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에 대하여

당신은 당신의 마지막 순간을 알지 못한다

by 엽서시

1.

처음에는 우스웠다. 맙소사, 스크린도어에 몸이 끼다니.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일을, 오늘 사무실에서 종이컵을 든 여직원들의 눈빛 앞에서, 어느 정도 프림을 풀어 재밌게 풀어놓을 생각이었다.

눈 앞에서 전철 문이 닫혔다. 전철 안의 사람들은 반쯤 측은하다는 눈빛과 또 반쯤은 나를 나무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날 이해해달라는 표정을 짓는 것, 그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열차 출발 하겠습니다,

하는 방송과 함께 모든 것이 변했다.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이 되서야 나는 내 상황을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스크린도어에 꼭 물려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수천 톤의 쇳덩이가 앞으로 달려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이건 더 이상 우습지 않은 상황이었고,

정말 열차는 출발해버렸다.

내 몸은 큰 충격을 받았고, 의식을 잃었다. 구급대원들이 내 몸을 흔들 때 조금, 의식을 찾았으나, 결국, 병원에 도착하고 40분 뒤, 나는 목숨을 잃었다.


1과 2분의 1

"엉터리네요."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머리를 박박 민 이 사내아이는 날 여전히 노려보고 있었다. 엉터리라니,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하고 하소연도 해보고 싶었지만, 도무지 이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이제 막 처음 죽은 것이다.

"그러니까, 뭐, 그렇긴 하죠…."

겨우 입을 열어 한 대답이란 게 이랬다. 사내아이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아저씨는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뭔지나 알고 있어요?"

뭔지나, 알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말에 나는 애써 정신을 차리려 들었다. 그건 그렇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 그러니까 내 유언?

미간을 좁히고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니까, 구급대원들이 내 어깨를 흔들었을 때인가.

그러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게 그러니까, 잘…."

"어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이는 주머니에서 구깃구깃한 종이를 꺼냈다. 그러더니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쉰 목소리를 흉내내어 읽기 시작했다.

"지금, 시간이, 회사에, 늦을테니, 전화 좀."

그리고 아이는 다시 주머니에 종이를 집어넣었다.

끝?

그러니까 이게 내가 죽으면서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이 말이란 것인가? 지금 시간을 물어보고 회사에 늦을테니 전화 좀 하겠다는 말?

물론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라거나, "주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같은 말은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건 심하다. 내 아내 서영이는 앞으로 남은 평생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남편이 죽으면서 자신에게는 한 마디도 남기지 않고, 출근만 걱정하다 죽었다고 생각할 게 분명하다.

오늘도, 야근이야? 하고 묻는 듯한, 뻥 뚫린 구멍 같은 아내의 마른 입술이 생각난다. 내가 뭐라고 했지. 그 얼굴에 대고.

당연하지, 뭘 물어.

야, 늦었어, 나 간다.

아니, 그도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내가,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보다 더 서러운 것은, 내가, 무슨 말을 남겼는지 그조차 모른다는 것이었다.

문득 울컥 하고 울음이 터진 게 그때였다. 어느새 나는 자리에 주저 앉아 있었다. 주저앉은 김에 울기 시작했다. 서영아, 서영아 하고 목놓아 울었다. 한참을. 넥타이에 침을 질질 흘리며 울고났더니,

아이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주먹으로 눈물을 훔쳤다. 죽은 사람의 눈물도 뜨겁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아저씨에게 기회를 줄 거에요."

뭐?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세요.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니까."

뭐? 그러니까 넌….


2.

대체 누구냐, 고 묻기도 전에,
나는 눈을 떴다. 그 순간, 내 눈 앞에, 전철 안의 사람들은 반쯤은 측은하다는 듯이 또 반쯤은 나를 나무라는 듯이 보고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저 얼굴도, 내 옆구리를 조르는 스크린도어도 아니고,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서영아, 서영아, 사랑한다, 서영아.

나 사실 너 신입생 때 너 처음 봤을 때 부터 좋아했어. 원래 명석이 새끼가 너 좋아했는데 내가 너 남자친구 있다고 거짓말해서 나중에 그 새끼랑 술먹고 싸우기도 했어.

너 맨날 나보고 남자답지 않다고 그러는데 사실 나보다 남자다운 놈 없다.

사실 오늘 야근 없어. 이따 대학 애들이랑 종로에서 맥주 마시기로 했다. 이 부장한테는 장모님 오셨다고 했거든. 근데 어제는 진짜 야근이었다.

서영아, 보고싶다.

나 너무 못 잊고 그러지말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길 바랄,

열차, 출발하겠습니다.


2와 2분의 1

"너무 길고, 너무 장황해요. 이게 뭐야. 잠깐 유언하라고 보내놨더니 200자 원고지 다섯 장 분량으로 논술을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녀석은 여전히 심통이 나 있었다. 녀석이 뭐라고 하건 말건, 난 주먹으로 눈가에 어린 물기를 문질러 닦았다.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을 흘린 모양이다.

오빠는 안 슬퍼? 두 번째 데이트였던가,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네가 말했었지. 아니, 전혀. 남자 주인공이 몸을 바쳐 여자 주인공을 구하고, 꽁꽁 얼어붙은 바닷속으로 사라졌을 때, 난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는 게 더 슬프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빠는 나중에 나랑 헤어져도 안 울거야? 그때 또 네가 물었었다.

서영아. 나, 울었다. 그것도 엄청 울었다.

"아저씨, 이제 다 된거죠?"

구긴 종이를 다시 바지주머니에 넣으며 녀석이 물었다. 나는 아직 감성에 젖은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고 말고. 가자, 이제.

그러나 녀석은 여전히 내가 못미더운 표정이었다. 미간에 주름이 여전한 채.

"아저씨, 근데 아저씨 엄마한테는 말 안해도 되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녀석의 손이 내 바지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럴 때 방법은 하나겠지.

나는 천천히 주저앉았다. 그리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3.

사람들은, 반쯤은 측은한, 그리고 또 반쯤, 나를 나무라는 눈빛, 옆구리를 조르는 스크린도어, 벌겋게 달아오르는 얼굴, 오 분, 오 분이다,

엄마, 그리고 아부지, 효도해드리겠다고 했는데 못해서 죄송해요. 아들이 우리 엄마 아부지 나중에 모시고 살기로 했는데, 아이구, 우리 엄마, 엄마 너무 울지 말고, 울지 마요.

그리고 서영이, 서영아, 사랑한다. 나 만나서 내가 너 고생만 시키고, 내가 죽일 놈이다. 그래서 내가 죽나보다. 정말 많이 사랑했다. 아니, 지금도 사랑한다.

그리고 경식이 이 새꺄, 생각해 보니까 너 나한테 꾼 돈….

열차 출발하겠습니다.


3과 2분의 1

"차라리 리스트를 정하고 한 마디씩 남기는 건 어떨까."

녀석은 한숨을 쉬었다.

"뭐 하고픈 대로 해보세요."


7.

사람들. 반은 측은하고 또 반은 나무라는 듯한. 저들 중 몇이나 자신의 표정을 후회하게 될까. 만일 내가 3초만 더 빨랐어도, 아니, 3초만 느렸어도.

나는 얼굴이 벌게진 채,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지른다.

열차 출발하겠습니다.


9와 2분의 1

"이 부장 욕은 좀 더 해야겠어. 그 개새끼는 꿈에 내가 좀 나와봐야 해."

녀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목이 쉰 건 알고 있죠?"

"그럼."


10.

사람들, 반은 측은, 반은 나무라는, 출근길의 사람들.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는 듯이, 또는 괜히 나 때문에 늦게 된 것을 원망하는 듯한, 권태, 또 반복되는 일상의 무한한 권태, 오후가 되면 저들 중 몇이나 나를 기억할까. 사무실에 기대어 앉아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자신이 얘기하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나 전화를 걸고, 다정하게 얘기할 수 있겠지. 이따 또 통화할게, 라는 말로 전화를 끊으며.

문득 내 입에서 고함이 멎는다. 나는, 그래. 어쩌면.


11과 2분의 1

"왜 하다 멈췄어요?"

"그냥."

나는 숨을 골랐다. 목을 어루만졌다. 아직도 달아오른 목이 진정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문득 넥타이가 답답했다. 이제 할 필요가 없는 것인데.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했던 말들 좀 보자, 고 하고 싶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너무 목을 쓴 탓일까.

대신 또 다시 눈물이 났다. 제기랄.

이 짓을 수백 번, 수천 번을 하면 아쉽지 않을까.

나는 목소리 대신 한 번만, 한 번만 더 하자는 뜻으로 손가락을 들었다.


12.
사람들. 반쯤은 놀라고 또 반쯤은 나무라는 듯한. 언제나 짜증과 권태로 이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 문득 낯익은 이들이 보인다. 항상 맞은 편에서 화장을 고치는, 어딘가 어색한 쌍꺼풀의 처자. 늘 나보다 한 정거장 전에 먼저 내리는, 어딘가 허전한 것이 늘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머리숱의 아저씨.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패션의, 아마도 학생일 듯한, 절대 펴보지 않는 토익책을 옆구리에 낀 청년. 나와 출근길을 함께하는 저들. 직장인들. 언제나 싸움터로 나가지만 항상 패배해서 돌아오는 이들. 언제나 도살장으로 나가지만 항상 살아서 돌아오는 이들. 나는 지금 그대들을 끌어안아주고 싶다. 미안하오, 동지들. 나도 그대들과 함께 이 출근길을 끝까지 함께 하고 싶었소만, 그렇게 하지 못했소.

친구들아, 학교에서 만나고 군대에서 사귀고 직장에서 맞잡았던 나의 동기들아. 너희들은, 잘 살아라. 그냥 잘 살지 말고, 매 순간, 매일매일을 잘 살아라. 그냥 먼저 가는 입장에서 보니, 세상은 그게 전부인 거더라.

어머니, 아버지, 죄송합니다. 대못만 박은 가슴에 말뚝 하나 더 박고 가는 것에 끝내 가슴이 아립니다.

서영아, 나는 마지막까지 너를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내가 너보다 먼저 간다고 생각치 않으련다. 나는 돌아갈 것이다. 버둥거리고 버둥거려 보마. 다만 너는 알아다오. 그렇게 생각해다오.

열차 출발하겠습니다.

아저씨, 아저씨, 정신 차려요. 아저씨, 손가락 보여요? 몇 개에요?

뿌연 빛. 둥근 그림자. 구급대원이구나.

이게 마지막이구나. 이렇게, 끝나는구나. 끝내는구나.

입술을 열자. 숨을 내쉬고, 그래. 말하는 것은 숨을 쉬는 것과 비슷했지.

지금, 시간이, 회사에, 늦을테니…. 전화 좀.


12와 2분의 1

"처음으로 돌아갔네요."

그런가. 아니, 아니지.

"이제 갈까요?"

그래, 가자.

녀석이 씩 웃었다.

"가긴 어딜 가요?"


12.

환했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빛과, 내 옆에서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 소란스럽다. 귀가 따갑네. 저렇게 소리지를 게 뭐람.

환자 좀 진정시켜, 누가 좀.

누군가가 내게 호흡기를 씌우더니,

깨어났을 때는 숨이 헉, 하니 막힐만큼, 옆구리가 아프다. 나는 내가 누워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눈에 낯선 침대와 이불.

오, 그러니까 이곳은,

병실이구나.

수런수런, 두런두런. 수 없이 많은 말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나는 그 중에서도, 내가 찾아야 하는, 찾을 수 밖에 없는 목소리를 찾고야 만다.

환자분처럼 말씀 많으신 분은 처음 봤어요. 지금은 진정하신 상태고, 곧 의식도 돌아올 겁니다.

나는 입을 연다. 목이 잔뜩 쉬었다.

서영아!

드르륵, 병실 커텐이 젖혀지고, 밝다, 그리고, 그리고….

오빠!

서영아, 아파, 아, 아, 진짜로.

허리? 아, 맞네, 오빠, 미안.

아, 됐다, 진짜로. 괜찮아.

오빠야….

아내의 눈에 눈물이 그렁하다. 나는 말을 돌리고야 만다.

회사에 전화는 했어? 나 늦는다고?

미친나. 오빠는 지금 그게 중요하나.

먹고 사는 게 중요하지, 그럼.

죽었으면 몰라도, 하는 말은 목구멍으로 삼킨다. 함부로 할 말이 아니다.

환자분, 사고 현장에서 구급대원한테 뭐라고 하신 줄 아세요? 시간 물어보고, 회사 늦을 거 같으니까 전화 좀 해달라고.

진짜요? 이 오빠 진짜 일벌레라니까요. 아이고, 마누라 생각은 제일 늦게 나드나, 인간아….

조용히 좀 해봐, 상처 울린다.

그럼 내가 전화할까, 오빠야. 부장님한테 하면 되나.

야, 아니다, 내가 할게.

간호사가 핸드폰을 건넸다. 다행히 액정도 멀쩡하다. 다행이다.

뚜르륵, 뚜르륵, 뚜르륵.

여보세요.

장 개자식의 목소리다. 개자식답게 걱정하는 빛 하나 없이 퉁명하다. 그런데 눈물겹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린다. 그리고 목소리에 한 주걱 푸짐히 웃음을 떠 담는다.

"부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아침 말이죠…."


* 10월 19일 사고로 숨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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