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첫인상을 떠올려보면 지푸라기가 떠오른다. 지푸라기, 라는 말. 어딘가 금방이라도 흩날릴 것만 같은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지푸라기, 하고 한 번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해보기도 한다.
집에 들어오면 언제 묻어 있었는지도 모르게, 옷깃에 묻어 있는 지푸라기처럼 그도 어느 순간 내게 묻어 있었다. 우체국에 찾아오는 다른 여느 사람들처럼, 딸랑, 풍경 소리와 함께 그도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스스한 고수머리. 커다란 뿔테 안경. 너풀너풀하게 품이 남는 코트. 말라서 실제보다 더욱 커 보이는 키. 지푸라기 같은 인상이었다.
그는 안경에 하얗게 서린 김을 닦고,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서류 봉투를 집었다. 봉투 값은, 여기에, 넣으면 되나요? 그는 짧은 문장도 버거운 듯이 끊어 말했다. 네, 여기 넣으시면 되세요. 내 대답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통에 넣었다.
띵동.
54번 손님,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가 서류 봉투 네 개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저, 여기…….”
도톰한 서류 봉투들의 주소는 검은색 펜으로 적은 작은 글씨였다. 나는 주소를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봉투는 모두 네 개였는데, 네 봉투 모두 각각 다른 출판사 주소가 적혀있었다. 나도 모르게 반가움이 일었다. 문학소녀입네, 하고 시를 쓰던 고등학교, 대학교 철없던 시절이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작가 선생님이신가봐요.”
주소를 입력하며 물었다.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뿔테 안경 뒤 가늘고 긴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네?”
“작가 선생님, 이신가보네요.”
나는 반복했다.
“아…….”
하더니 그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유리에 금이 가듯이 가만 바라보고 있지 않노라면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가느다란 실웃음이었다.
“아뇨……. 작가 지망생, 이에요.”
그는 내 말을 정정했다. 아, 그러시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이 지나면 단풍보다 먼저 신춘문예 공고가 뜬다. 첫눈보다도 더 애타게 발표 소식을 기다리던 겨울이 내게도 있었다.
“여기 근처에 S 선생님 사시거든요.”
어째서였을까. 아마도 그 시절들과 그 겨울들 때문이었을까. 나는 괜스레 묻지도 않은 말들을 주어 올렸다.
“그래요?”
그는 눈이 동그래진 채로 대답했다.
“네. 여기 S 선생님이 사셔서. 그 선생님은 원고를 이렇게 택배로 보내시더라구요. 메일 안 쓰시고…….”
나는 화면을 보며 말을 이었다. S작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항상 검은 폴라티를 입고, 가을이 시작하려는 무렵이면 누구보다 먼저 검은 목도리를 두른 모습이었다. 목덜미를 다 덮은 흰 머리, 그리고 짙은 담배 냄새. 사실 그가 돌아간 뒤 다섯 살 많은 옆 창구의 언니가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도 그가 S작가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었다.
나중에 인터뷰를 찾아보고서야 알았다. S작가가 1980년대부터 이곳에 살았고, 교과서에도 실린 「검은 방」, 「안개꽃」 같은 그의 대표작들도 이곳에서 썼다는 것을. 아마 그 원고들도 이 우체국, 어쩌면 내가 앉아있는 창구를 통해 출판사로 갔을 것이라는 것을.
“잘 되실 거예요. 나중에 책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일부러 힘주어 말했다.
“아…….”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등기 도착하면 카톡으로 메시지 갈 거예요.”
그에게 카드와 함께 영수증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하고 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도 웃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돌아서 문으로 향하던 그가, 몸을 돌리더니 다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는 다시 한 번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어느새 묻었다가, 툭 치면 떨어져 또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은, 지푸라기 같은 만남이었다.
이후로도 그는 몇 번 더 원고를 들고 우체국을 찾아왔다. 여전히 머리는 부스스했고, 너풀너풀하게 품이 남는 잿빛 코트도 그대로였다. 그러다 한 번은 내가 이렇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다.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저는 맨날 주소만 읽고…….”
하며 내가 웃자 그는,
“아……. 진짜요?”
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번 방문이었다. 그는 웬일로 넥타이를 찬 차림으로 우체국 문을 열었다. 여느 때처럼 출판사 주소로 서류 봉투 두어 개를 부치던 그는 체크카드와 영수증을 받고도 한참을 머뭇거렸다. 나는 벨을 누르는 대신, 그가 입을 오물거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혹시, 한 번 나중에 시간이 되시면…….”
그는 두 손을 모은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한 번 읽어주십사 해서…….”
채 문장을 끝내지 못한 채 그는 고개를 숙였다. 몰래 장난을 치다 들킨 아이가 교단 앞으로 끌려 나온 것처럼 보였다. 옆 창구의 언니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와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지현 씨, 뭐야, 하고 언니가 내게 말을 건내는 것을 애써 무시했다.
언니에게 어떻게 둘러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물함에 몰래 들어 있던 연애편지를 발견한 기분으로 집에 와서 서류 봉투를 뜯었다.
그의 소설에 대해서, 자세한 것은 쓰지 않으려 한다. 지금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언젠가 그의 글을 마주칠지도 모르니까. 시대와 나라를 종잡을 수 없는 배경의, 사냥꾼이 등장하는 소설이 있었고, SF소설 같은, 터무니없어 보이는 내용의 소설도 있었다. 예를 들면, 마지막에 온 지구를 뒤덮은 UFO의 불빛이 쏟아지는데, 주인공이 그의 애인과 입을 맞추며 끝난다던지.
소설은 모두 일곱 편이었다. 그런데 어리석은 것인지, 아니면 무신경한 것인지, 그가 준 일곱 편의 원고 어디에도, 원고 봉투에도 그의 연락처는 찾을 수 없었다. 나는 하염없이 그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11월, 마지막 주 즈음, 그는 다시 지푸라기 같은 모습으로 우체국 문을 열고 나타났다.
이번엔 등기 우편 한 통이었다. 그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오물거리다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곤 했다.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을 때는 황당하고, 화까지 날 정도이던 그 어수룩한 모습이 갑자기 우스워 보였다.
“이거 가지고 가셔야죠.”
나는 빠르게 내 전화번호를 적은 등기 우편 영수증을 내밀었다. 영수증을 받은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그리고 이내 곧 부끄러움과 실 같은 웃음이 퍼져나갔다. 그는 네, 고개를 거푸 숙이고는 황망히 뒤로 돌아 나갔다. 문을 열고 거리로 나가기 전, 이쪽을 돌아본 그가 허리를 숙여 다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예절교육을 잘 받은 초등학생 같은 인사였다. 나도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그와 첫 만남은, 그러니까 퇴근 사람들이 붐비는 강남 근처의 한 전철역 출구였다. 계단을 오르자 코트 옷깃에 얼굴을 묻고 있던 그가 손을 흔들었다. 얼굴에 너무나도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여 어쩐지 웃음이 일었다. 나중에, 우리가 더 친해졌을 때, 그가 말하기를, 나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문득, 내가 저에게 연락처를 먼저 주고 한 것이 어쩌면 제 상상이나, 아니면 내가 장난을 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는 것이다.
“오 분 늦었기에 다행이지, 십 분 늦었으면 아주 울 뻔했네.”
그 말을 들은 내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농담이라고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를 끌고 이리저리 골목을 돌더니 한 초밥집에 들어갔다. 가게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것을 보아 처음 온 기색이 역력했다. 스쳐 가듯 초밥을 좋아한다고 한 말을 기억한 것인가 싶어 나는 다시 웃고 말았다.
저녁을 먹고, 호프집에 들러서도, 그는 내게 소설이 어땠냐는 식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우체국 근처의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나보다 세 살 어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속으로 조금 놀랐으며, 나는 그에게 내가 국문학과를 나오고 대학생 때는 시를 쓰곤 했다는 것을 말했다.
“언제였어요.”
그는 가끔씩 앞뒤를 뒤바꾼 도치법을 사용한 문장처럼 말하곤 했다. 원래 말을 그렇게 하는지, 아니면 목소리가 작아 내가 그의 말을 듣지 못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또 하나 독특한 것은, 그의 의문문은 끄트머리가 흐지부지 주저앉아 꼭 평서문처럼 들린다는 것이었다.
“지현 씨가, 마지막으로 지현 씨 시를 써본 적이….”
하고 그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걸음을 멈췄다.
“제 시요?”
아하하, 하고 나는 괜한 웃음소리를 냈다.
“저는…….”
김남조의 시를 무작정 따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숲의/겨울은/도시보다 늦다’, ‘낙엽은/허무보다/먼저 떨어진다’처럼 마구 행갈이를 한 문장들을 늘어놓았다가 원고지를 구겨버리곤 했었다. 그에게도 나의 글을 보여줘야 할까 따위의 생각을 하다 말을 돌렸다.
학창 시절 이야기가 나오고 학창 시절의 별명 얘기가 나왔다,
“박쥐, 박지현이니까, 쭉 그 별명이었던 거 같아요. 친구들은 박지, 하고 부르고.”
하고 웃었더니, 그는,
“박쥐, 귀여운 동물이죠. 얼굴을 자세히 보면…….”
하고 말을 늘어놓았다. 말도 안되는 말들을, 우물쭈물. 너무 말도 안되는 말들이라 오히려 웃음이 나오는, 그런 말들.
그의 별명은 ‘경우의 수’였단다. 뜬금없는 별명이어 나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진지하게 별명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고등학교 시절, 경상도 출신의 수학 선생님이 교과서를 읽을 때, 문제를 풀다가도, 아무튼 ‘경우의 수’만 나오면 그를 그렇게 일으켜 세웠다는 것이다.
“경우, 경우의 수, 최 경우. 마, 대답을 해야지.”
아이들이 와, 하고 웃을 때,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나는 생각하곤 했다. 지금처럼 고개를 숙이고 풀 죽은 듯이, 꽃이 오므라들 듯 멋쩍게 웃었을까.
“야 박경수, 니는 왜 대답 안하노. 니도 대답해야제.”
그와 같은 반에는 박경수, 그러니까 경수라는 이름의 학생도 있었는데, 언제나 둘은 도매금으로 엮여 단골로 불렸다 했다. 나중에는 아예 그 둘을 묶어 ‘수학의 아이들’로 불렀다고도 했다.
“그래서 이과를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하고 그는 농담인 듯, 농담이 아닌 듯 말했다.
호프집을 나서서는 당연하다는 듯, 내가 그를 끌었다. 동전 노래방 앞이었다.
딱 4곡만 불러요, 천 원 어치만.
내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는 병아리를 보는 아이들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가느다란 눈에 웃음이 반달 같았다. 취기가 민망함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나는 괜히 더욱 시끄러운 노래를 골랐다.
“왜 자꾸 웃어요?”
노래방을 나오면서 내가 웃으면서 물었다.
“그, 노래, 잘 부르셔서요.”
“그런 것치고는 말을 더듬는데.”
하고 추궁하자, 그는, 지현 씨가 노래를 부르는 걸 보니 아이들이 생각났다, 자라면서 노래를 잃는 것 같다, 따위의 말을 늘어놓았다. 그의 말을 듣다 나는 몇 번씩 웃었다. 취했는지도 몰라, 나는 생각했다.
“왜 자꾸 웃으세요.”
여전히 그의 의문문은 꼬리가 주저앉은 의문문이었다.
“의외라서요.”
”어떤 게…….“
나는 이런저런 것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음. 처음엔 경수 씨 되게 딱딱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웃을 줄도 알고, 템버린도 칠 줄 알더라구요, 따위.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딱딱하다고…….“
길 어딘가에 시선을 둔 채 그가 중얼거렸다.
”아니, 내 말은……. 아니라구요. 안 딱딱하다고.“
그가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래요?“
역 입구에서 나를 처음 봤을 때처럼, 반가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내 무슨 말이 그를 웃게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와 첫 만남을 이렇게 주절주절 늘어놓은 것을, 당신이 용서하길 바란다. 기억을 하나씩 적다 보면 다시 또 다른 기억이 곁가지를 치고, 그 곁가지를 다 마무리하고 나면 다른 곁가지가 돋아나는 경험을 당신도 해 보았을까.
슬픈 이야기더라도, 장편 소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원고지 500매를 채울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들이 있다면, 지금보다 덜 허전했을까, 아니면 더 슬퍼했을까. 1년 정도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이야기했다. 고향인 울산으로 내려가 봐야 할 것 같다고. 그는 지금 있는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였고, 서울에서 몇 번의 임용을 떨어졌었다.
”내려가…게 될 것 같아요. 아마도…….“
죄를 지은 아이 같은.
”다음 달에.“
1년을 만나도 그는 내게 존대를 했다. 나는 한참 전에 말을 놓고는, 존대를 하는 그에게 간지럼을 태워본 적도 있고, 존댓말을 할 때마다 술을 먹여본 적도 있었다. 습관이에요, 울상으로, 그는 웃음 섞인 변명을 했었다.
겨울이 되면, 그에게는 신춘문예 말고도 임용고시라는 시험이 찾아왔다.
”우체국은 안정적인 게 전부지, 선생님은 재밌지 않아?“
내가 말했을 때 그는 속으로 어땠을까.
나는 서른두 살이었다. 12월이었으니, 곧 서른세 살이 될 터였다. 그도 곧 서른이 될 것이었다. 서울과 울산이라는 거리 만큼이나 우리 사이에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우리의 시간이 있었다.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부러 다른 말들을 했다. 다음에 보기로 했던 영화, 다음에 가기로 했던 공원, 다시 가기로 했던 음식점 같은 것들을 말했다. 부러 시간을 끌었다. 마침내 막차 가까운 시간이 다가왔을 때, 내 집 근처의 역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했다.
헤어지는구나,
나는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내 입에서 터져나온 말은 이상한 말이었다.
“소설은, 계속 쓸 거야?”
그는 잠시 내 눈을 바라보더니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잘……. 모르겠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을 마주친 채로 다시 말했다.
“소설, 써.”
내 말이 진지하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그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
“꼭.”
웃음기 하나 없는 그의 얼굴이 나를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것을 넘어 어쩐지 슬픈 기색까지 어려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읽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왜요?”
하고 그가 물었다.
“소설은, 소설은 기간이 없잖아.”
나는 답을 해야했다. 아무거나, 무슨 말이건 나는 답을 해야했다.
“시험……. 에 합격해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계약……. 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경우 씨 지금처럼, 지금처럼 계속 쓰면 되는 거니까. 계속 썼으면……. 어디 가더라도…….”
갖가지 이유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이유들이 서로 아우성치고 부딪치며 얽혔다. 결국 나는 하나의 제대로 된 이유도 대지 못했다. 내가 횡설수설하는 동안, 그는 다시 잘못을 저지른 아이의 얼굴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경우 씨 글, 더 읽어보고 싶어서요.”
마침내 나는 어린애 같은 이유를 대고야 말았다. 취기 때문인지 갑자기 눈물이 핑 고이는 것 같았다. 눈 앞이 빙글 도는 것 같은 순간,
균형을 잃고 쓰러졌던 것인지, 아니면 그가 나를 끌어 안은 것인지, 사정을 알 수 없이, 나는 그에게 안겨 있었다 어깨가 아프도록 그의 손아귀에는 힘이 들어 있었다. 뺨에 닿은 그의 턱은 뜨겁고 단단했다. 이를 악물고 있구나.
울음을 참고 있는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고마워요.”
한참을 나를 끌어안고 있던 그가 속닥였다.
“글을 쓸게요.”
바람 소리처럼 흩어지는 목소리로 그가 속닥였다.
“응.”
나는 대답했다. 나를 안고 있는 그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고개까지 끄덕였다.
“어디 가서도 꼭.”
여전히 앞뒤를 바꾼 말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거리며,
“응!”
하고 오히려 더 힘주어 대답했다.
언젠지 모르게 그가 나를 안았던 것처럼, 그는 어느새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가요.”
간다는 것인지, 가라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서 있었다. 한참 나를 바라보던 그는 팔을 들어 손을 흔들고, 뒤돌더니 고개를 푹 숙인 채 계단을 내려갔다. 그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몇 번씩 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갈 때까지 나는 역 앞에 서 있었다. 코끝이 빨갛게 얼어붙을 때쯤, 나는 겨우 걸음을 뗄 수 있었다.
맥주 때문인지, 아니면 목 끝까지 차오른 감정 때문인지 나는 몇 번 씩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라야 했다. 집 근처 서점의 간판이 아직 환하게 켜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문을 밀고 들어섰다.
딸랑, 종소리.
신간 서적이 쌓여 있는 선반을 지나, 내 발걸음이 닿은 곳은 시집들이 꽂혀 있는 책장 앞이었다.
언제예요, 지현 씨의 시를 쓴 적이.
나도 글을 쓸게요.
라는 말이 뒤늦게, 그리고 갑자기 울음처럼 속에서 터져 나왔다. 시집 표지의 글씨들이 뿌옇게 흐려질 때까지 나는 이를 악문 채 고개를 숙였다. 뿌옇게 끓어오른 것이 깜박이고 깜박이다가 다시 가라앉아 투명해질 때까지.
그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연차를 썼기 때문에, 나는 동굴곰처럼 방에서 잠을 잤다. 시집을 한 권 샀던 모양이었는데, 나는 그 시집을 표지 한 번 펼쳐보지 않은 채 주말과 월요일을 보냈다.
화요일은 새해였다. 1월 1일이었다.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했다. 몇 번, 멈칫거리다가 크로스백에 시집을 깊숙이 집어 넣었다.
지현 씨, 하고 언니가 수다스럽게 나를 맞았다. 잘 쉬었어? 작년에 보고 올해 보네, 같은 말을 했다. 나도 웃었다.
“지현 씨, 들어봐.”
내가 출근하지 않은 어제, 우체국 직원들끼리 새해 다짐을 하나씩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내년 종무식 때 얼마나 그 다짐을 지켰는지 발표를 하고, 또 포상도 한다니. 다이어트, 책 15권 읽기와 같은 문장들이 각자의 이름 옆에 각자의 글씨로 적혀 있었다.
내 이름 옆은 텅 빈 채였다.
“지현 씨는 뭐 하려구, 생각한 거 있어?”
나는 펜을 들었다. 이번에는 멈칫거리지 않았다.
“시를 쓰려구요.”
볼펜을 눌러 쓰듯, 한 음절 씩 힘주어 말했다.
“뭐?”
“뭐?”하고 언니가 되묻는 그 때, 뒤에서 왁자한 웃음이 터졌다. 여사님 한 분이 아들 얘기를 하고 있었다. 여사님들이 손뼉까지 치며 웃는 소리가 요란했다.
"지현 씨도 들어 봐, 아니, 글쎄……."
그 이야기는 무엇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그냥 손뼉을 치며 웃었다. 내 이름 옆에는 “시 쓰기”라는 문장이 내 글씨로 적혀 있었다.
일주일이 흘렀다. 한 달이 흘렀다. 그리고 두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언제예요, 지현 씨의 시를 쓴 적이.
그동안 들려오던 그의 목소리가 이제는 또렷한 문장으로 들렸다. 그때마다 시를 써 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깍두기처럼
누구의 젓가락도 닿지 않은 채
쪼그려 앉아 하루를 보냈다,
아니면,
먼지도
눈처럼 반갑게 보이는
그런 날이 있다,
따위의 문장만 끼적거릴 뿐이었다. 겨우 문장들을 엮어 만든 글은 시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조잡했다. 툭 책상이 흔들리면 쓰러질 것처럼 얼기설기 쌓은 문장들을 보며 한숨을 쉬곤 했다. 그러다가,
서랍에서 그가 쓴 편지를 보게 되었다. 다시 편지를 읽었다.
오늘은 학교에서 시험을 치렀습니다. 오늘은 교사가 아닌 시험 감독의 직책으로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풀고 있는 아이들 머리의 가마가 밭고랑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지현 씨가 떠올랐습니다.
문을 열고 우체국 문에 들어섰을 때, 지현 씨의 머리에도 밭고랑 같은 가마가 있었지요. 지금 서른 명의 아이들의 시험을 감독하면서, 나는 서른 번 지현 씨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는,
불꽃 반응이라는 게 있습니다. 알콜 램프에 불을 붙이고 그 겉불꽃에 금속들을 넣으면, 신기하게도 불꽃색이 변합니다. 나트륨은 노란색, 칼륨은 보라색, 구리는 청록색, 칼슘은 고운 주황색 불꽃을 냅니다.
하루에 많으면 네 번까지 불꽃 실험을 합니다. 눈을 감아도 불꽃들이 아른거립니다.
불꽃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낸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합니다. 또는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불꽃에 닿지 않은 금속들은 자신의 색을 영영 모르는 것일까.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것을 꿈꾸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 제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관성처럼 원고를 발송하고, 제 이름이 없는 당선자 명단을 훑고, 실망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새로운 글을 쓰지 않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자신도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부끄럽지만, 지현 씨는 처음으로 제 글을 읽어보고 싶다고 말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현 씨의 그 말이 불꽃이었습니다. 불에 닿은 나트륨 막대처럼, 그 순간 제 안에서 색깔이 터져 흐르는 것을 느꼈어요.
와 같은 편지들.
다시 원고지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시가 아니라, 편지를 쓰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 글을 썼다. 시도 소설도 아닌, 편지에 가까운 글을. 유리병 속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누가 바다에 떠 있는 유리병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주워 이 편지를 읽을까. 이 편지의 수신인이 되어줄까. 그래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신을 수신자로 나는 이렇게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치 파도를 타고 가듯 당신과 또 다른 당신을 타고 이 글이 그에게 갈 수 있을까.
허황한 로맨스 소설 같은 생각.
이런 생각을 하지조차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가끔 고개를 들어, 우체국 문 너머를 바라보곤 했다. 고개를 숙인 채 행인들이 바삐 거리를 걷고, 햇빛을 등에 이고 자동차들이 오고 간다. 내가 아는 것은 우체국 문이 남향이라는 것뿐이었다.
저 문을 지나 쭉 가면 울산에 이를 수 있을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도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저 남쪽 어딘가에서 그도 이렇게 소설을 쓰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신기하게도 정말 확신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더해지고 겹쳐 한 쪽을 이루고 한 쪽과 한 쪽이 만나 한 장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점차 그에 대한 궁금증이 가라앉았다. 글을 쓰다 눈을 감으면, 보고 온 것 같은 기억처럼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버스를 타고 오 분 정도 가면 작은 해변이 있다는 그 남쪽 작은 도시에서 그가 한 문장씩 한 문장씩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이,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이제 작은 파밭을 일군다는, 늙은 부모님과 함께 사는 키 작은 집의 볕이 드는 창가 앞에 앉아 잠깐 창가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결실 없는 인연이라는 것은 잘 안다. 그러나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런 아쉬움을, 이렇게 둥글게 마무리 지어 본 적이 있었던가.
당신 덕분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이 있어 이 보잘 것 없는 이야기를, 이렇게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문장까지 읽고 있는 당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당신, 당신에게 어쩐지 정다운 생각까지 들게 된다. 조용한 호기심까지 모락모락 인다. 이렇게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