그 침묵은 비명이나 다름없다. 경악에서 오는 침묵이다. 뒤늦게 코를 싸쥔 역관만이 누렇게 뜬 얼굴로, 자신의 코에서 쏟아진 낭패를 바라본다.
역관이 입을 채 벌리기도 전이다. 명 대신의 살집 있는 손바닥이 허공을 가른다. 공기가 무겁게 흩어진다. 역관의 가벼운 몸이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코피가 얼굴에 가득 번진다.
대인, 용서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 대인!
바닥에 몸이 닿고서야 역관의 입에서 말이 쏟아져 나온다. 흐느낌 같기도 하고 비명같기도 한 외침이다. 그러나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대인은 식식거리며 마구 발길질을 날린다. 역관은 눈을 감고 비명을 지른다.
조선 사신들도 역관의 비명이 들리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그들의 눈에는 피범벅이 된 역관의 모습도 사라진지 오래다. 청년, 한호는 그 광경 앞에서 눈을 감았다.
눈꺼풀과 눈 사이의 어둠속에서 압록강을 건너 대명국의 땅을 밟은 이후의 시간이 지나간다. 역관은 사흘이 넘게 눈을 붙이지 못했다. 역관이 맡은 임무는 통역뿐만이 아니다. 조공 물품을 살피고 이역만리 길에 발이나 다름없는 말, 노새 따위가 혹여 다리를 절세라, 그들을 살피고 여물을 책임지는 종사관등을 통솔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노잣돈으로 챙겨온 은냥과 홍삼뿌리를 좋은 값으로 팔아 사신들이 쓸 여비를 마련하는 것도 그가 맡은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맡은 일 중에서 가장 막중한 것은 상감의 표문을 전하는 일이다.
지극히 존귀한 상감이지만, 압록강을 건너면 그저 조선왕에 불과하다. 아니, 황제의 신하다.
왕은 황제 앞에서 신하를 칭한다. 신, 참으로 황공하고 기쁘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씀을 올립니다, 라는 말로 시작하는 표문은 비굴하기 그지없는 문구로 범벅이다. 신하도 마찬가지다. 황제의 신하 앞에서 조선 사신들은 그를 제 임금으로 여겨야 했다.
그 아첨마저도 역관의 혀를 빌린 것이건만, 추어발림에 흥이 오른 대신은 가보를 보여주겠노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군자의 나라에서 오신 선비들을 맞았으니, 내 그 높은 안목에 맞는 귀물을 보여드리리다.
종들을 물리치고 대신이 살진 몸을 흔들며 손수 가져 온 것은 다름 아닌 한 폭의 족자였다. 아무 글자도 없는 텅 빈 족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신도 있었지만, 서사관으로 행렬을 따라온 석봉은 미색의 여백이 뿜는 서슬에 몸을 떨었다.
기와집을 판다 하여도 얻지 못할 귀물이다, 석봉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과연 대신이 턱을 흔들며 말하는 것은 이 족자는 송으로부터 전해오는 것으로, 그 숱한 난리를 겪고도 살아남은 것이라 한 개의 성을 주어도 바꾸지 않을 만큼 귀하다는 것이다.
사신들의 요란한 반응 속에서 그제야 겨우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자 대신이 설명이라도 할 요량으로 역관에게 족자를 들게 하였다. 대신의 입에서 얼근하게 취해 더욱 알아듣기 힘든 중국어가 쏟아져 나왔다.
우리 집안의 보물이오. 선고께서 족자가 족자로만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냐며, 숱한 문장가들을 불러 글씨를 써보라 청하셨지만 아직까지 족자에 붓을 댄 이가 한 명도 없다오. 안타까운 노릇이오. 왕희지와 같은 이가 있다면, 내 지금 당장이라도.
그 순간이었다. 대신의 말을 좔좔 읊던 역관의 코에서 검은 피가 솟았다. 코에서 뜨거은 것이 치미는 것을 뒤늦게 눈치 챈 역관이 다급하게 코를 말아 쥐었지만 그 새 검은 피가 곡선을 그리며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낙하한다.
미천한 것이 행렬에 따라온 것도 천운으로 여겨야 할 것을...! 이번 사신 행렬의 대표를 맡은 정사가 정3품의 관직이 부끄럽지 않도록 기른 수염을 떨며 뇌까렸다. 저 미천한 것의 행동으로 국사를 흩트리다니 이 죄를 어찌 갚을 수 있단 말인고!
미천한 집안. 석봉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무슨 경거망동한 짓이란 말인가.
소매가 무겁다. 석봉은 문득 제 소매를 내려다보았다. 정사의 손이 제 손목을 붙들고 있었다. 귓가가 뜨거웠다. 정사의 눈초리가 석봉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두의 눈이 석봉을 보고 있었다. 어느새 일어나 있었단 말인가. 석봉 스스로도 놀랄 일이다.
어서 대인께 사죄하고 자리에 앉게. 서사관.
정사의 목소리는 눈빛만큼이나 무거웠다. 행렬에서 서사관을 맡은 자신의 위치는 역관과 크게 다름없다. 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보고 듣는 것을 적은 글이지, 석봉이라는 사내가 아니다.
그러나 몸은 나아가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족자를 집어 들었다. 핏자국이 검게 말라붙고 있었다. 대신을 지나쳐 걸상에 족자를 놓았다. 대신의 살진 볼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대신의 매기 수염이 파르르 떨리는 것 까지.
먹을 쥐었다. 연적의 물을 벼루에 따른다. 연적의 부리를 따라 물이 넘어가는 소리가 꼴꼴, 마치 숨넘어가는 소리 같다. 먹을 간다. 숨소리 하나 감히 내뱉는 이 없는 고요한 방 한가운데 오로지 먹 향이 짙었다.
손에 닿는 붓의 느낌이 낯설다. 손가락 사이에서 노니는 붓의 몸통이 낯설다. 붓에 함뿍 먹물을 적시며 한호는 목소리를 들었다.
너희는 곧 조정을 대표하여 과인의 뜻을 대국에 전하는 것이다. 감히 경거망동하지 말며 천에라도 하나 오해를 살 일을 하지 말거라.
상감의 목소리는 오로지 지엄했다.
이 어미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
진사 나리, 진사 나리, 어미는 떡판을 내팽개치고 절을 하며 울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진사시에 붙고 집을 찾았을 때 어느새 낯선 노파가 되어있던 어미는 흰 울음을 울었다.
이제 도를 알겠더냐.
글씨를 쓰다 늙어버린 중의 목소리는 낡은 목탁처럼 쇠어있었다.
한양으로 떠나기 전, 늙은 중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스물다섯의 석봉은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한미한 집안의 네가 몸을 일으켜 이름을 날리고자 한다면 속된 재주이나마 갈고 닦아 세상에 선보이는 것뿐이다, 그 재주가 네게는 글씨이거늘.
12살 석봉을 꿇어앉힌 스승의 목소리는 낮고 가래가 낀 것이었으나, 소년에게는 마치 신선의 목소리나 진배없는 것이었다. 몸을 세우고 이름을 날린다. 지아비없이 떡을 팔아 생계를 잇는 여인의 집안에서 가당키나 한 일인가.
피로 글을 쓰는 일은 쉬운 일이다. 익숙했다. 종이와 먹이 없어 돌 위에 젖은 손가락을 휘둘러가며 글을 배웠다. 나아가 대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며 글자를 익혔다. 코피가 떨어지면 그 먹물과 닮은 검은 것이 아까워 그것으로 글씨를 이어나갔다.
손가락에 들린 붓이 허공에서 움직인다. 붓의 끝을 타고 영글던 먹이 종이에 잇달아 떨어진다. 실수인가. 누군가 숨을 들이킨다. 그러나 석봉이 보고 있는 것은 제 붓도 아니요, 대신이 아끼고 아끼는 족자도 아니었다.
한호는 눈을 감고 있었다.
허공을 노닐던 붓이 문득 멎었다. 그러더니 수지니처럼 내리꽂혔다. 붓이 움직인다.
3. 방
꿇어앉은 무릎이 저려온다. 과거장의 돌은 박하고, 그리고 또 두텁다. 시험지 사이를 돌아다니는 관리들의 형형한 눈초리가 화강암 위에서 눈이 부시게 번져온다.
눈을 떠도 망망하다. 이제 겨우 한 획을 그었을 뿐이다. 그 한 획의 먹이 번져온다. 점차 석봉의 눈을 휘감고 몸을 뒤덮는다. 이제 손을 휘둘러도 건질 것 하나 없는 어둠 속으로 석봉은 빠져들었다. 어둠은 짙고도 깊었다.
문득 소리가 들렸다. 석봉은 그제야 자신이 눈을 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졸기라도 한 것일까. 서둘러 황망하게 눈을 뜨는 석봉의 눈에 익숙한 풍경이 담겼다. 방이다. 낡고 늙은 방. 똑, 똑, 똑, 발굽 소리 같은 것이 그 낡은 벽에 부딪쳐 부서지고 있었다.
꿈이구나. 석봉은 문득 안심했다. 내가 과거를 보다니. 꿈이었구나. 흉몽이다. 흉몽이었어. 꿈속에서 나는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던 게야.
이제 석봉은 귀에 울리는 도마소리가 꿈에서 들리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늙은 방 안에는 침침한 어둠이 가득했다. 처사들이 쓰는 봉놋방의 익숙한 풍경이 새벽의 어둠 속에서 번져왔다.
아침은 아직도 두 식경은 더 지나야 하리라. 처사들의 코고는 소리가 국에 퍼지는 소금처럼 번져왔다. 남정네들의 몸이 수없이 오가며 풍기는 쿰쿰한 체취가 문득 낯설었다.
방구들은 식어있었다. 석봉은 몸을 뒤척였다. 돌바닥에 꿇어앉은 것처럼 온 몸이 저렸다. 기억이 밀려들고 빠지면서 아마도 잠도 달아난 모양이었다. 애써 달아난 잠을 쫓고 싶지는 않았다. 석봉은 다시 눈을 감았다. 똑, 똑, 똑, 도마를 써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불을 켜라.”
골방 가득한 어둠 속에서 기름 젖은 심지에 불이 붙는다. 호롱불이 밝아온다. 손에는 가득 땀이 묻어있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목탁 소리만큼 또렷하게 들린다.
기름이 타는 냄새가 고소하다. 방안은 온통 붉은 빛에 비추어 제 색을 찾는다. 그 가운데에는 차게 식은 어미의 얼굴이 있다.
도마 위에 가지런히 썰린 가래떡은 붉게 얼굴을 물들이고 있었다. 떡을 썰고 난 칼도 도마위에 시침을 떼고 반듯이 누워있다.
이제 제 차례다. 고개를 숙여 자신의 글을 보기도 전에, 이미 시커먼 민망함이 몰려온다. 화선지는 알아볼 수 없는 획과 처참하게 번진 먹물자욱으로 엉망진창 얼룩져 있었다.
차마 눈을 뜨고 어미의 얼굴을 바라볼 수도 없을 만큼의 민망함보다 먼저 치솟아오르는 것은 분노다. 4년만의 해후다. 그 해후를 고작 이런 장님놀이로 대신하려는 것이, 서럽기만 하다
내가 무슨 광대요! 눈감고 글을 쓸 사람을 찾으면 판수를 찾아갈 일이지, 그 재주를 배우고자 사 년을 그 절간에서 굴렀단 말이오.
낯이 뜨겁다. 눈물이 차는 것을 소매로 눌러 닦았다. 입을 열 수 조차 없을 것 같던 창피는 온데간데없고 분노와 패악이 석봉의 팔다리를 마구 젓는다. 강짜를 부리는 외아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눈길이 매섭다. 그것이 오히려 더욱 서럽다.
네 집안을 일으키고자 글공부를 시작했으니,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되, 공부가 완성되기 전에는 이 어미 얼굴은 볼 생각도 말거라.
절간으로 떠나는 열 두서넛 난 아들의 얼굴을 매만지며 남긴 어미의 말은 다시 생각를 하면 독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려면 좋다. 그러나 참말 어미가 아들을 밀어낼 수 있단 말인가. 석봉은 제 어미의 상이 나도 굴에 틀어박혀 수학(修學)한 끝에 출세한 오기라는 자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내가 그런 금수이길 바란단 말인가.
출세? 출세? 그게 소원이거든 내 정녕 입신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리다.
어미는 호롱불과 눈물에 붉게 핏발선 아들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똑똑히 보오, 이게 아들 마지막 얼굴이오.
아궁이에 분지른 붓을 처넣었다. 집어던진 벼루는 시우쇠에 부닥뜨린 옹기처럼 부서지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화선지와 남은 옷가지까지 아궁이에 처넣은 뒤에야 석봉은 사립문을 박차고 집을 나섰다.
고개너미 즈음에 여인이 이를 악물고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귓속을 휘저었다. 석봉은 고개를 저었다. 쫓아야 했다.
장터를 떠돌며 일 년을 살았다. 글을 잃고자 했으나, 한호는 봉놋방의 어두운 천장에서 글을 읽었다. 허공에 무게를 쥐고 놀리는 석봉의 손가락에 무게가 실렸다.
출세하자. 입신양명하자. 그 전에는 돌아오지 말자.
석봉은 다시 절에 올랐으나 그 무게는 새삼 다른 것이었다. 머슴과 같은 석봉의 모습을 보고 왈패 같은 땡추들이 막았다. 그러나 석봉도 팔뚝 살에 틀이 박힌 몸이었다. 중들과 옥신각신하던 끝에 석봉은 주지의 방을 찾았다.
큰스님은 시주 받으러 떠나셨소. 오시려면 내일 새벽이슬 끝에나 오시려나.
눈썹이 진한 땡추가 아직도 분하다는 듯 살모사처럼 식식거리는 숨을 숨기지 않았다. 주지가 방에 없는 것이 고소하다는 듯, 부러 문을 세게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주지의 방에 꿇어앉은 채 석봉은 눈을 감았다.
저려오는 정강이를 눌렀다. 시간도 눌러 앉아 움직이지 않는다는 착각 속에서 석봉은 손가락을 움직여 풀어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리는 없어도 된다. 내게 필요한 것은 손이다.
주지가 온 것은 하룻밤을 꼬박 지나 거진 다음날 아침 해가 뜰 무렵이었다. 주지의 앞에서 봇짐을 끌렀다. 장터를 떠돌며 모은 무명삼베 필을 꺼냈다. 주지는 고개를 저었다. 학비(學費)는 이미 보살님이 다 치렀느니라. 보살님은 지난 일 년간 학비를 놓친 적이 한 번도 없었거늘.
꿇어 앉아있던 정강이는 어느새 목침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무릎 아래가 죽어버린 듯한 느낌 속에서 석봉은 어미를 떠올렸다. 자신이 장터를 떠돌아다니던 그 일 년 동안 어미는 꼬박꼬박 학비를 내온 것이다. 이 학비를 내기 위해 어미는 식은 떡을 끓는 물에 삶아먹으며 허기를 때웠을 것이다. 멥쌀이 없는 날에는 남은 쌀가루에 갖은 나물을 그러모아 버무리라고도 부르기도 뭣한 것을 삶아 먹었을 것이다.
출세하자. 입신양명하자.
석봉은 이를 다물었다. 뼈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붓을 쥐었다. 글을 썼다. 어둠 속에서 수백 수천 번을 그렸던 글씨를 종이에 옮겼다. 인중 위에 핏내가 돌 때까지 글을 썼다. 머리가 어지러울 때면 눈을 감고 어둠 속에서 다시 글을 썼다.
육 년이 흘렀다.
이제 도를 알겠더냐.
과거를 보러 간다는 석봉에게 중의 목소리는 목탁처럼 낡은 것 이었다.
암, 알고말고. 스물다섯의 석봉은 속으로 외쳤다.
밤이 되면 어둠 속에서 낡은 칼이 늙은 도마를 두디는 소리를 들었다. 강해지고 약해지기를 반복하는 그 소리는 뼈를 저미는 것처럼 사무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석봉은 속으로 되뇌었다.
그 것은 경지가 아닌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닦은 재주다. 소를 잡는 백정의 칼이 닳지 않고도 근육과 살을 가르는 것은 어떤 도를 익히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숨을 쉬듯, 먹고 살기 위해 칼을 놀리다가 얻은 재주다. 귀뚜라미가 울고 개구리가 벌레를 잡는 것과 무에가 다르랴.
석봉은 침을 삼켰다.
오로지 도를 닦기 위해 6년을 벌레처럼 붓을 놀렸다.
내가 도를 알지 못하면 누가 알랴.
석봉이 대꾸하지 않자 주지는 한 뭉텅이의 봇짐을 던졌다.
지난 일 년치의 학비(學費)다.
석봉은 대꾸하지 않았다.
주지가 다시 무언가를 던졌다. 묵직한 것이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쌀이다.
그제야 석봉은 주지를 올려다 보았다.
보살님께서 머리를 팔았느니라.
석봉이 눈을 떴다. 화강암에서 부서지는 햇빛이 환했다. 주위에는 수런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채우지 못한 시험지 앞에서 머리를 싸 쥔 이. 금방이라도 통곡을 할 듯이 잔뜩 얼굴을 찌푸린 이.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겠다는 듯, 제 답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 아직도 홀린 듯이 허공을 바라보는 이. 각양각색의 이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과거를 보고 관리가 되기 위해, 한양에 모인 이들의 야망이 버무리라고 부르지도 못할 무엇이 되어 잔뜩 뒤섞인 모습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인가. 석봉은 알지 못했다.
알 수 있는 것은 손에 들린 무게였다. 붓의 무게였다.
종이에는 한 획이 그어져있었다. 석봉의 붓이 그 획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획이 글자가 되는 것은 순간이었다. 글자는 문장을 이루고, 문장은 글을 낳았다. 석봉의 붓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오롯한 정적 속에서 석봉에게 들리는 것은 붓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뿐이었다. 그 소리는 칼이 도마를 두디는 소리처럼 울리고 퍼졌다.
석봉은 답을 마쳤다.
4. 영빈관
석봉의 붓이 멈추었다. 마치질을 마친 석공의 망치가 작품에서 떨어져 나오듯, 석봉의 붓도 족자에서 먹이 젖은 부리를 떼었다.
대신이 숨을 고른다.
방은 침묵했다. 수염을 고르던 이들도 손가락을 멈추었다. 대신이 무어라고 지껄인다. 그 목소리는 전에 없던, 한없이 상냥한 것이었지만 석봉은 듣지 못했다. 아직 석봉의 손에 들린 붓이 허공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대신께서.”
역관의 목소리가 석봉을 깨웠다. 대신과 역관이 다시 무어라 이야기를 속닥거렸다. 두어 번 허리를 조아리던 역관이 아직 붓을 쥐고 있는 석봉을 흔들었다. 역관의 손아귀는 뜨거웠다.
“대인의 이름을 듣고자 한답니다.”
대인? 대인이라니. 이제야 숨을 내쉴수 있게 된 사람처럼 방 여기저기서 사신들이 말소리를 뱉어냈다.
“대인이라 하였습니다.”
마치 대인이라는 말을 자신이 듣기라도 한 양, 아직도 입과 코 주변이 벌겋게 물든 역관의 눈은 마치 강아지가 주인을 보는 듯 하였다.
석봉. 성은 한나라 한의 한일세.
성급한 누군가가 대신 이름을 외쳤다. 역관이 다시 대신과 무어라 이야기를 나눈다. 대신이 껄껄,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지껄였다. 살진 턱을 흔들며 말을 하다 멈추고, 헐떡이다가 다시 말을 하기를 반복하였다. 역관은 시종 고개를 끄덕이며 추임새를 붙였다. 그 속에는 죽다 살아난 이의 황홀함이 가득했다.
“대신께서 말하기를.”
역관이 잠시 숨을 골랐다.
“대인을 몰라 뵌 것을 사과드리며, 자신의 자식이 글을 공부하고자 하는 자인데, 감히 대인께서 의형제의 예를 맺고, 글씨를 가르쳐 준다면 고맙기가 하량 없을 것이라 합니다.”
사신들은 술렁거리고 법석거리며 흥청거렸다. 흥이 양껏 오른 대신은 석봉의 어깨를 쥐고 어떻게 글씨의 도를 깨달았는지 묻고 또 물었다. 석봉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양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은 껄껄 웃었다.
5. 술판
이후는 어떠하였는가.
석봉은 조선의 신필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글씨가 적힌 화선지는 비단으로도 안 바꾼다는 이야기가 저잣거리를 떠돌았다. 이어 왜란이 터졌다. 왕은 그를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금과 은이야 쓰면 쓸수록 가벼워지는 것이지만, 석봉은 손에서 나오는 것이 보화이니, 화수분과 같은 보물인지라. 사람들이 숙덕거렸다.
피난길이 멎고 그 끝과 끝에서 석봉은 왕의 뜻대로 명나라의 장수들을 만났다. 석봉은 이여송을 보았다. 술상에서 그가 내린 술은 더없이 달고 향기로운 것이었다. 석봉은 임금이 내린 술보다도 더 복잡한 절차 끝에야 그 입술에 적셨다. 석봉은 관우처럼 수염이 긴 송유경도 보았다. 금박이 수놓인 갑옷에 가린 풍채가 장터에 묶인 돼지 같던 진린도 보았다.
석봉은 피난길에서 백성을 보았다. 명나라 군인들이 토하고 버린 것들을 손가락으로 훑어 먹는 백성을 보았다. 백가지 성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아귀처럼 모여 먹고, 그리고 살고자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잔치가 길어지는 날이면 석봉은 어둠 속에서 나무를 붙잡고 속에 있는 것을 게워냈다. 아직 차마 삭지 않은 음식을 보며 석봉은 누군가가 또 이것을 먹기 위해 다투겠구나 생각했다.
누군가가 바삐 달려와 석봉을 찾으면 석봉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래, 누구는 맨손으로 다투고 또 누구는 칼을 쥐고 싸우니 나는 붓을 쥐고 글을 써야지, 하며 석봉은 종이에 달려들었고.
그러한 그의 글씨를 어느 중국의 문장가가 목마른 말이 냇가로 달려가고 성난 사자가 바위를 내리치는 것 같다, 평하였으며,
신하들은 과연 대국의 문장가가 눈이 높다 하였고,
왕은 그 평이 후하지 않다 하여 수염을 떨며 성을 냈다.
왕은 석봉의 글씨를 두고,
기(奇)하고 장(壯)하기가 한량없다 하였으며,
그 자신도 서예를 하는 몸으로 석봉의 재주를 아껴 한벽한 자리의 군수에 두어 글씨를 공부하게 하였으나,
석봉에 대한 왕의 총애를 질시하던 자들이 앞 다투어,
석봉은 소인이요, 글씨와 풍류에 빠져 일을 잘 하지 못하니 그의 벼슬을 폐하라,
하고 상소를 일삼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석봉은 궁벽하고 한벽한 자신의 자리로 내려오게 되었으니, 이를 두어 글 깨나 읽는다는 이들은 손바닥으로는 하늘을 차마 가리지 못하는 것을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며 숙덕거렸다.
그런 이들은 이어 석봉의 글씨는 비천하고 한량한 재주로 간특한 솜씨가 감히 상감의 눈에 들었으나, 글씨에 진중한 도가 없고 예가 없으며 한낱 시장과 저잣거리에 떠도는 이야기만 가득한 자이니 세월이 흘러 금방 잊힐 재주라는 뒷말도 아끼지 않았다.
한 장의 글씨도 남지 않는다 하여도 제 놈이 지금처럼 이름을 날릴 수 있겠는가.
기생이 질장구를 치고 가야금을 뜯는 소리 속에서 그들은 아낌없이 청주를 마셨다. 석봉은 그 맑은 술이 더없이 달고 향기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되놈이, 아니 명국 대신이 참말로 어르신께 대인이라, 했다 이 말입니까?
곰보가 밭은 숨으로 이야기의 끝을 재촉했다.
노인은 대답대신 껄껄 수염을 흩날리며 표주박을 기울였다. 병의 끝에 깔려있던 탁주는 되다. 벼가 뿌리로 흙탕물을 거르는 것처럼 노인의 수염이 탁주를 걸렀다. 수염이 술에 젖고, 젖은 수염에서 술이 흐른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탁주 한배기를 들이켜고 나서 노인이 표주박에서 입을 뗐다.
늙은이가 취하면 이야기만 늘어놓는 법이야.
아무렴요. 저는 재미만 나고 좋은데요. 신필에게 신필의 이야기를 듣는데 어찌 지루할 리가 있겠습니까요. 그런데 어르신.
곰보는 글씨를 받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은 듯 했다.
어찌하면 그렇게 글을 잘 쓸 수가 있는 것입니까?
곰보의 물음은 엉뚱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의 글씨가 왕희지 선생의 글씨와 닮고 안진군의 글씨와 같은지, 나는 알 수가 없네만. 다만 이제 조금 헤아릴 수 있을 만한 것은 글씨를 내려쓸 때에는 물에 빠져 숨이 가쁜 이가 숨을 찾고 목이 마른 이가 표주박의 물을 찾는 것처럼 살뜰히 간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밭은 숨이 획을 쳐 올리고 간절한 마음이 점을 찍어 내린다.
노인의 대답도 엉뚱했다.
어찌 방에 앉아 휘적휘적 글 쓰는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간절할 수 있단 말입니까요?
곰보란 놈의 물음은 질겼다.
그게 바로 도라는 것입니까?
노인은 술독을 내려다보았다. 술독 바닥에 달빛이 차오른 것을 보니 취기가 가신다.
내가 글을 쓰기 위함은 도를 완성하기 위함이다, 치기 있는 소년의 외침이 머리를 울렸다. 예끼, 요 녀석아. 노인은 끌끌, 혀를 찼다.
나는 도를 알지 못한다.
나는 도를 알지 못하는구나, 노인은 다시 입속에 되뇌었다. 그동안 속으로 혼자 묻던 것을 지금 머리가 샌 노인이 돼서야 입 밖에 낼 수 있게 되었구나. 요런, 요런 어리석은 놈아.
도는 무슨 도, 이놈아!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움찔한 곰보에게 노인은 너털거리며 웃음을 뱉어주었다.
도를 닦은 이는 천 년을 넘겨 이름을 남기는 법이다. 설령 한 글자 글씨를 남기지 못하더라도 도는 남는다. 나는 감히 도를 알지 못하나, 재주를 갈고 닦았다. 재주는 비천하고 한량한 것이며, 간특하고 미련한 것이지. 시장에서 천한 이들이 기름을 따르고 떡을 써는 것과 같으며, 귀뚜라미가 울고 개구리가 벌레를 잡는 것과 무에가 다르랴. 다만 그 솜씨가 한없이 질박하고 절박한 것이 기특할 뿐.
“그저 먹고 살려는 게지.”
노인은 벌쭉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