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다렸소.
쉰을 막 넘었을 사내의 얼굴에는 밤이 유독 짙게 내리는 모양이었다. 벌어진 입에는 가릴 수 없는 반가움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사내는 아무도 없는 초원에서 갑자기 나타난 사람에게 아무런 적의도, 물음도 품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나는 사내의 어깨를 마주 안았다. 옷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기우고 이어붙인 짐승의 털가죽 밑으로 옹골지고 단단한 몸이 느껴졌다. 푹 삭은 냄새가 났다. 사람의 냄새라기보다 오래 떠돌아다닌 개나 들짐승에게나 날 법한 냄새였다.
사내는 너털거리며 웃음을 터뜨리고 게르 사이의 모닥불 앞에 앉았다. 밤을 새우기 위해 돌을 달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남은 고기가 있소. 마유주는 없지만, 어떻소. 내가 준비한 것은 술이 아니라오. 그대를 기다려 온 이 가슴이지.
사내는 다시 한 번, 가슴을 두드리고 웃었다. 그는 내가 자신이 건네준 고기에 묻은 재를 터는 것을 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바싹 익은 들쥐는 뼈와 고기를 가리지 않고 이 사이에서 마른 장작처럼 부서졌다. 나는 오랫동안 고기를 씹었다.
물이 없어서, 그만.
괜찮습니다. 제가 기대한 것은 고기가 아니라,
나는 고기를 씹으며 그의 얼굴을 보았다.
저를 기다려온 당신이니까요.
웃음이 다시 한 번 사내의 얼굴을 가로질렀다. 초원의 밤은 길었다. 나는 이빨이 듬성듬성한 미소를 오랫동안 볼 수 있었다.
2.
나는 몸을 일으켰다.
사내는 경건하게 손을 모으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털었다.
어머님은 편안히 가셨습니까.
그럼.
사내가 건네주는 돌 몇 개를 돌탑에 올려놓았다.
이곳은 좋은 곳이오. 신성한 산인 부르칼 칼둔이 항상 내다보는 곳이지.
나는 사내와 함께 풀밭에 걸터앉았다. 바람이 긴 풀을 쓸어 넘겼다.
몽골의 사람들은 소중한 이의 무덤 앞에서 새끼 낙타를 죽인다고 하지요. 어미 낙타가 보는 앞에서요.
그는 묵묵히 나의 말을 주어 들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
그렇습니까.
내 말은, 모두가 낙타를 몇 마리씩 가진 것은 아니란 말이네.
나는 소리죽여 웃었다.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곳을 낙타가 기억하길 바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지.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사내가 바라보는 곳에는 산이 있었다.
주치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사내가 웃었다.
아이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는가.
그럼요, 저 때문에 공연히 아이 이름이 주치가 되지 않았습니까.
낄낄, 사내의 웃음이 가볍게 치솟았다.
아이 이름을 손님이라고 짓는다고, 어머니께서 얼마나 역정을 내셨던가. 종손 이름이 그게 뭐냐고.
어머님이 던지신 국자에 제가 두들겨 맞았지요.
내 넋두리에 다시 한 번 사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왜 그걸 피하지를 못했는가.
사실 아이 이름이 그렇게 된 건 저 때문이 아니라, 마유주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 잘 아는구먼. 모든 문제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항상, 마유주가 있질 않던가.
아니죠. 적당한 때 마유주를 그치지 못하는 사내가 있을 뿐이죠.
바람이 볼멘 목소리를 싣고 흩어졌다. 바람에 놀란 새끼 메뚜기들이 톡, 톡 튀었다. 사내는 몸을 가로지르는 화살통 끈을 바투 멨다.
저 아래에 있는 무덤은 아내의 무덤일세.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보니 새로운 돌이 놓여있더군. 주치가 다녀간 게야. 주치는, 잘 살고 있네.
그리움이 묻어있는 목소리였다. 그리움은 사내의 목소리를 타고 톡, 톡 튀어 흩어졌다.
주치는 강한 전사라네. 이 아비보다 강한 사내가 되었지. 씨름도 곧잘 하고. 열다섯이 되면서부터 나를 넘어뜨렸으니 말이네.
나는 가죽에 쌓여있던, 피와 태가 묻어있던 주치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사람의 탄생이 그렇게 지독한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으며, 또 이렇게 작은 생명이 사람이라는 것에 놀랐다. 마유주에 흥건히 취한 사내는 내가 주치를 안아볼 것을 강권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작은 아이를 안았다. 제 부모의 품에서 곤히 잠들어있던 아기는 내 손바닥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금방 새처럼 빼빼 울기 시작했다. 아기와 나를 제외한 어른들은 웃었다. 모닥불도 불똥을 높이 날렸다.
자네가 아니었다면 주치를 안지 못했겠지.
사내도 그 즈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내의 목소리에 묻어있는 그리움이 화살촉처럼 지나가 화살깃 같은 슬픔이 나타났다.
보르테도, 아내도 자네를 기다렸네.
제가 너무 늦었지요.
나는 쓸쓸히 대답했다. 보르테의 얼굴은 내게 흐릿했다. 그러나 주치를, 자신의 첫아들을 내게 넘겨받으며 보르테의 하얗게 웃어보이던 웃음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니.
사내가 나를 돌아보았다. 사내가 이빨을 보였다. 나는 사내의 웃음이 죽은 아내의 웃음과 닮았다는 것에 놀랐다. 사람은 항상 사람에게 무언가를, 표정이라도 남기고야 마는 것인가. 아니면 사내가 아내의 웃음을 자신에게 새긴 것인가. 그리움은 이토록 지독한 것인가.
아냐. 자네는, 결코 늦은 적이 없다네.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3.
사내의 화살이 풀 사이에 꽂혔다. 그러나 나는 그 것을 볼 새가 없었다. 쐐기풀에 종아리가 스쳐 놀라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질 뻔한 뒤로 말이 나를 믿지 않는 게 분명했다. 사내 역시 앞으로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내가 뒤에 처질 때마다 나를 놀려대는 것에 재미를 붙였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말이 그대 등 위에 타는 게 낫겠네.
몽골의 사람들 눈에 누군들 기마가 능숙해 보이겠습니까.
나는 힘들게 대꾸했다.
입 놀리는 만큼만 고삐 놀리는 것에 능했으면 몽골 사람도 자네에게 말 타는 것을 배워야 했을 게요.
이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편입니다,
하고 대꾸하며 나는 말에서 떨어졌다. 히힝, 암말이 아무렇게나 갈기를 날리며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발굽에 맞는 일은 없었다. 사내가 암말의 고삐를 틀어쥐었다. 나는 사내에게 말의 고삐를 건네받고도 말에 오르지 않았다. 사내가 화살을 줍는 동안, 나는 그저 숨을 고르기에 바빴다.
오늘 사냥은 공쳤소.
죄송합니다.
아니, 고맙소. 당신이 난리친 덕에 내 화살 솜씨가 들통 나지 않았으니.
다행히 덫에는 들쥐 몇 마리와 작은 두꺼비 한 마리가 걸려 있었다. 사내는 두꺼비를 풀 그늘 사이로 툭 내던졌다.
중원 사람들은 개구리도 구워먹더군요.
중원에도 간 일이 있소?
사내는 나뭇등걸처럼 닳아버린 뼈칼로 쥐의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카이펑에 간 일이 있지요.
사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한 평생을, 도시의 그림자도 알지 못한 채 이 초원에서 가난한 목동으로 살 사내에게 참았던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이 가난한 초원에서, 그대는 행복했습니까?
사내가 나를 바라보았다.
행복했소.
4.
초원의 밤은 짙었다. 나지막한 언덕 위로 잠깐 고개를 비추던 달은 이내 힘을 잃고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달이 없는 밤에는 그 빛을 나눠 가진 별들이 빼곡했다. 흰 어스름이 큰 팔을 뻗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범죄자입니다.
나의 고백에도 사내는 여전히 모닥불을 뒤적일 뿐이었다.
처음, 나를 만나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사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침을 뱉었다. 입안을 성가시게 돌아다니던 쥐 뼈가 침과 섞여 초원의 어둠으로 사라졌다.
그대는 내가 텝 텡그리, 하늘의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이 지상의 사람이 분명합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내가 살던 시대에는, 다른 시간대로 여행할 수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살던 시대의 법을 피해 이 시간대로 도망 온 것입니다.
한 번 떨어진 입을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사내의 언덕 뒤에서 안개 같은 빛이 스멀거렸다. 나는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다른 시간대를 여행할 때는 엄격한 규칙이 있습니다. 다른 시대에 일어나는 어떠한 사건에도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로 치면 살인보다도 엄하게 다스리는 죄입니다. 그러나 나는.
사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모닥불에서 불똥이, 치솟아오르고, 이내 사그라들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러나 나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초원의 벌판에서 풀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스쳐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당신은 풀과 흙을 뜯어 입에 넣으며 울부짖고 있는 사내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은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늑대가 몸을 떨며 울었다. 메아리처럼 그 울음은 꼬리를 끌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위하여 도적들을 해치웠습니다. 원래 살고 있던 시대의 무기가 남아 있었던 덕분이었지요. 그리고 당신에게 보르테를 데려왔습니다. 당신은 보르테를 안고 울었고, 내 신발 앞에 머리를 비비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내게 혹시 텝 텡그리, 하늘의 사람이냐고 물었지요.
밤하늘은 묵묵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초원에는 낡은 게르가 있었고 한 명의 사내와 한 명의 범죄자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떨고 있었다.
나는 하늘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범죄자일 뿐입니다.
컹컹, 개가 짖었다. 사냥을 따라 갈 수도 없을 만큼 늙은 개였다. 사내가 가진 가축은 말 두 마리와 이 늙은 개가 전부였다. 내가 만났을 때 사내는 아홉 마리의 말을 가지고 있었다. 삼십 년이 흐르는 동안 사내는 양 한 마리조차 불리기는 커녕 더욱 가난해진 셈이다.
저 빛이 보입니까.
나는 손가락을 들어 언덕을 가리켰다. 그러나 사내는 내 손가락을 보지 않았다.
저 빛은 나를 데려가기 위해 온 것입니다. 카이펑에서, 변장을 하고 숨어있던 저들에게 붙잡히고 말았지요. 내 시대의 법에 따라 나의 존재는 사라지게 됩니다. 당신과의 대화가 내게 남은 마지막 시간입니다. 그 전에 나는 내가 이 시대에 저지른 일들을 모두 지우고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시대의 사람과 접촉한 사람에게,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이전의 기억이 남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하더군요. 내가 당신을 찾아온 이유입니다.
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보르테를 구한 것은, 내 실수였다. 내가 누구를 구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12세기, 어떠한 문명도, 역사도, 도시도 없는 초원. 쭉정이 같은 사람들 몇몇이 흩어져 있는 이 초원을 택한 이유였다. 그런데 나는 이 사내를 만났다.
한 사람의 보잘 것 없는 촌부. 이 가난한 목동에게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동정을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인가. 나는 늑대처럼 울부짖던 사내를 떠올렸다. 온 몸을 떨면서 울부짖던 사내의 그 울음을.
아시겠습니까. 나와 함께, 내가 이 시대에 남긴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우리의 과거도 사라집니다. 당신은 다시, 보르테를 잃고 울부짖던 순간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아무리 울부짖어도 나는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보르테를 안은 도적떼는 초원의 그림자 어딘가로 숨어들어 가겠지요.
나는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괜히 돌을 하나 주워 아무렇게나 던졌다. 늙은 개는 공연히 돌이 사라진 어둠을 보고 짖었다. 컹컹.
당신은, 당신을 위해 보르테를 찾아 줄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언덕 너머의 빛이 다시 아스라이 움직였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간절했다. 어쩌면 이 사내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모닥불을 쑤석이고 있었다.
모르겠소. 의형제가 한 명 있긴 하지만, 어떨는지.
마침내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의형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 초라한 사내의 의형제가 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지. 그러나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마친 후였다. 나는 긴 한숨을 쉬었다.
나는, 원래대로라면, 당신의 기억을 지워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있던 시대에도 이 초원의 역사는 알 수 없었습니다. 알 수가 없었다는 게 맞지요. 아니, 남아있는 게 없었지요. 이 초원은 문명과 역사에 남긴 흔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니 다시 과거로 돌아간 그대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보르테와.
웃음. 하얀 이빨. 주치. 그 작은 생명. 내 손에서 고동치던. 따위의 생각이 가슴을 할퀴어댔다. 니는 먹먹해졌다. 이 사내는 여느 사람이었고, 여느 사내 중에서도 초라한 사람이었다.
테무진.
나는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테무진, 당신은 아까 내 물음에, 행복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내가, 당신의 기억을 지우지 않는, 아니 못하는 이유는.
나는 침을 삼켰다. 목이 말랐다.
과거로 돌아간 당신은 영영 보르테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어떤 고된 삶이더라도, 내가 남긴 이 기억으로 견뎌내기 바랍니다. 그대가, 어머니를 모시고 보르테와, 함께 살았던 이 한 생의 기억, 행복했다고 말한 이 삶을 잊지 마십시오.
사내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사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끝입니다. 이제.
나는 엉덩이를 털었다. 마른 풀잎이 흩날렸다. 사내의 손이 내 손을 맞잡았다. 두껍고 단단한 손이 내 손을 감쌌다.
의형제에게 가겠소. 반드시 보르테를 찾겠소.
그럴 겁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사내의 어깨를 마주 안았다. 옷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기우고 이어붙인 짐승의 털. 그러나 그 가죽 아래에는 사내의 옹골지고 단단한 몸이 느껴졌다. 긴 들숨에는 사내의 몸과 짐승의 털이 푹 삭아 풍기는 냄새가 가득했다. 늙은 개의 냄새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언덕에서 빛이 번져 나왔다. 이제 끝이다. 여러 갈래로 뻗어 나오던 빛이 하늘을 메웠다. 세상을 온통 채우던 빛이 수그러들었다.
5.
자무카의 게르에 들어선 것은 추레한 옷차림의 사내였다. 사내가 걸친 것은 옷이라 할 수 없을 만큼 기우고 기운 들쥐 가죽이었다.
양의 갈비를 뜯고 있던 게르 안의 전사들은 이 사내가 그들의 우두머리, 자무카와 얼싸안는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형제여, 어쩐 일인가.
한참동안 사내의 어깨를 안고 있던 자무카가 입을 열었다.
형제여.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아내를 잃었네. 나는 내 아내 보르테를 찾아야 하네. 나를 도와주게.
그런가. 형제여, 고작 도적 몇 명에게 아내를 잃었단 말인가, 알았네, 전사들을 따로 보내겠네, 아니면, 초원의 법도에 따르게, 다른 아내를 찾아주겠네. 그러니 걱정말고 앉게, 형제여, 함께 마유주로 밤을 지세우세.
그러나 자무카는 입 안에 맴돌던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의형제의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무카는 자신보다 어리고 가난한 사내의 눈에 감도는, 설명할 수 없는 빛에 가슴이 뛰었다. 자무카는 입을 열었다. 자무카의 입에서는 자무카 스스로도 생각지 못한 말이 나오고 있었다.
내 전사 오백을 데려가게, 테무진. 자네를 욕한 자는 나를 욕한 것이네. 자네의 아내를 훔쳐간 자는 내 아내를 훔쳐간 자나 다름없네. 테무진, 그대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고, 나의 전사는 그대의 전사들이네. 가서 자네를 욕보인 자들에게 자네의 힘을 보여주게.
사내는 아내를 되찾았다. 만삭이었던 아내는 아들을 낳았다. 사내는 아들의 이름을 주치, 손님이라 지었다.
8년 후 사내는 칸이 되었다. 사내의 무리는 그들의 칸을 칭기스 칸이라 불렀다. 바다가 닿는 모든 땅의 지배자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